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작은 이야기

구나나展 / GUNANA / 具나나 / painting   2013_0212 ▶ 2013_0219

구나나_공백_장지, 채색_16×20cm_2012

초대일시 / 2013_02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한옥 GALLERY HANOK 서울 종로구 가회동 30-10번지 Tel. +82.2.3673.3426 galleryhanok.blog.me

소소익선(少少益善)의 미학 ● 죽은 새 한 마리, 마른 멸치, 멸치 대가리, 시들어 가는 꽃, 물속에서 겨우 존재하는 수초, 다시 죽은 새 한 마리……. 도대체 이런 사물을, 그러니까 새가 아니라 죽은 새를, 탐스런 꽃이 아니라 시들어 가는 꽃을, 온전한 어류가 아니라 소용을 다한 멸치 대가리를 자신의 회화 소재로 (혹은 미적 기호로) 채택한 작가가 있었던가? 없다. 내 지식 안에 그런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 구나나의 회화 소재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예외 없이 생명이 부재하거나 최소한 결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하나같이 작고, 미약하고, 시시하고, 하찮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또 그러하다. 그녀의 미적 소재는 하나의 기호이므로, 다시 말하면 본질이 아니라 형식이므로(한 예로, '의자'라는 낱말을 떠올려 보자. '의자'는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앉음'이라는 본질을 지시하는 하나의 기호이자 형식임을 기억하자.)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은 사실은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안에 비밀스럽게 담아놓은 가치이고 의미이다. 그녀는 왜, 작가라면 대부분 꺼릴 법한 생명이 없는, 게다가 보통의 정서로는 여간해서 관심조차 주기 힘든 변변치 못한 사물을 거듭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다시 구나나의 작품으로 눈을 돌려보자. 여기, 죽은 새 한 마리가 있다. 참새 같기도 하고, 노랑지빠귀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죽은 게 아니라 잠자는 것 같다. 표정이 한없이 편안하고 어찌 보면 부드러운 정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뿐이 아니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어린 성자처럼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멸치도 마찬가지다. 통멸치도 인상적이지만 몸뚱이를 잃어버린 멸치 대가리는 처연하게 아름답다. 수초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물속으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햇살에 의지해 전 생애를 걸고 존재하는 저 수초는 얼마나 안타깝게 숭고한가?

구나나_마음_ 순지, 채색_69×116cm_2013
구나나_고요히 드러냄의 참 맛_장지, 채색_25×25cm_2012

조금 다르게 말하면, 구나나는 식물의 불행과 새와 멸치의 생명 부재를 감추거나 축소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은빛 멸치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마른 멸치를, 하늘을 나는 저 새보다 더 평온하고 자유로운 땅의 참새를 그리고 있다. 생명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을, 그리고 충일보다 더 숭고한 결핍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부재와 죽음을 은유하는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 사물들을 자신의 무대로 호출하여 유일하면서도 독립적인 존재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구나나_이러하기도 하고 저러하기도 한 날들을 통해 이루어진다._장지, 채색_25×25cm_2012
구나나_공백-1_옻지, 채색_20×30cm_2013

구나나의 그림은 일종의 주문(呪文)이다. 멸치와 참새에게 선고된 죽음을 걷어내는 주문이고, 난꽃과 수초에게 드리워진 결핍을 긍정하는 작은 의식이다. 동시에 그것은 크고 높고 많고 화려한 것을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세상에게 조용히 제안하는 소소익선(少少益善)의 미학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지, 즉 시각 언어는 잠재된 것의 현시이다. 이 말을 터 잡아 이야기를 확대하면, 멸치와 죽은 새와 시들어 가는 난꽃과 물속에서 겨우 존재하는 수초가 은유하는 것은 작가 자신일지 모른다. 동시에 그것은 슬프고 고단한 삶을 어렵게 이어가는, 성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 땅의 숱한 무명씨일 수도 있다. 구나나의 작업은 그러므로, 이 세상의 가볍고 시시하고 미약하고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수줍지만 아름다운 헌시이다. ■ 유명종

Vol.20130212d | 구나나展 / GUNANA / 具나나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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