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35분, 현대작가-나혜석을 만나다

제5회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 특별기획展   2013_0428 ▶ 2013_0531

오프닝 및 작가와의 대화 / 2013_0428_일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정아_김주희_윤정민_최경락

기획 / 이사라 진행 / 대안공간눈 후원 /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운영위원회

도슨트 / 04월 28,29,30일

관람시간 / 10:00am~06:00pm

행궁동 레지던시 갤러리 HAENGGUNGDONG RESIDENCY GALLERY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 22(신풍동 221-8번지) Tel. +82.31.228.4619

집단의 초상화 ● 나혜석 작품「무희(캉캉)」(1940), 「수원화성문」(1929)에서 보여 지듯 당시의 신여성의 모습과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내 작업주제였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자화상 표현'을 '집단의 초상화'로 확장하여 다양하게 변형해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어느 날 공원을 거닐다가 봄꽃을 심고 있는 아낙네들과 마주했다. 그들의 복장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주변에서는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외선 차단을 위한 썬캡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여인들의 판박이 패션이 의식되었다. 썬캡과 마스크 착용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인지 궁금해졌다. ● 최근 패션디자이너 사라 버튼(Sarah Burton)은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썬캡을 쓴 모습으로 런웨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복고적인 느낌의 드레스와 미래적인 느낌의 썬캡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파격적인 분위기를 발산했다. 그런데 모델들이 입은 의상들은 나혜석의 작품 「무희(캉캉)」(1940)의 여성들이 입고 있는 의상을 연상시켰다. 현대는 시간을 거슬러 복고적인 느낌을 좋아하고 동시에 미래적인 것을 반영한다. 우리시대는 개인의 취향이 다양함을 존중해주는 의식이 아쉽다. ● 여러 장의 종이위에 표현될 '집단의 초상화'는 시간이 섞인 런웨이 풍경이다. 나혜석의 무희와 공원의 꽃심는 아낙네와 운동하는 여인들, 사라버튼의 패션쇼가 시간을 거슬러 만나고 또 시간을/역사를 흐르게 한다. ● 각 각의 종이 위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먹을 사용한 드로잉으로 표현되고, 겹겹이 공간을 두고 설치되어 사람들이 (실제로) 걷고 있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게 된다. ■ 김정아

김정아_집단의 초상화_가변설치_2013
김정아_집단의 초상화_가변설치_2013
김정아_집단의 초상화_가변설치_2013
김정아_집단의 초상화_가변설치_2013

화령전 작약 속 무희 ● 나는 나혜석 작가님의 작품을 저만의 이미지 오버래핑 기법을 활용하여 재해석할 생각입니다 저는 어떠한 사물이나 풍경을 레이어 중첩,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한 장으로 겹쳐 그리는 작업을 했다. 이는 나혜석 작가님이 영향을 받은 입체파의 방식과도 연관되며, 또 보여지는 방식에선 표현주의 기법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작품들은 이렇게 일상적인 사진을 색을 변화시키고 두 장 이상의 이미지를 겹친 그림이다. ● 「화령전 작약속 무희」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나혜석 작가님의 파리 생활 중 영향을 받아 미리 제작되었던 「무희」라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이 저에겐 수원의 「화령전 작약」 꽃밭 위에 놓여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품 역시 「화령전 작약」은 그림자체가 화사하고 화려한 데 비해 「무희」라는 작품 속 이미지와 분위기는 암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두 외로운 그림 속 인물을 화성의 아름다운 화령전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 김주희

김주희_화령전 작약 속 무희_295×144cm_2013

수원서호 ● 본인 작업에 일련의 과정으로서 나혜석기획전의 취지와 맞게 나혜석의 회화를 재조명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본인의 작업내용인 인간이 자연을 동경의 이상향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양가적입장에 대한 것. 이것을 토대로 하여 나혜석의 회화작품을 재해석하려고 한다. 나혜석의 「수원서호」에서 수원의 자연풍경이 작가의 담담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는데,나혜석의 시각으로 본 그 시대의 수원과 지금 현재 우리가 보는 수원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 나혜석의 작품에서 나혜석 자신이 수원의 풍경을 어떻게 보았을 것인가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그림에서 유추되는 것은 분명 수원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수원서호는 공원조성과 갖가지 개발로 인해서 그 당시와는 모습이 달라져 있다. ●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혜석의 작품에서는 자연을 동경의 입장을 보이며 ,달라진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본인은 정복자가 되어 나혜석의 작품을 본인 임의대로 재단, 이미지 를 삽입시킨다. 이는 나혜석 작품으로 수원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지금 현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라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 윤정민

윤정민_수원서호_140×300cm_2013

나혜석의 깡깡 ● 나혜석의 작품 「깡깡」은 서구적인 인체를 단순화하고, 화면전체가 갈색조로 코트의 화려함을 강조한 작품이다. 순종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활동적인 신여성상을 제시하였다. ● 나의 작업은 전통적인 한국화의 먹을 중심으로 「깡깡」의 인물을 재해석하려한다. 인물 안에 놓여있는 책과 전자회로 칩의 기억메모리는 예상을 벗어나는 압축된 소통의 도구이다. 이는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신여성상과 호흡을 같이하고, 현대인들이 문명으로 인한 불편한 소통의 단면을 말한다. 문명은 습관적이고 익숙한 현재를 건너 불안한 징검다리건너기와 흡사하다. 「깡깡」의 재해석 작품은 나의 2013년 作 「징검다리」 연작과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업이다. ■ 최경락

최경락_나혜석의 캉캉_2013
최경락_나혜석의 자화상_2013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은 수원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꼽히는 역사적 인물이다. 특히 최초의 여성화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국 근대 미술사의 중요한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나혜석이 남긴 회화작품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선각자 나혜석 선생을 기리는 행궁동 역사문화 예술마을을 만들기 위한 마을 축제인 제5회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 특별기획전 『10시 35분-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를 통해 나혜석의 회화작품을 되돌아보고 재조명하려한다. ● 우리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나혜석이 남긴 작품들, 특히 그가 태어나고 자란 수원에 대한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기획하게 되었다. 10시 35분.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햇살이 은은하게 비춰지는 따듯한 봄날의 일요일을 상상하며, 안정적인 시간의 편안한 각도에서 나혜석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녀가 살았던 그 시대적 상황속 그녀의 삶, 그리고 그녀를 향한 사회적 억압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회화 작품에만 초첨을 맞추어 나혜석의 작품을 감상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10시 35분, 우리는 그녀의 그림속으로 나혜석을 만나러 간다. ● 80년전 그려진 나혜석의 작품들, 가장 잘 알려진 「무희(캉캉)」(1940)와 「자화상」을 비롯하여 수원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인 「수원서호」, 「화령전작약」과 같은 풍경화, 총 4점을 가지고 특별기획전 공모를 통해 선정된 김정아, 김주희, 윤정민, 최경락 4인의 현대작가들이 나혜석의 작품을 각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즉, 전시제목의 부제처럼 「현대작가, 나혜석을 만나다」이다. 나혜석 작품의 조형적 요소는 유지하되 그 안에서 현대작가들만의 작업방식과 개성넘치는 화법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통로로서, 그리고 나혜석을 새롭게 이해하는 관점으로서, 나혜석을 기억할 수 있는 계기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동시에 본 전시를 통한 4점의 작품들은 나혜석 기념관의 설립 후 기증될 것이다. ■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오! ● 나혜석은 1896년 당시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 291번지(현 신풍동 51번지 일대)에서 태어났다. 그곳 신풍동에 사적 제115호로 지정된 화령전(水原 華寧殿)이 있다. 이것은 전각으로 1801년 순조가 선왕인 정조의 지극한 효성과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내부에 정조의 진영(眞影)을 봉안하고 해마다 제향을 드렸다. 순조는 친히 편액의 글씨 '운한각(雲漢閣)'을 써서 달기도 했다. 나혜석은 어려서 이 화령전을 끼고 놀았다. 지금 화령전 담장 옆에는 나혜석 생가 표지석이 서 있다. 그녀는 집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삼일여학교를 다녔다. 삼일여학교는 수원 최초의 여학교였고 나혜석은 제1회 졸업생이었다. 그 후 그녀는 서울 진명여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의 사립여자미술학교로 활동 무대를 넓혀 공부했으나, 1916년 첫사랑 소월 최승구를 보내고, 또 결혼하고 여행하고 이혼하는 삶의 파란 속에서도 고향 수원은 늘 그녀 예술세계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10시 35분, 현대작가-나혜석을 만나다』는 그런 나혜석의 작품 중 「무희(캉캉)」(1940), 「자화상」, 「수원서호」, 「화령전 작약」 등 네 점을 '창작의 재해석'을 주제로 네 명의 현대미술가에게 과제를 준 것인데, 일종의 '나혜석과 해석적 관계 맺기'를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수원서호」와 「화령전 작약」은 나혜석에게 있어 향리(鄕里)의 추억이면서 심리적 안정처로서의 '풍경'이었을 터. 나혜석의 '풍경화'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지금 우리는 아무런 제약 없이, 구속의 시선 없이 풍경에 서 있을 수 있고 또한 그릴 수 있다. 풍경과 내가 마주한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상징도 은유도 갖지 못한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자율적 의지에 의해서 실행될 수 있다. 그러나 나혜석의 시대는 풍경이 내 밖에 존재함으로서 '나'를 밖으로 밀고 가지 않으면 결코 볼 수도 향유할 수도 없었다. 풍경 속으로 나를 배치하는 힘, 그것은 그 시대의 윤리적 관념과 대치하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언제 어디어서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풍경을 내면화 했다. 그 내면 풍경의 진경이 나혜석의 풍경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가 추구했던 삶과 예술의 풍경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 그녀가 말했다. - 동무의 색씨들아! 오시오. 같이 해봅시다. 브러시를 가지고 캔버스를 들고 일체의 추(醜)를 미화하기 위하여, 일체의 암흑을 명랑화하기 위하여, 다같이 어둠침침한 골방 속(에서) 나아 오시오. 우리의 눈에서, 우리의 손끝에서, 우리의 만들어내는 예술 위에서, 저 흐늘거리는 시대의 신경을 죄어줍시다. 갈 바를 몰라서 네거리에 헤매는 만(萬) 인간의 신생명 충동을 길이 펴도 마름이 없는 구원의 미로 인도하여 봅시다. 혹자는 근대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가 나혜석의 그림들이 소설만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발현이 회화에서는 실패했다고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프리다 칼로같은 여성 작가를 떠 올리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 이전의 조선 율법이 여전히 식민지 이후의 조선에까지 강력한 사회적 율법으로 작동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신여성일지라도 예술가로서의 삶이 참으로 쉽지 않았다는 것을 뚜렷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삶의 바깥을 누비며 풍경에 다가서는 것조차 그 시대 여성들에게는 해방의 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쉼 없이 이주하면서 길어 올린 풍경화는 그러므로 집안 내부에만 갇혀있도록 삶을 제약했던 그 시대의 율법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 ● 그녀가 말했다. - 우리 조선 여자도 인제는 그만 사람같이 좀 돼 봐야만 할 것 아니오?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만 할 것 아니오? (중략) 우리는 인제서야 겨우 여자다운 여자의 제일보를 밟는다 하면 이 너무 늦지 않소? 우리의 비운은 너무 참혹하오 그려. 나혜석의 '바깥 풍경의 탄생'은 그 시대 여성이 견뎌야 했던 '참혹'으로부터의 일탈이기도 했다. 그녀가 외치는 "사람같이 좀 돼 봐야만 할 것"의 의미는 남성 주도의 사회에서 여성이 여성주체의 인식을 통해 당당히 한 주체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뜻하는 것이다. 유진월에 따르면 당시 조선을 장악하고 있던 남성들은 그동안 지적이고 예술적인 사상과 이념의 표출을 통해 독차지해왔던 지도자적 위상과 권력을 여성들에게 나누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여성 작가들을 인정하고 동료로 수용하는 대신 매장시키거나 자신들 문학의 아류로 만들기 원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공공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당시의 모순된 사회를 유지하고자 하는 천박한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혜석은 그런 모순의 사회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만 할 것 아니오?" 그녀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목제 2층집에 '여자미술학사'를 설립하고 설립 취의서를 발표했다. ● 그녀가 말했다. - 우리는 벌써 서양류의 그림을 흉내 낼 때가 아니요, 다만 서양의 화구와 필을 사용하고 서양의 화포를 사용하므로 우리는 이미 그 묘법(描法)이라든지 용구(用具)에 대한 선택이 있는 동시에 향토라든지 국민성을 통한 개성의 표현은 순연한 서양의 풍과 반드시 달라야 할 조선 특수의 표현력을 가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그녀는 "조선 특수의 표현력을 가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양 화구와 붓을 선택할지라도 서양류의 그림을 흉내 낼 때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작품이 아니라 삶의 이주에서 보다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의 회화들은 그가 이주했던 공간들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경성에서 동경으로, 첫 사랑의 무덤으로 그리고 다시 동경으로 안동현으로 유럽으로 양로원으로 이어지는 삶의 공간들은 고스란히 그의 회화적 풍경으로 재현되었다. 그가 주장했던 조선 특수의 표현력은 단순히 조선색의 강조가 아니라 근대적 공간과 식민지 공간, 신여성과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 공간, 정주와 이주의 공간이 충돌하고 부딪히면서 생성된 '바깥 풍경'의 실체들이다. ● 그녀가 말했다. -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 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에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空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중략) 사 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 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1935년에 쓴 「신생활에 들면서」는 어쩌면 그 해에 치룬 첫 개인전의 참담한 결과 때문일지 모른다. 소품 200여점을 모아 전시한 그의 개인전은 이혼과 「이혼고백서」로 인해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미술평론가 김용준은 "'나혜석 개인전'은 전일에 퍽 기대하고 있던 그의 작으로는 너무나 태작만 모은 것 같아서 별로 작품다운 작품을 발견치 못하였으며"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자신의 예술적 탐험을 멈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탈주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 시기 빠른 필체로 「계명구락부에서」, 「전동식당에서」, 「경성역에서」와 같은 작품들을 드로잉 했으며, 그러한 근대 도시풍경을 통해서 '진보'의 앞날을 앞당겼다. ● 그녀가 말했다. - 예술은 나의 일평생의 위안이요, 또 생활의 전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취미요, 나의 직업입니다.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까닭에 아이가 넷이나 되는 금일까지도 틈을 만들어 붓대를 들며, 캔버스를 둘러매고 산과 들로 뛰어다닙니다. 참으로 극성이지요. 누가 시키면 하겠습니까? 나혜석의 삶을 '탈주 욕망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로 읽었던 유진월은 "나혜석은 일생을 두고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감성, 받아들여지는 행동과 배척되는 행동 등의 경계로부터의 탈주를 일삼고 두 개의 대립되어 있다고 상정되는 세계를 넘나들었다"고 말한다. 기존의 사회질서에 저항하고 사회적 억압을 해체시키고자 노력한 그녀는 자신이 속한 헤테로토피아적 공간과 어우러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외적으로는 파멸했으나 내적으로는 결코 패배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런 패배하지 않는 정신의 위대성으로 한국 근대사의 선구적 페미니스트이자 강인한 주인공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 그녀가 말했다. -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오. 그 말의 무게는 그녀의 삶 전체에서 회오리쳤다. 그것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본능과 같았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된 선각자의 삶처럼 느껴졌다. 탐험하는 자로서의 나혜석은 몰락의 삶으로 치달았던 양로원에서, 아니 파멸에 이른 거리에서조차 쉬지 않았다. 1921년 작 「개척자」는 그런 그녀의 선각자적 운명을 예견케 하는 수작이다. ● 나혜석의 작품을 해석적 관계 맺기로 풀어낸 네 명의 현대미술가는 김정아, 김주희, 최경락, 윤정민이다. 그들은 나혜석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는 창조적 해석을 통해 새 작품을 탄생시켰다. 김정아는 「무희(캉캉)」에 주목했다. 작품 속 그녀들은 한껏 새 시대의 여성상을 뽐내고 있는 이른 바 '신여성'의 표본이다. 파격적인 패션과 화장과 몸짓의 이 이미지는 나혜석이 사유했던 여성상의 본모습일지 모른다. 김정아는 이런 여성상의 초상을 나혜석의 「수원화성문」에 대입시켜서 해석했다. 「수원화성문」의 인물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니가 광주리를 인 채 아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전부다. 김정아는 공원에서 마주 친 여성들을 떠 올렸다. 그녀는 당시의 인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외선 차단을 위한 썬캡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여인들의 판박이 패션이 의식되었다. 썬캡과 마스크 착용이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이지 궁금해졌다." 김정아는 동시대 여성들의 풍경에 집중했다. 나혜석이 무희와 치마저고리 여성을 동시대 풍경으로 직조했듯이, 김정아 또한 동시대 풍경을 이루는 여성들의 풍경에 집중했던 것이다. 하여, 그는 인물들의 풍경을 각각의 '인물도'로 재현하기로 한다. 전시장에는 그렇게 풍경을 이뤘던 인물들의 모습들이 하나하나 각각의 풍경으로 재현, 설치되었다. 「집단의 초상화」라 명명된 작품 속 인물들은 제각각의 풍경들이다. 화단을 가꾸는 자활근로자 여성과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성들, 그리고 산책하는 여성들의 일상이 한 공간을 이룬다. 이 작품들의 창조적 잔상은 '풍경 인물화'라는 점이다. 나혜석의 풍경화가 넘지 못했던 곳에는 '인물' 즉 사람이 있었다. 김정아의 작업은 나혜석이 배경으로 다뤘던 인물을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여성이 풍경의 중심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김주희도 나혜석의 「무희(캉캉)」을 해석했는데, 작품 속 무희들을 「화령전 작약」에 오버랩시켰다는 점이 특이하다. 제작 동기에 대해 김주희는 "나혜석 작가님의 파리 생활 중 영향을 받아 미리 제작되었던 「무희」라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저에겐 수원의 「화령전 작약」 꽃밭 위에 놓여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왜 그 생각이 들었는지, 그 생각의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김주희 작업의 핵심은 그 의문들에 있다. 우리는 김주희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작품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화령전 작약」은 그림자체가 화사하고 화려한 데 비해 「무희」라는 작품 속 이미지와 분위기는 암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두 외로운 그림 속 인물을 화성의 아름다운 화령전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김주희는 「무희」가 암울한 느낌이 든다고 했고 인물들 또한 외롭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 암울함과 외로움의 근저에는 나혜석의 삶이 있을 것이다. 「무희」가 나혜석의 심리적 풍경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해석할 수 있을 때 김주희의 그런 느낌은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희가 나혜석이 꿈꿨던 존재론적 실체라 의미부여할 수 있다면 김주희의 작품은 나혜석을 위한 오마주로 해석가능하다. 지금, 화령전 작약 속 무희들은 색으로 휘황찬란한데, 그 휘황함의 꽃밭에서 나혜석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정민의 해석은 「수원서호」에 있다. 윤정민은 "인간이 자연을 동경의 이상향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양가적 입장에 대한 것"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 왔다고 고백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나혜석의 「수원서호」를 '나혜석의 풍경'과 '윤정민의 풍경'으로 인식하는, 즉 시간적 격차의 양가성을 주제로 작업했다. 「수원서호」의 풍경은 주로 남성적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정자와 호수를 그린 것이다. 한국화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은 '풍경과 남성'은 하나의 일치된 상태라는 점이다. 정치와 관직, 남성이 하나였고, 그 하나의 현실을 성취한 뒤 남성들은 풍경으로 들어가 수양하기를 즐겼다. 그러므로 풍경에서 여성은 늘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원서호」는 여성이 풍경의 주인이다. 윤정민은 나혜석이 주체화 했던 풍경의 현실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변질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풍경주체와는 다른 양상이다. 윤정민이 주목한 것은 남성도 여성도 주체화 할 수 없는 풍경의 해체에 있다. 수원서호는 오랫동안 공원조성과 난개발로 해체위기에 처해 있다. 풍경이 없는 곳에서 남성은, 여성은 결코 주체가 될 수 없다. 윤정민의 작품은 어둡고 우울하다. 그곳에는 남성도 여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썩어가는 풍경의 음습한 기운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최경락도 「무희(깡깡」을 다뤘다. 그가 다루고자 한 것은 '불편한 소통의 단면'이다. 그는 나혜석의 화면에서 무희를 꺼내 한국화 기법으로 대담하게 재현했다. 농담을 힘차게 다뤄 표현한 무희들은 그러나 색이 빠진 먹의 느낌으로만 존재한다. 무채색의 인물들은 강렬하게 탄생했으나 지금 여기가 아닌 그때 거기의 '과거'에 속해 있다. 최경락은 그때 거기의 그녀들과 지금 여기의 '그녀들' 사이의 간극을 엿본다. 소통 불가능한 상태의 이면으로 그는 부서진 '통신-기계칩' 오브제를 집어넣기도 했다. 전자회로는 그 스스로 '기억메모'를 저장하지 못한다. 전기가 통할 때만이 기계는 살아있다. 최경락은 그런 인식의 개념을 '징검다리'로 곧잘 표현했다. 이번 작업도 그런 '징검다리'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 김종길

공모기간 / 2013_0328 ▶ 2013_0411 공모발표 / 2013_0412_금요일 작품제작 / 2013_0416 ▶ 2013_0427

Vol.20130424h | 10시 35분, 현대작가-나혜석을 만나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