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11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GMA GALLERY GMA 서울 종로구 율곡로 1(사간동 126-3번지) 2층 Tel. +82.2.725.0040 artmuse.gwangju.go.kr
권력과 권위의 간극, 함께 삶의 어려움 ● 사람을 위한 예술, 혹은 투영으로서의 예술이 함축하는 가치, 그리고 그것의 지속성이 현재적 지형도 안에서 더 이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음은 공허하다. 미술의 문제의식과 참여의 제고, 그 근저에서 유영했던 김병택 작가의 '현재'가 낯설게 다가온 연유는, 아마도 이러한 공허함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체감하지 못했던 필자가 잡아낼 수 있는 교감의 여지란 작가의 기존 작업세계에 배어 있는 사람 냄새와 질박한 감성 정도였고, 미술의 풍자적 코드에서 메시지를 풀어내고자 하는 최근의 형식이 그만큼 위태롭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김병택 작가의 네 번째 작품전인 금번 전시는 풍자와 위트가 넘친다. 트럼프 카드의 도상에 현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대입, 은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일상성 혹은 사람의 가치를 그려냈던 초기작업과 박제화된 시대정신을 비롯, 여전히 산적하고 있는 사회적 모순 따위를 담아 온 그간의 흐름에서 바라본다면, '깊이에의 강박'을 걷어낸 듯 하다. 미술의 투쟁적 성향이 와해되었던 시기 즈음부터 도리어 현재적 관점에 천착했던 작가의 작업태도는 형식적인 부면에서 표류를 거듭해왔고, 이 과정에서 작가 자신이 고민한 풍자와 은유, 패러디 등의 표현어법이 간헐적으로 그 모양새를 다져왔다. 2009년도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던 작품 「삽질 공화국」에서 볼 수 있는 해학적 요소를 '하(下)로써 상(上)'을 꼬집는 풍자의 전형으로 간주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화법이 메시지에 직접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가 새삼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공감대 형성이라는 시각미술의 근본적 특성에 천착하기 위한 흐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보다 이해하기 쉽고, 감상자가 접근 가능한 형식으로 풀어내고자 했다"는 작가의 발언에서 이번 작품전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대중적 선호도가 높은 팝아트의 형식을 빌어 사회적 쟁점들을 부각시켰다는 점이 새삼 이채롭다. 얼핏 유쾌한 어조로 다가오는 화면 구성력은 상징적인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주제 전달에서 용이함을 꾀하지만, 현 시기의 인물군상을 모티브로 던져보는 작가의 사회의식이란 권력과 권위의 간극에서 뒤섞이는 대립국면, 다시 말해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위로부터의 강제력이 모순되는 형국에서의 '현재'를 다룬다.
서양의 플레잉 카드인 트럼프 안에는 유독 사회지도층과 정치계 인사들이 눈에 띤다. King, Queen, Jack, Joker 등, 그 유래의 시원부터 계층적일 수 밖에 없었던 이 게임을 화재(畵材)로 차용했다는 점은 적잖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불어 형형색색의 아크릴 컬러와 평면적인 배경화면 위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법 구체성을 띤다. 오일 페인팅에 의한 인물의 세밀한 인상 포착은 카드 안의 상징적 코드와 교묘하게 어우러지며 감상자에게 해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형의 검을 쥐는 형상으로 여왕을 꿈꾸는 인사는 역설적이게도 상인계층을 뜻하는 다이아몬드 패턴 위에 놓여있다. 조소 어린 표정으로 검을 내리치기 직전의 권력자, 그 주변으로는 스페이드가 아닌 붉은색의 삽이 당당히 자리하는가 하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중앙에 새긴 유명 기업인의 초상에는 거대자본의 역기능을 상징하듯 검의 형태가 부러진 모습이다. 더불어 동일한 인물을 화면의 상하에 컬러와 흑백으로 분리시킴으로써 사건의 내러티브가 지닌 양면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촛불(집회)의 염원,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담아낸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단상, 노동운동의 전신인 아들의 열망을 인간존엄의 가치로 승화시켰던 故이소선 여사의 초상은 성직자를 상징하는 하트 패턴으로 담담하게 자리한다. 또한 화폭 안에서 두드러지는 상하 인물상의 반복은 흑백과 채색이라는 표현방식으로 나름의 상징성과 의도적 접근의 양상을 띠는데, 패턴의 장식성을 지양하며 일련의 메시지를 담아내려 하는 작가의 계획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한 국제적 패권다툼과 세계정세, 화폐단위나 지폐 문양으로 부연설명을 가한 작품, 언론장악의 병패를 다루는 도상들과 더불어 미술 또한 그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음을 언급하기도 한다. 캠벨 스프 깡통을 움켜 쥔 앤디 워홀, 지폐 패턴 위로 유유히 얼굴을 내민 워홀의 마릴린 먼로 등, 작가는 현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내며 자신이 지속하고자 하는 화업의 의미와 현주소를 되새긴다.
문학, 미술, 영화 등 전 분야를 막론하고 시대적 상황이나 모순 등을 위트 있는 제스처로 풀어낸 '풍자'는 동시대인으로 하여금 현재적 부조리에 대해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화와 예술이 접근할 수 있는 '왜 표현하는가, 무엇을 표현하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보다 쉽게 다가서는 의미이자, 현실 속의 난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만이 제대로 된 형식을 구사할 수 있기에 이 또한 어려운 작업이다. 일상의 범주 안에서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김병택 작가의 세밀한 감각이 이내 소통의 문제로 치환되며 금번의 작업에 이르렀는데, 이는 함축이냐 직설이냐의 전달 방법의 차이일 뿐, 실상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 "작업에 임해오면서 이 행위는 분명코 낭만적인 유희나 호사스런 향락이 아니라는 걸 항상 인식하지만, 돌이켜보면 나태한 모습으로 예술을 향유하려 했던 순간 순간의 그릇된 가치를 깊이 반성해본다. 그 혼돈 속에서도 섣부른 경솔함과 위선을 탓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기 위해 헤매는 건 모두에게나 힘든 일이겠지만, 그렇게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의 자기성찰은 내가 나를 지키고자 하는 기본적 욕구만큼이나 절실한 그림 그리기의 본능이라 말하고 싶다"는 95년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의 작업일지. 이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자 그만의 염원일 것이다. 더불어 그간 형식 면에서의 무수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붓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작가의 노력까지 되돌려 체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삶이나 작업의 사연에 앞서 작품 자체로 먼저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적어도 미술에서는 감상과 이해의 순서일 것이다. 작가가 지속해 온 주제의식은 당연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그가 천명하는 미술의 비판의식과 '소통'의 쟁점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나아가 작가가 금번 전시에서 그려내는 권력의 허상과 난점, 권력은 의미 그대로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힘을 올곧게 구사할 때, 그 힘을 따르는 다수의 진정 어린 피드백 또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어우러짐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김병택 작가가 제기하는 거침 없는 현실풍자와 해학이 '함께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 고영재
Vol.20130116g | 김병택展 / KIMBYOUNGTAEK / 金秉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