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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314_목요일_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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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 화~토요일_11:00am~07:00pm / 일요일_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TV12 갤러리 TV12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81-11번지 B1 Tel. +82.(0)2.3143.1210 www.television12.co.kr
낸시랭의 강남귀환 "쁘띠거니. little & pretty. 넌 왜 이리 귀여운 거니." (낸시랭) (거지) 여왕의 귀환 ● 낸시랭이 돌아왔습니다. TV, 인터넷 등 각종 매체에서 지겹게 보는 데 무슨 소리냐고요? 그녀의 고향인 청담동에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얜 맨날 청담동에서 놀지 않냐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릅니다. 삐까번쩍한 친구들과 함께입니다. ● 작년 말엔 정치인들을 대동해 강북에 있는 청와대를 공습하더니, 이번엔 홈타운이라 그런지 한결 편안한 분위기입니다. 친구들의 면면을 보면 확실히 거물들입니다. '쁘띠거니'(이건희)를 필두로, 김정일, 후진타오, 오바마,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마이클 잭슨, 빈 라덴, 카다피, 예수, 부처. 친구들 모두 코코 샤넬을 한쪽 어깨에 얹고 청담동이란 '클럽'의 VIP룸에 입장합니다. 왜 모였나 묻지 마세요. 이런 거물들도 자연인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한잔 할 수 있는 게 '강남스타일'이니까요. 아하, 강남이라.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까요. 낸시랭이 돌아왔다면 떠난 적이 있을 터. 그게 언제일까요.
일리아드 낸시랭 ● 그 시작은 그녀가 낸시랭이라는 '미술' 캐릭터를 만들어 대중에게 알려 질 2004년 무렵입니다. 놀기 좋아하는 된장녀, 잘 봐줘야 강남 부잣집 미대생이었던 그녀는 집안이 망한 뒤 베니스로 떠납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를 입고 성베드로 성당 앞에서 바이얼린을 켜던 베니스비엔날레 퍼포먼스(2003)는 커리어의 시작이 됩니다. 그때 베드로의 은총을 받았는지, 베니스 물을 잘 못 먹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 러브 달러"라든지 "명품이 좋아요" 등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언행으로 매스컴을 오르내리기 시작합니다. ● 그녀에게 집안이 망했다는 건 물질적인 기반만이 무너졌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자신을 길러 온 정신적인 토대인 '강남'이란 상징가치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녀는 영악하게도 '강남'이라는 상징가치의 빈자리를 '미술'이라는 상징가치로 대치합니다. 그리고 곧장 그 상징가치를 사용가치로 환전하려 시도합니다. '속물' 아티스트 낸시랭의 탄생입니다. ● 그러나 그건 대중이 기대하는 아티스트상이 아니었습니다. 속물 아티스트라니요. 아티스트는 모름지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고뇌하며 세상의 가치와 자신만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 아니었던가요. 그런 제스춰라도 하지 않으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지요. 역시나 '깃털처럼', '비키니처럼' 가벼운 작품세계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쩜 그리 뻔뻔한지. 좀 떴으면 겸손할 줄도 알아야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각종 매스컴을 도배하며 "큐티, 섹시"를 연발 하는 건지. 클럽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패션지 화보촬영을 하고, 트랜디한 케이블 채널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티스트. 그건 미국국적에 강남에 살며 명문대를 졸업한 준수한 스펙의 아가씨가 취해야 할 '세속적' 예술가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 그녀의 말과 과거 주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녀도 '모범생'이었다고 합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유학을 다녀와 미술인으로서 명예도 얻고 성공도 하는, 시집도 잘 가서 안정되게 작가생활을 하게 되는 그런 좀 진부하지만 행복한 스토리를 꿈꿨다고. 하지만 어쩌죠. 기운 가세는 그녀를 '급기야'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합니다. 강남이 주 활동 영역이었던 그녀에게 아트란 미대를 나와 작품 활동을 하면 자동으로 얻게 되는 하나의 그럴듯한 타이틀에 불과했습니다. 목적 그 자체, 아트 그 자체를 고민 한다는 건, 언제든지 제도화 된 미술계와 물신화된 (강남)사회에서 멀어지게 될 수 있는 위험요소입니다. 그녀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강남이라는 '마음의 체제'(김홍중)를 스스로 떠나게 됩니다.
낸시랭과 까만 사람들 ● 그녀가 유명해지고 논란이 일기 시작하자 현실미술과는 담쌓은 듯(현실정치와는 대조적으로)이 보였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합니다. 몇 가지 소개하면, ● "최근 낸시랭이라는 미술가가 대단히 화제를 뿌리고 인기도 누리고 있다. 그녀는 은밀하게 돈을 밝히는 고명한 미술가와 달리 자기는 당당하게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며 예술의 근엄한 젠체하는 태도를 경멸하고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적극적으로 즐긴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가 미술 상품이라고 자처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언제나 역설하는 말버릇을 그대로 빌어, 낸시랭이라는 '물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올바른 태도는 그것을 그저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처럼 예술은 언제나 돈이었으며 그것은 언제나 판매되었고 거래되었다. 그녀의 그런 주장에 대하여 충격을 받는 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왜냐면 한 번도 예술의 타자는 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타자는 정치일 뿐이다." (서동진, '고진, 하루키, 시부야케이, 포스트락 그리고 낸시랭' 2006) ● "낸시랭은 자신의 신체를 자본화해야만 하는 한국의 여성들과 그녀들이 속한 병리학적인 사회 분위기를 대표한다. 그러나, 그녀의 발칙함은 '된장녀스러움'을 극구 부정하거나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라 주장하는 데에 있다." (진중권, '호모코레아니쿠스' 2007) ● "우리는 낸시랭을 조롱할 수는 있어도, 비판할 수가 없다." (이택광, '즐거운 지옥: 낸시랭 또는 한국 자본주의의 희극' 2007) ● 서동진의 해법처럼 낸시랭을 그저 '물건'으로 대하면 되는데 불구하고 소위 '먹물'들의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면 그게 '움직이는 물건'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물건은 브랜드뉴네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던져진 물건(object), 끊임없는 신상이 되기 위해 바지런히 진화를 준비합니다. 낸시랭 스스로 왕관을 쓰다 ● 그 진화는 2010년 '개인이 국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런던에서 벌어졌던 'UK project'로 이어집니다. 옥스포드 보들리안 도서관에서 빼온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들고 거지여왕으로 변신한 낸시랭은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생일잔치에 난입해서 이렇게 요구합니다. "나에게 땅 한 평을 달라"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했던 런던에서 여전히 군림하는 여왕에게 마르크스의 말을 업그레이드해 돌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크스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에서의 노동은 낸시랭에게 현대미술이라는 상징가치로 대치됩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와를 없애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꿈꿨으나, 낸시랭은 여왕과 친구 먹겠다는 심보입니다. 다음은 그녀가 런던 시내에 뿌리고 다녔던 전단지의 내용입니다. "난 여왕은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거지고 예술가는 가장 가난한 여왕이라고 생각해." ● 물론 그 후는 익히 아는 바대로 각종 인터넷 포탈검색어의 1위를 차지한 '낸시랭 국가망신'이었습니다. 낸시랭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국가망신이란 키워드를 설명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뱀발일 뿐이었죠. ● 저는 그 무렵, 낸시랭에게 '자신이 속물을 자각하며 괴로워 할 줄도 아는 고급속물'(김수영)까진 안 바랬습니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소위 칙릿(chick-lit)의 번성기에 '여우같은 속물'들이 설파하던, "내가 속물이라고 남에게 광고하고 다니지는 마라.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에 솔직해지는 것뿐인데 굳이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남인숙,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2004)란 말 정도도 못 들어보셨는지. ● 고급속물마저 범람하는 세상에서 낸시랭은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전략을 택합니다. 그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돌파'식으로 보였습니다. 처세의 매뉴얼이 만천하에 공개 된 시점에서 그녀의 행보는 속물들의 세상을 백치미로 돌파하려는 위험한 시도로 보였습니다. 이제 몰락은 시간문제군요. 그리고 낸시랭은 거지여왕이 됨으로서 그걸 택합니다. 속물아티스트로서의 '성공'(스타)에서 '몰락'(거지). 낸시랭의 반전이었습니다. ● 그러나 반전은 계속됩니다. 강남이라는 체제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동거하기. 속물이란 이미 확립 된 권위를 의심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속물은 남들의 이목을 신경 쓰며, 자기계발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작 그 목적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고민을 할 내면이 부재합니다. 그래서 내면을 타자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 넣는 존재입니다. 정작 자기 자신이란 존재 하지 않는 거죠. 강남엔 그래서 수입품이 넘칩니다. 자신의 텅 빈 내면을 이미 확립 된 권위들에게 맡깁니다. 내면이 텅 비어 있을수록 권위의 약발은 잘 받습니다. 낸시랭의 진정한 내면이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낸시랭은 주류사회에 '아트란 무엇인가'란 논쟁거리를 계속 생산합니다. 그 방식은 강남좌파가 던진 화두. '강남에서 좌파하기'의 전략. 내파(內破)와 가족유사성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강남좌파의 탄생(강준만)도 공교롭게 낸시랭이 출범하던 참여정부의 시기와 겹치는군요.
정치논객 낸시랭? ● 총선과 대선을 맞은 작년에는 또 한번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낸시랭은 이제 마치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유승준)식의 행보를 즐기는 듯합니다. 네이트 뉴스&톡 명사들의 칼럼을 맡은 그녀는 호스트측의 짐작되는 바 있는 안전한 의도를 배신하며 전방위적으로 각종 시사 현안에 댓글을 달기 시작합니다. 예상 외로 그녀의 발언들이 인기를 끌고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진영에서는 신흥 청년우익집단, '일베'(일간베스트)의 멘토이자 보수진영의 행동대장을 자처하는 논객, 변희재를 급파(셀프급파),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결과는 여러분들이 익히 아시는 대로입니다.(이 유튜브 동영상은 현재 80만 뷰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흐뭇한(개인적으로) 성과가 있었다면 변희재의 부상입니다. '듣보잡' 취급을 받던 그가 낸시랭과 일전에서 지명도를 알리더니, 급기야 진보논객의 슈퍼스타인 진중권과 맞붙어 공개토론인 '사망유희'에서 승리했다는 것. 이 결과는 진영을 떠나 인정투쟁에 청춘을 바친 한 사나이의 인간승리를 맛보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지켜본 네티즌들은 트위터에 간단한 논평을 했습니다. "낸시랭 >>> 넘사벽 >>> 변희재 > 진중권" ● 정치논객으로서의 한 팝아티스트의 변신과 현실정치담론으로의 개입이 '예술가의 의도냐 아니냐', 또는 '뜰려고 그랬다' 식의 지엽말단적인 문제로 그 결과가 몰고 온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려는 좀 찌질한 시도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 개입이 어떤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불러 일으켰냐하는 것이겠죠. 물론 그 의미는 낸시랭 스스로 부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의미보다 사건을 생산하는 존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앞으로 예술과 정치의 교차지형에서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할 몫으로 돌려야겠지요, 낸시랭은 우리에게 일종의 시범을 보인 것 뿐입니다. ● 어쨌든, 서동진의 말마따나 "예술의 타자는 언제나 경제가 아니라 정치"였지만, 더 이상 낸시랭에겐 그 테제가 유효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정치도 그녀의 '나와바리'에 불과하다는 것. 반면 정치에게 그녀는 '신상'이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라는 대표적인 진보매체가 대선올레의 마지막 행보로 그녀의 '내정간섭'전을 찾아 청와대공습퍼포먼스를 생중계(2012.12.17 방송)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사건에서 그녀는 청와대 경호인력 수백여 명의 저지를 받으며 멀티오르가즘 신음강의를 했습니다. ● 또한, 진보인사들의 팟캐스트 프로그램인 '유시민 노회찬의 저공비행'(2012.12.16 방송)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마지막 대선토론의 클로징 멘트로 남긴,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 마음이다"에 대한 낸시랭의 화답으로, "엄마 굶어도 좋으니까 때리지만 마세요"를 소개하며 지난 대선의 최고스타로 그녀를 부추겨 세웠습니다. 잠깐 소개를 해보자면, ● "대한민국 최고의 논객이 낸시랭이다. 들어가서 읽어봤는데, 딱 한 줄을 쓴다. 근데 이게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완전히 예술이다."(진중권) ● "진중권 선생보다 더 잘하대. 일본으로 치면 하이쿠다. 낸시랭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해요."(유시민) ● "낸시랭 대단하네. 이번 대선이 배출한 최고 스타다."(노회찬) ● 물론 자유분방한 매체의 특성도 있고, 이러한 인사들의 격양된 반응으로 낸시랭을 진지한 정치평론가라고 생각해선 안 되겠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 담론이 해방의 국면을 맞이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꼼수'로부터 시작된 정치담론의 엔터테인먼트화는 낸시랭에 의해 이렇게 한 사이클이 종결됩니다. '나꼼수'의 기제가 권력을 조롱하고 무너뜨리려는 도착증에 있었다면, 낸시랭의 그것은 정치 그 자체에서 탈주하는 분열증, 정치에서 해방되는 탈정치화에 있습니다. 저는 그걸 '정치의 미학화'라고 얘기 하고 싶습니다. 이걸 정치의 무개념화로 오해해선 안됩니다. 비/반정치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감수성의 탄생. 모든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즐기려는 낸시랭식 팝아트, 그건 자유의 다른 이름일겁니다. 대선이 끝나고 ● 거대한 국가이벤트가 끝난 후 본연의 '연예인형 아티스트'로 돌아간 낸시랭은 한 방송국의 연말 연예시상프로그램에서 '꽈당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멘붕에 빠진 한 쪽 진영에게 위로합니다. "여러분, 넘어져도 좌절하지 말고 저처럼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자구요!" AS에도 참 바지런한 아티스트군요. ● 또한 낸시랭은 자신에게 쏟아진 대선 때의 열광에 대해 좀 어처구니없지만 지극히 팝아트적인 화답을 합니다. 한 케이블 게임프로그램 출연 해 '미국인' 낸시랭이 '일본인' 사유리를 깨 부시며 시청자들에게 "낸시랭 천재설 돌고 있는 거 아시죠?"라는 멘트를 날린 것. 만주벌판에서 말을 타며 서로에게 활을 겨누는 이 스마트폰 게임에서 '제국'(네그리)의 메타포를 느꼈다면 제가 과대망상인 걸까요. 어쨌든 대선 후 그녀에겐 새로운 '사회적' 문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사회와 주고받으며 부단한 상호작용을 하는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고집스러운 예술가상을 벗어납니다. 저는 이것을 '현대적'인 예술가상으로 봅니다.
낸시랭과 팝아트 ● 낸시랭이 '팝'아티스트라는 것을 새삼 지적하고 싶군요. 그녀는 처음부터 낸시랭이란 캐릭터를 '걸어 다니는 팝아티스트'로 세팅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수면위로 떠오른 (한국적) 팝아트는 낸시랭과 '행복한 눈물'에 의해 관용어가 돼버립니다. 그 여파는 미술시장에도 미쳤고 그 결과 모두가 팝아트를 하면서도 팝아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집니다. 저에겐 그것이 팝아트의 잘 팔리는 형식적 메리트는 취하면서 그것의 '싼 미학'은 지양하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로 보였습니다. 팝아트를 팝아트라고 부르지 못하는 웃지 못 할 현실. 그것은 잘 팔리면서도 비싸게 팔겠다는 특수 업계의 시장논리로 보였습니다. 반면 낸시랭은 자신을 꾸준히 팝아티스트라고 주장합니다. ● 정리해보죠. "아방가르드가 중심을 가장자리화 하는 것이라면, 팝아트는 키치를 아방가르드화 한다."(블로거, 지니) 한국사회 특유의 중심주의 일변도는 미술인들에게 미술계란 상징가치를 통해 사회의 중심을 향하려는 은밀한 욕망으로 나타납니다. 공교롭게도 미술시장 호황이 단명해 버림에 따라 그 욕망은 너무나 빨리 노출 되어 시효를 상실해버립니다. 키치가 이미 알려진 잘 팔리는 미감에 대한 반성 없는 추종이라면, 미술시장의 짧았던 좋은 시절은 팝아트와 하이퍼로 양분되는 거대한 키치의 전쟁터였죠. 팝아트와 키치는 다릅니다. 팝아트를 하면서도 팝아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작가들은 팝아트를 키치로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팝아트에 대한 일면식입니다. ● 보통 전통적인 아방가르드 시각에서 팝아트를 체제에 순응하는 장르라고 오해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팝아트는 진부해진 중심주의(키치)를 가장자리화 하려는 방향성에서 그 특유의 미학을 찾습니다. '팝←아트'가 아닌 '팝→아트'인 셈이죠. 아트를 키치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키치를 아트로 만들려는 균형감각이 팝아트가 아트가 되는 지점입니다. 더 나아가 '팝↔아트'라는 쌍방향성. 팝아트는 팝과 아트사이의 끝없는 긴장관계, 교통, 충돌, 갈등을 야기해야 합니다. ● 팝아트가 희소성이 있었다면 난해하고 고루한 미술계의 허위의식을 쉽고 단순한 가벼운 특유의 미감으로 균열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분리 돼있었던 미술계라는 특수사회와 미술을 잘 모르는 대중으로 구성 된 일반사회를 충돌 시킵니다. 그리고 그 희소성은 이제 대세가 돼 오히려 미술계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엔트리레벨의 공식이 됐습니다. 이제는 일반사회의 허위의식도 깰 차례가 아닐까요. 키치에서 출발하는 아방가르드. 그게 낸시랭이 노렸던 팝아트의 반전 아닐까요. 그녀는 강남이라는 키치를 팝아트라는 애티튜드로써 가장자리화 합니다. 이는 싸이의 그것보다 선취된 것입니다.(작년 '강남스타일'의 열풍도 이런 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낸시랭 VS 강남스타일 ● 강남에 종속된 서브젝트(subject)였던 그녀가 자신을 강남에 대항해 오브젝트(object)로 전시하기 시작한 순간. 낸시랭은 속물들의 사회에 적극적으로 던져진 오브젝트(ob-ject, 앞에 던져짐)가 됩니다. 강남이 그녀를 대상화 한 순간 그녀도 강남을 대상화했습니다. 그리고 속물의 화신으로 강남에 자신을 내던지기 시작합니다. 강남이라는 속물의 체제가, 자신이 속물임을 숨기기 위해, 때론 은밀하게, 때론 필사적으로, 억압한 것이 낸시랭이라는 물건으로 회귀(프로이트)한 것입니다. ● 강남이 스스로 그 오브제를 직면하고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오브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 방법론은 낸시랭을 유명인사로 만들고, 명망가가 누리는 각종 특권을 쥐어주는 것입니다. 강남은 그녀를 길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요. 제거 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러나 보시다시피 낸시랭은 길들여질만 하나 보다 하는 시점에서 '구경꾼들'(기 드보르)의 시선을 언제나 배신해 왔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낸시랭을 '조롱할지언정 비판하지 못했던' 이택광의 다음과 같은 통찰은 낸시랭에게도 적용됩니다.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이름' 없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 생명은 생명체가 외부환경을 복제해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투쟁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생성소멸을 거쳐 변화해 나가는 예술이란 이름에 다름 아니겠지요. ● '낸시랭 VS 강남'의 싸움에서 강남은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훈수를 두자면 '강남아 끊임없는 고급속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속물이 타자의 권위를 곧바로 사용가치로 만드는 것이라면, 고급속물의 전략은 희소성'(지니)에 있습니다. 그 결과 희소한 '강남좌파'와 '강남스타일'이 탄생했다고 나는 믿습니다. 자신이 고급속물이 되든지, 낸시랭을 희소하게 만들어 소비하든지. 언제나 '선빵'을 좋아하는 낸시랭은 '쁘띠거니'와 대단한 친구들을 대동하고 강남에 복귀합니다. 2라운드의 시작인가요. 낸시랭과 강남친구들, 그들이 서로 '앙'망하는 것은? ● 부유했던 그녀가 가난해지자 부유한 강남 또한 그녀에게 오브젝트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오브젝트를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강남좌파와 비슷하게 자신을 오브젝트로 만들어 강남에게 던져 놓음으로써 맞섰다. 강남좌파의 무기가 도덕성과 진보적 제스춰로 무장한 실용주의라면 그녀의 무기는 아트였습니다. 자신을 '걸어다니는 팝아트'라는 오브젝트로 만들어 강남이 가는 곳마다 앞을 가로막는 '움직이는 물건'이 됐습니다. 그리고 강남이 그 물건을 포섭할라치면 '도주하는 야만인'(네그리)이 됩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대상적 활동'(objective activity,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강신주 재인용)이 가동됩니다. 이제 강남은 이 것(낸시랭이라는 오브젝트)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밤 '대단한 친구들'과 은밀히 모인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가 '앙'망하는 것을 들어 볼 참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 참 기대되는군요. ■ 강영민
Vol.20130314b | 낸시랭展 / Nancy Lang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