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322_금요일_06:00pm
후원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225-67번지 B1 Tel. 82.2.797.7893 www.willingndealing.com
가평에 살고 있는 김세미는 서울에 볼일이 많다. 그가 가평과 서울을 오갈 때 차창 밖 풍경이 점차 익숙해졌다. 그는 이 때문에 일정한 시간 동안 창밖에 보이는 반복된 풍경을 매번 바라보게 되었다. 예상컨대 아마도 작가는 그 시간 동안 눈앞의 변함없는 산세(山勢)를 바라보면서 별의별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며 그 동안의 감정은 흐리다-개다를 수없이 반복하였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사시사철 뚜렷한 변화가 있으므로 풍경 또한 모양새는 같아도 그 색채나 빛의 느낌에서 많은 변화가 감지되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의 이러한 반복된 습관, 반복된 시간, 변화의 모습과 감정들은 2013년 3월 22일에 시작되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개최되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 김세미 작가는 영국에서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를 졸업한 후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활동을 하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된 여성 작가이다. 영국에 있을 때 다루었던 소재 역시 풍경이었다. 학생 때 무대 디자인을 총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런지 그의 화면의 레이어들은 무대 연출 같은 느낌이 있다. 보다 스토리 중심의 화면이 제작되었었는데 지금도 그러하듯 사실적인 묘사나 재현이 아닌 작가의 개인적 기억과 감정이 반영된 풍경을 표현하며 자신의 드로잉 방식을 만들어 왔다. 뭔가 모를 주변 풍경의 답답함을 느끼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작가는 영국으로 가기 전에 느꼈던 것 보다 자연 풍경에 더욱 매료될 수 있었던 듯 하다. 지금은 가평에 살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강남 중심부에서 쭉 살아왔기 때문에, 다시 연장된 런던 생활이 주는 도심의 텁텁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이 주는 신선함에 도취되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그의 작업 속에는 산, 물, 바위 등 전형적인 자연풍경의 요소들이 눈에 띈다. 영국에서는 도심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드로잉으로 만들어냈다면 한국에 돌아온 후 주로 눈에 보이는 풍경을 소재로 사용한 것을 보면 김세미 작가는 환경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종류의 인간이다. 이러한 확신이 더욱 생기는 것은 그의 작업 속에서 드러나는 기하학적인 형상들인데,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하면서 드러나는 그래픽적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미술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독창성(originality)'일 것이다. 특히 현대는 온갖 매체에 대한 접근성이 대중화되어 누구나 웬만한 복제나 조작쯤은 쉽게 할 수 있으며 몇 가지 테크닉으로도 전문가 못지 않은 실력의 이미지 생산이 가능한 시대이다. 그래서 현대는 예술가라는 계층이 일반 대중과는 다른 특수성을 가지기 위해서 더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된 시대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사에는 이러한 시대 흐름을 예견이라도 한 듯 1917년 「샘」이라는 작품이 등장, 미술계를 경악하게 했다. 공산품인 변기에 정체 모를 사인을 하고는 이를 전시장에 들여 놓으면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작가의 역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였다. 그는 선택하는 자에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가진 자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을 한 것이었다. 작품의 제작만이 창작영역이 아님에 대해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erg)는 자신이 제작한 작업을 똑같이 카피하여 다시 제작하였다. 그는 독창성에 대해, 재현에 대해, 복제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1957년의 「Factum I」과 「Factum II」는 같은 작품인가? 원작자의 작업을 원작자가 모방하였을 때 이를 모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김세미는 이번 전시에서 이 흥미로운 질문들에 대한 의문을 이어 나갈 여지를 던지고 있다. 이는 그의 작품 제작 과정에서 보여지는 여러 겹의 레이어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기계복사'한다. 복사한 이미지는 오려지면서 해체된다. 해체된 이미지는 다른 작업의 이미지에 덧붙여지면서 다시 구성된다. 색채 위에 덧붙여지거나 재구성된 이미지 위로 색채가 덮이거나 하면서 점차 전혀 다른 이미지의 풍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과 감정의 반복된 행위'로서 규정하고 있는 그의 드로잉은 단순한 반복적인 이미지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듯이 복사 과정에서 보여지는 변화들이 중첩되어 새로운 이미지로 점점 변해가는 것이 이 작업의 묘미인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실크스크린 작업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이로 인해 생산된 공산품들이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실크스크린이라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도구로 그야말로 작품을 찍어냈던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단순한 복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실크스크린의 결과물은 사실 모두 달랐다. 잉크의 양이나 찍히는 속도 등의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의 변수에 의해 찍어 나온 이미지에는 미세한 다른 흔적들이 남겨졌다. 또한 이미지의 반복에서 느껴지는 감정 또한 오묘하다. 너무 익숙한 것들이 반복되는 모습이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거나, 매우 끔찍한 사건 사고가 이미지의 반복으로 인해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거나 하는 효과들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미술의 가치에 대한 판도를 바꿔버렸다. 더 이상 새로운 이미지와 기법만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아니게 된 것이다.앞서 언급한 뒤샹의 예술가 개념이 그 도화선을 그었다면 워홀이 그 화려한 폭죽을 터트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김세미는 복제된 대상이 다름 아닌 작가가 만든 이미지임을 중요시 한다. 기존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이를 복제하는 2차 가공으로서의 이미지 복제가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이미지를 다시 스스로 복제하는 것이다. 작가는 선택의 기로에서는 자신이 사용할 이미지를 '창조' 하였고 이를 기계 복사기를 이용해 빛의 속도로 반복하여 복제함으로써 워홀이 실크스크린을 통한 복제과정에서 우연한 개성을 드러냈던 과정을 말살시키다시피 한다. 김세미가 재료로 사용하는 펜이나 볼펜, 물감 등이 더해지면서 복제로 그치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드로잉이 재구성된다. 우리는 작품마다 다른 작품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김세미의 작업이 복사기에서 복사 된 후 가위질되어 다시 다른 화면에 붙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들이다. 잘려진 이미지들이 삼각형이 많은 이유는 그가 자주 보고 있는 자연경관의 산세(山勢)이다. 그 산의 모양으로 오려진 기하학적인 이미지가 다시 다른 화면 위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색채가 다르거나 배경을 달리한 또 다른 풍경의 요소가 된다. 동시에 김세미가 그린 이미지들에는 작가의 손의 흔적이 뚜렷하다. 붓 자국과 물에 번지는 효과 등은 유연하고, 직관적인 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잉크의 번짐과 마름 등의 흔적 또한 김세미 작업에서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필의 선에서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선의 느낌 또한 기계적인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요소들은 관람객에게 김세미 작업이 단순한 반복과 복제로서만 읽히지 않도록 한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인 『내재된 반복』은 이제부터 시작될 반복적인 작가의 행위들을 그 출발지점으로 삼게 될 전시이다. 무엇인가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들여다 보는 작업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것은 아주 작은 지점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점이나 선 하나 하나에서 풍기는 질감에서 출발하여 이것이 만들어내거나 불러일으키는 감흥을 감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세포처럼 증식하는 움직임을, 마치 유전자가 반복 재생되며 변화해 나가기 시작하여 점차 김세미의 작품에서 작품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 김인선
Vol.20130322b | 김세미展 / KIMSEMI / 金世美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