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410_수요일_06:00pm
광주신세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展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광주신세계갤러리 GWANGJU SHINSEGAE GALLERY 광주광역시 서구 무진대로 932 신세계백화점 1층 Tel. +82.62.360.1271 department.shinsegae.com
광주신세계미술제는 지역미술 활성화와 유망작가 발굴이라는 기본 취지 하에 실질적인 작가지원이 되도록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술제에서 최종 수상한 작가들에게는 다양한 특전이 진행되는데, 특히 초대전을 통해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독려하며 널리 알리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미라는 지난 2011년 제13회 광주신세계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로, 수상 당시 오랜 시간 흔들림 없는 작업 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여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온갖 개념과 스타일의 치장이 횡행하는 요즈음의 미술계에서 회화란 대상과 화면에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이라는 정직하게 관계 맺는 회화를 대하는 태도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번 전시에 보여주는 땅, 강, 공기라는 자연은 단순히 바라보고 예찬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몸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간 작업여정과 함께 진솔하게 담아낸 자연의 기운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와의 대화로 들어봅니다.
오명란_1993년 첫 개인전 이후 20년이 흘렀습니다. 중간에 9년여 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꾸준히 2~3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열어 왔는데요, 긴 시간 한결같이 담아내고 있는 것은 삶, 대지 그리고 매화입니다. 중간 공백 전, 표현주의적 실험과 민중미술의 리얼리즘 양식으로 치열하게 담아낸 화면은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공백기 이후 2009년 전시를 기점으로 선보인 작품은 기존의 작품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존 작품에 비해 무척 자전적으로 보입니다. 공백기를 깨고 다시 작업에 임하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서미라_말씀하신 대로 20여 년의 작품 활동을 돌이켜 보면, 공백기를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는 작가로서 많이 다른 입장에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전 시기가 젊은 시절의 삶과 사회적 현상, 미술의 사회적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현실에 대한 번민이었다면 이후의 시기는 그간의 개인적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서 좀 더 개인적이고 자연과 우주의 생명 순환에 대한 성찰이 작업의 주 내용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9년의 공백기는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의식의 전환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작품을 깊이 있게 할 수 있었던 시기는 아니었던 만큼 다시 붓을 들었을 때는 막막하고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진짜 내 것인지, 누구를 위한 어떤 의미로 해낸 작업이 아닌 저절로 눈길이 머물고 가슴속에 꽂히는 그런 대상들에 대한 표현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작업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명란_2009년 전시 작품을 시작으로 삶의 터전이 소재가 되고, 평범한 삶에 대한 감상, 자연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 회화적으로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매화'라는 소재를 통해 "포근하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는 좁게는 작가의 어머니이자, 넓게는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매화는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보이는데요. 많은 자연물 중 특별히 매화에 집중한 이유가 있나요? ● 서미라_매화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매화가 꽃인 것은 분명하고 세상의 모든 꽃이 대부분 그렇듯 꽃인 순간은 잠깐이고 그 꽃을 피우기 위한 인고의 시간들이 적잖음이 마치 제가 산 여성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공백기 전 시기의 매화는 제게 겨우내 움츠린 사지를 털고 캔버스 챙겨서 사생스케치 나가는 첫 번째 대상이었습니다. 겨울을 이긴 거칠고 삭막한 풍경 속에 움튼 매화가지 꽃망울은 저절로 동화되는 힘이 있습니다. 이후의 시간들 속에서 결혼을 하여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한 여성으로 자연스런 삶을 살아가는 속에서 매화는 더욱 강하게 다가왔습니다.「무극」을 제작할 때는 마지막으로 마들가리 한 가지를 쭉 뻗어 올리는데 다 올린 다음에는 붓을 떨어뜨릴 정도로 호흡이 멈추어지는 황홀감도 느끼며, 매화를 그림의 대상으로 하며 제 자신이 매화가 되는 몰입의 순간을 맛보았습니다.
오명란_2010년 이후 꾸준히 '매화'를 소재로 해오다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은 전시의 제목『강을 사유하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땅, 강, 공기 즉 자연의 기운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상들은 단순히 바라보고 예찬하는 것 이상의 자연에 대한 인식으로 비춰집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지난 1995년「대지에서」와 2009년「일렁이는 대지」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힘'과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매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연결 선상에 있는 건가요? ● 서미라_첫 개인전부터 등장했던 소재인 땅의 이야기, 특히 갈아엎은 땅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한 작업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 왔었습니다. 제가 사는 보성군 일림산에는 '섬진강 발원지'라는 작은 옹달샘이 있습니다. 바로 집 앞 산이죠. 그 작은 샘물은 보성강을 이루고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런데 화순 이양 즈음에서는 그 작고 잔잔한 강을 막고 보를 만들기 위한 하천정비공사가 장기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새 봄이면 늘 감동하며 깊이 호흡할 수 있는 대지의 기운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갈아엎어진 땅을 보며 또 물길을 막고 가두는 사람의 일을 보며 분노감이 일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 자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연스레 생기는 저항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강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작업에서 결국은 내가 강이 되어 사유하게 되고 느끼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명란_담아낸 풍경들은 단순히 자연을 옮긴 실경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잔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작가가 대상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것이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요소가 있는데요. 우리는 기억을 통해 봅니다. 즉 같은 장소에 서 있더라도 같은 것을 보지 않습니다. 그 어떤 작품보다 작가의 심상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 같은데요, 이 작품을 임할 때 그리기에 대한 심경은 어땠습니까? ● 서미라_저는 실경을 바탕으로 한 각인된 기억들을 그립니다. 실경의 디테일 한 재현이 아닌 몸으로 체득된 기억의 풍경들을 담으려 합니다. 작업이 무얼 기획하고 애를 써서 만들어 낼 때 보다는 어느 순간 저절로 나오는 것들이 더도 덜도 아닌 절묘한 느낌으로 나올 때가 있는데「잔설」이 그랬습니다. 바탕밑칠을 하다 우연히 짙은 Blue를 롤러로 밀게 되었고 흰 바탕에 짙은 푸른색을 보는 순간 깊이 흐르는 물과 물길 옆에 강인한 대나무 몇 그루가 떠오르더군요. 거의 순간적으로 나온 작업입니다. 이런 때 그림이 제게 왔다는 표현을 하죠.
오명란_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보고 또 봐서인지 오래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책꽂이에 꽂혀있던 박경리의 『토지』가 생각납니다.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를 폭넓게 그리고 있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는데, 박경리가 그리고 있는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본인의 회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과 맥을 같이하나요? ● 서미라_박경리의 토지를 감수성 예민한 어린 시절부터 탐독했고,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에 지배적인 영향과 그 큰 틀 속에서도 전 페이지에 흐르는 민족적 정서와 끈끈한 인간애, 민초들의 소중한 삶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었습니다.
오명란_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일 텐데, 무엇을 그릴 것인지, 어떻게 그릴 것인지, 향후의 계획이 있다면? ● 서미라_작업을 할 때는 주제에 몰두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감이나 잔잔한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굵은 가지만을 생각한 것이 오히려 경직되고 관념적인 표현으로 이르게 한 것은 아닐까. 작가로서의 강한 주제의식이 작가의 이미지를 구축 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작가가 느끼는 희노애락이 곧 작업으로 묻어나는 것이 살아 있는 작업일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터에서 안착하고 뿌리내린 작가로서 삶의 진솔함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Vol.20130410h | 서미라展 / SEOMIRA / 徐美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