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424_수요일_05:00pm
후원 / 파란사진학원
관람시간 / 10:30am~06:30pm
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번지 Tel. +82.2.720.2010 www.ryugaheon.com
묵시록의 세계, 지구 이야기 ● 먼저 간략하게 임상섭 작가의 사진을 끌어안기 위하여 사진의 역사에서 그의 작업과 관련된 과거 정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사진은 그 자체로 프로그램화된 말의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대의 태생이면서도 탈근대적 본질을 띈다. 말의 공허 때문에 생기는 침묵과 벌거벗은 말로서 비명, 한탄, 신음으로 이 세계를 동시에 끌어안는 운명일 테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 사진을 보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다. 사진의 초창기에 유령이나 요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찍을 수 있다고 믿은 심령 사진 역시 사진의 이런 본질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더 나아가 심령 사진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합성하면서 일종의 위장 전술을 사용한다. 합성했지만, 하지 않은 척 하기. 그 후 아예 사진을 합성하는 것에 적극적인 세대들이 등장한다. 이것 저것을 따와서 자신의 세계관에 맞춰 짜맞추기, 몽따쥬다. 동작을 끊고 분리하는 기계에 의해 압도되는 현실에 맞서 사진을 기계처럼 끊고 분절하여 이 세계에 대응하였으리라. 그럼에도 지금과 비교하면 일면 순진한 세계다. 지금은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 이후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디지털 정보로 대체되었을 때, 디지털 정보의 조작을 통해서 없던 것을 채워넣는다. 부르조아들은 적극적으로 광고를 통해서 이 도구를 이용하는데, 오히려 사진가들은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이 가능성을 보지 못하였다. 사진 이미지의 정보를 어떤 프로그램에 입력만 하면 지구 이미지도 태어나게 하는 시절, 문제는 이 도구의 구성이 이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이 도구를 활용하여 사진가가 어떻게 시대를 드러내며 반영된 세계를 돌파하려고 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리라. 아마도 시간이 좀 걸리리라.
임상섭 작가가 드러낸 사진은 새 도구의 등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인공위성에 달린 렌즈에 맺힌 지구의 모습 같기도 하면서, 만약에 존재한다면 신의 안구에 맺힌 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 여튼 이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에서 사람의 작은 안구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큰 세계와 작은 세계가 닮아 있어서 우주의 구조가 잎사귀에 맺혀 있다는 프렉탈 이론과 사진가의 의식 구조 또한 묘하게 닮아 있다. 모든 파멸은 이미 예고되고 실행된 작은 부분에서 오는 것처럼 이 땅의 파괴되는 한 부분을 통해서, 파괴되는 전체를 본다. 이런 지구 전체를 조망하고, 지구의 파괴까지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은 실은 자본주의의 힘에서 토건국가로서 존재하는 남한의 끝없이 펼쳐지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아파트와 공사장, 쓰레기처리장 등등을 통해서 어찌할 수 없는 드러냄일 테다. 사진예술이 한낱 유희로 변해가는 시절에서 문명 비판이란 본연의 선상에서 해내는 귀한 작업이다.
그의 사진이 묵시록의 서사로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부풀어 있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서지는 지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달콤한 케익이 잘려나가거나, 떨어져나간 것처럼 보인다. 이 달콤함이야말로 부르조아들이 끊임없이 개발주의와 역사주의로서 유혹하는 미혹의 언사들이다. 자, 맛봐라, 먹여 삼켜라, 네 탐욕을 충분히 채워라, 생존이 채움이라는 그들의 논리처럼. 물론 그의 사진에 동시에 위험성도 존재한다. 미적추구라는 면에서 미국에서 유행하여 지속적으로 활기를 띈 지형학 사진들 중 몇 사진에서 느꼈던 감정이다. 아름다움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혹하지만, 실은 파괴된 자연이라는 역설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그들의 논리에 일면 타당함도 있으나, 오히려 역설보다는 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추구, 나아가 상업적인 논리로 종종 읽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이 부분에서 낭만적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 냉정하게 미적 추구를 폐기하든지, 아니면 거대한 아름다움, 더 이상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아름다움, 나아가 이 세계를 넘어서 이 땅의 인식의 뒤통수를 치는 아름다움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후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작가의 운명이다. 우리는 지켜보고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 장수선
땅,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땅의 역사는 대략 46억년 정도이다. 원시의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를 식히며 딱딱한 땅을 만들어내고 대기를 만들어 생명을 창조해 내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거대한 생명의 순환을 만들어냈으며 판게아의 땅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지구는 46억 년 전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변화하고 또 꿈틀대고 있다.
수억 년 진화의 시간 동안, 땅은 계속 변했고 그 땅 위에서 생명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빙하기가 오면 땅 위의 생명들은 멸종의 위기에 이르렀다가 다시 회생하였으며 그 안에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를 거치며 인간은 태어났다. 인류의 문명은 지구의 역사 안에서 수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수억 년에 걸쳐 쌓아온 지구의 비옥함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법을 쉽게 깨달았다. 땅을 파내어 철을 캐고 금을 캐었고 철심을 박아 석유를 캐내었다. 땅의 비옥함은 곧 문명의 비옥함이 되었고 결국 문명은 하늘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문명은 땅을 파고 바다를 매우고 하늘을 찢어 그 비옥함의 크기를 넓혀왔던 것이다. 찢겨진 하늘은 얼음을 녹이고 녹아버린 바다는 섬들을 삼키고 섬은 바다가 된다.
지구는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화의 주체가 지금 지구 스스로가 아니라 인간으로 옮겨진 데에서 문제가 있다. 겨우 만 년도 안 된 문명은 수억 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다. 딱딱한 땅거죽을 벗겨내고 끝도 없는 구멍을 파며 하늘을 찢어내고 있다. 난. 수억 년의 시간을 응축하며 땅을 파내고 뜯어내며, 하늘을 계속 찢어버린다면 결국 이 땅이, 이 지구가 우주의 쓰레기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임상섭
Vol.20130423b | 임상섭展 / LIMSANGSUB / 林尙燮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