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3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선정작가 그룹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2013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작가 공모전을 열어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가 개최한 그룹전에서 개성 넘치는 작가 3인이 말하는 드로잉의 매력에 취해보자.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에서는 2월5일부터 갤러리 개관 1주년을 맞아 개최된 작가 공모전의 당선작 그룹전이 열린다. 스칼라티움은 이번 그룹전을 통해 작가 공모전 선정된 작가 3인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미술 전공이 다른 3분 작가가 드로잉 미디엄인 흑연, 잉크, 수묵채색, 아크릴 등의 재료와 방법을 이용하여 각자 삶에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드로잉으로 풀어내는 작가 3인의 개성과 상상력에 집중하며 함께 작품 산책을 떠나볼 것을 제안한다. ■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저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 감정의 흐름을 읽고 잊혀진 기억을 찾아갑니다. 일상 속에서 매 순간 다른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풀잎의 향기를 맡고 바람에 스치는 나무 소리에 귀 기울이며 풍경의 미미한 변화를 관찰합니다. 산책길에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나무 아래 앉아 떨어지는 솔방울을 주워오기도 합니다. 풍경과 작은 자연물에 감정을 투영하다 보면 잊혀진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간들을 드로잉북에 간단한 드로잉과 글로 기록해 두고 다시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립니다. ● 나무가 매년 새로운 잎을 피우고 낙엽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기억과 잊혀짐은 반복됩니다. 순간의 기억들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다시 사라지기도 합니다. 드로잉을 통한 기억의 기록은 제 곁의 소중한 존재들을 일깨워주는 과정입니다. 드로잉의 과정에서 작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만나게 되고 만남과 헤어짐, 생성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그림 속 공간은 스쳐가는 순간의 감동들이 담긴 곳입니다. 그리고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과 만나는 곳입니다. ■ 이혜진
낯설게 하기: 러시아 형식주의의 주요한 문학적 수법. 시클롭스키(Shklovsky, V.)가 주장한 것으로 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되어 참신하지 않은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을 이른다. ● 인간에게 익숙해진다는 감각과 느낌은 비단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금까지 생존하면서 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감각이다. 한번 경험했던 대상을 다시 한 번 마주쳤을 때 새로운 대상으로 파악하여서 본능에 따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바탕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을 보이는 중요한 행동행태의 근간에는 바로 이 익숙하다는 감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익숙함을 바탕으로 하여 대자연의 품속에서 무엇을 먹으면 살고 무엇을 먹으면 죽는지를 습득하고 수많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였고 자신이 평생 동안 체득한 경험을 지식이라는 형태로서 후대에 전수하면서 학문이라는 틀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인간에게 익숙함이란 감각은 비단 감성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성의 구성에 있어서도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반복을 통한 학습의 방법과 이러한 반복 속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란 느낌은 이성적인 사고의 토대로서 그 이후의 사고의 단계인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의 가장 밑바닥에서 기능을 하고 있다.
감성적인 측면에서 익숙함이 없다면 인간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의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에 있어서 익숙함이란 중요한 터닝 포인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랑의 시작은 낯설음과 새로움의 감정을 토대로 하여서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면서 익숙함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사랑의 절정은 낯설음과 새로움이 이제 익숙함과 융화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고 사랑의 종말은 익숙함으로만 채워진 감정이 이제 익숙함이 진부함과 실증으로 바뀌면서 사랑의 끝을 유발시키고 사랑의 후회는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익숙함을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종전의 익숙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낌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과정이다. 이렇듯 익숙함이란 인간의 가장 큰 감정의 발산인 사랑에서와 같이 아름다움을 느낄 때에도 익숙함은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에 대한 주체의 감정을 정립시키고 그 감정의 농도와 깊이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상에게 익숙함을 느끼지 못하는 주체는 신선함과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일종의 충격적인 감정을 느끼는 반면에 익숙함에서 파생될 수 있는 깊은 감정의 파고를 느끼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100년간 지속되는 인생과 인류가 이룩하여놓은 문명세계에 있어서 인간에게 더욱 더 중요한 감정과 느낌은 새로움 보다는 익숙함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중요한 익숙함이란 감정을 버리고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 이는 작품을 대상으로 삼았을 때 대상의 영원불멸함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익숙함이란 감정은 대상의 본질이 가지는 항상성을 기본전제로 하여서 존재할 수 있는 감정이다. 대상의 본질이 항상성과 동일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인간은 감정적인 익숙함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익숙함또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대상의 항상성은 익숙함의 존재를 담보하는 것이며 동시에 익숙함을 진부함과 실증으로 이끌어가는 양날의 검이기도 한 본질이다. 인간에게 미술작품이라는 대상은 음악과는 다르게 대상의 원본성(ORIGINALITY)이 영원불멸성을 가지는 유일한 대상으로서의 그 의미를 다른 예술의 종류들과 그 차원을 달리한다. 단 한 번의 퍼포먼스가 절대로 동일하게 재현될 수 없는 음악에 있어서는 영원불멸성이라는 개념이 미술작품에서의 의미와 그 궤를 달리하고 동일한 대상을 수없이 복제할 수 있는 사진작품에 있어서는 원본성(ORIGINALITY)이 경계를 가지지 못한 채 희석되어 버리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미술작품은 진정한 원본 성을 가진 영원불명성을 가지게 되는데 여기서 익숙함이라는 중요한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아름다움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방해요소로 등장할 수 있는 기능성이 높아져 간다. 이는 인간이 대상일 때는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영원불멸하지 못하고 고로 항상성이란 측면이 미술작품에 비하여 그 형성의 완벽함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성을 가지지 못한 채 언제나 변화하는 대상으로 남을 수 있고 항상성을 가지더라도 영원불멸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속에서 대상으로서 익숙함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익숙함은 언젠가 또는 곧 소멸하여 버린다. 따라서 인간이 주체로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느끼는 감정은 익숙함이란 장정이 진부하모가 실증을 넘어서서 또 다시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으로 부활하여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원불멸성을 가지는 대상이 가지는 익숙함이란 감정은 대상의 영원불멸성으로 인하여 다시 새로운 감정과 느낌의 대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하지 못한 채 그저 진부함과 실증의 단계에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대상이 작품으로서 익숙할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진부함과 지루함이라는 감정으로 변화하는 단계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서 새로운 감정과 느낌을 얻기 위하여 의도적인 행위를 대상에 부가하여야 한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익숙함이란 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서 비록 대상을 변하지 않지만 대상을 파악하는 주체의 감정과 인식을 변화시켜서 결과적으로 대상에게서 익숙함을 넘어선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행위가 바로 낯설게 하기이다. ■ 홍샛별
Identify 1.확인하다(알아보다) 2.찾다, 발견하다 3.알아보게(인정하게)하다 ● 떠남이 아니라, 찾아감이다. 가고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유쾌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법의 굴레와 넌더리나는 책임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다. 나는 내부로부터의 표현방식에 대한 재한적인 한계성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과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본인의 내부영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매체라는 음흉한 괴물은 일상을 먹어치우고 생각조차 침범한다. 차가운 실용성과 능률주의 앞에 빛나는 정신이 무릎꿇은지 이사회는 오래되었다. ● 한 인간으로써 세상의 모든일들을 경험하고 느끼는 일은 불가능하며, 경험을 얻는 정답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답에 가까운 해답은 있기 마련이다. 알면 알수록 자신이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조차 모르며, 의문점조차 갖지않는 자기자신을 깨달았다. 모르는 사실의 새로움에 대한 문화충격보다, 모르고 넘어갈 만큼 세상은 크고 넓다는 것이, 더 억울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나는 지금, 상처가 생길까봐 두려워하는 습관을 버리는 중이다. 겪어보지 않아도 알고있다는 착각과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착각도 버리는 중이다. 용기의 대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생을 살며 떠날 때, 최소한 보인은 노력했다고 가시적으로 완성될 때의 희열을 감상의 배설이 아닌, 간접적지식이 아닌 주관적일지라도, 혹은 감정적일지라도 종합적 경험의 확장의 집중을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좌표를 통해 재정립하는 행위를 하는 중이다. ■ 손무진
Vol.20130205d | 李家, 洪家, 孫家_산 책-이혜진_홍샛별_손무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