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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53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7:00pm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상실의 직시, 그 유희에 대하여 ● 유한이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거품은 '소멸'에서 '상실'로, 그리고 하나의 '유희'로 변해가는 작가의 언어다. ● 그의 그림에서 거품이 등장하는 것은 2008년 작「우연한 풍경」에서부터였다. 이 거품의 표현은「날개」(2004)의 우울한 배경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해면조직 형태를 통해 이미 그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다. 다층의 레이어를 지니고 있지만, 평면적으로 보이는 이 해면조직형상은「결코 단단하지 않은 덩어리」(2006) 시리즈를 거치며 점점 화면으로부터 경쾌하게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명료한 선조의 동, 식물 이미지와 강렬한 색채 등은「우연한 풍경」연작에 이르러 아득한 레이어의 몽환적 효과를 벗어난 해면조직 형태와 함께 화면 전체를 자기증식과 확장의 유희로 채워갔다. 2008년, 이 확장의 끝에서 이미지들은 증식을 포기하고 해면조직의 형태는 영롱하게 빛나는 거품의 이미지로 승화한다.
"거품의 생겨남과 사라짐은 흐릿한 기억으로서의 망각과 나의 의식과의 만남의 순간이며 그 순간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현재의 시간이기도 하다." (유한이) ● 2009년도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에서 거품의 이미지를 '상실'이 아닌 '소멸'이라고 읽을 수 있는 것은 작품 속 이미지들의 소멸에 대한 작가의 상념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 이후 작업들은 큰 변화가 보인다. 이전 작업에서의 거품은 영롱하게 반사되는 빛 속에 사람과 창문의 실루엣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아직 정해지지 않은」에서 거품은 외부에서 투영되는 이미지를 반사하는 외향적 존재가 아닌, 시간성을 의미하는 흐르는 형태의 '혈흔'이라고 하는 아픔의 기억을 품고 있는 내향적 형태로 변한다. 이제 '소멸'의 이미지는 작가에게 다가가 '상실'이 되었다. ●「산산조각」(2010)의 혈흔의 이미지가 말해주듯, 이제 거품은 '상실'과 그 순간의 기억에 대해 매우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소멸해가는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의 아픔과 허무함, 집착 등의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喪·失'이다. 아끼던 컵이 깨지던 순간에 느꼈던 기억과 망각의 모순적 욕구와 집착, 그리고 어릴 적 놀던 외할머니 댁 뒷산이 개발논리에 의해 순식간에 통째로 헐리는 것을 목격하며 경험했던 분노와 서글픔의 기억은 '상실'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 무지막지한 신속함이 내가 살고 있는 '현대'의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압축된 현대. 모든 것이 따라잡기에 버거울 만큼 빠르게 변해가고, 변해야만 하며 그래서 과거가 가차 없이 현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대. 그래서 언젠가부터 눈앞에 보이는 모습들 속에서 사라짐을 보게 된 것 같다." (유한이) ● 유한이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혈흔'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같은 화면에 알록달록 레고블록이 등장한다.「폐허의 시간」(2010)에서는 혈흔 속 폐허의 모습과 대비되는 배경 속의 화려한 원색 벽돌집 정도로 묘사되지만, 이내 그의 작업 속에서 레고블록은 거품만큼 중요한 소재가 된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이미지를 거품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직설법은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사라지는 '현대·도시'의 메타포로 장난감 블록을 선택했다. 2010년부터 작가는 이 원색적인 블록과 거품이라는 소재로 작업을 해왔으나, 그것은 잿빛 무거운 거품과 물의 덩어리, 삭막하거나 딱딱한 건축물의 불안한 형태들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장난감을 소재로 하면서도 '유희'가 낄 자리는 없어 보였다.
이번에 전시되는 2012년 이후 작품들에서 주목되는 점은 작가가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희'라는 요소를 작품 속에 녹여 넣으며 '상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미로」와 같은 작업에서 그 전조를 찾아 볼 수 있다. 구체적인 미로를 단색으로 차곡차곡 그려낸「이름의 바깥」(2011)과는 달리 이 작품은『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의 움직이는 계단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열심히 오르지만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꿈속 같은 구조는 무지개 빛 명랑한 색채로 인해 불안보다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착시는「사다리타기」에서 더욱 강조된다. 작품 속 무지개색깔의 사다리는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알 수 없고, 그 끝은 거품처럼 소멸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을 저 끊임없는 오르막 계단에서 고군분투하도록 만들 만큼 충분히 유쾌해 보인다. 거품조차 더욱 가볍고 영롱해졌다. ● 무지개 색의 사용은 복잡한 그리드의 틀조차 가볍게 튕겨버릴 만큼 강렬한 '위장'이다. 투영되는 이미지조차 없이 현란하게 반짝이는 거품의 화려함과 함께 무지개 색 레고블록의 경쾌함은 거품과 장난감블록의 속성인 '덧없음'을 강조하는 장치이자 그 속성에 대한 '망각과 은폐를 위한 위장'이다.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위장으로서의 화려함과 즐거움은 허무한 삶의 청량제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삶 속의 덧없음과 사라짐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삶은 더욱 의미를 갖게 되고 다채로워지며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실'을 직시하고 아파하다가 은폐하려고도 하지만 그것의 의미를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끌어안음으로써 열리는 '새로움', 이것이 '상실'을 둘러싼 작가의 무지개 색 유희가 감춰놓은 숨은 단어인 것이다. (2013.5.21) ■ 왕신연
Vol.20130531e | 유한이展 / YOOHANEY / 柳漢伊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