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312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박성철_이성원_박예연_조현지 Saeri Dobson & Terry Dobson_김명아_조새미
주최 / 서울대학교 관악사 기획 / 조새미
스페이스599 SPACE 599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관악사 900동 B1,B2 Tel. +82.2.881.9031 dorm.snu.ac.kr
기쁨의 윤리학 - 윤리적 일상 2013 ● 기쁨의 윤리학은 철학자 스피노자(1632-1677)의 『윤리학 Ethica』(1675)로부터 나온 개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저서 『스피노자의 철학』(1981)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증오와 양심의 가책을 인류의 근본적인 두 적으로 이해한다. ● 즉, 죄의식, 슬픔 자체, 그 다음에는 증오, 반감, 조롱, 공포, 절망, 양심의 가책, 연민, 분개, 시기, 자기 폄하, 회한, 비굴, 수치, 후회, 분노, 복수, 잔인함은 인간의 의식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나쁜 감정은 새로운 전망과 새로운 삶의 욕구 속에서만 해소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과 기획자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자세,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한다. ● 작가들의 작업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환경문제, 소통의 문제, 사회적 약자와의 관계,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 건강에 대한 사유는 작가들의 작업 속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작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그러한 문제들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창의적인 시선과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으로부터 나온다. ● 작가들의 작업은 대체로 겸손하고 검소하며 간소하다. 그리고 작가들은 관람자를 향해서 작업이 제시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생각을 따르라 강요하지도, 좋고 나쁨의 선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도덕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법칙은,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어떠한 것도 인식하게 하지 못한다." 작가들은 단지 삶의 기쁨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다음에서 작업의 면면을 살펴보자.
박성철은 관람자에게 망치로 금속판을 두드려 용기를 제작하는 공업화 이전의 생산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두께 1.2mm의 적동 디스크를 판금성형하는 「작은 금속판의 변형」 연작을 2010년부터 지속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156개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가는 수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반복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단순함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치밀함과 노력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 작가는 금속공예 기법 중에서 판금기법으로 사물을 제작한다.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것은 마치 18세기에 편찬된 『백과전서』에 등장하는 제작공정을 묘사하고 있는 작업실의 '결정적 순간'들에 나오는 사물들과 놀라우리 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공업화된 과정을 통해 수 백만개의 동일한 제품이 쏟아져 우리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오늘날, '결정적 순간'들로부터의 사물들은 소비를 위한 이상화된 모델이 아니다. 대신 작가의 작업은 마치 어떤 구체적인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보려는 우리 안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작가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물에 대해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두지 않음을 비판하면서, 결과물에 집중된 관심을 분산시킬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필요로하거나 소유하고자 욕망할 때 그 사물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작가는 사물의 제작과정에 무지한 동시대의 세태가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쉽게 취하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소비적인 성향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성원은 자신의 아파트 단지 주변에 버려진 의자들을 수집하여 사랑과 치유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물로 재탄생시킨다. 버려진 각각의 의자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과정도 포함한다. 의자는 매우 상징적인 사물이다. 힘과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앉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권력의 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작가에게 버려진 의자는 측은지심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의자가 가장 상징적인 사물 중의 하나이기에 그리고 한 때 앉았던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 작가의 작업은 "버려진 의자를 수집 ‣ 아픈 부분을 진단 ‣ 치료 ‣ 분양"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작가는 버려지는 의자를 유기된 애완동물처럼 생각하고 이타심을 발휘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버려지는 가구에 대해 작가는 부서지거나 닳아 떨어져서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서라고 말한다. 즉 사물이 기능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의자가 버려지는 이유가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에는 인간이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작가에게는 "사랑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의 제목도 '버려진 의자'가 아니라 「유기(遺棄)의자」이다.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 종래의 보호를 거부하여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 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이성원의 「유기 의자」는 수많은 사물들의 정형화된 기능, 기호, 욕망과 같은 사물과의 관계에 대해 의심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우리는 사물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가?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모든 사물이 소비의 대상이고, 우리는 소비하기에 존재하며, 우리가 진정 소비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기호인 것인가? 일본의 철학자 우나미 아끼라는 그의 저서 『유혹하는 오브제』(1991)에서 사물의 기능성은 필요에, 기호성은 욕망에, 유혹성은 감성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종국에는 '기호의 소비'가 종말로 향하는 것이 자명한 이치라고 이야기한다. ●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이성원의 의자는 이와 같은 세 단계 이후, 우리의 사물에 대한 관계의 네 번째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를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매우 감성적이지만 개인적이지는 않다. 분양의 단계를 통해 공동체와 함께 의식의 성장을 도모해 나가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유기 의자」는 모두 세 가지 의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식탁에서 사용하는 의자들이다. 각각의 의자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고, 작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다. 어린이가 앉았던 의자와 부모처럼 보이는 각각의 의자와 조합되어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그들은 마주 보거나 얼싸 안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어깨를 기댄 채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박예연은 알루미늄 판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제작하기 위해 재단하고 남은 재료로 과일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제작 후 재료의 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 작가는 일상에서 일회용 식기류를 사용할 때마다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음을 피력하면서, 생활의 편리함과 환경 유해성의 함수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업을 제시한다. 그 시작은 도시락인데, 작가는 도시락을 제작하고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함으로써 작가 스스로 일회용 식기의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실천한다. ● 사실 많은 일회용품이 값싸고 재활용 가능하며,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간과하기 쉬운 일회용품 재활용의 한계는 여러 방면에서 드러난다. 모든 재활용품이 100% 수거되지 않고, 재활용되는 과정에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다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고, 합성원유 또는 화학물질로 가공되거나 제철공장의 환원제로 쓰이게 되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재활용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일회용품의 사용을 자제해야 하고, 재활용보다는 재사용할 수 있다면 다시 사용하는 것이 맞다. ● 작가는 도시락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재료가 남는 것에 착안하여, 디자인 단계에서 계획을 세워 재료를 재단하고 남은 재료들을 그 형태 그대로 활용하면서 재료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즉 처음부터 생산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디자인해, 남는 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남는 재료를 최소화시킨다. 작가는 제품의 사용 기간을 늘이는 데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용자가 의식있는 선택을 하여 전체적인 물건의 제작의 시스템에 관해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 작가의 제작 시스템 디자인은 다른 제조업의 생산라인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즉 작가의 관심이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확장된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박예연 작가는 자신의 포크, 나이프 등 「컷들러리」를 재단하고 남은 알루미늄 판으로 과일 바구니를 제작하는데 이것은 일회성이 아니라 작가의 「컷들러리」가 생산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지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동시대 디자인 방향에 도전하는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에너지 보존, 재료 활용의 효율화, 지속가능한 작업의 생활화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다.
조현지는 버려지는 일상의 사물들 중 알루미늄 전등갓 등 금속 공산품을 빵틀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틀로 빵을 구워내 시식하는 퍼포먼스를 동영상과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작업 「맛있는 쓰레기」는 '반대는 끌린다'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내용은 금속과 비금속을 사용하여, 역사적 의미를 담고, 일품생산과 대량생산의 의미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여기서 버려진 금속제품에 빵틀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빵을 굽고, 그 빵을 먹는 행위를 통해 물질(material)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 먼저 금속 재료에 해당하는 작가가 사용한 버려진 전등갓의 재료인 알루미늄에 대해 알아보자. 알루미늄은 '보크사이트'라는 광물에서 시작되며 호주, 브라질, 자메이카, 그리고 몇몇 열대지역의 노천광에서 채굴되며, 세척, 분쇄, 가성소다와 섞고, 가열하여 결정을 가라앉혀서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 산화알루미늄 결정을 남긴다. 다음은 제련 과정이 필요한데 알루미늄 제련은 지구상의 어떤 금속 가공 공정보다도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추출과 가공 공정의 높은 수준의 에너지 소비에도 알루미늄을 금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의 재료가 자연에서 추출되어, 생산되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체 과정을 고려한다면 작가가 사용했던 버려진 알루미늄 전등갓이 왜 쉽게 버려지는 대상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는 알루미늄 음료 캔 등을 비롯하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다음으로 작가가 선택한 빵의 대량생산에 대해 알아보자. 1830년에 만들어진 현대적인 제분기는 돌 대신 자기와 강철로 만든 7쌍의 롤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제분과정에서 배아 부분과 밀기울을 제거함으로써 밀가루의 보존성을 향상시킨 반면에 배아와 밀기울에 함유된 빵의 무기질, 비타민 B1 이 제거되어 빵의 영양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제기되었다. 수 천년 동안 제빵업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유지되어 왔으나 20세기에 들어 인구가 수 백만명에 이르는 뉴욕, 런던, 레닌그라드에서는 작은 빵집들이 빵공장에 밀려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계를 이용한 빵의 대량생산은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생략시키는 대신 자본의 역할을 증대시켰다. 현대적인 빵 소비량은 엄청났지만 이러한 대규모의 소비는 수공업으로 운영되는 빵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상해서 버려지는 빵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 20세기 초 빵의 대량기계생산의 문제점 중의 하나였던 버려지는 빵의 문제는 21세기 현재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대량생산 체제에서는 언제 어떤 빵이 몇 개가 팔릴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쓰레기」는 2007년 인천에서 크리스마스를 위해 대량생산된 100만 여개의 반냉동 케이크의 유통과정 중 보관미숙으로 3만 여개가 상온에 노출되어 이를 대량폐기한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에서 생산의 근본적 요소로서 잉여적인 소비를 의미하는 케이크 대신 이를 빵으로 치환시켜 작업하였다. ● 결국 작가의 작업은 알루미늄이든 빵이든 그 물질의 성격과 관계없이 우리의 물질과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구조적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반대는 서로 끌리는' 이유는 상이한 성질을 가진 물질, 즉 금속과 유기물과 인간의 각각의 관계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은 21세기 초 현재, 물질 환경과 우리가 긴장감 없는 느슨한, 무기력한 수동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Saeri Dobson과 Terry Dobson은 제3국의 소녀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받을 기회를 주지않고 결혼을 강요당하는 소녀들과 매춘마을에서 구출된 소녀들을 돕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 작가들은 디자인 회사 「바이 새리(By SaeRi)」를 2012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제품을 통해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캠페인에 동참하는 윤리적인 선택과 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의 메신저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제3국의 불편한 진실들이 여성의 핸드백과 지갑과 같은 제품을 통해서, 즉 디자인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소비자에게 부드럽게 다가간다. ● 작가들은 프로젝트를 「호프 바이 새리(HOPE by SaeRi)」 와 「드림 바이 새리(DREAM by SaeRi)」를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소녀들을 지원하고 있다. 「호프 바이 새리」 는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아들은 교육시키지만 경제적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13세에 결혼을 강요당하는 소녀들을 돕기 위해 교육센터를 짓는 재원을 지원한다. 이는 자선단체인 스피크업 포 더 푸어(Speak Up for the Poor)와 파트너쉽을 가지고 진행된다. 「드림 바이 새리」는 방글라데시의 작은 마을 바니산타 매춘마을에서 구출된 19명의 소녀들이 모여사는 집인 알링온 홈에 대한 이야기를 제품을 통해 알리고, 그들의 생활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지원한다. 이는 자선단체인 라이트 방글라데시(Light Bangladesh)와 파트너쉽으로 진행하고 있다. ● 작가들이 전시에 출품하는 작업은 이 프로젝트를 타이포그라피와 서사적 몽타쥬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들은 사회문제를 간결하고 솔직하게 대중에게 알리고, 디자인을 통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작업은 공동체적 삶에 대한 노력과 실천을 보여주며, 인간과 사물의 관계, 타자와의 관계, 행복의 조건, 인간의 조건 등 수 많은 화두를 던진다.
김명아는 청각장애 아동들을 위한 미술심리치료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의 삶을 경청하여 소통의 방법론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청각장애가 유발시키는 의사소통의 난점이 개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문제임을 시사한다. ● 작가는 아이들의 드로잉을 통해 그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가 교우관계임을 알게 된다. 작가 자신도 어렸을 때 청각장애로 인해 교우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기에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15년 이상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자신이 겪었던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 작가는 아이들의 드로잉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첫째,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미움 표현, 둘째,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희망, 그리고 셋째,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한 욕구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미술가로서 자신이 작업으로 제시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직접 전송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조종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상상의 장치를 제시한다. 작업에서 보이는 우레탄 선은 인형극에서 배우가 인형을 조종하는 장치와 유사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진화된 신경세포(neuron)처럼 보인다. ● 상대방을 조종하고 싶은 욕망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다. 사실 지배와 복종의 문제는 모든 사회에서 문제가 된다. 지배와 조종을 통해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근본적으로 그 누구도 진정한 의미의 좋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업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 작가는 작업에서 인물을 나무상자로 상반신을 가렸다. 그것은 그 나무상자 속의 인물이 불특정인임을 암시한다. 작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나무 상자 속에 숨겨진 자기자신과 조종하고 싶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상상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상상의 상황극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작가는 우리에게 청각장애의 복합적인 문제점, 그리고 청각장애가 공공의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이해시켜 준다.
조새미는 서울대학교 기숙사의 문화공간 스페이스 599 입구에 체력단련실이 있는 것에 착안하여 건강과 신체의 미, 그리고 운동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이끌어 내는 작업을 제시한다. 4분 12초 길이의 영상작업 「재활운동」은 재활운동 중에서 17가지 동작을 보여준다. ● 이 작업은 두 개의 채널을 통해 보여지는데 한 쪽은 남자 보디빌더의 모습이고 다른 한 쪽은 여성 보디빌더의 모습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도이지만 움직임의 진행이 거울처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약간의 시간차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여자와 남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견의 차이와 일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재활운동을 보여주는 사람은 2012년 세계 남자 클래식 보디빌딩 금메달리스트인 류제형 선수와 2012년 아시아 보디 휘트니스 선수권대회 은메달리스트인 오주원 선수다. 그들은 보디빌딩 선수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재활운동 동작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들과 비슷한 신체 이미지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이 소화해야 하는 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동작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동작은 그들의 신체를 선망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모방하고 싶은 모델이 될 수 있다. ● 17가지 운동동작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동작과 날기 위해서 필요한 연습 동작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동작을 선별하여 구성하였다. 인간이 나는 것은 초능력을 필요로 하지만 작업 속의 인물들에게서 그러한 초능력 없이도 어디에든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안경 렌즈 세공을 익혀 장인이 되었고, 수공 기술을 갖춘 철학자-장인으로 광학 법칙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생계를 위해서 뿐 아니라 영감을 얻은 자유로운 전망을 위해 안경을 만들거나 안경 렌즈를 세공했다. 스피노자 같이 실제로 안경 렌즈를 연마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그들의 렌즈를 통해 작업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더 선명하게 보게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작가들의 렌즈는 삶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들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 의지는 능동적이며, 해야만 한다라는 도덕적 형식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그들의 의지는 기쁨을 느끼는 소박하고 간결한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 조새미
Vol.20130312b | 윤리적 일상 2013 Ethics in Everyday Life 2013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