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3 (재)한원미술관 신진작가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미술관.org
(재)한원미술관은 한국미술문화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자 신진작가들의 발굴과 후원에 적극적인 지원의 장을 마련해오고 있다. 이번 상반기 기획 초대전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상충하는 기억 속 이미지들을 자동기술적으로 완성하는 김도플 작가의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 아울러 회화,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작품형식을 통해 신진작가의 열정적인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도플 작가의 그림은 알록달록하고 빽빽하고 치밀하며 환상적이다. 놀랍게도 그의 그림들은 모두 밑그림 없이 그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캔버스 전면을 채운 것이다. 그의 이미지 저장고에서 쏟아져 나온 이 신선한 재료들은 재가공의 과정 없이 캔버스에 차곡차곡 쌓여진다. 마치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바람 빠진 풍선이나 얽힌 실타래를 연상시키는 흐물흐물한 개체들과, 한편으로 조립식 장난감 부품이나 블록을 연상케하는 이들 이미지들은 다시 무질서하고 반복적으로 축적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체를 재생산한다. 완성된 그 형태들은 벌레나 해골, 몬스터와 같은 변신괴물을 연상케 하는데, 이들 몬스터들은 흩어졌다 다시 뭉쳐서 또 다른 형태로 곧 변신 가능한 '젠틀(gentle)'한 녀석들이다. ● 마치 세포의 무한증식과 분열과정과 같은 이 '이미지 세포'들은 모두 작가의 기억을 담은 부품들이다. "사랑스러운 기억이나 고통스러운 기억, 질투의 기억, 분노의 기억 등을 각각 하나의 부품으로 변환시키고 도시의 모습으로 나열함으로써 나를 이루는 또 다른 모습을 시각화하였다"라고 작가가 밝혔듯이, 그 이미지 세포들은 실제 경험 속에서의 감정을 담고 있거나, 데자뷰 현상에서 비롯된 무의식 세계의 떠도는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그가 조립 완성한 개체들은 '또 하나의 자신' 즉 '도플 갱어(double goer)'인 것이다.
"데자뷰 현상이 인간의 오류라는 점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더 기계적이라고 느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감정, 생각들이 어쩌면 필요충분조건에 의해서 반응하는 부품처럼 어떤 상황에 맞춰진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였다." (김도플)
기억은 경험한 그 장소의 모든 사건과 주변상황을 기록하지 못하므로, 단지 그 시점의 감정을 다른 형태를 빌어 사실적 기억으로 둔갑하거나, 대상이나 광경은 기록되어도 그 사건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데자뷰'와 같은 기억을 가장한 시스템의 오류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기도 한다. 작가의 기억 속에 저장된 다양한 감정의 이미지들은 캔버스 위에서 일정한 형태를 나타내는데, 장난감 부속품과 같은 이들 요소는 미사일이나 총알, 탱크 등 호전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특히「Gentle City」시리즈는 도시 속의 전쟁을『찰리의 초콜릿 공장』에서처럼 달콤한 환상공간으로 연출하면서도 공간을 여백 없이 채움으로써 편집증적인 강박관념을 비추기도 한다. 도시 속의 서바이벌 전투와 같은 그 이미지 집합체들은「gentle monster」에서 보다 느슨한 구성을 보이며 변신로봇과 같은 형상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장난감 나라의 전쟁인 듯 귀엽고 달콤한 색의 향연은 유쾌해 보이지만 실상 작품 속에는 현대 도시의 우울한 감성이 묻어있다. 속도와 경쟁, 이권갈등과 정보의 과잉 등으로 지친 현대인의 피로감은 혓바닥을 내밀고 뇌신경이 돌출된 채 폭발하고 있는 "gentle man", 녹아내리는 해골의 형상 속에 웃고 있는 인형들로 가득하거나, 시신경이 실타래처럼 얽혀 그 형태가 일그러진 "gentle man", 평화를 외치지만 전기톱을 들고 공격하는 모순적인 "gentle man" 등에서처럼 분노로 가득하다. 그것은「gentle boy」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귀여운 소년의 형상이 괴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작품들은 모두 그로테스크와 유쾌를 동반하고 있다. ● 이처럼 개인의 경험이나 데자뷰로 형성된 기억 이미지들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 재배열하는 과정에서는 집단의 기억이 동반된다. 경험은 "'기억(Erinnerung)'속에서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이므로 기억의 영역 속에서 개인의 과거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과거와 결부되어 있다.(발터 벤야민) 즉, 기억에서 산출된 이미지는 김도플 그만의 감정과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에 있었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기억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조립하고 쌓아나감으로써 상상의 도시를 세우고 몬스터와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김도플 작가의 이번 전시는 회화 뿐 아니라, 작품의 캐릭터를 살려 제작한 공기인형과 네온설치, 드로잉 액자소품과 동영상 등 다채로운 형식의 작품을 통해 즐거운 감상의 자리가 될 것이다. ■ 김미금
Vol.20130324a | 김도플展 / KIM DOPPEL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