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Forum 2013

기억의 겹 The Layers of Memory展   2013_0213 ▶ 2013_0324 / 월요일,설날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신승연_정경희_진현미

주최,기획 / 성북문화재단_성북구립미술관

관람료 / 성인 1,000원 / 학생(초,중,고)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설날 휴관 관람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6번지(성북로 134) Tel. +82.2.6925.5011 sma.sbculture.or.kr

The Layers of Memory –기억의 겹 ● 기억의 한 단상을 재현해낸다. 잠자리 날개처럼 무수히 많은 생각의 맥이 펼쳐지거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풀어낸 상상의 산등성이를 현시(顯示)하거나 소소한 일상의 풍경으로부터 촉발되는 담담한 위로의 감정들을 꺼내 보인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고, 또 생각하는 것들로 변형되어 공간에 형상화된다. 중요한 것은 그 풍경들을 완전히 재현해내는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강렬한 감동을 오롯이 자신의 시선으로 꺼내 보이고픈 욕구이다. 따라서 기억 속의 풍경들은 각기 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형태 또한 추상화된다.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만 남고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진 존재들의 현현(顯現)이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겹을 이루어낸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장편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일인칭 화자인 '나'가 인생과 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나가면서 경험하는 의식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들렌느 과자가 불러일으킨 환희는 무의식 속에 침전된 채 오랜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시간'을 소환하여 실재 시・공속에 풀어놓는다. 소설 속에 나타나듯, 기억들은 순차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모순투성일 뿐만 아니라 제멋대로 겹쳐져 층위를 이룬다. 벨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의하면 프루스트의 기억 작업은 실제로 존재한 삶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체험한 자의 기억을 그려낸 것으로, 망각이라는 기억의 저장고 속에서 불현듯 꺼내 오는 작업이다. (발터 벤야민, 『서사(敍事), 기억, 비평의 자리』,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12, p.236.) 따라서 기억이란 사실 여부라기보다 서로 어우러지면서 조합과 재편을 이루는 과정이고 또한 무수히 번식해나가는 상상력과 창조의 작업에 다름 아니다.

정경희_another memory_캔버스에 유채, 목탄, 연필_130×242cm_2008
정경희_dreaming_캔버스에 유채, 목탄, 연필_91×60.5cm_2012
정경희_기억이 자라다_캔버스에 유채, 목탄, 연필_162×130cm_2011

기억을 통해 상기되는 경험들은 대체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상상력의 작용과 스토리의 개입을 허락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는다. 정경희는 '사과', '물고기', '산양 뿔' 등이 지니는 관념적인 의미화에 대한 거부로 그림자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이유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표정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비롯하여 얼굴의 형상이 지워져 있다. ● 벤야민이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기억들은 얼굴의 이미지들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데, 따라서 화면 속 대상은 특정 기억을 연상시키기보다는 상상과 인식의 가변성이라는 기억의 속성에 주목하게 한다. 목탄과 연필 등 기본적인 재료들은 그림자가 지닌 어둠 이면의 확장된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 작가는 목탄을 이용해 큰 형상을 그린 후 뿔이나 발끝에서 뻗어나가는 잠자리의 날개를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섬세하고도 거친 재료인 목탄은 '손'의 자취를 캔버스 위에 남기고 천천히 쌓인 흔적들은 마치 기억처럼 순간에서 과거가 되어버린다. 잠자리의 날개를 표현하는 세밀한 연필 드로잉은 기억의 심원으로부터 기원하여 현재, 미래로 이어져나간다. 가냘프고 연약하지만 고도의 비행능력을 지닌 잠자리의 날개에서 예술 작업과의 유사성을 발견한 작가는 무수히 많은 선들이 집요하게 뻗어있는 맥(脈)들을 통해 기억과 상상력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점차 뻗어나가고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진현미_겹-0103_투명 필름, 한지, 먹_400×320×300cm, 가변설치_2012_부분
진현미_겹-0103_투명 필름, 한지, 먹_400×320×300cm, 가변설치_2012
진현미_겹-0318, 겹-0319_아크릴, 한지, 먹_각 20×30×18cm_2012

진현미는 동양화의 주요 소재인 산수를 표현하지만 3차원의 실제 공간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시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실천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에서 검은 돌이 펼쳐진 풍경을 보고 깊이 감동 받았던 개인적 기억은 작업의 주요 모티브가 되어 검은색의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산수로 재탄생했다. 그는 한지에 농묵을 우려내어 투명한 필름에 붙여낸 후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 달아 반복적인 겹 구조를 이루며 입체 산수를 완성한다. 전통 수묵화의 특징인 먹의 농담 속 다양한 색과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은 3차원의 공간 안에서 실제 공기를 사이에 두어 공기원근법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일루젼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공의 경험에 따른 형상의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 조각이 공간예술에서 더 나아가 실제 시간의 지속을 중요한 축으로서 지향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의 설치 작품인 「The Layer」시리즈가 단순히 낱장의 겹으로 이루어진 산수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람객들은 공간 속에 펼쳐진 겹의 사이사이를 직접 거닐면서 작가 개인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함과 아울러 실제 공간에서의 체험을 통해 기억 속 경험을 다시 현재의 것으로 대체한다. 걸음의 속도와 시야의 각도, 빛의 위치에 따라 작품은 개별적으로 인지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람객들은 시각에만 의존해왔던 인식의 한계와 가변성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신승연_cloud_깃털, 진동모터, 에나멜선, 마이크로컨트롤러, 파워서플라이_설치_2012_부분
신승연_cloud_깃털, 진동모터, 에나멜선, 마이크로컨트롤러, 파워서플라이_설치_2012
신승연_waving mirrors_ 슈퍼미러, stell, 알루미늄 스프링, 아크릴 패널, 모터 장치, 마이크로컨트롤러, 파워서플라이_설치_2012

신승연은 시카고 유학시절 미시간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보고 영감을 얻어, 기억 속 호수와 하늘, 구름의 섬세한 변화를 기계적 장치로 구현한다. 그의 작품은 가시적인 형상의 재현 대신 그 경험과 의미를 상기시키는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와 구름뿐만 아니라 그 주위를 둘러싼 공기와 바람, 햇살,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인간의 움직임 등 자연의 거대한 유기적 흐름을 일구어낸 무형의 상호 작용과 관계성의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다. 흐르는 시간과 그에 따른 기억의 중첩으로 인해 재현된 공간 속 풍경들은 그가 경험했던 과거와도 다른, 새롭고 낯선 상상의 풍경을 연출한다. 「Waving Mirrors」(2012)에서 거울에 반사되는 무수히 많은 상들의 움직임은 가변적인 실루엣의 형상을 보여준다. 빛의 단위들을 통해 물결과 빛, 흔들리는 바람을 표현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유사한 감동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다. 부유하는 상들은 따라서 불안정한 상태로 섞이는 것에 유연해지는 자연의 본질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연과 인간, 관객과 작가 사이의 상호 관계성을 상기시킨다. 느리게 변화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가시화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역발상의 접근은 오히려 서정적이고 섬세한 감각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활용된다. ● 대형 설치작업을 비롯해 총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앞서 본 세 명의 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기억과 사색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매 순간 흘러버린 현재의 시간은 과거로 켜켜이 쌓여가고, 시간의 방 안에서 재구성되고 확장된 기억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작가는 바로 그 기억이 새겨진 시간을 캔버스 화면 위로, 하얀 공간 속으로, 그리하여 우리의 눈앞으로 묵묵히 옮긴다. '기억'이라는 내밀한 주제에서 촉발된 상상력과 서사의 세계를 통해 관람객들이 마음의 위로와 감동을 경험하게 되길 기대한다. ■ 이유선

Vol.20130213b | NeoForum 2013-기억의 겹 The Layers of Memory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