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215_금요일_05:00pm
1부 / 2013_0215 ▶ 2013_0305 참여작가 / 이해은_정직성_차소림_황우철 2부 / 2013_0308 ▶ 2013_0328 참여작가 / 박진아_이현열_전영근_허정수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그리다 GALLERY GRIDA 서울 종로구 창성동 108-12번지 B1 Tel. +82.2.720.6167
『회화, 돌아오다』는 회화의 후기적 양상을 기대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간 회화는 실종되었다느니 소멸되었다는니 하는 심한 위기의 언사로 표명되었다. 회화는 이미 죽었다란 센세이셔날한 구호까지 서슴치 않는다. 백남준이 21세기는 영상예술만 존재할 뿐 따블로(평면회화) 형식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과연 그럴까 하면서도 최근 동향은 이 예언에 끼워맞추기라도 하듯이 다가가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동적인 구호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인류의 회화의 역사가 자그만치 5만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무리 미디어 아트가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이 5만년의 역사의 무게가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겠는가. 영상이란 무엇인가. 그 역시 움직이는 회화일 뿐이지 않은가. 회화의 한 영역 확대의 현상에 불구하지 않은가. 손델버그 여사는 일찍이 회화라야 벽에 걸지 해프닝을 벽에 걸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회화의 존재를 명쾌하게 정의내렸다. 회화의 내용은 달라질지 모르나 회화의 형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회화의 위기는 회화 자체 속에 있지 않을까. 신선한 출구를 찾지 못한 슬럼프 현상이 회화의 위기설을 부추킨 것이 아닐까.『회화, 돌아오다』는 이 점에서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회화의 위기를 탈출하려는 것은 종내는 회화 자체의 근원으로 회귀回歸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회화는 그린다는 행위, 표현한다는 방법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회화의 근원은 이 행위와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린다는 행위는 행위 자체의 순수성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상을 구현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먼저 행위 자체의 순수성은 붓의 작동, 그것의 자적自適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린다는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회화의 역사는 오랫동안 이미지를 그리는 것으로 점철되어 왔다. 어떻게 그리는가보다 무엇을 그리는가가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무엇을 그린다는 내용성에서보다 어떻게 그리느냐는 방법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린다는 방법은 대상성을 벗어나면서 놀라운 자율성을 확보해 나갔다. 20세기 이후의 회화의 눈부신 전개는 전적으로 이 자율성의 확보에 담보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방법의 개진은 개념화의 나락으로 회화를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회화, 돌아오다』는 회화의 근원을 생각하는, 그래서 회화의 풍요로운 회귀를 꿈꾸는 몇 작가들이 초대되었다. 이들에 의해 회화가 완전히 돌아왔다는 낙관론을 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한 편이다. 무엇보다 회화에 대한 불신의 그림자를 지워나갈 필요가 있다. 너무 욕심을 내기보다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의 벅찬 감격으로 상황의 불리함을 서서히 걷어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한 소박 하면서도 간절한 염원을 담는다면 잃어버린 회화의 고향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 8인의 작가의 세계는 대단히 개별적이다. 어떤 동일한 인자를 찾기는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회화의 근원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견인된다. 색채의 자율성이 이미지를 앞질러 새로운 시각적 풍요로움을 주는 이해은, 이현열의 세계는 새로운 풍경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진아, 허정수, 전영근은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공간속에 부단히 시간의 개입을 의도하고 있는 박진아의 경쾌한 시점, 여인의 뒤 머리모습을 줄기차게 다루어오고 있는 허정수의 관념적이면서도 리얼한 환상의 세계, 여름 바캉스를 떠나는 가족의 즐거운 나들이가 보여주는 전영근의 해학적 설정은 잃어버린 회화의 상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에 비하면 차소림, 정직성, 황우철의 행위의 자동은 놀라운 회화의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때로 이미지의 잔흔殘痕을 남기면서 힘찬 브러시워크의 유영遊泳을 보여주는 차소림, 강인한 직선의 구성이 만드는 구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정직성,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는 활달한 호흡과 표현의 자적自適을 보여주는 황우철의 세계는 회화의 풍요로운 세계로의 귀의를 시사해주고 있다. (2013.1.16) ■ 오광수
Vol.20130215c | 회화, 돌아오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