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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성영록의 매화, 시적(詩的) 이미지의 풍경 - 1. 新 梅花圖에 매혹되다. ● 댁의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수묵 빛깔로 퇴색해 버린 장지(壯紙) 도배에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의 수필(隨筆) 매화 가운데 하나이다. 봄이 되면 으레 매화이야기로 가득하다. 얼어붙은 겨울 끝자락에서 피어올린 작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눈 속에 피어난 꽃(雪中開花)에 정서적 아련함이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과 꽃, 눈(雪)과 향기 같은 매화의 극적인 미학은 회화로서 고전양식으로 전한다. 추운 겨울 날 매화를 찾아 깊은 산속으로 나섰다는 맹호연(孟浩然, 唐)의 고사에서 그린 탐매도(探梅圖)나 심매도(尋梅圖), 매화를 아내삼아 은거했다는 임포(林逋, 宋)의 이야기를 그린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유명하다.
성영록은 이러한 고전적 사유의 향기가 가득한 매화를 새롭게 풀어내는 화가이다. 작가의 매화는 매화와 강과 바다 같은 풍경이 결합되어 있다. 클로즈업된 매화의 가지와 꽃의 본질적인 조형성이 구체화되어 있으며, 그 뒤로 펼쳐지는 산천의 풍경들은 넓고 아련한 수평과 능선으로 희미하게 처리되어 있다. 그는 금박이 붙어 화려하고 섬세한 얇은 냉금지(冷金紙)를 사용한다. 작가는 몇 번의 배접과 아교포수를 통해 고운 바탕을 만든다. 그 위에 봉채를 갈아 모노톤의 수면이 겹쳐지고 번짐이 있는 풍경을 만들고 그 위에 먹과 금분을 사용하여 매화를 그려 넣는다. 그리고 봄이 오는 새벽녘의 날선 푸른 풍경과 저녁 황혼의 붉은 풍경으로 완성된다. 그 풍경들은 조용하고 아련하여 마치 구도자가 절대자를 만나는 멈추어진 순간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반짝이고 깨어있는 시인의 정신처럼 빛나는 시선을 닮아 있다.
이렇듯 작가의 작품제작방식은 전통의 기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배접의 단계와 깨끗하고 담담한, 풍부한 생명으로 가득한 수면의 겹침은 작품완성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실 이러한 겹의 미학은 물질에서 정신으로 나아가게 되는 전통회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영록은 겸재나 김홍도가 실경을 체험하고 그 사실에 입각한 우리의 산천의 모습들을 화면에 담았듯이, 지리산이나 하동, 광양과 같은 매화 군락지의 매화들을 실제로 체험하고, 그 실재의 모습과 감동들을 화면에 녹여내고 있다. 매화꽃을 찾으러 남해안의 섬과 바다와 강을 여행하고, 정당매, 원정매, 남명매와 같은 산청 3매와 같은 한국역사와 함께한 매화들을 찾아 화면에 옮긴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봄이 오기 직전 매화가 피어나는 시기의 신선한 봄의 기운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의 매화는 슬픈 기억보다는 청신하고 건강한 기억과 정제되고 숙성된 정신의 정화를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그의 작화 태도는 많은 작가들에게는 모범이 될 수 있다.
2. 고요함(靜), 니르바나(Nirvana)에서 휴식(Anima)으로 ● 매화는 연정과 그리움의 대상(美人), 지조와 절개의 상징(君子), 은일적 삶을 지향하는 선각자적인 이미지(仙人)으로서 상징되어 왔다. 성영록의 매화는 실경을 체험한 후 실재의 매화의 형태와 향기 그 꽃을 피워내는 산천의 토양과 풍경들에 관한 통찰이후에 다시 피어나는 꽃이다. 즉, 사물에 대한 주지적(主知的) 통찰에서 이념적 가치를 제거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덧입혀져 대상과 합일(主情的)되어 새롭게 태어난 꽃이다. 그 봄날의 언저리에 강과 산에 피어있는 매화는 작가 성영록이며, 작가의 모든 삶의 내용들이 투영된 성숙한 자아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겹겹이 펼쳐진 강물처럼 번지는 오롯한 그리움들이 스민다. 작가는 매화에 관한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사실 작가가 보여주었던「슬픔이 아름답다」시리즈(2010)에서 근작인「그리움, 아름답게 기억되다」시리즈들은 모두 기억과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근작에서는 꽃과 풍경 그 위로 금선을 이용한 봄비가 내리고 있다. 금분의 세필(細筆)로 그어내려 간 빗줄기 사이사이로 저 멀리 꽃과 강과 바다가 펼쳐져있다. 축축한 그리움, 봄의 기운과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매혹의 풍경이 더해져 있다. 작가의 오랜 여행과 그 여행들이 가능케 했던 화작들의 근저에는 화가의 고독과 만나게 된다. 어느 철학가에 의하면 고독은 인간의 존재로 가장 직접적으로 귀착시키며 화가의 시선에 맞닿은 세계들을 소유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때의 고독은 인간존재를 세계의 존재와 연결하고, 세계로의 확장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화가의 고독은 삶의 고독이며 인간으로서의 필연적 고독이며 창작과 몽상과 시를 가능케하고 우주와 교감하게 만든다. 곧, 고독은 상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상상의 궁극성이 안온함과 평화로움에 있다고 하듯이, 작가의 고독은 휴식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성영록의 단색의 화면에서 번지는 사유의 세계는 고요함(靜)이다. 이 고요함은 일종의 종교적 깨달음, 니르바나(Nirvana)와 같은 시간과 공간이 초월된 순간이다. 『대학(大學)』에는 고요함(靜)에 관하여 머뭄(止)을 안 뒤에야 정함(定)이 있고, 정하여 진 뒤에야 고요(靜)할 수 있으며, 고요한 뒤에야 편안(安)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慮)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얻을(得)수 있다고 한다. 즉, 고요함 뒤에 휴식과 안락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휴식은 작가의 작품에서 드넓게 펼쳐진 수면의 변주들에서 일관되게 포착된다. 매화의 그리움은 강과 바다의 풍경에서 확장되고 깊어지는 것이다. 이는 고요함이 니르바나의 순간으로 드러나고, 다시 생명과 모성(母性)의 원초적 그리움의 아니마(Anima)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영록의 작품은 이렇듯 고전의 주제들이 실제의 사생을 거치고 다시 객체와 합일된 주관성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붉은 혹은 푸른 풍경들은 금선(金線)의 정교하고 우아한 미학을 보여준다. 이는 고려불화나 오가타 코린(Ogata Korin, 尾形光琳)의 금선묘 병풍, 카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北齋葛飾) 작품 같은 우끼요에의 그라데이션이나 깨끗한 미감과 닮아있다. 이는 정서를 이완시키고 완성도 높은 작품성에 근접하는 것이다. 고요한 듯 잠자는 매화는 풍부한 시적 이미지들로 깨어있다. 작가는 시(詩)를 쓰듯 매화를 그려나가고 있다. 굵고 늙은 가지를 뻗고 그 속에 소담한 꽃을 피워내는 매화를 바라보며, 인간이기에 고독하지만 찬란하고 유한한 우리의 모습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실존적 모습들을 사유하게 된다. (2013.3) ■ 박옥생
* 참고문헌 가스통 바슐라르, 김웅권 옮김, 『몽상의 시학』, 동문선, 2007. 도올 김용옥, 『石濤畵論』, 통나무, 2004. 박동주,「18세기 향촌재지사족의 매화(梅花)의 기억과 사유 -존재 위백규의「연어(然語)」의 경우」, 大東文化硏究,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Vol.77 , 2012. 溫肇桐 著, 姜寬植 譯, 『中國繪畫批評史』, 미진사, 1989.
Vol.20130417b | 성영록展 / SUNGYOUNGROK / 成英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