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희展 / PARKIHNHEE / 朴仁姬 / painting   2013_0529 ▶ 2013_0604

박인희_산1_장지에 채색_125×120cm_2013

초대일시 / 2013_052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박인희 개인전에 부쳐-투명하고 순결한 풍경"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만 그려라. 그리고 단순하게 그려라." (로세티 Rossetti) 1. 들어서며 - 박인희는 일시적으로 빛나는 세계보다는 불순하지 않았을 최초의 순결한 빛을 재현하기 위해 관념으로 자연을 모욕하지 않을 질서를 그림에 반영한다. 자연의 침묵과 하나 되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물의 충만함에 기여하는 거창한 장치 같은 건 필요하지 않으며, 본원적인 힘을 회복하여 투명성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자연에 묻은 온갖 일상의 불순물을 털어내는 것에 몰두한다. ● 화가는 숨 쉬는 한지를 여러 겹으로 바른 장지에 아교와 백반을 거듭 엷게 바르고, 팽팽한 상태에서 엷은 채색과 절제된 붓질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색은 화선지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쌓여가지만 투명하게 우려내어 긴장된 생기와 호흡을 유지했다. 아교를 반복 칠하는 과정을 통해 쉬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새로운 매체로 거듭난 한지에 그는 추상적으로 압축된 언어를 새겨 물성을 재해석한다. 반복행위는 벼르고 벼르는 장인의 손길처럼 과거의 기억들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면서, 수면에 비친 그림자가 수면의 깊이만큼 드리우듯 작가의 깊은 감수성이 깃든 풍경을 채워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 자연에서부터 배어나온 색감을 장지에 정성스럽게 구조화한 감정의 가장 낮은 순간까지 삼투된 화가의 열정은 청아하고, 정밀함이나 구조적인 특별함을 드러내지 않지만 진실의 끝에 이르려는 노력이 생생하게 드러나 신선하다. 이는 항아리의 질감에서 부드럽고 우아하나 단단함에서 오는 넉넉한 아름다움과 신뢰감이 투영되고 있었음을 작가는 말한다. 반복의 미덕과 구조적인 힘을 알기에 작가는 두터운 자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작업의 의미를 살리고 항상 명철함을 유지하려는 태도로 진실성과 끈질기게 조응하고 있다. ● 작가는 작은 것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어떤 존재든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온 몸으로 그린 그림으로 현실이 지닌 미적인 힘을 발견해 나가면서 섭리도 주장도 말하지 않고 산천은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삶에 대한 적막한 명상과 처연한 사랑 그리고 드높은 경외감을 느릿하게 나열한다. 그와 마음 깊이 관계 맺은 조야한 사물들도 기운생동의 내적 에너지는 치열한 긴장 속에 쉼 없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지만 인간의 시각적 판단으로는 인식하기 어렵다. 박인희는 기운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운을 내재화하고 미적 감수성과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된다.

박인희_여름_장지에 먹, 채색_52×60cm_2011
박인희_청계산_장지에 채색_60×52cm_2012

2. 그림으로서의 투명한 풍경 - 자연은 인간의 시선과 무관하게 존재하므로 작가는 굳이 자연을 대상화하거나 감상의 대상으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숭고를 말하지도 않으며, 그저 내 몸의 일부이며 내 몸 또한 자연의 일부로 간주한다. 풍경은 시간의 오랜 축적으로 만들어진 엄숙한 것이기에 함부로 모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태도로, 자연으로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정신에 삼투되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상을 눈으로 바라만 볼 뿐 자신의 가치관이나 감성에 따라 변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보기에 따라 치열함이나 적극성 등의 능동성을 감추고 다른 누군가가 해도 좋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소박한 삶, 혹은 산천초목 앞에서 경탄이나 깨달음을 경구처럼 읊조리지 않는 태도에서 기원하는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소박함 때문일 것이다. 잔잔해 보이는 고요함 뒤에 숨겨진 감정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러므로 표현을 아끼는 겸손한 형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그만큼의 자유로움을 포착하려는 특별한 감성은 자연을 본래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내적 가치인 기운생동의 깊이를 드러내기 위함이므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 자연을 하나로 묶는 우주의 빛인 푸름을 깊고 그윽한 잿빛의 용도로 사용하여 작가 내면의 모성으로 은은하게 풀어내는 풍정에 모든 우주의 섭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정제를 할수록 순도가 높아 불길이 솟는 물처럼 색도 덧칠을 반복하면서 맑아질 수 있다는 신비로운 형식을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간장은 짜지만 맑아졌고, 오래 묵은 포도주는 정화되어 생명수가 되었다. 이는 물이 생명 속에 스며드는 것처럼 생명이 잉태되는 곳으로 돌아가 생기를 얻은 결과들을 그는 반영한다. 내면의 관찰을 방해하는 번쩍거림이 없음에도 세상을 진정으로 편하게 대하는 작가의 시선과 그림의 층위에 축적된 행위, 작가가 작품에 개입하는 방법과 공들인 시간 등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러므로 쉽지가 않다. 삶을 안에서 바라보면 투명성은 가능하다. ● 바깥 시선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들꽃의 범상함을 내적 시선으로 이해하고 그를 통해 삼라만상의 섭리를 감지하려는 노력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사소해 보이는 들꽃일지라도 권태로운 일상을 이겨낼 수 있는 도취제가 포함되어 있어 빛이 어둠 속으로 확산 되리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갇혀 있는 기적을 열어 생기(生起)를 강조하나 절제를 보여준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야생초의 모습에 찬탄하고 야생의 세계를 향해 창을 뚫어 관심을 기울이면서, 쉽지는 않았겠지만 척박하고 삭막한 환경에서도 굽힘없이 생성하는 들꽃의 삶의 숭고함과 애달픔을 공유한다는 메시지를 획득하고 있다.

박인희_겨울이야기-밤눈2_장지에 채색,먹_91×117cm_2013
박인희_봄봄_장지에 먹, 채색_60×52cm_2012

3. 시간을 간직한 맑은 풍경 - 박인희의 그림은 자연을 특별하게 그리지 않아도 자연에 대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의 숭고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고 감응하는 들풀 앞에서의 엄숙한 시간이 잦기도 했거니와, 투명한 세계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 불투명함을 제거하거나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작업에 임하는 까닭에서다. 또한 삶의 흔적을 소중하게 다루는 태도가 차곡차곡 누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의 삶을 절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삶을 내적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으로서 밤하늘은 어두워도 투명하기에 별을 장식하고, 바닷물은 짤수록 옥빛을 드러내는 이 모든 원리가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힘임을 체득한 결과이기도 하다. ●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게 될 풍경을 그리는 일은 어쩌면 자연을 자연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의 세계에서 무의미한 작업일 수도 있으나, 박인희의 풍경은 나그네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어느 순간 자연과 일치감을 느낀 진경산수라는 것으로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풍경이기 이전의 인간이 공존하는 자연의 원초적인 존재를 일깨우는 사건이며 현장이다. 세상은 너무 먼 곳이나 너무 가까운 곳에서는 인식이 어려운, 그저 그렇게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이므로 자신을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음을 깨닫는 여정이기도 하다. ● 그는 자연의 특별한 경관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거주공간의 창밖으로 보이는 청계산의 일상적인 모습에 우연한 눈길들을 보내다가,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눈을 거부하고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자연의 본 모습을 감지해낸다. 그러므로 자연을 인간의 사변으로 변조하지도 않으며, 개인적인 감성을 배제하고,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주변에 언제나 함께하는 온전한 자연의 본질에 다가서는 인간으로서 성심을 다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태도가 그에게서 감지된다. ● 작가는 삼라만상이 기술과 개발로 문드러져 버렸지만 마지막 남은 삶의 가치를 가장 깊이 알고 있는 환자처럼 어느 누구의 신세도 빌지 않고 자연으로 싹터서 자연의 구실을 하다 사라지는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어쩌면 풍경은 도시인의 허망한 자연일 뿐이라는 짐작이 맞는 것이라면 자연을 풍경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자연과의 진정한 교감을 방해하는 오류에 속한다. 얼핏 보기에 부족하고 무가치하게 판단되기도 하지만 존재에 대한 확신이 분명할수록 그 증거를 사소한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천년 동안 눈길 한 번 받지 못했던 들꽃과 마주치는 순간 그것을 감응으로 받아들여 신의 작품인 자연과의 일체화를 체험했다. "예술가는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마음속에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 (프리드리히)

박인희_가을잊기_장지에 채색_117×91cm
박인희_봄밤_장지에 먹, 채색_32×41cm_2012

4. 나가면서 - 그림을 쉽게 바라본다는 것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 그림이 포함하고 있는 상당한 성찰과 작가의 내공을 감지해야 이해가 가능한데, 작가의 생각과 마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작품을 위한 반복적 형식과 시간의 깊이를 지닌 소재에서 기인한다. 작업은 반복적인 자기검토의 수련행위이자, 절대적인 존재 앞에 자기성찰의 기회를 종교적 태도로 끊임없이 따져 묻는 일이다. 또한 화면에 등장하는 두꺼비와 새 그리고 닭은 이미 작가와 함께 시간의 깊이를 간직한 생명들이며, 풍경 속 집, 뜰에 핀 꽃, 하얀 달은 그와의 오랜 추억을 나누는 듯하다. ● 윤동주는 작은 자연의 울림조차 긴장하고 받아들여 자신을 성찰하는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고결함과 숭고함의 차원으로 일상의 자연을 조망한 것이다. 문명화된 인간의 눈으로 파악한 야생초의 세계는 소박함 이상의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나, 박인희 역시도 신의 섭리를 감추고 있는 야생초에 이입되어 그들이 에너지 변화를 통해 우주를 생성해가는 원리의 일부를 파악함으로써 미적 상상력을 키우고 조형적 경험을 구현한다. ● 견고한 결정체로 압축된 조형적 태도는 누추한 현실의 부스러기를 지우고 순결하게 정화된 이미지를 기록한다. 그는 단원의 호랑이 그림에서처럼 날카롭고 가느다란 붓질로 수천 번 터럭을 그렸는데 매우 자연스러워 묵직한 무게와 생명체 특유의 유연한 느낌까지 살아 움직이는 재현을 완성시키고 있음을 인식한다. 사물의 외관을 지탱하는 견고한 선은 무너짐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외부세계와의 단절된 힘을 보유하기 위한 심사숙고의 흔적임을 암시하면서 아늑한 흰색과 쪽빛으로 소망을 품었던 먼 옛날의 푸른 풍경처럼 눈을 매혹시킨다. ● 단숨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일정 시간을 거쳐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그의 작품은 단순한 평면 인식을 넘어, 조선의 '달 항아리'나 고구려의 '수렵도'를 바라보면서 느끼던 기운처럼 더 넓은 세계로 다가가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성찰을 확인하고 당당함의 의미를 더한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진실의 끝에서 다른 세계가 열리는 아이러니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림을 통해 자아를 새로이 정립하고, 자신을 이 자리에 이르게 한 어떤 힘을 느끼고 새로운 나를 회복한 것도 소중한 변화이다. 자연은 그의 삶의 연장이며 그의 생각은 자연의 연장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한 몸, 한 생명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관계임을 인식한 개인의 가치가 그림을 통해 보편 가치로 확대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그림에 축적된 조형성의 힘이다. 아득하게 눈을 감는 자의 감각은 깊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 주성열

Vol.20130529e | 박인희展 / PARKIHNHEE / 朴仁姬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