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118_금요일_06:00pm 2013_0119_토요일_02:00pm
한국예술종합학교 갤러리 175 공모 선정작가展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추억이 머무는 곳 ● 도시의 길을 걷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빼곡한 건물과 도로가 바쁘게 움직이는 곳을 걷습니다. 항상 가던 길이 오늘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모퉁이에 있는 가로수, 그 너머에 빨간색 벽돌집, 밤이면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이 번뜻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어제는 보이지 않고 지나쳤던 것들이 오늘은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이것은 그림자에 숨어 있는 기억의 조각이라 하겠습니다. 마치 집과 집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한쪽은 양지바르고 다른 한쪽은 그늘지는 것처럼, 기억의 조각은 '아코디언' 모양같이 접히고 펼쳐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작가 박정민은 그때마다 다른 느낌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면서 그의 시선은 외부의 그 무엇과 교감하고자 열려 있습니다.
처음에 시선은 뜻밖에 만남을 자처하고 외부의 대상을 오브제로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시선과 오브제는 서로 몇 가지의 감정을 꺼내놓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서로는 감정을 공유하면서, 외부와 내부가 교차하는 대상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때 시선이 보는 대상은 더불어 내러티브의 흔적이 됩니다. 이 흔적을 박정민은 바느질의 행위로 표현합니다. 바늘과 실로 감침질을 하듯이 한 땀 앞으로 갔다가 반 땀 뒤로 갑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하면 바느질의 흔적이 드로잉이 되고, 도시의 어느 골목길을 걸었던 장소는 작가의 감성으로 젖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시선은 종이처럼 평평한 것입니다. 조금 더 매끄럽거나 조금 더 거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기억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박정민은 다양한 종류의 종이와 천을 활용하여 찢고 가위질하여 이미지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하나의 덩어리라면 무게를 갖기 때문에 기억할 수 없습니다. 보도블록 하나에 시선이 머물게 되면, 소중한 기억이 기체처럼 피어 오르게 됩니다. 기억은 무게가 없는 이미지의 평면이며 다른 기억의 단면들이 투영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 부는 날 누워 있던 자리를 펴서 하늘을 향하여 털면 잠자고 있던 수많은 기억들이 깨어납니다. 이것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창문의 커튼을 활짝 여는 것처럼, 커튼에 작가의 시선과 바깥풍경이 투명하고 희미하게 세상을 담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커튼이 흔들리듯이 여러 가지의 내러티브가 마찰하면서 또 다른 도시의 풍경을 재현하게 됩니다. 이 풍경은 현실에서 보게 되는 도시의 딱딱하고 건조한 직선의 형태를 버리고 커튼이 흔들리는 대로 휘어지고 섞여 가장 인상 깊었던 얼굴로 콜라주 됩니다.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뒤로한 채, 바로 지금 경험하고 있는 대상과 공감하는 도시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콜라주 된 풍경은 무엇인가를 취하지 않고 '마음의 바구니'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담게 되는 것입니다.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비교해 본다면, 피카소가 사용했던 콜라주를 거론하게 됩니다. 그의 콜라주 작업은 캔버스 평면의 환영을 깨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모더니즘 미학의 근간이 되는 평면성과 이를 넘어선 물질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기이한 만남'을 발생시켜 소실점이 있는 환영의 장면이 아닌 평면적이면서도 공간이 깃들어 있는 풍경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민의 콜라주 된 풍경은 기억의 갈대를 겹쳐서 어떤 것은 원형으로, 또 어떤 것은 아코디언 책으로, 커튼의 형식으로 취하게 됩니다. 이제 콜라주를 가지고 감정의 이입을 새롭게 조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중요한 게 도시를 걷는 경험일 것인데, 이 경험은 끈적끈적한 액체와 같아서 이런 때는 이렇게 저런 때는 저렇게 감정과 사물을 유기적으로 달라붙게 합니다. 무엇이 진실이냐고 묻는 질문은 어리석습니다. 그보다는 순간에 진실하냐고 묻는 게 더 명쾌한 것 같습니다. 피카소가 별거 아닌 신문지에 관심을 갖은 것처럼, 작가는 일상의 구석 구석을 걸어 다니므로 추억이 머무는 곳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 김용민
Vol.20130128a | 박정민展 / PARKJUNGMIN / 朴程暋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