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612_수요일_05:00pm
But For Meeting You On That Path CHINA SPECIAL: LIANG SONGWEI·ZHANG PENGYE TIBET PHOTO EXHIBITION
주최 / 중국송좡예술품교역망 주관 / 대운미전자유한공사 협력 / KEEN INTERNATIONAL INC (캐나다)
기획 / 이용환 교수 기획(중국) / 주잉지에_쟈오츠_량티엔쯔 기획(한국) / 고영화_김동욱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1. 작품 주제 설명 ● 사진전 주제『바로 그 길에서 너를 만나기 위함이다』는 청나라 강시황제 45년 (1706년), 6대 달라이라마「창양쟈쵸」가 옥에 갇혀 북경으로 압송되는 여정 중에 지은 한 수의 시에서 유래한다: 어느 하루, 눈을 감고 경전 향 연기 중 불현듯 너의 가벼운 진언을 듣는다 / 어느 한달, 내가 모든 전경통을 돌리는 것은 해탈을 위함이 아니라 / 너의 손끝을 만지기 위함이다 / 어느 일년, 산길에 머리 숙여 포복하는 것은 알현을 위함이 아니라 / 너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함이다 / 어느 일생, 산을 지나고 물을 지나고 불탑을 지나는 것은 내세를 위함이 아니라 / 바로 그 길에서 너를 만나기 위함이다 ● 량쏭웨이 및 장펑예 작가는 이 시 중에서 한 구절을 전시회의 주제로 선택했다.
2. 작품소개 ● 량쏭웨이 선생은 2004년부터 10여 차례 티베트를 방문했다. 그는 티베트의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으로 시작해서 후에 인문(人文)촬영으로 전환했다. 그리하여 티베트인들의 심리세계에 깊이 다가갔다. 이번 사진전은 2007년, 2009년, 2011년, 2012년 4차례 티베트 방문 시 작품 중에서 선택했다. 렌즈를 통해 기록된 티베트사람, 고원의 고결한 토지상의 라마승, 아주 평범, 소박, 호방, 행복한 생활의 화면들이다. 그의 작품 속에 현대 우리에게 펼쳐진 것은 한 장 한 장 모두 평온하게 웃는 얼굴들이다. 30점의 작품을 통해 우리를 신비한 티베트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인도한다. 작품의 색조는 차분하고 신비한 효과를 증가시키고 있다. ● 장평예 선생이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2007년 7월 10일 사천성을 통해 티베트 지역에 들어가 따롱사원(达隆寺) 개축 낙성식에 참석한 내용이다. 친구들과 자동차를 운전해서 생사의 선을 넘어 무인 구역에 진입하고, 해발 5000미터에서 오는 고산병 증상을 참아냈다. 결국 티베트 남부지역 800여년 역사의 따롱사원 도착했을 때, 멀리서 날듯이 달려와서 그들을 영접한 600여 명의 말을 탄 무리를 발견하고는 감개무량했다. 이때부터 3일 동안의 티베트 불교사원의 낙성식 전 과정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이중에 18점을 선별해서 전시한다. 작품의 따듯한 색조는 종교적 의식감과 장중감을 더해 준다. ● 량쏭웨이, 장펑예의 사진 작품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기본으로부터 출발해서 티베트 대중과 종교 간에 피가 물에 녹는 듯한 불가분의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두 사람의 작품은 서로 보충적이다.
3. 사진전 배경 ● 두 작가는 원래부터 좋은 친구사이, 예술을 통해 만났고, 예술을 통해 친해졌다. 량쏭웨이는 중국 하남성 출신 사진작가이고, 장펑야는 중국 흑룡강성 출신의 직업 예술가로서 판화, 유화, 조소, 수묵, 사진으로 변천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 – 신비의 토지 – 티베트를 다녀왔다. 그들의 가슴 깊이 감명을 준 화면 하나 하나를 사진이라는 방식을 통해 기록했다. ● 여러 해 동안 이 작품들을 전시하고자 했다. 전 주한 중국문화원 원장을 지낸 주영걸 선생과 한국 친구 고영화 선생 및 김동욱 선생의 노력으로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다. 한국사진학회 회장이며 한국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이신 이용환 선생을 기획자로 모시고, 두 작가들의 작품 중 48점을 정성껏 선별하여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다.
바로 그 길에서 너를 만났다 - 고행의 길 ●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고행의 길이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와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일까?' 라고 한번쯤 생각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왜 그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후회 하기도 한다. 사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 사진가 량쏭웨이는 사업가다. 도로를 건설하고 투자 회사를 갖고 있다. 중국 사회에서 여러모로 존경을 받고 있지만 놀라운 것은 이분은 항상 겸손하다. 우리는 만나서 이런 저런 애기를 했다. 짧은 밤이었지만 오랜 된 친구처럼 내 마음이 녹아 내렸다. 그날 밤 난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양작가에게 사진은 일종의 수행의 길이었다. 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티베트를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중국인들은 티베트 사람들을 '장족'이라 부른다. 장족은 고행을 통해서 부처님의 생각에 가까이 가고자 한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머리와 가슴, 팔, 다리, 배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접촉시키며 하는 절을 말한다. 이는 부처님의 생각에 따르려는 마음과 공경심을 큰절로 표시하는 것이다. 무한히 자신을 낮추고 부처님에 대한 최상의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거만과 교만을 버린다. 티베트인은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오체투지로 걸어간다. 그들은 이를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되고 급기야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사진찍기가 오체투지는 아니다 하더라도 양작가는 사진으로 고행을 떠난 것이다. 그 길은 깨달음을 위하여 시작되었다. 중국 고전에서는 '보고, 맛보고, 깨닫는다'고 했다. 그는 티베트의 종교와 풍습, 풍광 등을 통해서 실체를 인식한 것이 아니다. 사진으로 오체투지하면서 겸양과 겸손을 몸으로 체득하고 자기 자신의 수양으로 사진적 행위를 하고 있었다.
달라이라마 ● 티베트에서는 달라이라마가 정신적인 지주이다. 청나라 강시황제 시대에 달라이라마 5세가 서거하였다. 통치자인 디바(第巴)는 이를 청의 황제에게 알리지 않았다. 달라이라마 없이 15년의 공백 기간이 흘렀다. 몽고가 티베트를 점령하였다. 몽고 병사는 청해 호수와 티베트에 주둔하고 있었다. 디바는 몽고 때문에 달라이라마가 살아있는 척했다. 몽고가 라사에 있는 것을 안 청은 군대를 보내어 몽고 군대를 퇴각시켰다. 그때 비로소 청은 달라이라마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청의 황제는 15년의 통치 공백에 몹시 화가 났다. 그때 디바가 보고하기를 달라이 라마가 어리기에 가르치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순간에 15살 된 6대 달라이라마 '창양쟈쵸' (仓央嘉措)를 찾은 것이다. ● 청 정부를 무서워한 몽고도 티베트의 상태를 청에 보고했다. 청나라 강시황제 45년 (1706)에 청해에 주둔해 있던 몽고 부대가 달라이라마 6세를 창살 수레에 몸을 결박하여 싣고 청의 황제에게로 향했다. 라사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에 달라이라마 6세는 자기가 살아서 도착할지 죽어서 도착할지 무척 혼돈스러운 마음이었다. 라사에서 자기 민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통과 하는 것만도 몇 개월이 걸렸다. 티베트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달라이라마가 몸이 묶인 상태로 몽고군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달라이라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장족 사람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애잔하였다. 거리를 지나가면서 풍경이나 동족을 보면서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자기 민족들의 애환을 부처님을 향한 시로 남겼다. 어느 하루, 눈을 감고 경전 향 연기 중 불현듯 너의 가벼운 진언을 듣는다 / 어느 한달, 내가 모든 전경통을 돌리는 것은 해탈을 위함이 아니라 / 너의 손끝을 만지기 위함이다 / 어느 일년, 산길에 머리 숙여 포복하는 것은 알현을 위함이 아니라 / 너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함이다 / 어느 일생, 산을 지나고 물을 지나고 불탑을 지나는 것은 내세를 위함이 아니라 / 바로 그 길에서 너를 만나기 위함이다
윤회의 스토리 ● 량작가의 사진은 붉은 불경을 펼쳐 놓은 산속풍경 사진에서 시작한다. 이 사진은 하늘과 땅의 관계를 말해 주듯이 하나의 선으로 이 둘을 연결시켜 놓았다. 티베트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로 불경을 걸어 놓는다. 바람이 불면 불경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길에서 목격되는 불경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복이 있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 그의 사진에는 스토리가 있다. 윤회가 있는 스토리이다. 그의 길은 걷다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이야기,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과 같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다. 그는 장족의 풍습과 관습 그리고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웃는다. 심지어 힘겨운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조차도 웃고 있다. 웃는 것은 종교에 대한 강한 의지로 가능하다. 장족의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는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한다. 작가는 달라이라마 6세가 세상을 바라보듯 관조(觀照)하고 싶었다. 그의 시 구절을 음유하며 그들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느끼고자 했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상당한 위험을 겪기도 한다. 야생 동물을 만나기도 하고 기온 변화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오체투지 과정에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이들은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같이 무리를 이루며 가다가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치아를 가지고 가서 절에 있는 나무 기둥에 박는다. 죽었지만 영혼은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의 마지막 사진 두 장은 염원과 천국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고행과 수행으로 마지막 안착지이자 유토피아인 '샹그릴라' (香格里拉)로 귀결함을 보여준다. 불경에서 시작한 그의 사진이 길의 여정을 보여주고, 마지막은 천국으로 마무리 하고 있음은 수행의 과정을 보여주며 이는 수많은 만남과 여정의 결과다.
숭고의 미 ● 량 작가의 사진들에는 비극미 혹은 숭고미가 공존한다. '비극'이라 하는 것은 투쟁을 하다가 파멸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한 소녀가 등 뒤에 들것을 이고 힘겹게 길을 오르고 있다. 조금은 흔들린 이 사진에서 그러한 비극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숭고미로 이를 극복한다. 숭고는 투쟁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비극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숭고는 그 결과가 승리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는 초월을 의미한다. (2012년 12월 12일)
붉은 들판에서 ● 티베트의 어떤 지역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화가 장펑예는 그 광경을 놀라운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가 찍은 티베트는 어느 사원의 역사적인 축성식을 기록한 것이다. 불과 며칠 동안 이루어진 행사는 700년 넘은 절의 재공사를 완공하는 기념식이었다.
축성식 ● 티베트의 장족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다. 사원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적 위치에 존재해 있었다. 티베트지역은 땅은 넓고 사람이 매우 적다. 그래서 높고 춥고 척박한 고원 위에서, 자식들을 사원에 보내 불교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티베트 주민들에게는 문명지식을 습득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불학원내에서 배양된 큰 덕을 갖춘 고승들은 지속적으로 티베트 문화의 전승, 선전, 광고의 중임을 책임진다. 이렇게 사원은 종교적인 장소인 동시에 교육 장소를 의미한다. ● 따롱사(达垄寺)는 티베트의 라사에서 1000km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유목 생활을 하는 그들은 일정한 주거 공간이 없어 아이들을 절에다 맡긴다. 그래서 절은 유아원이자 학교이기도 하다. 이곳의 장족들은 사원에서 유목민의 근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농사 기술도 배운다. 사원은 종교적인 안착지이자 생활 공간으로 이들에게 목숨과 같은 곳이다. 이렇게 중요한 절이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건물이 붕괴되어 그들의 삶의 본거지가 사라지고 있다. 따롱사의 대활불(大活佛)은 사원 신축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10년이란 세월 동안 전국으로 발품을 팔아 보시를 구했다. 마침내 모여진 성금으로 절이 완성되었고 축성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축성식은 자신들의 살아 생전에 꿈을 이룬 것과 같은 큰 사건이었다 이 절의 축성식은 약 70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기에 역사적인 것이다. 장펑예는 축성식에 참여하기 위해 긴 여정 동안 고소증을 견디며 찾아가야 했다. 따롱사에는 800여명의 승려가 있다. 축성식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곳의 장족들은 말을 타고 멀리까지 마중 나왔다. 행운을 가져다 주는 흰 천을 목에 걸고서 그들은 손님을 맞이했다. 축성식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과 승려들이 초원의 넓은 땅에 운집하여 있었다. 그곳에서 성대한 축성식을 한 것이다.
회화적인 접근 ● 그의 사진은 축성식을 촬영한 것이지만 상당히 회화적인 방법론을 차용하였다. 그 이유는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진가들은 원본을 유지하는 선에서 색을 조절하지만 장펑예는 사진의 지배적인 색을 '붉음'으로 선언하고 사진 전체에 그 색을 입혀 버렸다. 아마도 티베트의 스님들이 주로 입는 옻의 색상에 착상하여 붉음의 광경을 보고자 했을 것이다. 그 붉음은 장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겠다. ● 그의 대상에 대한 촬영거리는 전반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각각의 객체를 인식하고자 한다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접근하여 인물이 표정이든지 움직임을 촬영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등거리 촬영를 통해서 장족이라는 집단의 숲을 보고자 한 것이다. 그에게서는 집단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였고 그러한 모티브는 회화적인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객체, 즉 인물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동작이나 표정에서 사회적 역할과 신분의 상대적 태도들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장족사회의 구조를 파악하게 한다. 그는 여기에다 파격을 만들어 낸다. 살아 있는 부처를 의미하는 활불들을 상당히 어두운 공간에서 클로우즈 업하여 인물 사진으로 찍었다. 광이 약해 카메라가 흔들려 사진이 선명하지 않지만 활불들의 표정을 흐림의 효과로 자연스럽게 극대화하고 있다. 그는 화가이기에 이러한 역발상을 한 것이다. 초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활불들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역시 화가적인 관점에서 이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옆으로 두 장을 붙여서 스펙터클로 변경시킨다. 이렇게 두 장, 두 장의 사진을 만들었고 마지막 두 장의 사진은 운집한 사람들의 움직임의 사진을 연속으로 처리하여 축제의 아우성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병렬사진들에서 흐름과 소리를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장펑예 ● 장펑예는 자연주의자다. 그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의 급격한 발전이 환경의 붕괴를 가속하는 데 소시민으로서 반응하고자 한다. 그의 '자전거 작품'은 작은 실천으로 환경 문제를 함께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자전거의 의미는 나라마다 다르다. 중국에서는 교통의 수단이지만 미국에서는 운동의 도구이다. 삶의 수단이었던 자전거는 중국의 발전과 함께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통해서 삶의 애환을 얘기하고자 했으나 이제는 자동차의 증가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안으로 자전거를 등장시키고 이를 통해서 환경을 개선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 장펑예는 축성식을 기록할 때 회화적인 눈으로 대상을 이차원의 평면 구성으로 인식하고자 했다. 붉은 색 톤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고 사람들을 하나의 점으로 보았다. 이 점은 단순한 점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상대적인 가치를 보여주고 있어 사진의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가 회화적인 접근을 했다고 해서 사진의 속성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사진의 기록성이나 각 기호의 구성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회화적이면서 사진적인 요소를 다 같이 소화하여 조화를 꾀하고 있다. ● 장펑예의 다큐멘터리사진은 단순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 맞이와 운집된 사람들의 광경 그리고 활불의 모습들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 사진 한 장에서 다음 한 장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붉음의 미와 회화적인 전략으로 자신의 사진에서 다른 종류의 파격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2012년 12월 29일) ■ 이용환
Vol.20130612a | 바로 그 길에서 너를 만나기 위함이다-중국기획 량쏭웨이·장펑예 티베트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