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大花를 만드는 대화對話 - 들판사람들

2013_0410 ▶ 2013_0430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7_전라남도 구례, 토지초교,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진

초대일시 / 2013_0414_일요일_04:00pm

『대화大花를 만드는 대화對話』책 출간 기념 얼굴과의 만남

Prologue / 대화大花를 만드는 대화對話 2013_0410 ▶ 2013_0419 Epilogue / 들판사람들 2013_0420 ▶ 2013_0430

참여작가 김남웅_김민호_김영훈_김엘리_김현주 노희영_노희진_신현희_이규진_이지선 이호연_정명국_정세은_홍인숙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3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대화가 피어나는 유쾌한 소풍 길에 부쳐.. 처음엔 이 일이 이렇게 크게, 이렇게 오래 가게 될지 미처 몰랐다. 양양 운두령 기슭의 자그마한 폐교에서 소박한 문화예술교육원을 운영하던 지인의 특강부탁이 '들판'의 시작이었다. 당시 대학원에서 내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들에게 소풍을 가자고 꼬드겼고 갖가지 화공약품이 휘발하는 판화작업실의 탁한 공기는 그들의 외출 욕망을 부추겼다. 2000년 가을 어느 날, 든든한 지원 병력과 함께 온갖 판화장비를 차에 싣고 운두령을 넘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이 날 넘은 것은 해발 1089m의 운두령 만큼이나 높은 내 삶 속 예술과 일상 사이의 경계였다. 나중에 지어 붙인 이름이지만 '들판'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꿈틀대는 삶의 생태성이 내포된 이름이면서, 일상적 삶의 공간을 상징하는 '들'과 전문적 예술분야를 의미하는 '판'을 결합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5_전라북도 완주, 삼우초교,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진

'들판'을 떠올리면 설렌다. 그 느낌의 뿌리는 소풍에 있다. 대학 때 한동안 등산에 빠졌었다. 산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작업실을 벗어남으로써 얻게 되는 정신의 위치이동이 주기적으로 필요했던 때문이다. 말하자면 산으로 소풍을 다닌 셈인데, 소풍(逍風)은 그저 바람맞으며 거니는 것을 뜻한다. 집요하게 파고들던 그 무엇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람 사이에 나를 던져 놓는 것.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던 세상의 한 지점으로부터 '시선'을 거둬들이고, 세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며 반응하는 '응시'의 파노라마에 무심하게 빠져 보는 기회가 소풍이다. 애초에 '들판'이 '100명 이내의 작은 학교'라는 활동대상을 정한 것은 문화적 체험이 절실한 아이들을 우선 배려하려는 이유였지만, 그 기준은 '들동'(들판에서 같이 활동하는 동지를 뜻함)들로 하여금 전국 방방곡곡의 명당으로 소풍 다니게 함으로써 '들판'의 활동이 10년 넘게 이어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대한민국 어디건 간에 산속 제일 좋은 명당자리엔 절이, 사람 사는 동네의 명당엔 초등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들판'을 통해 알았다. 산수(山水)가 조화된 밝고 따뜻한, 그리고 사람의 삶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땅이 바로 명당인데, 그런 곳만을 찾아다니며 소풍하는 매력은 한번 맛보면 끊기 힘든 중독성을 지닌다.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8_충청북도 단양, 장정분교,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영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9_제주도 제주, 더럭분교,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영

'들판'이 '들동'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사람이다. '들판'이 가는 곳엔 항상 사람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들판'에서 만난다. '들동'들 간의 만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이들과의 만남, 선생님들, 주민들과의 만남이 기다린다. '들동'들은 가르치러 다니는 듯 보이지만 고백하건대 그들로부터 늘 가르침을 받고 돌아온다. 그들의 가르침 중 으뜸은 다양한 가치에 눈뜨게 해주는 것이리라. 자본주의 세상이 우겨대는 돈의 논리와 도시적 삶이 등 떠미는 경쟁적 흐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타인의 삶이 소소히 반짝이며 빛을 낸다. 거기서 개인이 살아 있음을 발견한다. '소풍'하며 만나게 되는 것이 잊고 있던 세계와 우주라면, '들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을 이루는 소중한 개별적 존재로 개인을 인식하게끔 이끈다. 그렇게 개인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런 세상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관계망을 만들어 가는 일은 더없이 유쾌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들판'엔 항상 유쾌한 웃음이 있다.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5_경상북도 상주, 송계분교,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진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7_경상남도 하동, 왕성분교,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영

요즘 들어 '들판'의 발걸음이 바쁘다.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공공기관이 주목하기 시작한 다음부터일 테다. 미술로 '공공'의 일하기라면 '들판'은 이미 10년 넘은 고수이기에 담당할 몫이 많아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소풍'하며 세상을 '응시'하는 것, 그리고 '들판'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여유 있고 느릴수록 좋다. 더구나 예술의 공공성이라는 것은 다수의 대중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름 아래 묻히고, 가려지는 개별적 존재의 특이성들에 주목하는 것이어야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진행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의 윤곽은 흐려지고 그 안의 요소 또한 뭉개질 수밖에 없다. '들판'에선 모두가 걷는 속도를 유지하며 세상과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의 삶이 놓치는 많은 것들을 보기도 하고, 보여주기도 한다. 눈뿐만 아니라 코와 귀를 비롯한 온 몸으로 세상을 읽고 느낀다. 그렇게 서로 진득한 관계를 맺으며 어우러져 가는 것이 '들판'의 생명이다. 세상의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면서 '들판'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무심히 지나쳤던 들꽃의 신비로움과도 같은 새삼스러운 발견을 모으고 이어서 커다란 꽃(大花)으로 피워 내는 '들판'의 유쾌한 소풍 길이, 그리고 그 길에서 마주친 이들과 나눠 온 느릿하고 느긋한 삶의 대화(對話)가 참 아름답다. ■ 정원철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2009_제주도, 제주 판화실천모임-들판 / 노희영

『판화 실천 모임 - 들판』은 2000년부터 장애인센터, 공부방, 대안학교, 작은 분교장 등 다양한 시각문화의 체험이 어려운 산간벽지, 도서지역의 소규모 학교를 찾아다니며 「자연속의 이동 판화교실」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수행 과정을 정리하기에 앞서, 현재를 바라보는 자리로 아담한 전시를 마련합니다. prologue ● 대화大花를 만드는 대화對話 전시의 주요어는 자연 : 이동 : 판화 : 아이들 : 예술 : 교육 입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들과의 대화를 사진, 영상, 오브제의 나열 등을 통해 바라봅니다. epilogue ● 들판사람들 전시의 주요어는 들판 : 사람들 : 개인의 시간 : 공공의 순간 : 과정 : 작가 : 역할입니다. 프로그램을 수행했던 시간들과의 대화를 판화, 영상, 드로잉, 글쓰기 등 이미 익숙하게 체화된 각자의 서술방법으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15명의 들판사람들을 바라봅니다. ● 전시와 함께 힐링 포토에세이『대화大花를 만드는 대화對話』가 단행본으로 출간 됩니다. 책에 실린 글 중 이 마음을 잠시 읽어 봅니다. '무심히 지나쳤던 들꽃의 신비로움과도 같은 새삼스러운 발견을 모으고 이어서 커다란 꽃 (大花)으로 피워 내는 '들판'의 유쾌한 소풍 길이, 그리고 그 길에서 마주친 이들과 나눠 온 느릿하고 느긋한 삶 의 대화(對話)가 참 아름답다.' 이번 전시와 책 출간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하는 개인의 주요한 역할들에 대한 탐구와 위로 일 것 입니다. ■

Vol.20130411d | 대화大花를 만드는 대화對話 - 들판사람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