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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416_화요일_06:00pm
사이아트갤러리 뉴디스코스 작가선정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 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2.3141.8842 www.cyartgallery.com
확장된 시야를 갖기 위한 통로 동상이몽 ● 예술과 일상으로서의 삶의 관계에 주목하는 작업해 온 난나 최현주 작가는 2011년 창동 창작스튜디오에서의 "㈜동상이몽-예술에 눈알달기"프로젝트 이후부터 일종의 예술 작품 혹은 제품 생산 회사인 ㈜동상이몽을 통해 예술 전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작업의 산물을 특별히 작품이 아닌 제품이라 지칭하고 이 작업의 주체가 작가 개인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임금을 받고 작업을 같이하는 직원 즉 작업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을 포함한 ㈜동상이몽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사실 캔바스라는 지지체 위에 작업이 진행되고 전시공간에서 보여주거나 판매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작가는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함으로써 전체 작업은 난나 최현주 작가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예술의 문맥 안에서 수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도 작품이 아니라 제품을 만들어내므로 전통적 의미의 예술적 가치인 미(美) 등을 지향하지 않으나 전체적인 과정과 활동은 '커뮤니티 아트'라는 하나의 예술적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의 작업이 예술활동이 아닌 지역경제 활동이나 사회활동이 되어도 무방하다고 말하면서 개념 규정을 하기 보다는 일련의 활동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자 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진술들에도 불구하고 난나 최현주 작가의 작업은 기존의 예술 개념들에 대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지점을 점검하면서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무엇이 예술작업,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지점이다. 이는 예술가와 관객의 시각 차이와도 관련될 수 있는 것으로 기존의 예술 개념을 전복시키는 것이 일상화된 현대미술에 있어서 예술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고는 이미 폐기 처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서 예술 혹은 미술은 여전히 아름다워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전통적인 예술 가치로서의 미(美)를 지향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이전 프로젝트에서 '비의도적 미' 그리고 심지어 '소가 뒷걸음질 치다 만들어낸 미'라는 문구를 통해 언급했듯이 자신의 작업이 예술의 전통적 관념하의 관객이나 일반인들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예술작업을 시도하는 점에서 그들과 다른 꿈을 꿀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일반인들의 미감(美感)이나 가치관을 용납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자 그들과는 평행선을 달리게 될는지도 모르는 현대미술가로서의 시각의 차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 동상이몽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통해 일종의 접점을 찾아낸다. 즉, 작가는 예술이라는 문맥에 '눈알 붙이기'라는 가내 부업의 전형적인 수단을 식물에 있어서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를 접붙임을 하듯이 연결함으로써 참여자는 경제적 수입을 얻고 작가는 예술적 성취를 이뤄내어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의 가치관의 간극을 극대화하여 보여줌으로써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가면서 예술의 본질적 의미와 위치를 점검해 내는 방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술작품 생산 주체 혹은 예술작업에 대한 작가의 참여와 이때 예술작품의 가치의 문제인데, 많은 현대미술가들은 예술가가 본인 스스로 모두 제작하는 일정한 정도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작업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며 데미안 허스트는 타인의 도움 정도가 아니라 180여명의 어시스턴트를 통해 작품을 생산하고 수 천억 원에 판매했던 것을 보면 과연 예술작품 창작에 있어서 예술가의 역할과 그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화이기 때문이다. 난나 최현주 작가는 그러나 데미안 허스트가 제시한 것과 같은 죽음의 문제 같은 무거운 주제나 허위적 예술 용어를 제거함으로써 작가로서 최소한의 페인팅과 가장 흔한 부업으로서의 '눈알붙이기'라는 행위 외에 어떠한 지시성도 배제한 채 일반인들의 부업으로 만들어낸 작업 결과물을 만들고, 이를 제품이라는 명칭 하에 재료비와 노동력으로만 가격 결정을 하며 예술품보다는 산업 생산품으로 판매함으로써, 작업 산업적 생산 결과물로서의 물질적 가치와 예술적 창작 결과물로서 작품으로서의 가치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낸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의 가치가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철 기타 비금속 등에 의해 3달러에 못 미친다는 의견에서부터 100조가 넘는 가치가 있다는 의견까지 다양하게 보고 되고 있듯 예술작품의 가치를 측량하는 척도에 대해 양극의 극단을 드러내 보여줌로써 예술의 가치판단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현실이라는 위치에 가치판단 기준의 범위의 폭을 발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눈알 한 개 붙이는 인건비를 10원이라고 명시적으로 지정함으로써 현실의 노동력의 가치를 그대로 드러내서 경제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의 간극의 차이와 함께 그 가치 발생의 지점을 가늠해 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작가가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예술과 일상의 개념과 현실 사이에서 '주식회사'라는 비즈니스와 관련한 사회적 제도를 예술적 개념망 안으로 끌어들여 마치 앤디 워홀이 팩토리(factory)라는 개념 하에 예술작업을 생산의 개념 안으로 흡수시켰던 것을 환기시키는 시도를 하면서도 동상이몽이라는 구분선을 통하여 예술과 일상 사이의 차이과 연장의 지점을 명확히 확인하도록 함으로써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예술의 이상과 일상적 삶의 영역이 절묘하게 교차할 수 있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 결국 작가는 이러한 문제 제기는 예술이 자체 논리 속에 가둬지거나 예술이 경제나 다른 목적이 수단이 되어 버리는 한계를 넘어 예술과 일상 혹은 예술행위와 노동행위가 분리된 그러나 하나된 예술작업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보고 즐기며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난나 최현주 작가는 예술의 개념과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 그 시야를 확장하는 의미 있는 진보를 수행해 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승훈
■ 신간도서출간 모두를 위한 예술? 공공미술, 참여와 개입 그리고 새로운 도시성 사이에서 흔들리다, 우베 레비츠키 저_난나 최현주 역_두성북스
Vol.20130416d | 난나 최현주展 / NANNA CHOIHYUNJOO / 난나 崔賢珠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