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425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_10:00am~05:00pm / 10월13일_10:00am~12:00pm / 일요일 휴관
리씨갤러리 LEE C GALLERY 서울 종로구 팔판동 128번지 Tel. +82.2.3210.0467~8 www.leecgallery.com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 임동승은 그의 작업노트에서 '세계와삶을 관찰하기에 적절한 위치,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그러한 지점을 찾는다'고 말한다. 이 언급은 자고로 예술가에게 부여된 특별한 지위가 일종의 '관찰하는 아웃사이더'였음을 연상시킨다. 흥미롭게도 예술가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수동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술가는 방관자가 아니라 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자이다'(Philip, M., The Hidden Onlooker, 'Yale French Studies No 34, Proust', YaleUniversityPress,1965.pp37-42.)라는진술에서처럼오히려이야기꾼, 해석자 혹은 비밀스런 침입자의 위치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예술형식에서 예술가와 관객은 서로를 통해 자기정의를 내리고, 이 정의들은 다시 서로 뒤섞여져 왔다. 예술가와 관객은 외견상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상황을 공유하는데, 전자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문화를 고찰하고 뛰어넘으려 하는 반면, 일반적으로 관객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작품 안에 내포된 '텍스트'를 읽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각예술 형식에서 예술가와 관객은 동등하게 무언가를 보고 상상하게 된다.
세밀하고 조용한 세계를 제안하는 정교하고 신중한 작업 안에서 이루어진 임동승의그림에서작가가선택한태도가수동적인지, 능동적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임동승의회화는우리가알아볼수는있으나구체적으로알지는못하는어딘가에위치한미확인의불변하는존재를떠올리게한다. 그는 회화의 전통으로부터 장르, 형식과 형상, 경치 좋은 목가적 풍경 등의 요소를 취해 자신의 이미지들을 재가공하고 재구축하면서 각각의 회화 장르에 대한 우리의 경험 속에 놓여진 불확실성의 감각을 환기한다. 임동승에게 회화는 회화의 장르들사이, 그리고 사진과 실재가 갖는 권위에 대한 개입이다. ● 일반적으로 풍경화라는 장르는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임동승의 풍경화는 포괄적이고 불특정한 장소를 묘사하는데, 풍경화의 전통에서 익숙하고 상투적인 이 클리셰(cliché)들은 자연 속의 고요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또한 이 그림들에서는 미묘하고도 불안한 모호성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미지들이 마치 시간 속에 출렁이는 물결의 움직임처럼 그림의 표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른 붓질들에 의한, 내밀하고도 조심스러운 물감의 단계적인 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특정한 의도를 가지지 않은 채, 동떨어지고 텅 빈 관점에 서서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풍경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임동승은 역사와 문화의 맥락에서 이탈한 단독성, 자연 세계 속의 고독하고 고요한 개인적 경험과도 동일한 원격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풍경화의 관습과 클리셰에 도전한다. ● 임동승의 그림에서 사색적으로 부드럽게 반복되는 수평적 붓질은 '손작업'을 연상케하지만, 동시에 그의 회화는 기계적으로 복제된 이미지들을 참조하고 있다. 그의 초상화 연구들은 무언가에 가려진 거울상이나, 스냅샷 혹은 스쳐가는 시선에서 시야의 구석에 맺히는 희미하게 흐려진 얼굴의 비밀스런 이미지들처럼 보인다. "작가는 실재 자체가 아니라 실재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의 작업은 세상을 묘사 혹은 서술하지 않고, 중단된 한 순간을 드러내면서 습관적으로 익숙하게 여겨왔던 대상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Review from Good bye 2011 Hello 2012! Lee C Gallery, Seoul. 2011)
이 회화들은 특징적인 물감과 붓의 자취를 통해 몸의 내밀한 움직임을 드러내는 한편, 실재와 공간에 대한 사진적인, 즉 기계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이 작업들은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실재를 제시하는 것이다. 즉 사진, 회화의 전통적 장르들 그리고 물감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운용에서 오는 고유성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이미지와 우리의 눈에 직접 작용하는 물감은 곧 임동승이우리에게제공하는두가지의보는방식이다. 우리의 현실이 가진 모호성을 일깨우기 위해 임동승의회화는매개적/간접적인 동시에 대응적/직접적이며, 진부한 듯하면서도 어쨌든 중요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가 우리에게 재현해 보여주는 것은 마치 거의 무(無)에 가까운 것, 우리 존재의 흔적과도 같은 어떤 것이다. ● 회화란 우리가 바라보고 또 깊이 들여다보는 관념의 대상이자 그 집합이다. 지난 30년간의 많은 국제적인 회화들은 끊임없는 혼란의 양식을 통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독일 예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업이 가장 유명한 예이다)(Storr, R. Gerhard Richter: , NewYork:MuseumofModernArt. 2002. pp 298. Robert Storr perceived German artist Gerhard Richter as one who acted within a series of polarities which in turn explore possibility: 'faith versus skepticism; hope versus pessimism; engagement versus neutrality; self-determination versus fatalism; and imaginative freedom versus ideology… veiled intimacy versus formality of presentation… optical splendour versus physical remoteness; and… forthright assertion of image as object versus mistrust of the image as representation'.), 여기서 회화는 첫째로 그것이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 즉 물질에 대한 지시체인 동시에 둘째로 그것이 절박하게 문제시되는 역사적 담론을 담고 있다는 추론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는 공간이었다. 오늘날 회화의 가능성이란 분명히, 회화가 늘 그 자체의 외부나 그 자체를 초월한 무엇을 함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사실은 변화의 연대기이자 자기규정을 위한 가능성들의 실험이었던 회화의 역사 내에 유래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충동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
어쩌면 임동승의회화는수동적이고소모적인세계를대체하는장소로서의공간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회화를 제작하는 행위란 우리가 사는 세계(예술가와 관객이 동등하게 공생하는 권역)에 공간을, 휴지(休止)를, 혹은 대안적인 형상을 만드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동승의그림을접할때우리는이휴지와 마주치게 되고, 시간의 느린 흐름을 의식하게 되며, 시간이 멈춘 공간 속의 형상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임동승이소환해낸이시간과공간속에는상실과고립의감각이있어멜랑콜리한감성을자극하는데, 이는 그의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경계와 세부의 손실(흐려짐)이 우리의 현존에 내재한 덧없음에 대한 의식과 공명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의 풍경은 현대인의 삶이나 혹은 어떤 사건, 이야기에 대한 단서는 거의 담고 있지 않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어떤 장소에서 의미와는 무관한 무언가가 소멸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초상화에서 우리가 보는 인물들은 외따로 떨어진 채 막연한 순간 속에 존재하는 듯하다. 비망록에서 느껴지는 듯한 울림이 있으나, 임동승은이야기를전해주지않는다. 그의 회화가 불러내는 것은 회상이나 기억이고, 임동승은기억의어느한지점에서작업을하고있는것인지도모른다. 이 일관된 색조의 회화는 멜랑콜리와 무상함이라는, 우리의 의식 속에 결코 멀리 있지 않는 어느 한 지점으로 우리를 조심스레 이끄는 듯하다. ■ 피터 웨스트우드
임동승 작가의 그림은 보는 이를 위압하는 모든 존재감을 다 지우고 남은 자리의 화려함 없는 고요와 평안함(靜謐)으로 다가온다. 뚜렷치 않은 선과 형체로 가득한 화폭 속의 색채를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은 조용히 그 본연의 침착함을 되찾게 된다. 서양화면서도 어딘가 동양적인 향취가 그윽하여 그린 이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작품들. 우리는 여기서 서양화가 가지는 자기주장(presence)과는 전혀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몽롱한 붓질이 마련한 상상력으로 인도되어 우리들 자신이 마치 작품과 한 몸을 이루는 듯한 느낌.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 자아와 대상의 구분을 넘어 보는 이를 포용하는 그림의 마음, 이는 자연에 대한 세잔의 탐구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의 정서, 그리고 일본화와도 통한다. ■ 강상중
Vol.20130421a | 임동승展 / LIMDONGSEUNG / 林東昇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