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봄 The Spring of My Father

박영대展 / PARKYOUNGDAE / 朴永大 / painting   2013_0405 ▶ 2013_0505 / 월요일 휴관

박영대_Afternoon_캔버스에 목탄_130.3×194cm_2013

초대일시 / 2013_040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옵시스 아트 OPSIS ART 서울 종로구 소격동 36번지 Tel. +82.2.735.1139 www.opsisart.co.kr

어떤 진정의 세계 ● 옵시스 아트에서 10년만에 열리는 박영대의 7번째 개인전은 감정의 기원 혹은 감정의 기복이 생겨나는 이유와 그 결과를 통해서 드러나는 어떤 "진정의 세계"에 대한 것이다. 2010년 한 해를 연구년으로 제주도에서 보낸 그는 인적 드문 제주도 곳곳 숨은 풍광의 뒷모습을 찾아 헤매다 그 속에서 어떠한 이미지가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감정의 동화과정을 경험하고 자신의 의식 깊숙이 숨어있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발견했다고 토로한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흐릿한 초겨울의 날씨 속에 말뚝에 매어 있는 잘 생긴 말 한 마리. 짙어지는 눈발 속에 피할 곳 없이 고스란히 그 눈을 맞고 있는 말의 모습에서 그는 마치 추사 김정희처럼 제주도에 유배 온 듯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염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터져 나온 감정은 주체할 수 없게 되어 이제 보이는 모든 풍광이 간직한 역사적 아픔의 흔적이 자신과 동일시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작품 「December」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우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글픔을 간직한 모슬포 인근 알뜨르의 풍광을 묘사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의 가미가제 특공대가 중국으로 출격하기 위한 중간기지였고 4•3 항쟁 당시 피의 살육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였다.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장소에서 역사와 풍광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동일시 되는 경험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말이나 나무, 또는 기생화산들의 분화구가, 오랜 세월에 막혀 생긴 오름의 이미지들로 자신과 동일시 되는 순간 박영대에게 그것들은 감정을 지닌 존재처럼 보이고 일종의 생기를 내뿜게 됨으로써 감각의 세계가 직관을 통해 보는 세계로 열린듯이 상징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로부터 파생된 감정이 그 이미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는 그 사건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을 시작하고, 그 결과 자신의 감각적 불편함의 근원이 '아버지의 부재'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박영대_At the mountain_캔버스에 목탄_130.3×194cm_2013
박영대_December_캔버스에 목탄_130.3×194cm_2013
박영대_Into the sea_캔버스에 목탄_130.3×194cm_2013

부재의 기호로서 아버지 ● 여기에서 '아버지의 부재'란 사실 실제 아버지의 부재가 아니라 추상화 된 아버지라는 개념이 상징하는 권위의 부재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의 아버지의 존재는 자기보호에 있어서 최초의 울타리 역할을 하게 되며 아버지의 권위란 바로 그 보호능력에서 기인한다. 박영대에게 아버지의 부재란 아버지가 아버지로써의 보호능력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오랜 사색의 결과로 박영대가 발견한 권위 상실의 시대, 뒤틀린 자아, 의식과 행위의 어긋남의 근원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의식이 무의식화 된 지점이다. 군생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건장했던 거구의 아버지가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로써 그는, 외부의 부당한 폭력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그 마지막 보루로써 아버지라는 의지처를 잃은 아픔을 내면의 상처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행위의 근거 즉 의식의 밑바닥을 발견한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우연한 사건으로 생겨난 불행과 그 불행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조차 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원망, 그 의식이 무의식화 된 지점에서의 '아버지의 부재'란 아버지의 부재라는 의식이 가져 온 '아버지의 편재'로 전환하고 있다.

박영대_Monument_캔버스에 목탄_130.3×194cm_2013
박영대_Spring_캔버스에 목탄_80.3×116.7cm_2013

창작의 공포와 자유 사이에서 ● 10년만의 개인전, 『아버지의 봄』을 통해 박영대는 두 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짓누르던 의식과 언어, 의식과 행위 사이의 간극이 초래하는 고통의 근원에서 벗어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작업 세계에 내재하던 창작의 막연한 공포로부터 빠져 나온 것이다. 앞의 문제는 현실을 마주대하는 자신의 감각과 감정적 불편함이 무엇인지 그 근원을 깨달게 됨으로써 실존에 대한 자각이 분명해진것이고, 그로인해 자신의 뒤틀린 의식에 의해 전도(顚倒)되어 보였던 세계가 자신의 인식 안에서 행위의 원인과 결과로 명확해지는 의식의 명징함을 얻었음을 뜻하고, 뒤의 문제는 자신의 감정과 행위로부터 기인한 인식의 표현에 적절한 형식을 구사하게 됨으로써 창작의 자유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있다. 『아버지의 봄』에서 박영대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고 행해왔던 행위가 왜 다른 존재와 모순과 갈등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감각과 마음의 평형상태를 깨뜨리고, 나아가 삶의 의지가 꺾이게 되는지에 대한 반성과 고찰을 통해, 자신의 의식 또는 무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원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는 과정을 지금 현재 마주하는 세계의 이미지표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박영대_Wind_캔버스에 목탄_60.6×91cm_2013

작별을 통해 만나는 아버지 ● 돌이켜 보면 막연하게나마 박영대가 자신의 감각적 불편함을 인식하고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10년전 마지막 개인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그는 장갑을 끼고 그 장갑에 먹을 묻혀 한지를 긁어내는 방식으로 선을 그어 당시 그가 살던 안성 인근의 산천을 표현했다. 정교한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를 보고 누군가는 그것을 4분의 3 추상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그 쥐어짜는 뒤틀린 형상 속에 보이는 고통의 모습에서 전통적으로 수묵의 표현에서 바라왔던 정신성이나 고상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형식상 반항만이 묻어 있었던 것 때문인데, 이제와 결과로써 돌아보면 수묵이라는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한국이라는 정서 속에서 자라왔고 한국이라는 관념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계에서의 전통에 대한 경도는 그 전통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형식 자체가 나의 표현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런데 그 계승해야 된다고 생각되었던 전통이 사실은 신기루처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질 때, 그 권위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표현에 있어서 수묵 형식의 문제 역시 '아버지의 부재'가 야기하는 권위의 상실이라는 상징의 작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영대가 표현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 역시 인식에 있어서 '아버지의 부재'를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획기적 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그가 아버지라는 관념의 어두운 그늘로부터 벗어나게 된 실질적 계기는 2011년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 온 아버지에 대한 관념의 고찰을 통해서인데, 실재 아버지의 죽음이 관념적 아버지의 죽음을 이끌어 낸 것처럼 그는 형식상 한국화라는 재료의 특성을 이용한 고정관념을 죽여서 의식의 한국화라는 형식을 되살려 냈다. 종이에 스미는 먹의 표현속성과는 반대로 캔버스 위에 아크릴을 적극 사용한 전시 『아버지의 봄』은 또 아크릴 만의 표현속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속살이 보이는 엷은 겹침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는 표현의 적합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이미지로 사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예술의 게임 안으로 들어왔다. ■ 김백균

Vol.20130406g | 박영대展 / PARKYOUNGDAE / 朴永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