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구름

최은주展 / CHOIEUNJOO / 崔銀珠 / painting   2013_0219 ▶ 2013_0303

최은주_우연한 구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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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219_화요일_05:30pm

후원 / 신영과비전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_11: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최은주의 회화-경계 위의 풍경 혹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풍경 ● 우연한 구름. 최은주가 자신의 일부 그림에 부친 제목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전제이기도 하다. 우연한 기회에 구름이 개입하면서 풍경을 변형시키는 것을 보고 착상된 것이지만, 이후 그 우연한 기회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풀어내고 심화시켜나갈 필연적인(?) 계기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왜 하필 구름일까. 구름의 무엇이 작가를 그토록 매료시켰을까. 아마도 자연현상 자체보다는 자연현상과 작가의 관념이 만나지는 접점에서 그 해답이며 해법이 찾아져야 할 것 같다. 알다시피 구름은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 양떼 같기도 하고 새털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 형태는 미처 따라 잡을 수도 걷잡을 수도 고정된 형태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래서 뜬구름 같다고 했다. 뜬구름? 뿌리도 없고 정박도 없다. 그래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살이를 비유한다.

최은주_우연한 구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12

그렇다면 뜬구름은 인생살이만 비유할까.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는 가변적인 형태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종잡을 수가 없는 형태를 관념의 표상이며 특히 유목의식의 표상으로 볼 수는 없을까. 의식의 흐름기법(마르셀 프루스트)이며 자동기술법(초현실주의) 그리고 특히 예술의 본성으로 볼 수는 없을까. 의식은 일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일탈적이다. 걷잡을 수도 종잡을 수도 없이 흐른다. 그리고 알다시피 자동기술법은 꿈을 기록하는 방법이며 무의식을 기술하는 방법이다. 그런가 하면 예술의 본질은 열린 개념이며 오픈 콘셉트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열린 것(열린 개념)으로 닫힌 것(본질)을 정의하고 한정하는 것에 예술의 아이러니가 있다. 아이러니는 말하자면 예술의 미덕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이며 본성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은 비록 구름을 그린 것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그 자체가 가변적이고 일탈적이고 유목적인 예술의 실천논리에 맞닿아 있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여하튼, 그렇게 구름은 작가의 그림 속으로 파고들고 부유하고 변형하고 변태한다.

최은주_우연한 구름_캔버스에 꼴라주_91×116cm_2012

작가는 꿈같은 현실이며 현실 같은 꿈의 정경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리는 장자몽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현실을 꿈에 비유한 일장춘몽도 생각난다!). 꿈과 현실이 그 경계를 허물고 넘나드는 모호한 풍경이며 몽환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지는 접점에서의 풍경이며 경계 위의 풍경 정도로 이해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작가는 이 접점풍경이며 경계풍경을 위해 구름과 안개, 연기와 그림자와 같이 그 실체가 희박한 것들(아님 실체를 희박하게 만드는 것들)을 도입한다. ● 그렇다면 이 구름과 안개, 연기와 그림자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들은 현실 위에 드리워진 베일이다. 현실에는 이처럼 현실을 희박하게 만드는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베일을 찢고서야 비로소 현실은 현실 자체로서 드러나 보인다. 그렇다면 베일은 무엇이며 또한 그 베일은 어떻게 찢을 것인가. 베일이 드리워진 현실, 베일에 가려진 현실의 꼴이 무슨 꿈의 꼴 같지가 않은가. 이렇게 다시,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꿈이다. 꿈을 꿈답게 해주는 것은 꿈속에 등장하는 사물이 아니라 편집이다. 꿈의 편집기술이 꿈을 꿈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알다시피 꿈속에 등장하는 사물은 하나같이 알만한 것들이다. 여하튼 현실로부터 그리고 의식의 층위로부터 건너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만한 것들이지만 꿈의 편집기술이 이 알만한 것들을 뒤섞어놓고 접붙여놓기 때문에 낯설어지고 생경해진다.

최은주_우연한 구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3

보기에 따라선 예술 또한 그렇다. 예술을 예술이게 해주는 것은 바로 배열과 배치의 문제이다. 무엇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서 친근한 현실이 낯설어지고, 빤한 현실이 생경해지고, 은폐된 현실이 폭로되고, 죽은 현실이 재생되고, 사이가 메워지면서 실체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베일을 찢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바로 현상학적 에포케를 의미한다. 앎에 대한 일시정지를 가정하는 것, 선입견도 전제도 없이 생판 처음처럼 사물현상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현실은 현실 자체로서 드러나 보일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 보일 현실 혹은 현실 자체는 그 꼴이 꿈과 비슷하고 무의식과 비슷할 것이다. 현실이 금지했던 욕망과, 현실이 분별했던 무분별과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꿈같은 현실이며 현실 같은 꿈의 정경을 그린다.

최은주_네 그루의 나무_한지에 혼합재료_73×91cm_2013

작가는 꿈의 편집기술을 구사한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친근하면서 낯설다. 산과 구름, 능선과 오름, 낮과 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처럼 알만한 모티브들로 인해 친근하고, 이처럼 알만한 모티브들을 배치하고 배열하는 의외의 편집으로 인해 낯설다. 이를테면 구름이 산 위로 양떼처럼 우르르 몰려오는가 하면, 폭죽처럼 터지기도 하고, 솜털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풍경을 연장하고 확장하고 변형한다. 양떼처럼, 폭죽처럼, 솜털처럼 작가의 그림에서 구름은 구름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물현상으로 이행 중이다. 비록 붙박이 그림이지만, 그래서 실제로 이행하는 과정 자체를 그릴 수는 없지만, 여차하면 다른 무엇으로 변형되고 변태될 가능성을 예고하고 암시하고 함축한다. 그 자체 형태로나 의미론적으로 그림의 범주영역을 실제보다 확장시키는 계기이며 장치로 볼 수가 있겠다. ● 그런가하면 안갠지 연긴지 알 수 없는 어떤 기운 같은 것이 풍경 위에 드리워지면서 풍경을 변형시킨다. 때론 풍경의 꼴보다는 혹은 꼴과 함께 질감을 변질시킨다. 특히 바위와 숲에서 그러한데, 보기에 따라선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섬세하게 굴곡진 벨벳처럼, 층층이 포개진 이끼처럼, 미묘한 비정형의 흐름으로 고착된 마블(대리석 표면)처럼 보이는 특유의 질감을 연출해 보인다. 견고한 사물현상을 흐르듯 혹은 흘러내릴 듯 유기적인 질감으로 변질시키는데, 이런 촉각적인 성질에서 향후 작가의 작업을 개성 있게 만들어줄 한 계기이며 조짐이 보인다. 꿈이 열어 보이는 비전은 이처럼 형태를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때론 질감도 변질시킨다. 그렇게 작가는 꿈이 예시해준 비전을 그리고 있었고, 그 비전으로 현실을 변형하고 변질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현실 위에 포개진 꿈을 그리고 있었고, 그 자체가 혹 꿈일지도 모를 현실을 그리고 있었다.

최은주_섬_한지에 혼합재료_81×130cm_2013

그리고 알다시피 낮과 밤은 무의식이나 꿈속이 아니라면 한자리에 놓일 수가 없다. 이를테면 작가의 근작에는 구름 그림과 함께 유독 칠흑 같은 하늘에 별이 총총한 밤의 정경과 세부가 오롯한 낮의 정경이 대비돼 보이는 그림들이 많다. 낮과 밤이 그리고 빛과 어둠이 하나의 화면에 공존하는 이 낯선 정경은 알다시피 초현실주의(특히 르네 마그리트)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가 있고, 이를 통해 꿈의 비전을 열어 보이고 싶어 했던 경우와 통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그림에서 엿보이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에 공존하는 것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가 있겠다. 이를테면 각각 낮과 현실과 의식의 표상이 밤과 꿈과 무의식의 표상과 대비되는 경우와 같은. ● 이처럼 낮과 밤이 대비되고 빛과 어둠의 영역이 비교되는, 그리고 포지티브와 네거티브가 공존하는 이 구도는 의미론적으로 일종의 이분법이며 양비론으로 봐도 되겠고, 혹은 이와는 반대로 이분법과 양비론의 틀을 깨는 실천적 계기로 볼 수 있겠다. 구름이 갖는 미덕, 이를테면 가변적이고 일탈적이고 유목적인 성질과 함께 향후 작가의 작업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다듬어질 계기로 볼 수 있겠다.

최은주_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65cm_2012

이외에도 작가는 오브제를 도입해 그림의 표현영역을 확장한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구슬로 대신한 것이다. 그리고 평면이면서 입체인 일종의 저부조 형식의 그림을 제안하기도 한다. 첩첩이 포개진 산의 능선을 낱낱이 잘라서 하나의 화면에다가 중첩시킨 것이다. 작가의 시도 중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는 모더니즘의 형식논리와 재현회화를 결합시킨 것인데, 각각 평면과 반복(작가의 그림에선 펀치 혹은 땡땡이 문양과 패턴)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의 패러다임과 형상과 서사에 바탕을 둔 재현회화의 패러다임을 하나의 화면에다가 결부시킨 것이다. 본격적인 경우로서보다는 목하 형식실험 중인 경우로 보이고, 향후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작업의 물꼬를 트는 잠재적인 계기들로 보인다. ● 이 잠재적인 계기들과 더불어 작가는 현실을 꿈으로 변형시키고 꿈을 현실로 변질시킨다. 다시금, 장자몽과 일장춘몽이 떠오른다. 장자몽과 일장춘몽을 심화시킬지, 아니면 꿈을 계기로 혹은 꿈과 현실과의 모호한 관계를 계기로 이와는 다른 어떤 지점을 짚어낼지에 대해서는 향후 작가의 그림을 지켜볼 일이다. 여하한 경우에도 문자 그대로 재현적인 현실에 천착하거나 현실의 감각적인 표면에 정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고충환

Vol.20130219c | 최은주展 / CHOIEUNJOO / 崔銀珠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