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Otherness

강선미展 / KANGSUNMEE / 姜善美 / installation   2013_0426 ▶ 2013_0630 / 월요일 휴관

강선미_그룹화 grouping_adhesive vinyl_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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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미 홈페이지_www.lineka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장흥아트파크 JANGHEUNG ARTPARK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8번지 블루스페이스 Tel. +82.(0)31.877.0500 www.artpark.co.kr

강선미의 라인 드로잉; 장소, 과정, 맥락 기반의 현대공간예술 ● 강선미의 작품들은 간단히 라인 드로잉, 또는 라인 테이프를 이용한 그래픽벽화로 소개되곤 한다. 일반적으로 흰 벽과 검정 라인 테이프를 매체로 삼는 작업의 특성상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직관적인 이미지를 매개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명료한 흑백 대비로 인한 일루전이 연출되며, 단순화된 사물, 기하학적 형태가 직관적인 도안이 지닌 미적 효과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지고 있는 테이프 작업은 일차적으로 다양한 공간에 그려진(부착된) 바 있는 여러 사물의 이미지가 전달하는 시각적 효과에 의해 기억되기 쉽다. ● 그러나 시각적 특질은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과정의 한 단계일 뿐 전체를 반영해주지는 못한다. 형식상 라인 테이프 작업의 결과는 어느 정도 시각적으로 수용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업이 단순히 이미지의 차원에 국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이러한 이미지는 가상의 캔버스나 스크린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현전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벽면의 이미지는 그것이 아무리 평범한 흰 벽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주변 환경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 작가는 그가 테이핑을 할 공간을 미리 확인하고 재현할 대상을 선택, 제작과 설치를 차례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장소의 특수성을 염두에 둔다고 한다. 다시 말해 결과적으로 작품의 시각적 효과는 그 과정에 내포된 공간에 대한 해석, 그려질 대상이 선정된 맥락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선미의 작업은 '보기 위한' 이미지이기에 앞서 '체험하기 위한' 매개체로 기능한다.

강선미_줄서다 align_adhesive vinyl_가변크기
강선미_뚜껑이 열리다_adhesive vinyl_가변크기
강선미_생략 leave out_enamel on cut-out aluminium, LED_9×164×3cm

이에 따라 강선미의 작업은 특정 장소로서의 공간, 제작 과정, 그리고 그가 고안한 개별 이미지가 기반하고 있는 맥락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작가는 라인 작업이 진행될 벽을 빈 캔버스와 같은 중립적인 매체가 아닌 구체적인 장소로서 다룬다. 즉 작품과 그것이 설치될 환경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므로 작품의 구상에 앞서 작품이 구현될 장소의 상황과 물리적 공간의 성격을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런 과정을 거친 후 그 곳과 상응할 수 있는 이미지를 결정, 최종적으로 이른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인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팝 오브제, 기하학 형상, 때때로 관람자의 지각적 혼란을 야기하는 착시 공간에 이르기까지 강선미의 작업 중 유사한 형상이 반복되는 사례는 드물다. 전시 마다 해당 공간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이미지를 구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시립 미술관 외부 유리벽에 설치되었던 「길을 찾다」(2007), 경기도 미술관 내부 공간의 한계를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해석한 「본체만체」(2007), 전시장의 기둥과 자연광의 관계를 포착한 근작 「연결」(2011)은 그런 측면을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 이러한 라인 드로잉이 제작되는 과정, 즉 장소와 공간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고안된 이미지를 컴퓨터로 재단하고, 출력, 부착하는 과정에 주목할 수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업은 사실상 '붙이기'보다는 '떼어내기'에 가깝다고 하는데, 이는 작품의 결과물과 꽤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원하는 이미지를 붙여가며 만들기보다는 필요한 부분 이외의 부분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니멀하고 즉물적인 선 이미지를 위해 실제로는 굉장히 많은 양의 면이 소모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빼기의 역사로 설명되곤 하는 추상화 과정의 기술적 버전을 연상시킨다. '다름(Otherness)'으로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는 앞서 언급한 측면, 즉 장소나 공간에 대한 해석을 이어가는 동시에 제작 과정의 특징을 점차 인식하고 드러내 보이는 선로 위에 위치한다. 이를 테면 「찍어내다」는 기존 작업의 물질화를 실험하고 있으며, 말줄임표를 모티브로 하는 「생략」은 텍스트(결과물) 이면의 의미 작용, 또는 로딩(loading) 과정을 표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강선미_찍어내다 cookie-cutter_adhesive vinyl on imprinted paper_37×56cm
강선미_찍어내다 cookie-cutter_adhesive vinyl on imprinted paper_37×56cm

개인적으로 필자가 이번 전시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장소와 과정 개념 외에도 작품의 기호-이미지가 현실 사회의 맥락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나타났던 다양한 이미지의 경우, 사실상 이미지의 표면 너머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고 여겨진다. 공간과의 조화, 이미지 자체의 시각적 효과가 강조된 나머지 이미지가 어떤 해석의 대상으로 다뤄지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라인 테이프 작업은 공통적으로 어떤 사회적 기호를 함축하고 있는듯하다. 「정렬」은 횡단보도에서 착안한 형태이며, 「뚜껑이 열리다」는 병모양이 반복적으로 나열된 모습이다. 문제는 「그룹화」인데, 얼핏 기하학 무늬의 만다라처럼 보이는 형상은 동일한 도안이 서로 다른 크기의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반복되는 도안은 기계 부속처럼 보일뿐 쉬이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설명에 따르면 이는 박스 형틀을 본 딴 것으로 검정 테두리가 곧 박스를 재단하는 칼날 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똑같은 박스 형태를 찍어내는 틀을 기호화하여 그것을 재차 반복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다양한 모습의 실제 박스를 잠재적으로 내포한) 박스 형틀은 일종의 프로토 타입으로서 동시대 스테레오 타입의 재생산 논리와 닮은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 이처럼 추상적 표면이 현대사회의 논리를 반영하는 일은 1980년대 보드리야르와 푸코의 이론에 영향 받은 미국의 네오-지오(Neo-Geo, Neo-Geometric Conceptualism), 혹은 시뮬레이셔니즘(Simulationism)의 의미 작용을 연상케 한다. 다만 강선미의 작업은 매체와 메시지의 관계가 보다 끈끈하다고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작업의 소재로 선택된 사물과 제작 과정자체에서부터 이미 동시대 기호질서를 내재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작가는 이러한 형태 반복 속에 그 무리를 이탈하는 대상을 연출함으로써 기계적 삶 속의 개별 주체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내고자 의도한다.

강선미_다름 Otherness展_장흥아트파크_2013

살펴본 바와 같이 강선미의 라인 테이프 작업은 이미지표면 못지않게 장소와 과정, 사회적 맥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소의 성격과 공간의 조건을 토대로 작업하며, 그 작업 과정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요소는 작업의 결과물과 결부되어 흥미로운 해석을 낳는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재해석한 사물의 형태는 때때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강선미의 작업을 단순히 그래픽 도안에 의존한 공간 꾸미기, 또는 공공장소에 적용된 장식적 디자인과 구분시키면서 현대공간예술의 층위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펠리체 바리니(Felice Varini)나 짐 람비(Jim Lambie) 등 유사점이 있는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상황과 장소의 변수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와 같은 미묘한 줄다리기 속에서 강선미의 작업은 평면과 실제 공간, 광학적 시각과 육안, 보기와 체험하기 사이를 진동하는 중이다. ■ 손부경

Vol.20130426h | 강선미展 / KANGSUNMEE / 姜善美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