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20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강세황 외 53명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1:00am~04: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미술로 보는 인문학 시리즈 02-梅花,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 ● Ⅰ. 미술로 보는 인문학 시냇가에 화사하게 두 줄기 서 있더니(溪邊粲粲立雙條) / 향기는 숲을 넘어가고 그림자 다리를 비추네(香度前林色映橋) / 서릿 바람에 얼까 시름하지 않고(未怕惹風霜易凍) / 따뜻해지면 고운 꽃잎 녹을까 걱정이네(只愁迎暖玉成消) - 이황(李滉, 1501~ 1570), 매화(梅花) ● 인문학이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누구이며 왜 태어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역사적• 철학적• 미적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학문이다. 철학, 문학, 역사, 인류학, 심리학, 미학, 예술 등 인문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소통을 강화하여 인간의 가치를 새로이 함에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것은 날로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 계층 • 세대 • 지역 • 이념간 갈 으로 빚어진 사회적 문제, 급증하는 생명 경시풍조, 인간성 상실 등 이다. 돈을 좇아 경제적 가치만 추구한 삶의 여정에서 남겨진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폐허로 인한 삶의 포기일 뿐이다. 이러한 총체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무너진 인간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위기의 시대, 회의와 불안한 기운만 감도는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의 발생은 다른 인문학 영역만큼이나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무한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치는 삶을 소망하는 인간의 욕망은 현실에서 쉽게 만족되지 못한다. 욕망은 채우고 싶은 만큼 모자라고 넘치기 보다 늘 부족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분노하고 슬퍼하며 상처받게 한다. 예술은 바로 이런 생의 결핍을 채우고 절망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예술이 삶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까닭이다. 벗어날 수 없는 결핍을 이기고 삶의 기쁨과 사랑의 지평을 넓혀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때문에 탄생하게 된 예술은 철학, 역사, 문학 등 모든 것을 품은 인문학의 결집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점 그림은 화가 한 사람의 창작물이자 동 시대 경제, 사회, 역사, 문화의 집약이기도 하다. 현대인에게 가장 절실한 창의력과 통찰력, 즉 경 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영감, 감성 그리고 시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과 교양은 예술을 통해 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 성실하고 건강한 노동이 행복의 전제조건이 되지 못해 희망을 품기 조차도 두려운 오늘 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손바닥 안에 놓여진 스마트 기계에 미쳐버린 채 삶의 문제 해결에서도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듯 하다. 흔들리는 나를 바로 세우고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밖이 아닌 안을, 남이 아닌 나를, 남의 역사와 문화가 아닌 우리네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선현들의 자세가 지금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다. 우리, 위기가 아닌 순간을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매 순간 위기를 넘어선 선현들의 삶의 지혜를 바르게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다면 넘어서지 못할 위기란 없을 것이다. 포스코미술관의 '미술로 보는 인문학시리즈' 전시는 바로 이런 연유에서 기획되었다. 지난 여름 『겸재부터 단원까지, 천재화인열전』에 이어 두 번째 전시 『梅花,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 전은 한국의 문화예술 속에 녹아있는 우리 문화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 새로운 삶의 지향점을 찾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또한 한국 문화의 원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 때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깊은 혜안과 강력한 실천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Ⅱ.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이겨내고 맑은 향기를 풍긴다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不是一番寒徹骨) /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 황벽희운(黃檗希運, 당나라 선승)의 시中 ● 현대인들에게 매화는 마시거나 즐기는 매실주와 매실차를 생산하는 매실나무의 꽃 정도로만 익숙할 뿐이다. 심지어 매화꽃을 본 적 없는 이들이 허다한데 달빛아래 은은하게 풍겨나는 암향(暗香)을 느끼며 월매(月梅)의 고취를 느껴 본 이가 몇이나 될까. 그러나 매화꽃과 벚꽃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과 달리 우리 선조들의 매화벽(梅花癖)은 유난스러웠다. 지금은 잊혀진 풍습이 되어버린 구구소학도(九九消寒圖)와 탐매(探梅)가 대표적 예이다. ●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유입된 풍습으로 주로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한 독특한 일력(日曆)이다. 구구(九九)는 일년 중 가장 추운 동지 다음날부터 헤아려 81일간 을 의미하며, 소한도(消寒圖)는 보통 81개의 꽃송이와 봉오리가 맺힌 흰 매화(白梅)나무가 그려진 그림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선비들은 벽에 이 그림을 붙여놓고 동지 이튿날부터 매일 백매 한 송이를 붉은 색깔로 칠해서 마지막 송이가 홍매(紅梅)가 되었을 때, 창을 열면 드디어 봄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봄을 애타게 기다리던 선비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는 낭만적 풍속이다. ● 탐매(探梅)는 겨울 끝자락 잔설을 헤치고 산 속으로 맨 처음 피는 매화를 찾아, 봄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698~740)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매화가 필 때면 장안 동쪽에 있는 파교를 건너 심산으로 들어서 첫 꽃봉오리를 여는 매화를 발견한 후 오래도록 감상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파교심매(灞橋尋梅)'의 전통은 탐매(探梅) 혹은 심매(尋梅) 라 불리우는 선비들만의 봄맞이 풍습을 만들었으며 송대 성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널리 유행하였 다. 또한 파교심매 고사는 많은 문인묵객들의 주요 작품 소재가 되었고 이후 조선시대 선비들에 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우리 땅에 매화나무가 처음 전해진 것은 1500년경 혹은 그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유입 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른 3월 봉오리가 터져 꽃이 먼저 피고 난 후 매실이라는 열매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잎이 나오는 장미과 식물로서 특히 꽃의 색깔에 따라 백매(白梅), 홍매(紅梅), 청매 (靑梅) 등으로 구분된다. 매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권에서 가장 사랑 받는 꽃 중의 하나로서 수십 수백 가지 별칭과 수식어를 지닌 식물이기도 하다. 중국 철학 자 소옹(邵雍)은 매화의 다섯 꽃잎을 평화, 화해, 행운, 관용, 인내의 상징으로 풀이하였는데 음양 오행에서는 상징의 기본수를 다섯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 단엽으로 된 다섯 꽃잎을 선호하였고 간혹 여섯 잎(六花)은 눈 모양과 유사하여 상징적 의미를 중시하기도 하였다. 매화는 첫 봄소식을 알려주는 봄의 전령이자 희망으로, 선비에게는 불의에 굴하지 않은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군자의 꽃으로, 문인에게는 청순한 정절을 또한 은은하고 맑은 향기는 선사들이나 도학가들이 추구하는 절대가치로 상징되고 있다. 민간에서는 늙은 나무에 앳된 가지가 돋아나 꽃 을 피움으로써 회춘의 상징으로, 순결하고 아름다운 미녀이자 요녀라는 이중적 의미로 혹은 남녀 간 애정의 증표이자 다산의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지닌 매화는 사실 적인 묘사보다는 사의적인 상징성이 더 중요하게 여겨져 작가나 민족성에 따라 표현방식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의 경우 화려하게 만발한 매화를, 일본은 지극히 도안에 가까운 매화 그림을 선호한 것에 비해 특히 한국의 매화는 성글고 담박한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었다. 선비 들의 이상향인 군자를 상징하는 꽃으로서 매화는 고매한 품격과 자태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 만 품위가 깃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청빈한 삶의 모습을 닮은 듯 활짝 만개한 꽃보다는 굴 곡진 오랜 나무껍질을 뚫고 하늘로 곧게 솟아오른 햇 가지 끝에 맺힌 몇 개의 꽃봉오리로 드러 난다.
Ⅲ. 매화,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 촉(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暗香)조차 부동(不動)터라 - 안민영 (安玟英, 조선시대 가객), 매화사(梅花詞)中 ● 일지춘색(一枝春色),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맑고 청아한 향을 풍겨 우주만물에 처음 으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전하는 매화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사랑과 동경은 지독했다. 왜 그들은 그토록 매화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가지게 된 것 일까. ● 한국에서 언제부터 매화를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려 왕건릉으로 알려진 무덤의 벽화에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매화가 등장한다. 이후 고려 말의 학자 박익(朴翊)의 묘에서도 대나무와 함께 그린 매화가 발견되었는데, 그는 공민왕 때 학자로 조선 건국 후 태조가 관직을 주려고 다섯 번이나 불렀으나 응하지 않은 고려 팔은(八隱)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무덤 에 그려진 매화는 대나무와 더불어 박익의 충절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후기 성리학을 받아들인 고려학자들은 자신들의 삶과 의식을 상징하기에 적절한 소재인 매화를 상찬하는 시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후 성리학이 국가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매화 는 더욱 자주 묵객들의 소재가 되었다. ● 매화는 고려시대 이후로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추운 겨울철의 벗으로 일컬어졌으며,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유교적으로 가장 이상적 인격인 군자를 상징하였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마르고 거친 굴곡으로 드러내는 나무, 소담스레 맑고 고운 꽃, 청아하고 은은한 향기는 그 외형적 모습만으로도 절개, 청빈, 결백의 삶을 좇는 선비들의 성리학적 이념과 그들의 이상형인 군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눈 속에서 추위를 견디는 강인함, 수천 가지 뭇 꽃들보다 앞서 개화하는 의연한 고결함이 바로 매화와 군자가 공유하는 덕목인 듯하다. 격동하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담백한 아취를 풍겨낼 수 있는 초연함이 바로 매화의 모습인 것이다. 때문에 선비들의 삶에 있어 매화는 단순히 관상용 식물이 아니라, 곁에 두고 가까이 하며 그것의 고매한 품격과 우아한 자태를 칭송하고 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벗이 아닌 더 귀한 손님(淸客)으로 혹은 매은(梅隱), 매선(梅仙), 설중군자 (雪中 君子) 등 벗 이상의 것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에 대한 소양을 갖추고 있었기에 자연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우주 자연과 인간이 합일할 수 있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자연관을 배경으로 산수를 유람하거나 화초를 기르고 감상하는 일은 사대부가 갖춰야 할 사물의 자연체득 과정이었다. 또한 천지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우주의 조화와 천지자연의 질서를 마음으 로 본받기 위한 자기수양의 방편으로 자연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시 서화(詩書畵)가 선비의 격조라 여기며 화려함 대신 소박하고 담백한 수묵화를 즐겨 사용한 조선 의 문인묵객들은 난초의 곡선미, 대나무는 직선의 미를 특징으로 하며 매화는 굴곡미와 더불어 겹친 가지 사이의 공간미를 으뜸으로 여겼다. 특히 매화를 그림에 있어 다섯 가지 요소 즉, '줄기 는 늙어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듯 굵고(體古) 가는 것이 뒤틀려 괴이한 모습이어야 하며(幹怪), 새 가지는 말쑥하게 빼어나야 하며(枝淸), 어린 가지는 강건해야 하고(消健), 꽃은 기이하고 아리 따워야 한다(花寄)'는 기준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시는 형상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상 있는 시 (無形畵 有形詩)'라는 옛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선비들은 그림과 시가 다르지 않음을 즉, 시서화 일치(詩書畵一致) 혹은 서화일체(書畵一體)를 추구하였다. 시서화 모두 자연의 묘사는 단순히 외 형을 모방하거나 베끼기보다는 직관력 있게 사물을 파악하여 그 본질이 기운생동하도록 표현 해 야 하며, 또한 그리는 자의 마음 속 사상 (寫意)을 담고 서화일치에서 나오는 문자향(問字香)을 강 조하였다. 매화나무의 모습을 마음에 깊이 새긴 후 화선지에 옮기는데 그 필치가 낙뢰의 순간 같 다고 하여 그리는 이의 정신 세계가 온전히 일필휘지의 붓끝을 통해 펼쳐지는 것이다. 그림 속에 담긴 심오한 자연의 순리와 고매한 선비의 품격 등이 먹으로 쳐낸 묵매의 줄기와 가지 그리고 꽃 송이에 살아있어야 제대로 그려진 그림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포스코미술관의 『梅花,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展은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별 스러운 매화벽을 간직했던 60여명 문인묵객들의 매화도와 매화첩, 매화시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조선 중기 문인화가로 묵매를 잘 그려 이정(李霆)의 묵죽, 황집중(黃執中)의 묵포도와 더불어 삼절(三絶)로 불리웠던 설곡 어몽룡(雪谷 魚夢龍), 선비의 기풍과 심의가 가득한 묵매에 능했던 매창 조지운(梅窓 趙之耘)의 묵매첩(墨梅帖), 조선 후기 문인서화가로 당시 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표암 강세황(豹庵 姜世晃), 스스로 호를 매수(梅叟)라 지을 정 도로 매화벽이 강렬했던 우봉 조희룡 (又峯 趙熙龍) 등의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될 것이다. ● 예부터 매화에는 네 가지 귀한 것(四貴)이 있다고 하여 관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첫째 함 부로 번성하지 않아 그 희소함이 귀하고, 둘째 어린 나무가 아니라 늙은 줄기의 모습이 귀하고, 셋째 살찌지 않고 홀쭉 마른 것이 귀하고, 넷째 활짝 핀 꽃이 아니라 갓 피어날 꽃봉오리가 귀 함이다. 비록 땅끝 봄이 오는 길목으로 먼저 찾아 들어 선인들처럼 잔설을 헤치며 맨 처음 꽃잎 을 여는 매화를 찾아 나설 수는 없겠지만 이제 옛 그림 속으로 탐매기행을 떠나보자. 매화의 네 가지 귀함을 발견하는 순간, 유난스레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우리들의 삶에 매화의 상서로운 기운이 깃들기를 바라본다. ■ 김윤희
Vol.20130206i | 매화 梅花, 피어 천하가 봄이로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