초대일시 / 2013_0620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옵시스 아트 OPSIS ART 서울 종로구 소격동 36번지 Tel. +82.2.735.1139 www.opsisart.co.kr
오만과 편견 ● 그림 속의 동물들은 모두 용맹스럽고 화려하다. 가죽은 매끈하게 반들거리고, 갈기는 하늘로 뻗쳐있으며, 깃털은 현란하다. 그러나 뿔은 과장되고, 눈은 튀어나올 듯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공포와 슬픔을 자아내고 있다. 동물들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건물들이 있는 곳은 뉴욕의 월 스트리트다. 해뜨기 전 월가는 인적이 드물고 거리는 황량하지만 여명으로 오히려 찬란하다. 19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가 그렸던 그 폭발적으로 찬란하던 태양의 빛이 이백 년도 더 지난 세월 동안 이어져 건물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은은히 내뿜는 것처럼 보인다. 앵글로-색슨족의 지지 않는 해가 아직도 월가의 한 귀퉁이에 걸려 있는 것이다. 해가 떠서 월가에 아침이 오면 높은 건물들 때문에 유난히 더 좁아 보이는 이 아득한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좁은 길로 이어진 이 오랜 동네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미 하나의 생물체로 완결되어 있는 동물들과 월가는 구본정의 그림 속에서 서로 멀뚱거리며 섞이지 않게 병치되어 있다. 각자 타자가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는 서로에게 오만하고, 그 오만은 서로에게 편견을 구축한다.
적자 생존의 절박함 ● 월가는 지난 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이고 상징이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표준이었고 돈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핵심이었다. 돈을 획득하는 사람은 거리를 누비고 다녔고 돈을 잃은 사람은 이 거리에서 퇴출되었다. 그야말로 적자 생존의 세계요, 정글이었다. 구본정이 그린 동물들은 21세기를 맞이하며 이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표범의 가죽은 그 자체가 금빛을 뿜어내고 있고 초식동물인 소나 얼룩말은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절박하게 이 거리를 덮고 있다. 생존의 절박함 때문에 초식동물조차 육식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둘러싼 생존 자체가 절대적인 자리라는 것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구본정의 그림은 예술적이고 경제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으로 보인다.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의 속성을 그린 풍경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바로크 시절에 지배적이었던 종교화처럼 보이는 것이다.
종교와 시장과 예술, 다른 영역이면서 같은 구조 ● 1970년대 중반부터 종교의 기능을 대체해 왔던 예술이 점차 경제로 대체되어 왔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경제 자체가 생활 전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과 감정까지 침투하여 생활세계 자체가 매우 경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자 아담 스미스가 신의 섭리가 현세에 우리의 삶을 통해 관철되고 있다는 캘빈의 종교적 신조를 받아들여 시장이 얼마나 종교적인지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정식화한 이래 시장이나 자본이 종교와 똑같이 그 자체로 자기 규율적이고 자기 완결적이며 자기 증식 시스템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신의 섭리 속에 통합된 현실 자체가 이미 완결된 것이듯 예술도 그 외부가 없는 자기 지시적(self-referential) 체계다. 뉴욕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 구본정은 이러한 종교와 시장과 예술이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세계임을 이번 전시,『오만과 편견(Arrogance & Prejudice)』을 통해 감각적으로, 새끈하게 보여준다.
카지노 자본주의와 동물적 세계 ● 150년 전 마르크스가 화폐가 가진 종교적 기원과 속성을 분석하여 자본주의가 얼마나 종교적인지를 논증하였다면, 1973년 닉슨 행정부가 금본위 제도를 폐지하고, 1979년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장이었던 폴 베커가 돈으로 돈을 사고 팔고 규제하는 통화정책을 실행하면서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경제화" 되어버렸다. 닉슨은 돈의 가치를 결정해주고 보증해주던 물질적 근거로서의 금으로부터 달러를 독립시켜버린 것이고, 아무 것도 지시 받지 않는 돈은 그 자체가 기호로서만 상호 작동하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예술이나 건축, 철학이론으로 사용되던 "포스트모던"은 이런 과정 속에서 현실이 되었고, 월가는 그 자체가 지역성을 벗어나서 가상화 되기 시작했다. 월가는 라스베이거스보다도 "카지노 자본주의"의 표상으로 등극하였고, 게임이 생존의 조건이 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돈을 따거나 잃거나 그도 아니면 게임 밖에서 표류해야만 하게 되었다. 마치 월가 자체가 콘크리트 정글처럼 느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자가증식적인 자본 축적의 법칙을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이는 야생 동물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알렉산더 코제브가 말하는 "동물적 세계"가 실현된 것이다.
처연하도록 부드럽고 화려한 아우라 ● 그림 속의 월가는 그 자체가 완결된 자본주의 체제처럼 외부가 없다. 따라서 빛은 바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구본정은 합판 위에 유화 물감을 얇게 바른 다음 물기가 없는 마른 큰 붓으로 물감의 입자를 골고루 구석구석 부드럽게 스며들도록 매우 정밀하게 집중해서 작업을 한다. 신부화장보다 훨씬 더 공을 들여 색을 입히고 두드리고 문지르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물감의 입자는 화판의 표면에 촘촘하게 스며들어 그림의 표면이 마치 "물광"이 나는 피부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광이 나는 것이고, 그 광은 마치 바로크 시대 종교화 속의 성인들 배후에서 우러나는 아우라처럼 뿜어 나온다. 그런 후광 속에서 자연을 거슬러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불확실하게 살아야 하는 동물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중세가 저물어 가던 세계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과거를 열망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화려한 색채와 리듬으로 표현했던 바로크 시대의 장인들처럼, 구본정은 처연하도록 부드럽고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 신지웅
Vol.20130622h | 구본정展 / KOOBONJEONG / 具本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