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y Illusion

정현숙展 / JEONGHYUNSOOK / 鄭賢淑 / painting   2013_0424 ▶ 2013_0521 / 월,공휴일 휴관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 자개_147.8×15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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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42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5:00pm / 월,공휴일 휴관

진화랑 JEAN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7-35번지 Tel. +82.2.738.7570 www.jeanart.net

무한한 빛으로 펼쳐지는 환영-역사를 영원히 아름답게 하다 ● 예술은 영원에 대한 갈구이다. 유한한 인생에서 영원에 대한 갈망은 본능이다. 영원한 것이 있다는 믿음은 삶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에 근거한다. 인간이 영원하다고 믿는 대표적인 가치인 미에 대한 욕망은 매우 사치스러운 편이다. 소리, 맛, 움직임에도 미가 있지만 시각적 미는 차별성, 희소성이 가장 짙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장 누리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미는 영원할 수 없지만 미술의 미는 붙잡아둘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기에 미술은 영원성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 자개_49×62cm_2012

이번 『Infinity Illusion』展 은 영원한 미에 대한 욕망을 무한히 채워줄 정현숙의 작품을 회고하는 전시이다. 정현숙은 영원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 온 작가이다. 그녀는 원의 형상으로부터 작업을 전개해나갔다. 원은 우주의 무한한 순환의 표식으로서 영원을 이야기 한다. 원은 한정 없이 모든 방향으로 자신의 세계를 열어놓는다. 원 앞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상상도 가능하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위주로 작업을 해왔는데 아주 완벽하게 분할되고 정리된 추상시리즈에서 조차 따스한 아우라가 감도는 것은 작업마다 등장하는 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 자개_150×150cm_2010

초창기작업(1998-2001)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모더니즘의 차가운 추상을 닮아있다. 하지만 작품의 기운은 화사하고 따뜻하다. 이는 표현된 색감과 부착된 재료에서 기인한다. 작가가 원의 상징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가장 비중을 두고 탐구해 온 부분은 발광하는 질료에 관한 것이다. 원의 개방성, 순환성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치 해와 달이 빛으로 발광하는 것과 같은 묘사를 염두에 둔 것만 같다. 금빛이 기조를 이루는 화면으로 시작된 발광적 작업은 자개가 등장하면서 새롭게 발전되었다. 금색 물감이 환경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계점이 있다면 자개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변질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닌다. 영원을 담고자 하는 의지는 자개로 수놓아진 원으로서 완결된 것이다.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유채, 진주_140×140cm_2006

작가가 이와 함께 탐구해 나간 조형성은 시각적 환영 - 착시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기하학적 조형요소만으로 시각적 착시의 미학을 구현하는 옵아트(Optical Art)를 차용하여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하였다. 선의 각도의 변화만으로 반입체적인 원의 형상을 표현해낸다거나 선의 색감의 변화만으로 중심과 바깥의 앞과 뒤가 혼돈되는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 그 예이다. 2009년부터 전개된 "Before and After" 시리즈는 도자기 이미지 위를 지그재그로 붙여진 자개와 그로써 형성된 수많은 사각공간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박힌 작업이다. 구불구불한 자개로 이뤄진 선이 가로 세로 방향으로 교차되면서 생겨나는 리듬감에 의해 빛의 발광효과가 배가되고 그 사이사이로 크리스탈의 반짝임이 부가되어 전체적인 화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해진다. 이는 마치 햇살이 바닷물에 비치는 순간 다이아몬드 모양처럼 반짝거리는 빛의 형상이 때지어 눈부신 광경을 연출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정현숙의 화면은 발현하는 빛의 강렬함으로 주변의 사물이나 풍경이 흐릿하게 보이는 현상이 착시에 의한 환영을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체험을 제공한다. 이는 결국 영원에 대한 환타지적 감흥을 고양시킨다.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스와로브스키, 자개_64.5×66cm_2012

작가는 자개라는 희소하고도 아름다운 재료의 미를 영원히 전할 수 있는 길은 그것을 예술 안에 담는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해왔다. 작가에 의해 영원히 전해질만한 가치가있는 있는 재료로 자개가 선택되었다면 소재로는 우리나라의 도자기가 꼽혔다. 도자기는 원의 형태에서 나아간 입체조형물이라는 점, 역사의 빛을 머금고 있다는 점에서 원과 빛으로 통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도 이후의 작업에는 도자기 주변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형상을 추가하여 역사가 생명체로 인해 더욱 생동감 있게 되살아나는 느낌을 전하고 있다. ● '역사에 빛을 더하는' 데에 의미를 두는 정현숙의 작업이 시대를 아우르는 미의 개념을 생각하게끔 하는 존재로 빛나길 기대하며, 한편 영원한 미를 체험해본다. ■ 신민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 자개_70×70cm_2012
정현숙_Before and Aft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 자개_41×33cm_2012

빛, 그 영원(永遠)을 향한 수행(修行) ● 온 세상이 찬란하다. 눈이 부시다. 백자도, 꽃과 나비도 빛을 가득 머금었다. 캔버스마다 빛이 가득하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꿈인지 환상인지 아득하여 몽롱하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 따뜻한 아우라(aura)를 품어내는 이 빛의 공간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충만함에 휩싸인다. 빛을 자신의 세계에 붙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인간에게 정현숙의 작품은 작은 이상향과도 같다. ● 인간에게 빛은 탐미(耽味)에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절대적인 가치이자 영원함의 상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현재까지 빛은 생명의 근원이자 신(神)의 상징이었으며 이상이나 이성적 계몽을 나타내는 정신이었고 가장 순수하고 높은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빛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정의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예술적 행위로 이어졌고 예술가들은 점차 의미의 재현뿐만 아니라 그것의 감각적인 체험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미술 역시 같은 궤적을 보여준다. 영월불멸을 꿈꿨던 고대 이집트(Egypt) 미술은 황금으로 빛을 붙잡았고 비잔틴(Byzantine) 모자이크(mosaic)와 중세시대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는 종교적 성스러움을 내포하는 빛을 표현해냈다. 스푸마토(sfumato)와 테네브리즘(Tenebrism)은 빛을 통해 부피와 공간의 체험을 극대화시켰다. 모더니즘(modernism) 시기에 빛은 오르피즘(Orphism)이나 광선주의(Rayonnisme)에서처럼 순수한 조형 요소로 편입되었다. 이후 등장한 라이트 아트(light art)는 빛 자체를 직접적인 매체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 정현숙 역시 빛을 영원히 붙잡으려 노력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결코 사라지지지 않는 눈부신 빛을 발산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떤 과학 기술도 사용하지 않는다. 고졸(古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정현숙의 빛은 아날로그(analog)적인 라이트 아트이다. 그 빛의 정체는 자개와 크리스털(crystal)이다. 정현숙은 2000년경부터 캔버스(canvas)에 금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원(圓)을 그리면서 빛을 붙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영원한 빛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빛을 발산하는 자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개 가루를 뿌렸지만 2007년 이후에는 캔버스에 자개를 이어 붙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비포 앤 에프터 Before and After」 시리즈의 시작이다. 이후 보다 더 찬란한 빛을 원했던 작가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크리스털을 사용하게 되었고 자개 조각들이 교차되면서 만들어내는 공간에 크리스털이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빛이 가득한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 정현숙에게 빛은 영원함이다. 빛은 세상의 시작과 함께 생겨났고 작가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작가는 태양, 달, 그리고 별에 대한 선망, 금은보석에 대한 인간의 갈구가 빛에 대한 욕망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빛나는 물건에 투사한다. 또한 빛은 아름다운 진리이자 세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빛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충만함인 동시에 텅 비어있는 허상이며 그 안에는 있음과 없음, 생성과 소멸이 공존한다. 빛은 가장 순수하게 영원히 존재하는 세상의 진리이다. ● 정현숙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의 형상 역시 세상의 진리를 담고 있다. 작가는 가장 단순한 형태인 원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이어왔다. 빛을 탐구하기 이전부터 정현숙의 작업에는 원이 자주 등장했으며 원의 형태로 부조를 제작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원은 모든 형상을 포함하는 완전한 도형으로서 영원한 존재를 의미한다. 동시에 원은 빛을 상징하는 태양과 달의 형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세계-를 닮았다. 실제로 원은 하늘과 연결되어 신성함, 이상, 초월과 같은 절대적인 힘과 강하게 연결되었다. 원은 모난 부분이 없고 시작과 끝도 없기에 생명의 궁극적인 전체성, 완전성, 순환, 안식, 영원, 통합 등을 상징한다. 원처럼 끝도 시작도 없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가 우주의 완전함과 영원함을 상징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것은 시간이 영원히 재생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내는 형상이다. 따라서 순환을 통한 재생이 일어나는 원은 그 스스로 완결된 영속(永續)의 세계이다. 조에 부스케(Joë Bousquet)의 말처럼 삶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둥근 것이다. ● 순환성과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현숙은 평면적인 원을 점차 입체적 환영(illusion)으로 발전시킨다. 그것은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의 옵 아트(optical art)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볼록한 구(球)의 형태를 띠다가 어느 순간 달 항아리로 변모한다. 크리스털이 발산하는 물리적 빛과 달 항아리가 머금은 정신적 빛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특히 그의 작업에 처음으로 등장한 구체적인 형상이 달 항아리라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달 항아리는 17세기 후반에 나타나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조선 특유의 항아리로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형태 때문에 달 항아리라 불리게 되었다. 작가는 달 항아리를 선택한 이유가 볼록한 구의 형태 때문만이 아니며 그것이 하늘의 달과 닮아서, 빛을 머금고 있어서라 강조한다. 달은 빛이 그렇듯 생명의 리듬을 가진 천체의 가장 완벽한 예로 간주되었고 물과 비, 세계의 생장에 관련된 우주의 변화를 통제한다고 믿어졌으며 생명의 주기와도 연결되어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생을 계시한다. 달 항아리의 흰색 역시 중요하다. 흰색은 상징학의 관점에서 모든 색 중에 가장 완벽한 색이다. 그것은 빛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색이 빛에 의한 작용임에도 불구하고 색을 보면서 빛을 연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흰색을 보면 자연스럽게 빛을 인식한다. 그것은 흰색이 모든 빛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흰색은 선(善)과 진리, 이상의 상징이자 부활의 상징인 동시에 영혼-죽음-의 상징이다.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순결, 정화, 성스러움, 죽음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여 중요시되었던 색이다. 결국 빛, 원, 그리고 흰색은 모두 영원함과 순환이라는 세상의 진리를 담아낸다. ● 영원과 순환의 빛을 만들어내는 정현숙의 작업은 반복적 행위로 이루어진다.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디지털 프린트(digital print)로 형상을 인쇄한 뒤, 0.8cm x 0.2cm 크기의 자개를 붙여나가는 작업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노동의 반복, 축적을 필요로 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이 과정은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는 수행과도 같다. 그런데 반복은 영원히 존재하는 삶-세상-의 근본이다. 반복은 세계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지구의 모든 곳에서는 생성과 소멸이 반복된다. 해와 달은 반복적으로 뜨고 지기를 반복하고 지구는 반복적으로 회전하며 계절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식물을 해마다 다시 소생하고 동물은 번식, 생장한다. 인간은 매일 반복되는 생물학적인 과정을 거치고 반복적인 사회적, 문화적 행동을 한다. 시간 역시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빛이 그렇듯 반복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며 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수행과도 같은 반복의 행위가 빛을 붙잡기에 가장 유효한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빛으로 세상을 채워가는 반복의 과정 속에서 진리를 깨닫는다. 이제 캔버스 위의 물질은 세상의 이치를 함축하는 비(非)물질적 정신으로 변화한다. ● 반복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작업 방식과 자개와 크리스털이라는 재료의 만남으로 인해 정현숙의 작업은 공예와 순수 예술의 결합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자개의 사용은 우리나라에서 고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해 그 명맥을 이어오는 나전칠기(螺鈿漆器) 공예를 연상시킨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작품이 공예의 재해석이자 나전칠기 공예의 재생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다고 인정한다. 또한 작가는 과거 공예와 순수 미술 사이의 관계에 서열화와 부조화가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미(美)의 위계 관계를 벗어나 실용적 사물도 비실용적인 예술 작품만큼이나 관조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된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적 논리에 익숙해져 있다.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순수 예술과 실용 예술의 구별은 그에게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더욱이 정현숙은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여성 미술가들이 공예의 예술성을 강조하고 순수 미술과 공예의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 자신의 작품과 일정 부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특히 공예 작업에 등장하는 반복적인 행위와 문양에서 추상성을 찾아내고 의도적으로 차가운 추상에 대비되는 풍요로운 장식성을 강조한 미리암 샤피로(Miriam Schapiro), 조이스 코즐로프(Joyce Kozloff)의 작업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정현숙은 자신이 공예적 방법을 선택한 것이 전통의 부활이나 공예의 예술화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강조한다. 그것은 장르의 통합을 넘어서는 시간의 통합이자 세계의 통합이다. 우리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전통 공예의 계승이나 서열화된 예술 구조의 해체가 아니라 빛을 통한 영원성의 창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영원으로 자신의 작업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수공예적인 손기술과 노동을 선택한 것이다. ●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과 조화는 한국미에 대한 작가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작가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꾸준히 한국적인 특성을 탐구했으며 실제로 그녀의 작품은 전통적인 한국의 아름다움을 현대화시킨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한국미라는 주제 안에 가둬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전통을 계승하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빛이 이 세상 모든 곳을 비추고 모든 곳에 영원을 체험시키는 것처럼 모두를 아우르는 작업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현숙의 작업에는 나전칠기 공예와 백자와 같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예술만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빛과 시각과의 관계를 인지하고 의도적으로 차용한 옵 아트 외에도 예술의 근원, 세상의 본질을 추구했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나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작품들도 발견된다. 화려한 빛과 섬광을 표현하고자 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와 아르데코(art deco)적인 요소도 소유한다. 그의 조형적 실험에 시대와 지역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궁극적으로 정현숙의 작업에는 영원성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모더니즘에 이르는 전(全) 미술에 대한 탐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20세기 이후 지속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잇는 것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적 물음이다. 여기에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포함된다. 정현숙은 과거를 계승하고 재생시키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과거를 포용하는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 이탈하고 도전한다. 이는 작위적인 재해석이나 현대화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통합이며 일치이다. 작가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순간을 붙잡아 과거와 미래가 모두 포함되는 현재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들과 현재에 있는 것들, 미래에 도래할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작업이다. 그 속에서 시간은 작가의 현재와 만나 영원한 빛이 된다. ● 어느 순간부터 정현숙의 빛 주위에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제 빛이 가진 영원성에서 빛이 가진 생명력으로 자신의 주제를 확장시킨다. 꽃이 양분을 가진 흙 위에서 자라고 나비는 살아있는 꽃을 찾아내듯이 그녀의 빛 주변에 꽃과 나비가 모여들고 찬란하게 반짝인다. 이제 빛은 세상 곳곳으로 흩어지고 모든 것은 빛으로 승화된다. ■ 이문정

Vol.20130427e | 정현숙展 / JEONGHYUNSOOK / 鄭賢淑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