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응어리 Chaos and Emotional Mass

김주성展 / KIMJUSUNG / ??? / painting   2013_0410 ▶ 2013_0416 / 월요일 휴관

김주성_Work 120920_캔버스에 아교, 염료, 아크릴채색_121.9×91.5cm_2012

초대일시 / 2013_041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아트센터 AR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견지동 85-24번지 Tel. +82.2.743.1643 www.araart.co.kr

서사와 추상의 공존, 김주성의 회화 ● 김주성의 삶과 예술에는 한 사회와 단절하여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는 서른이 갓 넘은 198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이라는 닫힌 사회를 넘어서고자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조국을 두고 먼 곳 미국으로 이주했다. 1970년대라는 닫힌 사회를 견디다 못한 그는 이민을 선택했다. 서른 즈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체험한 한국사회는 획일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는 화실에서 연극 연습을 하던 시절에 상주하다시피 하던 경찰과 함께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준비한 연극이 계엄사령부의 대본 검열에 걸려 몰수당한 아픈 기억도 가지고 있다. 당시의 한국미술계도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같이 경직되어 있었다. 모노크롬은 물론 국전과 아카데미즘 스타일의 정형화한 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생존을 위한 이주이건, 예술 활동을 위한 이주이건 간에 그가 선택한 이주는 한국사회와의 단절과 결별을 안겨주었지만, 새로운 사회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오늘날까지 30여 년의 예술 활동을 지탱해준 힘이었다.

김주성_Naive(순진) Work 121230_캔버스에 아교, 염료, 아크릴채색_70.5×50.2cm_2012
김주성_Work 120813_캔버스에 아교, 염료, 아크릴채색_121.9×91.5cm_2012
김주성_On the Margin (언저리)_캔버스에 아교, 염료, 아크릴채색_114.3×92.7cm_2012

청년 김주성은 병영 체제와 같은 군사정권의 위압과 억압에 대해 사회비판적 성향을 가졌고 그러한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렸다. 이성계 연작은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에 관한 은유적인 비판이다. 민화에서 차용한 잉어와 복숭아 역시 도발적인 성적 상징으로 변화시킨 것들이었다. 198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가 담겨있는 이 그림들에는 직접적인 저항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은유적 표현들이 들어있다. 간접적으로나마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현했던 이 그림들은 김주성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당대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열혈청년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민 이후 몇 년 간 한국으로 돌아와서 활동하던 그는 1986년에 큰 병을 얻어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김주성의 예술을 분기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드디어 1989년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놓인 뒤 그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김환기 풍의 점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시카고 한인공동체를 중심으로 예술가로서 활동해오고 있다. ●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체험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그리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혼돈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혼돈 연작에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그것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경험을 토대로 우주와 인간, 삶과 죽음, 처음과 끝, 태초와 종말 등을 담은 그림이다. 그가 말하는 혼돈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관통하는 세계의 문제이다. 인간 개인은 물론 그 집합으로서의 사회, 혹은 개인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사회의 구조, 나아가 인간과 사회의 의지나 규칙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자연 등 세계를 구성하는 이 모든 것들이 질서의 세계가 아닌 혼돈의 세계라는 점. 김주성의 혼돈 연작을 낳은 뿌리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혼돈은 정형화한 질서의 세계와 달리 비정형적인 무질서의 세계이며, 우주의 탄생과 같은 신화와 더불어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영성의 문제이며, 나아가 21세기 동시대 현실사회까지를 포괄한다. 그는 이 혼돈의 시각화를 통하여 세계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을 일관성있게 펼쳐나가고 있다.

김주성_Work 120928_캔버스에 아교, 염료,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_182.9×243.8cm_2012
김주성_Work 120915_캔버스에 아교, 염료,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_182.9×152.4cm__2012

그에게는 소수자의 정체성이 깊이 박혀있다. 수십 년 간 지속하고 있는 투병생활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으며, 이민생활을 하면서 쌓인 이주민정체성 또한 그의 삶을 규정하는 틀이다. 소수자 정체성을 담은 그의 그림들, 특히 응어리 연작들은 격정의 화면 안에 담긴 개인과 사회, 마음과 구조 등에 관한 성찰로 충만하다. 응어리 연작은 몸과 마음의 병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다. 그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적 승화로서의 감성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자기고백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림이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일뿐더러 우리 사회의 구성원 개인들이 느끼는 마음의 문제를 함께 담고 있다. 김주성은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어내듯 응어리 연작에서 비가시적인 마음 덩어리들을 대작 페인팅으로 표현했다. ● 이주민 김주성은 시카고의 한인사회에 대한 공동체의식에 충만한 시카고 한인사회의 예술가이며, 동시에 한국사회의 현실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미교포 예술가이다. 그는 소수자의 권리와 가치를 옹호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경제적 성장의 이면에서 점점 깊어지고 있는 양극화와 정신적 결핍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들어보면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고구려의 역사를 정벌전쟁의 역사로 치환하기 보다는 고분벽화와 같은 문화사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위대한 역사는 정벌군주가 혼자 일군 것이 아니라 민초들이 함께 만든 역사이다'라고 보는 김주성의 역사관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시대의 한국에 대해 김주성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성장에 비해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회이다. 실재 국민의 생활수준은 성장지표를 밑돈다. 성장이 늦어도 사람의 삶을 보듬어 안아주는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중요하다" 이렇듯 김주성은 매우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그의 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예술가이다.

김주성_Work 120922_삼베에 아교, 염료_66×76.2cm_2012

김주성의 사유와 실천을 생각하며 그의 예술을 생각해 보자면, 그의 추상회화 세계를 놓고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는 다소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신화와 역사의 문제, 혼돈과 응어리 등의 키워드들 모두가 현재와 과거, 현실과 비현실, 세계, 마음 등의 문제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스케일로 보건대, 그의 회화는 무의식의 표현이라는 도식으로 해명하기 힘든 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의 붓질이 표현한 선과 색이 혼돈이나 응어리라고 하는 객관적인 실체를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계의 질서와 비질서에 대한 생각, 자신의 마음상태에 대한 모종의 판단이나 감각을 토대로 그것을 객관화하는 방법론으로 추상회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림과 연극을 통하는 자신의 삶을 정화하고 공동체와 소통하는 삶을 살아왔다. 대학 때부터 시작한 김주성의 연극 경력은 연기와 연출, 극작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그의 그림이 형식적으로 봐서는 탈서사적인 경향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연극적인 서사가 깔려있다. ● 이야기의 충동이야말로 김주성의 회화를 견인하는 저변의 힘이다. 그의 회화는 서사적인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충분히 서사적이다. 그의 추상회화에 나타나는 추상적인 요소들은 형식주의 미술의 추상의지와는 다른 것이다. 그는 형상의 표현을 줄이고 강렬한 색채와 붓질을 통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색면이나 도형 등을 쓰는 정형화한 요소들의 차가운 추상이 아니라, 격정적인 움직임과 유동하는 색채, 꿈틀거리는 선의 세계를 가진 뜨거운 추상이다. 최근에는 수채화를 그리면서 전통회화나 서예의 붓놀림에 가까운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유화와 달리 수채화나 선묘의 세계는 그의 그림을 격정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읽히는 데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김주성의 회화를 일반적인 추상회화를 대할 때와 같은 즉흥성이나 일회적인 감각의 문제로 소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보기에 따라서 그의 회화는 마음이라는 객관 실체를 대상화 한 재현 회화일 수 있다. 그의 회화 저변에는 감각을 넘어서는 서사의 문제가 있다. 이렇듯 형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변화해온 그의 예술에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대자연의 세계에 대한 비판정신이 그것이다. ■ 김준기

Vol.20130410b | 김주성展 / KIMJUSUNG / ???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