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일상을 그린다.

지현展 / JHIEHYUN / 池賢 / painting   2013_0423 ▶ 2013_0430 / 월요일 휴관

지현_캄캄한 바다 너머_리넨에 유채_80.3×116.8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두 GALLERY DOO 서울 강남구 청담동 63-18번지 경원빌딩 B1 Tel. +82.2.3444.3208 www.gallerydoo.com

'이미'와 '아직' ● 사이에 그림이 있다. / 그림은 또 다른 자연이다. / 일획의 활기가 그림의 숨이다. / 응시의 눈에 접히고, 관조의 눈에 펴진다, / 벌레의 눈으로 표면을 더듬어라. / 우린, / 그림을 그린다. ■ 타이미지

지현_가을빛깔_리넨에 유채_45.5×60.6cm_2010
지현_그늘_리넨에 유채_45.5×65.1cm_2013

그림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 한 부분이 되살아났다. 내가 늘 뛰놀던 복도는 긴 방을 끼고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햇빛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와 밝게 빛나는 복도를 지나 어두운 곳까지 작은 샛길처럼 이어지는 복도에서 바로 위 두 오빠는 어린 나를 담요에 앉혀 서로 한 쪽 귀퉁이를 잡아끌며 미끄럼을 태워주었다. 오빠들과 유쾌하게 뛰어다니던 정경이 내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말과 그림' 수업 중에, 바로 그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왕모래가 깔려있는 마당의 등나무 수풀 그늘 아래로 비치는 금 빛깔의 환함. 건넛집 까만 강아지 -어른이 되어서도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는 무서웠다. -개천으로 흐르는 맑은 물, 그 개천 길을 따라 아장거리다 집을 찾지 못해 가슴 철렁 내려앉았던 몹시 두려운 기억도 내 안에서 맴돌곤 한다. 바다에 나들이 갔을 때, 파도가 밀려와 모여 있는 작은 바위에 부딪혀 파아란 물보라를 일으킨다. 반짝거리는 바위를 만나 높이 솟구치며 인사하는 물보라를 그리며 커다란 나무 하나에 상념을 펼쳐 보인다.

지현_바람이 분다_리넨에 유채_60.6×72.7cm_2012
지현_섭지코지_리넨에 유채_45.4×60.5cm_2012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색들이 있다. 아스라하게, 때때로 뚜렷하게...등나무 꽃 색깔에서 시작해 왕모래의 금빛, 반짝이며 타오르는 빨강, 햇빛 비치는 갈색,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앉는 검정, 보라색과 바람에 흩날리며 빛나는 벚꽃 색, 노을 색, 타다가 남은 잿빛, 눈부신 하얀색, 깊은 초록, 앵두빛 분홍, 따뜻한 주홍, 레몬 노랑, 출렁이는 파랑, 프러시안 블루, 찬란한 자줏빛까지 나는 색깔로 물들여져 있다. 색들은 마음 깊은 곳에 추억으로 남아 찾아드는 감각의 꽃잎으로 날아오른다. 무의식의 둘레를 떠다니는 맑은 색들의 합창으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지현_안개에 잠긴_리넨에 유채_65.1×90.9cm_2013
지현_절두산성당_리넨에 유채_40.9×53cm_2012

이른 겨울 아침. 거제로 가는 버스 창에는 성에꽃이 하얗다. 의자에 무거운 고단함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틈틈이 음식을 장만하느라 몸은 불편하고 괴롭지만 마음은 훈훈하다. 충청도를 지나니 눈이 내려 쌓인다. 어스레한 하늘 아래로 멋대로 휘날리는 눈송이들. 눈 내리는 풍경은 나를 들뜨게 한다. 그리고 싶다...멈춰서, 눈꽃으로 피어가는 나무, 눈 덮인 들판을 그리고 싶다. 그러나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거제에 도착하니 그곳은 간밤에 내린 비로 질척거렸다. 하루 지나고 이틀째 머물고는 늦은 밤 서울로 돌아오니 길은 내리는 눈으로 차곡차곡 덮여 간다. 눈들도 한 겨울 추위에 서로를 보듬어 안아 꽁꽁 언 눈길은 미끄럽다. 조심조심 길을 더듬으며 집에 들어서니 편안하고 자식 얼굴 보고 온 것에 마음 뿌듯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묵은해를 누구보다도 먼저 보낸 듯 내 마음이 새로움을 향해 열리고 있다. 밤을 그대로 둘 수가 없다. 새날은 신선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 지현

Vol.20130422a | 지현展 / JHIEHYUN / 池賢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