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속의 그림자, 기억

최철展 / CHOICHUL / 崔哲 / painting   2013_0212 ▶ 2013_0305 / 월요일 휴관

최철_무의식의 그림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마네킹_300×90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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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org

꼬마 속의 꼬시마「악몽」그림자, 기억 그리고 추억: 무의식으로 가는 길 ● 캔버스 위에 하얀 물감이 뿌려진다. 어두운 필름 판에 빛이 투사된다. 시간을 지워가는 캘린더 뒤 벽에 먼지가 쌓인다. 이처럼 일종의 에너지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자극이 생기고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사건의 기억일 수도 있고 상처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작업들을 볼 때 어느 순간 잊은 줄 알았던 과거의 경험들이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기억하고 추억한다. 이번 작업들은 지나온 시간의 '기억'을 추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그 흔적을 남긴다.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사건과 젊은 시절의 남다른 경험들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이나 머릿속에 흔적을 남기고, 그것은 작품 속에서 바다, 빛, 파편화된 인체, 그림자, 기계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의 흔적을 통해 나타난다.

최철_Nocturn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200cm_2013
최철_배열의 재구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50cm_2013

살면서 겪는 천재지변이나 끔찍한 사고, 충격적인 경험들은 뇌 속 깊이 각인돼 일생 동안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필름 위에 어떤 상이 기록되듯 우리의 뇌 속에도 여러 사건들이 기억으로 저장된다. 소우주라고 불릴 만큼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기능을 수행하는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기억이 아닐까. 우리가 경험한 것들은 뇌에서 저장, 유지, 회상하고 재구성하여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뇌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경험들이나 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무의식 한구석에 저장해버린 것 같다. 꼬마의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그늘 아래는 나의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깊은 바다 속과 같은 내면의 저 심연에 감춰둔 억압된 기억, 그 기억들이 어느 순간 수면으로 떠올라 표류하기 시작한다. 무의식의 세계는 인간의 감성과 직관력을 관장하며 창의적인 사고력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그 무의식은 많은 잠재력과 감각을 담당하며,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보유한 대용량 하드디스크와 같다. 마치 지하의 어두운 창고에 내버려진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것과 유사하다. 거기엔 의식될 기회를 잃어버려 미분화된 채로 남아있는 원초적인 심리의 단편이나 특징들의 편린들도 포함될 것이다. 무의식은 버려져 있는 바람에 발달할 기회를 잃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식의 과정을 거쳐 빛을 보게 되는 순간, 그 내용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최철_있었던 그자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13
최철_있었던 그자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13

살아온 지난 시간의 경험들은 잠재의식의 어두운 곳을 거치며 머릿속에 흔적을 남겼다. 생각의 흔적, 무의식 속의 의식의 흔적, 무의식의 스토리를 작업으로 편집한다. 사람들은 콤플렉스의 그림자, 자신의 추한 모습들을 자꾸 무의식이나 꿈 속에 감추어 둔다.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멍석을 깔고 자는 상상, 여기저기서 돈을 줍고 흡족해 하는 기억, 어떤 사람과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 독사에게 물리고 거대한 구렁이를 죽이는, 핵폭탄이 터져 도시가 불바다가 되고, 온 천지에 홍수가 나고 물 속에 빠져 숨이 막혀 죽는 꿈... 꿈에서 깨어난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꿈들은 왜 계속되는 것인가? 나는 이따금 꿈이 너무 혹독한 꼬시마로 나타나 괴로워하며 꿈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꿈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어떤 욕구가 억압되어 있는지 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많은 체험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꿈은 낮 동안이나 과거에 행한 자기 행동을 분석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끈질기게 은폐하고 있는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고 난 다음 그 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데, 이러한 과정은 나에게 아주 소중하다. 꿈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일어나는 일종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고 성장해 가며 인격이 완성된다. 어린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기쁨을 얻을 뿐 아니라 아픔까지 치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꿈을 통해 현실의 기쁨과 아픔의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해간다. 무의식의 바다로 들어가 자유를 체험해보자. 열린 마음으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시야를 견지하자. 무의식의 바다에서 꿈은 좌절된 욕구를 표현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될 것이다.

최철_있었던 그자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2
최철_있었던 그자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2

내 과거의 경험들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 무거웠다. 하지만 그 역시도 소중한 나만의 추억이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추억들이 남긴 캔버스 위의 흔적들을 아름답게 봐주길 희망한다. 그 필터들을 통해 재현한 이미지는 마치 어두운 작업실에 남겨진 다양한 형상의 흔적들이 찬란한 한 줄기 빛을 받아 반짝이게 되듯 그 의미를 얻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스스로 은폐시켰던 힘든 기억의 조각들을 조금씩 꺼내 직접 대면하면서 그 흔적을 다듬고 평화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바다, 빛, 그림자, 기계 부속품들의 이미지를 이용해 끊임없이 캔버스 위에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희망의 흔적'을 만들어 간다. 부디 다듬고 또 다듬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그림과 그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을 만나보시길 바란다. ■ 최철

Vol.20130212f | 최철展 / CHOICHUL / 崔哲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