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 사랑이다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   2013_0417 ▶ 2013_0430

장용림_매화-바람이 불었던가_한지에 석채, 분채_91×117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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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41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GMA GALLERY GMA 서울 종로구 율곡로 1(사간동 126-3번지) 2층 Tel. +82.2.725.0040 artmuse.gwangju.go.kr

착한 붓의 언어로 그려진 사랑의 궤적 ● 조각보와 저고리는 꽃과 함께 장용림 세 번째 개인전의 화두이다. 무명으로 엮어낸 조각보와 저고리는 그것이 조선 여인네의 삶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빚어낸 꽃의 개념으로 내게 다가온다. 매화와 동백 찔레꽃 진달래꽃 달개비꽃 목화솜꽃들과 함께 나타나는 조각보와 저고리의 이미지는 장용림이 인식한 가장 따스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형상이다. 경우에 따라 단순한 보자기로도 쓰이고 햇빛 가리개로도 쓰이는 그림 속의 조각보들은 모두 장용림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한 평생 그이가 사랑하고 꿈꾼 기다림의 세계들이 이 조각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야나기 무네요시는 언젠가 조선 민화가 세계에 빛을 뿌릴 날이 오리라 얘기한 적 있거니와 나는 조선 여인네들의 꿈과 인고의 상징인 조각보 또한 그에 못지않은 미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 자투리 천들을 한 땀 한 땀 이어 붙이고 수를 놓은 조각보들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그네들의 정한의 징표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한 쪽이 저며 오는 것이다. 쪽 빛으로 염색한 무명이나 홍화 꽃으로 염색한 연분홍들이 조각조각 이어진 그 모습들은 가을날 다랑치 논밭으로도 보이고 돌각담 소슬한 초가마을 풍경으로도 보인다. 조각보의 무늬 하나하나마다 한 세상 살다간 이들의 그리움과 사랑, 못 다한 꿈과 기다림의 흔적들이 베이어 있으니 일찍이 몬드리안 같은 이가 조선의 조각보를 보았더라면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펼쳐졌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장용림_꽃이 핀다-사랑이다_한지에 석채, 분채_97×130cm_2012
장용림_매화 피다_한지에 석채, 분채_97×130cm_2013

어머니가 만든 조각보들로 꽃들을 감싸 안은 장용림의 그림들은 꽃과 조각보의 화혼례로 느껴진다. 장용림 세계의 이데아인 꽃과 그 꽃의 개화가 빚어낼 또 하나의 풍경으로 어머니의 조각보를 연결시키는 것은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어느 날 장용림의 아버지는 귀가 길에 달개비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왔는데 며칠 뒤 이 꽃은 시들어 뒤뜰에 버려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다 죽은 꽃줄기를 삽목했는데 놀랍게도 이 꽃은 다시 살아나 무성한 꽃밭을 이루게 되었다. 작품「달개비」는 바로 그 꿈의 개화를 형상화 한 것이다. 쪽물 들인 보자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남도의 아낙이었던 어머니는 그 보자기에 한 가닥 하얀 빛의 무명천을 달아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유토피아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가 쪽빛 보자기와 하얀 무명 천, 달개비 꽃의 보라색 향훈 속에 머문다. 목화솜 꽃과 조각보가 어울린 일련의 작품들은 장용림이 어머니의 삶에 바친 뜻 깊은 마음의 선물로 읽혀진다. 목화솜 꽃은 무명천의 질료이기 이전에 어머니 마음의 원형질이기도 한 것이다. ● 조각보로 매화꽃을 가린 작품「매화 피다」도 내겐 어머니의 마음으로 읽혀진다. 이때의 조각보는 햇빛 가리개로 쓰이는데 현실에서 조각보로 매화꽃을 가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갓 피어 싱싱하고 아름다운 매화꽃 위에 드리운 조각보를 보고 있노라면 조각보 뒤의 숨은 매화꽃들의 은은한 향기들이 느껴진다. 작업실 한 쪽 출입구에 놓인 햇빛 가리개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동안 나는 그이의 마음이 도처에 산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장용림_진달래 피다-사랑이다_한지에 석채, 분채_87×117cm_2012
장용림_찔레-바람이 멈추었을 때_한지에 석채, 분채_73×100cm_2011

횟대에 걸린 두 편의 저고리 그림은 장용림이 그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화가이다. 찔레꽃과 동백꽃을 배경으로 한 저고리들은 횟대 위에서 바람을 맞는다.「찔레- 바람이 멈추었을 때」라는 제목은 그림의 제목이라기보다 시의 제목에 더 어울릴 것 같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초등학교 시절 그의 꿈이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에게 그는 시가 무엇인가 물었는데 담임선생님은 '가장 착한 말로 쓰인 글' 이라는 답을 주었다 한다. ● 장용림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의 작업들 또한 '가장 착한 붓으로 그려진 사랑의 궤적' 이라는 생각이 든다. 찔레꽃이 핀 강변에 어머니의 저고리가 걸려 있다. 강은 흐르고 바람은 멈추었지만 마음속의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연분홍 옷고름이 잠시 바람의 형상을 보듬고 허공중에 머물고 있다. 한국인의 원형적 색상의 중심이 흰빛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이들이 꿈꾼 완벽한 미학적 색상의 이름은 연분홍이라고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연분홍 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들 가슴의 한 가운데 어떤 설렘의, 어떤 서러움의 강물 하나가 흐르는 것을 느끼는 탓이다.

장용림_목화솜 꽃이 피고..._한지에 석채, 분채_72.7×100cm_2011
장용림_달개비-친애하는_한지에 석채, 분채_45.5×60.5cm_2012

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쟁이의 삶을 걸어오는 동안 '꽃'은 장용림 세계의 영원한 화두였다. 한 작가가 평생을 바쳐 싸울 화두를 지닌 것은 지극히 행복한 일일 것이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 든 이까지 누구든지 다 알아볼 수 있는 쉽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거라는 그의 말이 내게 세상의 어떤 예술론보다 진실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흔한 냉난방 기구 하나 없이 꽃과 시집이 함께 숨을 쉬는 그의 작업실에 머무는 동안 지상에서 만나기 힘든 따뜻한 한편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결, 찔레 향처럼 피어나는 이야기, 바람과 강과 그늘과 시간들. 그 모든 풍경들 곁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싸드린 도시락. 물기 드리운 무명천에 싼 촉촉한 시간의 강물이 흐르고 있으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며 꺾어오던 찔레꽃 한 송이. 그 마음만큼 부드럽고 맑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신비한 영혼의 향기가 펼쳐지고 있으니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 곽재구

Vol.20130415f | 장용림展 / JANGYONGRIM / 張容林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