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112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제 1전시실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목격자(目擊者) ● '재의 계곡 (a valley of ashes)' 이라고 불려 지며 언제나 먼지 바람이 부는 황량한 황무지, 그 잿빛의 땅 위를 닥터 티 제이 에클버그(Doctor T. J. Eckleburg)의 두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문장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 안에 등장하는 장소에 대한 설명이다. 뉴욕시의 어느 안과의사가 설치한 후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고,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지금은 색깔이 바래져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눈동자가 그려진 간판, 그 거대한 눈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조용하게 바라보고 있다. ●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의 시선, 우리는 스스로 그 시선이 되기도 하고, 그 시선 앞에 놓여지게도 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시선들, 그 수많은 시선들에 인위적으로 더해진 눈동자의 이미지, 이미지의 시선. 작가 최경운은 또 하나의 시선을 작품 안에 들여놓음으로써 우리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더하고 있다.
그 앞에 서있는 우리는 이 화면의 시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혹은 그 화면이, 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들을 또 어떻게 바라보게 될 것인가를 상상해보는 것은, 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시각' 앞에서 느껴보는 묘한 경험이기도 하다. 작가는 외부의 모습을 향해, 자신의 내면의 시선이 바라보는 것을 화면으로 그려낸다. 최경운의 작품들의 경우에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이 바로 그 시선 자체가 되어버린 듯하고, 작가로 하여금 우리는 작가 자신에게서처럼, 선택의 여지없이 그 시선 앞에 놓이어지는 상황에 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캔버스 위에 더해진 이 얇은 물감의 층을 하나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지라는 것을 재생산 해내는 것과 그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인칭이 없는 이 사물에 더해진 지각의 가능성, 인간과 사물 사이에 놓여진 끊임없는 감각하기의 연장(延長)들 속에서 몸과 신체가 지니는 감각을 넘어선 지각과 사유의 세계를 밝혀내던 철학들이 말해온 지각의 세계, 그것이 바라보게 만드는 지각의 세계들 속에는 분명, 이 인칭 없는 시선들 너머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몸과 감각들이 어루만져야 할 무엇인가가 이 화면 속에 존재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 서로의 앞을 지나는 수많은 타인들, 그 모든 시선들, 그 앞에 드러나는 고상함과 우아함, 대상 없는 비판과 판단들, 우리의 체험된 몸이 바라보는 체온 없는 시선들과 그 앞에 드러나는 불안과 긴장감. 우리의 시선이 목격하는 타인의 삶의 장면들. 그렇게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있어 '재의 계곡'을 넘나드는 이방인들이다. 그리고 저 멀리에 커다란 시선이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최경운 작가는 오랜 시간 중국에서 작업을 하면서 지내왔다. 닮은 얼굴의 이방인, 비슷한 말들을 만들어 내는 이방인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어쩌면 낯선 모국의 시선들. 작가에게 있어 타국에서의 생활과 귀국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지금의 작업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아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그 안의 인물들과의 소통과 위로를 바란다고 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외롭고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저 인물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아니라, 나를 떠난 나의 시선의 돌아오지 않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자신을 하나의 이방인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서 멀어져 나와,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힘겨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조차 낯설지 않은 나와 나의 공존 속에서, 한번쯤 자신의 삶을 조금 더 먼 곳으로 두어보아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 나의 시선에서 내가 떠나고 있다. 그리고 어느 언덕을 넘어 내가 사라진다. 어느 거리를 지나, 그곳의 바람을 지나, 언젠가 그가 멀리에서 다시 가까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우리는 먼 길에서 돌아온 그를 아우르며 어루만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가 그들 바라보았을 때, 그는 비로소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길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 김종렬
중국에서 7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평소 중국에서 늘 하던 대로 슬리퍼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 집 근처 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 엄마가 물었다. "그렇게 입고 어디 갈려고?" "동네 산에 가는데." 동네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정복할 것 같은 차림새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꼈고, 엄마조차 나를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작은 사건으로부터 나의 의문은 시작되었다. ● '사람들은 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걸까?'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왜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거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시선이 불필요한 관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타인의 시선이 불러오는 초조한 마음과 불안감... 그리고 그로인한 외로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고, 나 또한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 깨닫는 과정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 지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이것은 어느새 남에게 보여지는 삶을 암묵적으로 강요당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이러한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시선'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했고, 이를 통해 나의 생각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 정면으로 응시하되 비뚤어지고 왜곡된 눈동자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타인의 시선을 느끼게 하고 싶었으며, '그런 시선들 속에서 우리들은 정작 소외되고 외롭지 않는가?' 라는 질문도 던져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의 작품의 주제는 실제로 내 자신이 그러하듯이, 현대사회에서 흡수, 융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나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외롭고, 아프다. 현대사회의 거대한 틀 속에서 외롭게 부유하고 있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나의 작품 속 인물들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과 함께 '당신도 외롭고 힘들구나.' 라는 짧은 위로의 건네고 싶고, 또 듣고 싶다. ■ 최경운
Vol.20130112a | 최경운展 / CHOIKYUNGWOON / 崔輕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