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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51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89(원서동 90번지) Tel. +82.2.760.4722 www.arkoartcenter.or.kr cafe.naver.com/insaartspace
# 4월 2일 화요일 ● 화가는 "머물러야 하는 곳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 동안 할 만한 무언가"의 의미를 생각한다. 주어진 장소에서 마주치는 풍경을 하나의 캔버스에, 계절의 때때마다 중첩해 겹쳐 그리기로 한다. 그가 마주한 풍경은 일상적인 세계로, 교외의 흔한 그것이다. 근래에 화가에게는 서울, 청주, 광주, 이천으로 해마다 작업실을 옮겨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꼭 그래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자고 나면 하루 아침에도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도심의 시스템과 달리 그곳은 여전히 풀이 나고 지고, 절기마다의 빛이 그대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하나의 캔버스에 시간의 단편을, 단절된 세계의 순간을 입히고 또 입히는 작업은 1년이라는 정해진 기간 안에 덮이고 또 덮인다. 그려진 그림 위에 또 다른 그림들이 켜켜이 올라가 쌓이는 면들은 의도하지 않았던 표현들을 낳기도 하고 반복되는 순간 순간, 그곳에 있었던 작가의 작업의지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 4월 20일 토요일 ● 간혹 주어진 장소를 떠나야 하는 순간에도 화가의 머리 속은 온통 풍경이 머물러 있다. 그가 다시 주어진 장소로 돌아갔을 때 기억 속에 있는 같은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는 순간, 좌표는 사라진다. 범인은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에 대한 지각의 무모함은 지표를 더욱 놓치게 한다. 작업의 전제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지만, 숫자로 정해놓은 지표가 없는 풍경을 그의 눈은 정확히 짚어낼 재간이 없다. 자신의 감을 믿고 임의대로 비슷한 장소를 찾은 다음, 다시 또 그리기 시작한다. # 11월 20일 화요일 ● "… 시인은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깊은 산골짜기에도 돌이 있을까 하여 아득한 옛날로부터 홀로 있는 돌을 찾아 산으로 가서, 길도 없이 가파른 비탈, 늙은 소나무 밑에 있는 돌을 하나 보았다. 이에 시인은 자문 한다. 이 돌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을까? 2천년 전? 2만년 전? 2억년 전? 그리고는 확신을 가지고 자답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다면, 이 돌은 지금부터 여기에 있다. 내가 처음 본 순간 이 돌은 비로소 태어난 것이다." (어느 누군가의 노트 중, 07. 11. 20, 「어느 돌의 태어남, 김광규」의 원문이 실린 신문을 읽고 씀)
# 4월 28일 토요일 ● 시간과 공간의 전제를 두고 시작한 작업은 결말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라기 보다는 하릴없는 일상의 기록과 증명으로의 출발이다. 그림을 배우는 우리는 언제나 그 시작을 '대상'을 마주하는 사생(寫生_대상을 똑같이 보고 베낌)으로 훈련한다. 화가에게 풍경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대상이었겠지만 자연과 더불어 그의 대상은 주체자 스스로의 시간을 포함한다. 이 기록은 '회화(painting)'라는 다분히 신체적, 물리적인 과정의 수행을 동반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의 중첩된 기록은 대상의 재현적인 목적을 드러내기 보다는 화가의 시각(sight)과 손의 노동행위를 축적하여 보여주는 일기(日記)에 더욱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 곳은 온전히 그의 시각이 존재했던 공간이며, 그의 눈이 닿기 시작한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림은 언제나 작가의 존재와 함께 탄생한다. # 5월 10일 금요일 ● 원서동 창 밖은 봄이 지천이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가지가지마다 뿌리뿌리 마다 돋아나는 것들은 어느 하나 같음이 없는 빛이다. '추운 원서동 건물의 온도는 언제쯤이면 두꺼운 옷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원망스러운 생각을 하다가도, 5월에도 봄의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을 감사하며 피식 웃는다. 봄날은 그렇게 또 간다. ■ 이단지_인사미술공간
1년 ● 이 작업은 '1년'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처럼 작업실을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서울, 인천, 청주, 광주로 이사를 다녔다. 잦은 이동은 낮선 곳에 도착하고 정들고 떠나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다보니 머무는 곳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내게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업실 주변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봄에는 앙상한 가지 위에 피어나는 싹들을 그린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그려진 봄의 풍경 위에 무성한 푸른 잎들을 또 그린다. 가을이 되면 여름의 짙은 녹색들을 울긋불긋하게 덧칠하고, 겨울이 되면 그 위로 내리는 눈을 또 그린다. 이렇게 사계절이 한 화면에 누적되면 그림이 끝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끝난다. 또 떠날 시간이다. ● 내게 있어 기억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추억은 흐릿하고 애매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날마다 무언가를 화면에 누적시키는 것은 기억들을 기록하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리려한다. 하지만 계절들이 겹쳐지면서 이미지는 점점 복잡해진다. 그림의 표면도 거칠어져 처음처럼 세밀하게 그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연속된 재현들은 점점 표현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결과, 공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중첩된 풍경과 서로 다른 시간들이 혼재된 순간이 펼쳐진다. 기억들이 모여 추억이 되듯이, 재현들이 모여 표현이 되듯이, 정지된 공간의 순간들을 모아 흐르는 시간의 모호한 무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허수영
One Year ● This painting represents one year. I have moved between Seoul, Incheon, Cheongju and Gwangju for the past three years in pursuit of studios I could use at affordable rates, such as in residency programs. Frequent moves were a repetition of arriving at, developing an attachment for and leaving what were initially strange places. This led me to believe that it would be more personally meaningful to execute projects which were specific to the duration and location of my stays. Therefore, I began painting scenery from the surroundings of my studio. First, in the springtime, I painted buds growing on bare tree branches. In the summer I would again paint thick, green leaves over the springtime scenery. In the fall I would overpaint red on the deep greens of the summer, and in the winter I would once again paint the snow that is falling over this. If four seasons are thus accumulated in one painting, the painting is finished and so is my residency stay. It is once again time to leave. ● Memory to me is truthful, specific and real, but beautiful recollections feel vague, ambiguous and faint. Compiling something onto canvas each day is a process of recording memories. This is why one must paint realistically and specifically each day. However, as seasons overlap, the image becomes more and more complex. The surface of the painting becomes rough as well, so that one cannot paint in as much detail as they did at first. Therefore, the repeated representations turn increasingly expressionistic. As a result, landscapes of overlapping situations which could not coexist unfold along with a moment in which different times are intermixed. As memories come together to become treasured reminiscences, as representations collect to become expression, I wanted to gather the moments of a still space to create a vague pattern of the passing time. ■ Heo, Su young
Vol.20130510e | 허수영展 / HEOSUYOUNG / 許修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