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404_목요일_05:00pm
관람료 / 성인_2,000원 / 학생 및 단체_1,000 (20명 이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1층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공간의 굴절과 기억 - 장화진의 근대 건축 연작 ● 1. 프롤로그 건축 공간의 변용을 통해 역사와 기억의 굴절을 진단하는 장화진의 최근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두 사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 속 두 건축물은 제각각 자기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기념물이지만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소멸'한다. 1995년 6월과 8월에 걸쳐 두 건축물은 우리 눈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하나는 일시적으로 사라지지만, 다른 하나는 영구적으로 소멸된다. (중략)
2. 조선총독부 프로젝트(2004) ● 역사와 개인적 경험의 괴리감. 장화진은 오래전부터 이 둘의 부조화를 건축 공간을 매개로 시각화해내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실험은 2004년 성곡미술관 개인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여기서 대단히 무겁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인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다룬다. 그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주목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철거를 둘러싼 거창한 찬반양론 때문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체험해 온 거대한 건물의 부재가 주는 생소함에서 출발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1996년 8월 15일 중앙청 철거는 분명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지만 광화문 앞을 지나다 보며 커다란 건물이 없어져 버리고 그에 대한 이미지만이 우리에게 하나의 잔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라진 건물은 문화적 기호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모티브로서 우리의 문화의식, 역사성의 표현으로 의식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장화진) ● 개인의 기억이 집단적 논리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되는 것에 대한 시각적 언술이 그의 중요한 작업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사라진 건축물에 대한 재현을 시각적 상실에 대한 자기 치유적 행위로 볼 수는 없다. 과거 역사의 편집과 검열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중심 가치였고, 장화진의 작업 역시 바로 그러한 맥락에 자리하고 있다. ●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의 폐허로 남았던 독일 제국의회 건물을 재건축하여 통일 독일의 국회의사당으로 삼는다. 여기서 크리스토의 멋진 예술적 선물도 있었고, 영국 건축가 노만 포스터의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뒤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포탄 자국과 소련 병사들이 새긴 낙서 같은 전쟁의 잔흔도 부분적으로 보존하고 있지만, 새롭게 축조된 중앙의 기념비적인 유리돔은 통일 독일의 번영에 대한 또 하나의 약속으로 보인다. ● 역사적 의의만을 따진다면 구조선총독부 건물은 독일 국회의사당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식민지배라는 비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건립되었고, 조선 정궁의 앞머리에 오만하게 자리한 잘못된 출발에 대한 이것의 삭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오랜 기간 한국 현대사의 중심지로 자리한 그 건물의 소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또는 사회적 양심을 보여 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결국 장화진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인위적인 등장과 인위적인 소멸,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개인의 기억도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 장화진은 2004년 전시에서 조선 총독부 건물을 한시적으로 재현하였다. 건물의 실측 도면을 확대해 전시장 벽면에 펼쳐 놓은 것이다. 여기서 그의 작업이 설계 도면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장화진은 초기에는 개인의 기억이 억압되고 집단적으로 변형되는 실상에 대한 저항으로 흐린 사진 영상을 이용하였으나 점차 보다 명확한 시각적 조형으로 선회한다. 일찍부터 그는 사진보다는 원판필름을 더 즐겨 사용했는데 이러한 점도 객관적 이미지에 대한 그의 취향을 읽어낼 수 있다. 결국 그는 기억적 진실을 담기 위해 보다 주관이 배제된 중립적인 이미지를 원했고, 이에 대한 단계적 해답으로 결국 사진보다도 '실측도면'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가 복제해낸 조선총독부 건축물의 미니어처(22×18×30cm) 또한 설계 도면에 근거해 재구성된 것이다.
3. 광화문과 숭례문 프로젝트(2000/2010) ● 건축물은 물리적 자산이자 정서적 자산이다. 그것이 역사적 문화재일 경우 후자의 의미는 더 배가될 것이다. 그가 일찍부터 「광화문」(2000)에 주목한 것도 지난 백년간 몇 번씩 허물어지고 다시 지어지는 건축적 아이러니 속에서 위협받고 파편화되는 개인들의 정서적 체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함이다. ●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해체되었다가 6.25 전쟁 때 파괴된다.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어진다. 1996년 조선총독부가 헐리면서 경복궁 복원사업이 대대적으로 뒤따르게 되고 이에 따라 1968년의 콘크리트 광화문도 함께 철거된다. 그리고 또 다시 지어진다. 제각각의 논리로 우리의 광화문은 두 번 파괴되고, 두 번 지어진 것이다. ● 장화진의 「Obsession」(34×27×32.5cm)에서 광화문은 구한말에 촬영된 원판 사진에 의해 음각과 양각의 두 쌍의 건축물로 재탄생한다. 겹겹이 중첩되는 사진필름의 레이어는 상자 내부 깊숙이 설치된 백열전등에 의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일한 사진필름의 음화와 양화가 나무상자 속에 켜켜이 쌓여 만들어내는 애매모함은 사회적으로 의도된 망각에 대한 그의 시각적 응답이다. 백열등으로 온오프 되는 그의 광화문 이미지는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려 놓는다. 광화문 공간 위에 쓰고 지우고 또 다시 쓰여진 역사를 그는 그렇게 표현해내고 있다. ● 장화진은 앞서의 「광화문」 작업과 같은 맥락에서 「숭례문」을 재현해낸다. 국보 1호 숭례문은 2008년 2월 10일 밤 우리 눈앞에서 참혹하게 사라진다. 일차적으로 한 사회 불만자의 방화에 의해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지만, 크게 보면 무책임한 문화재 행정이 부른 국가적 참사였다. 즉시 시작된 복원 작업의 완결이 이제 목전에 다가 왔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상실된 우리의 정서까지 복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의 정서적 복원은 이제 상상에 의해 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장화진의 2010년 남대문 작업은 그것의 한 방편이 된다. ●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설계도면을 통해 객관적 이미지로 되돌려 놓는 장화진의 시도는 여기서도 반복된다. 그의 2010년 「Ghost Image(from Sungnyemun)」(101×111×56cm)은 앞서 재구성된 「Obsession」의 광화문처럼 중첩된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견고한 철골 구조물 속에 안치되어 있다. 완전히 사라진 수백 년 역사성에 대한 체념일까, 아니면 그것의 정서적 체험만큼은 이미지화시켜 보다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성찰에 의한 결과일까.
4. 서대문 형무소와 강화도 성공회성당 프로젝트(2008/2011) ● 서울 토박이인 그는 언덕만 넘어가면 볼 수 있는 서대문 형무소가 언제나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높다란 담이 헐리면서 형무소는 역사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되었지만, 같은 논리로 서대문 형무소는 보존된 것이다. ● 1907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서대문 형무소는 독립 운동의 증언대였고, 해방 이후에는 격변하는 한국현대사의 무대가 된다. 1945년부터 1987년 경기도 의왕으로 서울구치소가 이전할 때까지 서울형무소로 쓰이면서 반민족인사와 좌익인사, 그리고 수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된 곳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이다. ● 그러나 1992년 8월 15일 독립공원으로 말끔히 재단장해 개원한 서대문 형무소에서 과거 역사는 재구성되고 편집된다. 이곳에 투여된 역사적 무게는 완전히 새롭게 재편집된 것이다. 15개의 옥사 중 일제의 폭압을 알리는 건물을 중심으로 살아남게 되고, 특히 이중 김구 선생님과 유관순, 강우규 등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룬 옥사들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영구히 보존되게 된다. 해방 이후의 격변의 현대사의 현장으로써의 기억은 말끔히 지워져 버린 것이다. ● 이렇게 재생된 역사현장을 장화진은 먼저 사진으로 기록했고 그리고 그것을 캔버스에 전사시킨 후 화면에 색을 입혀 나갔다. 건물들은 널따란 잔디 위에 가볍게 올라가 있어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와 건물 사이에 자리한 그물망은 중경의 거리감을 더 강조한다. 그에게서 그물망은 대화가 이어질 정도의 거리감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에게 있어 망은 고해성사가 벌어지는 공간 속에 자리하는 그런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멀게만 느껴졌던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고 나서 그는 역사 기억의 재구성뿐만 아니라 근대 건축이 시선을 통해 통제를 육화시키는 방식에도 주목하게 된다.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주장한 '판옵티콘'(Panopticon)의 실체를 여기서 목격한 것이다. 지휘와 통제가 감시자의 일인 시점 하에서 벌어지는 형무소 공간은 건축은 기억의 저장소로 그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증언한다. 서대문 형무소의 건축 공간은 –비록 편집되고 변형되었지만- 건축은 통치와 지배의 정밀한 도구라는 것을 냉정히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 눈앞에 층층이 쌓아 올린 서대문 형무소의 내부 공간은 그렇게 우리 눈으로 검색된 작동하는 근대 권력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 흥미롭게도 이러한 지배와 통제의 공간감을 장화진은 종교 건축에서도 느낀다고 한다. 비록 감시자의 시선이 천상의 것이라 하더라도 뭔가 외부로부터 감시되는 느낌을 종교적 공간 속에서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가 강화도 성공회 성당을 재현한 것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 가옥의 모습이지만 내부는 철저히 서양 근대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은 그에게 너무나 낯설게 다가 왔고, 위로 개방된 공간 속에서 그는 도리어 고립감을 느꼈던 것이다. ● 그는 강화성당의 외부만큼은 서대문 형무소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중경의 거리감과 그물망의 사용은 두 건축물의 동질적 공간감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시각적 발언이다. 그러나 냉철한 외부와 달리 성당의 내부 공간은 파란 색조와 노란 색조로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사방으로 침투해오는 태양 광선에 의해 내부는 신비롭게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 속에 머물었던 100년간의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화면은 지워지고 다시 쓰여지기를 거듭했고 그렇게 해서 점차 형태는 모호해졌다. 엄격하게 처리된 외부와 정서적 댓구를 이루면서 강화성당의 내부는 한국의 현대사의 흐릿한 기억들을 끄집어는 은유로 전환된다.
5. 건축적 파편들: 간판, 창, 문, 타일 ● 최근 장화진은 청계천의 낡은 간판 속에 자리한 표어 한 세트를 찾아낸다. '맑고 푸르게'가 바로 그것이다. 청계천의 의미가 문자 그대로 들어간 간판은 지금은 거대한 옥외 간판의 바탕으로 사용되다가 일시적으로 간판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것이다. 낡을 대로 낡아 누더기처럼 보이지만 원래 기록된 문자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보존되어 어렵지 않게 '맑고 푸르게'라는 문자를 읽어 낼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도시 환경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낸 추상과 구상의 절묘한 조화라고 즐거워한다. 그는 90년대부터 도심의 간판을 촬영해 왔는데 그러한 지속적 노력의 결과로 이렇게 흥미로운 시각적 증표를 발굴해 낸 것이다. ● 장화진은 지난 십 수 년 간 서울 속에서 벌어진 건축적 논쟁에 자신만의 논법으로 개입하였다. 「광화문」, 「조선총독부」, 「서대문형무소」, 「남대문 프로젝트」 등이 그 결과물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 속에서 그의 조형 언어는 점차 명료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회화적 표현보다는 설계도면에 입각한 테이핑 작업이나 사진을 이용한 리터치가 여기서 중시되었다. 사라진 건축, 사라진 기억에 대한 명료한 재생을 위한 조형적 선택이었지만, 그의 몸속 깊숙이에는 여전히 그가 청년기 때 시도했던 추상적 실험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맑고 푸르게'가 적힌 낡은 간판을 만나게 되면서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의 작품을 우연한 자리에서 되찾은 듯 반갑게 맞이한다. 그는 이것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는데 여기서 회화적 개입은 최소화시켰다. 그 자체가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 그가 이렇게 제작한 「맑고 푸르게」(2012)는 여전히 건축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근대 건축 연작과 일정부분 맥락을 같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롭게 양식적으로 그의 초기 추상작품을 떠올린다. 그가 찾아낸 이런 낡은 간판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들도 거대한 건축물에 뒤지지 않을 만큼 우리의 정서적 체험을 담아 주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저급문화라는 이름하에 방치되고 폐기되고 있고 그렇게 우리들의 지난 추억들도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장화진에게 마치 초기 순수 추상을 닮은 낡아 버린 그 시대의 간판을 우리들의 잊혀진 과거의 시간으로 회복시키고 있다. ● 사실 장화진의 건축적 관심은 부분과 부분에서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틀과 문, 액자 시리즈가 그것이다. 이러한 틀에 대한 관심은 일차적으로 조형적 실험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물로 진화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창과 문, 방 시리즈는 재건축을 앞두고 폐허화된 주택가에서 그가 하나씩 건저 올린 기록물들이다. 실체적 상실에 대한 회화적 복원이 그가 수행하는 작가적 소명이다. ● 이번 전시에서 장화진은 덕수궁 정관헌, 이화여대 본관과 대학원 건물의 바닥에 깔려있던 타일을 모티브로 이용한 작품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조금씩 닮아 없어지면서도 묵묵히 수십 년간 역사의 현장을 지켜오고 있다. 이러한 파편들은 그의 손을 거쳐 시선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무생물의 건축물에게는 새삼스런 관심조차도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위에서 벌어졌을 수많은 이야기에 대해 이제는 최소한이나마 예술적 존경을 표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작가의 제안을 누구도 쉽게 거절하진 못할 것이다. ■ 양정무
Vol.20130406c | 장화진展 / CHANGHWAJIN / 張和震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