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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Related Project 『눈앞에 없는 낯섦』 제작 / 정지현_장현준_이단지 움직임 / 장현준_위성희 공연시간 / 매주 수요일 2:00pm, 3:30pm / 토요일 11:00am 소요시간 / 약 15 ~ 20분
관람시간 / 11:3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89(원서동 90번지) Tel. +82.2.760.4722 www.arkoartcenter.or.kr cafe.naver.com/insaartspace
정지현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장 천장 공간에 다락방을 마련해 오브제를 설치했던 첫 번째 개인전 『못다한 말』(갤러리 스케이프, 2010), 전시장 내에 가벽을 둘러 오두막을 지었던 『빗나간 말들』(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2011)에 이어, 지하층에 미로와 벽을 향한 객석을 설치한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Bird eat bird』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전시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가 '말'을 통해 보여주는 세계가 점차 확장/변이되어 온 과정이다. 개인을 무감각에 처하게 하는 날마다 속출하는 사건과 사고에 관한 말들이 그의 작업의 주제라면, 생산과 소비, 폐기의 빠른 순환을 거치는 자본주의 세계의 어느 틈에서 버려지는 오브제들은 그의 작업의 재료였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지현은 이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의미를 이루기도 전에 증발하거나 흩어지는 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제 생을 다 살기도 전에 버려지는 오브제들에 투영해, 길에서 주운 오브제들을 다른 조합으로 엮어 냄으로써 스스로를 무력함으로부터 해방시켜왔다. 그에게 있어 소화하지 못한 말들과 버려진 물건들은 서로에게 몸을 빌려주면서 연민의 대구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못 다한 말'을 위한 거처를 갤러리 천장 한켠에 마련했고, '빗나간 말들'의 자리를 전시장 가벽 너머의 공간에 구현했다. 그런데 이번 개인전에는 조금 다른 기류가 흐른다. 새가 새를 먹는다니. 한편, 언제나 관객의 위치를 함께 생각하면서 연극적인 관람의 장면을 연출해온 정지현은 이번 개인전에서도 관객을 조금씩 더 깊숙한 곳의 미로로 유인한다. 어떤 풍경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따로 따로 돌아가는 세계들 ●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정지현이 빚어낸 공간으로 입장할 관객들에게 건네고 싶은 인사다. 3개 층을 살펴보는 동안, 당신이 어떤 확실한 것을 보려 한다면 아마도 여러 번 실패할 것이다. 귀엽거나 기묘한 조형물들의 삐걱대는 움직임과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소리와 멜로디의 토막들이 시적인 리듬으로, 잔혹동화의 정서로 채워진 그의 공간에서 일부 조각에 현혹되거나, 전체적으로 이 공간은 한 작가의 자족적인 세계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빠져나올 것. 이 공간은 수신자로, 발신자로, 아직 모르는 세상의 가이드로 계속해서 자기 역할을 바꿔온 한 작가의 여정이다. 각각의 층에서 우리가 보게 될 풍경도 다르게 펼쳐진다. ●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것은 템즈강 드로잉이다. 런던에서 머물게 된 작가는 매일 반 시간 이상 템즈강가로 나가 그날의 수면을 그리고, 지나가는 배의 종류와 속도를 그 날의 날씨와 함께 기록했다. 작업의 발단은 심지어 그에게 조차도 확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수행한다는 행위의 일정함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 한동안 지내야 했던 시기의 그를 작가로서 지탱시켜 주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작업 노트를 보면, 군대에서 그가 맡았던 일이 하루 종일 바다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선박을 기록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같은 일을 매번 정확하게 처리해야 했던 지난날의 지루한 과제를 그는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부과한다. 그렇게 묵묵히 스스로의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그 속절없는 성실함으로 그는 한 세계의 수신자가 된다. 강물 드로잉 맞은편에는 그가 템즈강물에 띄워 보낸 작은 뗏목들의 사진이 놓여 있다. 버려진 사물을 주워 일시적인 조합의 연대로 엮어내는 것은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였다. 매일 같은 곳에 앉아 강물을 받아-그리던 그가 거리에서 주운 사물들을 조합해 작은 뗏목을 만들어 어딘가로 떠나보낼 때, 수신자에서 발신자로의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오래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그를 따라, 우리도 이동해야 한다.
2층에는 그가 세상에서 마주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한쪽에서는 어떤 비극이-새가 새를 먹는다- 한쪽에서는 어떤 희망이-무지개를 꾀하는 도구가 5분마다 한 번씩 작동한다- 그리고 어느 구석에는 누군가 살아가는 풍경이-작은 집 안에서는 누군가 손톱 깎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온다-나타난다. 이 풍경들은 어느 정도 자족적으로 완결되어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브제들의 반복된 행위들은 희망을 담보로 하지 않고 -우리는 무지개를 볼 수 없고-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여전히 『별안간 무지개가』는 5분에 한 번씩 공중에 분무하며 무지개의 가능성을 선사한다. 이것은 다만 어떤 계기를 향해 계속되는 시도들이다. 우리의 모든 바램들이 이루어지는 언젠가를 약속하지도,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만두지도 않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 시간마다 울기를 멈추지 않는 벽시계 속의 뻐꾸기 새처럼 계속해서 돌아가는 공간, 저기 멀리서 어떤 작위의 세계가 열린다.
이 세계가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 남은 여정은 지하층에서 이어진다. 미로가 객석으로 이어지는 이 공간에서 정해진 감상의 방향은 없다. 미로를 구성하는 나무 기둥에 붙어있는 갈대와 조명은 이 공간에 입장한 이에게 반응해 움직이거나 밝기가 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벽면에 증폭된 그림자로 확장되고, 한편으로는 한쪽 모서리에 놓인 모스부호 송신기를 통해 알 수 없는 언어로 번역된다. 누군가는 객석에 앉아 벽면에 이는 그림자의 무늬를 감상하는 것으로, 누군가는 작은 모니터를 통해 모스부호가 보내는 메시지가 문자로 번역되는 것을 감상하는 것으로 이 움직임의 줄거리를 엮어갈 것이다. 간간이 울리는 소리의 정체는 57분 교통정보에서 발췌한 소리들이다. 이 말들은 눈이 내린다고, 비가 온다고, 대교가 막힌다고, 도로가 한산하다고, 대비되는 현재진행형의 정보를 알려주면서 현재를 알 수 없는 시공간으로 몰아간다.
정체를 밝히라는 주문과 계속해서 열리는 이분법의 카테고리 속에서 모든 것이 증발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 태어나 완전히 소멸하기까지를 관찰할 수 있는 한 완성된 세계이다. 그 세계의 크기와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계기들의 조밀함이다. 이곳에서 정지현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한 작가의 손이 일구어낸 이 작위적인 세계는, 뭉클하게도, 당신에게 반응하면서 자족적인 테두리의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비록 그 끝이 깨진 말들의 모니터이거나 그림자라는 허상이 넘실대는 막다른 벽일 지라도 말이다.
생면부지의 세계 ● 신비가 사라진 세계다. 모든 사물이 정해진 용도와 알맞은 가격과 수명의 신상명세를 가지고 태어난다. 오래된 집이나 무덤가에서 도깨비불을 목격하던 때는 신비가 삶에 붙어있었다. 그때는 그릇에 담은 물에도 소원을 빌었다. ● 합목적성을 부여받은 사물에 둘러싸여 규정된 질서 속에서 살아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제도적으로 물려받은 감각의 습관-학습된 체계들, 기호들, 재현들의 테두리 속에서 세계를 인지하면서 우리는 반쪽의 세상을 감각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사물을 통해서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면 그러한 순간은 아마도 사물들의 불길한 측면을 통해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나타날 것이다. 신상명세가 파기된 사물들로부터 낯선 얼굴들을 구축해 내는 작가의 손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사물들의 미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정서와 감각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하나의 계기가 더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 항구적인 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사물의 행위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오브제를 전시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들어가는 공간'을 구축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당신에 의해 이 공간에 심어진 움직임이 변화되는 체험 속에서, 생면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 우아름
Vol.20130612h | 정지현展 / JUNGJIHYUN / 鄭知鉉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