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 Scale

MoiM, Project #1展   2013_0206 ▶ 2013_0227 / 월요일 휴관

공원정_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낯섦_아크릴큐브, 종이, 디지털 프린트_20×20×20cm_2012

초대일시 / 2013_0206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 공원정_서정혜_신혜선_제이킴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점갤러리 인천시 동구 창영동 15-7번지 Tel. 070.8227.0857

검은색과 흰색이라는 다소 강력해 보이는 두 색에는 기실 완전한 검은 것과 완전한 흰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검은색과 흰색은 포괄적으로 회색 범주에 든다. 검은색과 흰색의 두 번째 아이러니는 두 색 모두가 채도가 제로라는 점에서 '색 없음'의 색, 무채색이라는 것이다. ● 따라서 이 두 색상은 무엇보다도 '없음'을 상징하고, 이러한 점에서 겨울이라는 계절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겨울은 봄의 생성과 여름의 만개(滿開), 가을의 절정을 넘어 세상만물의 종료를 알리는 계절이자 하얗게 내려앉은 눈과 찬 공기로 뒤덮인 대기의 밤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색들은 모든 자취를 감추게 되는, 부재를 암시하는 계절이다. ● 그러나 겨울은 바로 그 같은 의미에서 '가능성'의 계절이기도 하다. '있음'의 세계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포착하기 힘든 반면, '없음'의 세계는 아직 태동하지 않은 가능성이 담지되어 있으며, 그 가능성은 아주 미미한 것에서도 포착되고 때로는 '없음' 속에서 다양한 감수성이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겨울은 '없음' 가운데서 '있음'을 탐색하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이다. ● 겨울의 끝 무렵 개최되는 본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를 이용하는 네 명의 작가가 검은색과 흰색의 변주를 통해 '없음'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채도를 제외한, 광도의 점진적인 단계를 등급화한 'Gray Scale'이라는 용어를 전시 주제로 채택한 것은 두 색상의 변주에 대한 암시이자, '없음'의 가능성에 대해 각각의 작가들이 제시하는 관점의 통일성과 미묘한 온도차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공원정 ● 공원정은 기억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는다. 기억이란 지금, 이곳에 없는 대상에 대한 잔상에 관한 것이다. 그 잔상은 아주 작은 단서만으로도 촉발되고 그로 인해 지금 이 순간 다시 일깨워진다.「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낯섦」(2013)은 한 집에서 30년을 살았던 한 남자의 기억을 형상화한다. 아크릴박스 내에 파쇄 된 종이의 묶음은 마치 녹음테이프 같기도, 거대한 실뭉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지나간 일을 암시하는 글들을 파쇄 하여 아크릴 박스에 담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남지 않고 해체되고 재조직화되는 기억의 왜곡을 표상한다. 공원정은 이렇듯 기억이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해석'이지 사태 그 자체로 온전히 남겨지지 않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기억이란 가족에게마저도 공유될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 각인되며, 그 기억은 관객들에게 그들만의 향수를 불러내기에 충분하다.

서정혜_버려진 것 1_패브릭, 가죽_104×46cm_2012
서정혜_버려진 것 3_패브릭_60×46cm_2012

서정혜 ● 옷은 낡거나 훼손되지 않고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진다. 수많은 이들의 손길에 의해 목화솜이 실감이 되어 직조되고, 재단되어 봉제되는 아주 기나 긴 여정을 통해 옷이 탄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모든 과정을 일순 삭제시켜 버릴 만큼 빠르게 소비된다. 서정혜는 이렇듯 기능성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버려지는 옷들에 주목한다. 버려진 옷들은 그녀의 손길에 의해 다시 패브릭이 되고 버려진 각종 부자재와 재조합됨으로써 작품으로 승화된다(「버려진 것」시리즈, 2012)「버려진 것 1」은 마치 유명 디자이너의 아방가르드한 최근 신작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지만, 액자라는 프레임에 공간적으로 귀속되어 기존의 컨텍스트 - 옷으로서 기능했던 과거, 유용성을 상실한 옷 - 가 삭제된 채로 전시된다. 그로 인해 처음 작품을 볼 때 관객은 그것을 새로운 형식의 옷 혹은 작품으로 감상하지만, 그것의 재료가 버려진 옷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옷의 본래적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혜선_winter_사진, 혼합매체_34×51cm_2012
신혜선_winter_사진, 혼합매체_34×51cm_2012

신혜선 ● 신혜선은 우리 곁에 펼쳐진 흔한 겨울 풍경을 포착한「겨울풍경」시리즈(2012)를 통해 감추고 있었던 쓸쓸함과 공허의 심상을 드러낸다. 작가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간신히 매달린 나뭇잎과 따뜻한 곳을 향해 비행하는 새들의 무리에 의도적으로 동그란 빈 공간을 삽입시키는데, 이것은 작가에게 회환일수도, 추억일수도 있는 다양한 감정의 복합체이다. 빈 공간은 작품 속으로 침투하려는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차단시키는 역할을 하며, 시선의 차단은 색상을 반전시켜 사진의 공간성을 삭제함으로써 더 심화된다. 작가는 풍경을 보았을 당시의 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풍경을 낯설게 보도록 관객에게 요청함으로써 관객 자신만의 쓸쓸함과 공허의 감정을 일깨우기를 원한다. 결국 인간은 혼자인 존재이므로 이와 같은 감정은 오직 개별자로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임을 작가는 전달하고자 한다.

제이킴_Hidden door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12
제이킴_A.M. 2:5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cm_2012

제이킴 ● 제이킴은 '소통의 부재'에 주목한다. 우리는 소리기호, 몸짓기호, 이미지 등을 수단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발화자의 의미가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도, 상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도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은 의미 전달을 어렵게 만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더욱 힘들어지고 결국 소통의 어려움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소통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이는 제이 킴의 작품에서 모든 발화와 의미의 삭제를 상징하는 '밤'(「AM 2:50」, 2012)이나,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원하지만 그것의 어려움을 의미하는 '감춰진 문'(「Hidden Doors」, 2012)으로 표상된다. 이것은 작품의 강력한 마띠에르로 '부재'의 '만영(滿盈)'이라는 아이러니를 드러냄으로써 한층 더 강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을 뚫고 간신히 빛나고 있는 별이나, 감춰져있지만 언젠가는 열릴 가능성이 있는 '문'은 소통의 불가능성과 포기보다는 소통에의 갈망과 희망을 암시한다. ■ 유은순

Vol.20130206d | Gray Scale-MoiM, Project #1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