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425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 강지호_김종권_신원준_양아람_홍준경
관람시간 / 10:00am~07:00pm
센텀갤러리 CENTUMGALLERY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 1209번지 센텀 IS 타워 2층 Tel. +82.51.911.6677 cafe.daum.net/centumgallery
전회(轉回)를 위한 건투-談智 ● '라운드 하우스(Round House)' 展은 스스로를 '언더독(underdog)'이라 명명한 5명의 작가들 자신이 기획한 단체전이다. 19세기 개싸움에서 유래하여 '패자' 혹은 '승리의 가능성이 적은 자'를 뜻하는 언더독이 전시준비 태세의 제 3 단계를 뜻하는 용어로 전투 준비의 긴장상태를 나타내는 '라운드 하우스'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 예술작품은 '세계 속에 얽힌 존재'로서의 작가와 작가가 속한 세계의 상호작용에 의해 성립하며 따라서 시대를 반영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이름아래 단일화된 지금의 이 세계는 인간의 가치를 존재에서 소유의 개념으로, 실제로 환산 가능한 화폐 가치로 환원시켜버렸고 '자율영역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위축 및 최소화된 현재의 미술시장은 청년실업과 함께 예술실업의 문제를 화두로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미술계 가운데 생성되는 권위적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와 불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언더독'에게 가혹한 현실로 체감되며 바로 이 전시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하게 된다.
제약된 자율성의 문제 ● 자율성은 주체의 탄생과 함께 부여된 주체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안에서 그것은 화폐로 객관화 할 수 있는 자본력에 따른 강도의 문제가 되었고, 그것의 권력에 예속되게 되었다. ● 김종권의 작업은 이러한 제약된 자율성에 대한 물음이며 「거짓 없는 진실」의 사진들에서 인위적으로 눈과 귀를 제거함으로서 외적 강압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주체의 모습은 「human」에서 괴기하게 일그러지고 단일화된 종(種)으로 나타날 뿐이며 그들의 '자율적 행위'는 이미 틀 지워져 있는 바닥의 방향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action reproduction」에서 양아람은 순간의 행위를 통하여 혼돈한 형태들을 그려냄으로서 스스로에게 닫쳐진 세계를 개방하면서 심리적 정신적 자유를 만끽하고자한다. 그러나 그것을 덮고 있는 의도적으로 그려진 형태들은 일종의 강박적 행위로 '온전한 자유 가운데 있기'는 다시 자신으로부터 거부된다. 이러한 행위는 작가가 재생산(reproduction)이라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에로의 시도와 제약이라는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을 뿐이다.
강지호의 작업은 폐목재를 스크랩 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사용된 목재는 이미 한 번은 어떤 기능을 부여받은 것들로 그 명이 다해 버려진 것들이다. 작가는 이것들을 모으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 의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듯 그려진 이미지(figure)와 목재로 이루어진 바탕(ground)의 관계 속에서, 위성사진의 이미지를 차용한 「28"50'10.64 S 151"03'33.20"E」에서처럼 고정되지 않는다. 그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여질 수 있는 가능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서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이를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여유로움과 유연한 상상의 틈입이 이루어지는 기회를 창출하고자 한다.
예속된 삶에서의 추동 ● 신원준의 「반추(反芻)」 시리즈는 작가 자신의 현재의 삶의 불만족과 불안에서 비롯한 이전의 기억 혹은 기록에 대한 애착의 작업이다. 특별히 그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흰긴수염 고래는 지구 역사상 가장 몸집이 큰 동물로 작가 자신의 열등감을 유발하는 사회기득권의 권력을 나타내며 고래의 주 먹이가 되는 크릴새우는 작가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간 것에 대한 애착과 작은 크릴새우들은 단순히 퇴행이나 열등한 존재라는 부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무채색을 입히는 행위를 통해 과거를 현재로 끌어들이고 전복시킨 고래 위에서 도시를 형성해가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크릴새우들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고자 한다.
홍준경은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작업을 통해 일상의 사물들을 발기시킴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가시화 한다 그러나 이때의 욕망은 단순한 성욕에 국한 되지 않는다. '스펙 쌓기'의 열풍이 보여주듯 지금의 우리는 사회구조 속에 끼워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기계적 혹은 기능적 인간이 되어버렸고 또한 사회는 그러한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노트북, 책상, 의자 등은 그러한 기능적 혹은 기계적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사회적 관념에서 통제되고 음지에 있는 성욕의 상징인 남근이라는 구체적 형태로 가시화시킴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강요되는 것들에 저항 하고자 한다. ● 언더독의 작업은 사회체제 가운데 그들을 언더독(패자, 약자)이라 규정짓는 외적 강압에 대한 거부이며 그 규정의 힘을 자신들 안으로 되돌리고자하는 방향의 전환의 시도이다. 자신들의 작업을 드러내는 장을 라운드 하우스라 칭한 만큼 그들은 더 이상 불리한 위치에 수동적으로 위치하기를 거부하며 참여하는 태도로 나아가고자 한다. 언더독, 건투를 빈다. ■ 박은지
Vol.20130425e | 라운드 하우스-ROUND HOUS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