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3_0104_금요일_04:00pm
전형근 / 시간을 뒹구는 돌展 Chen LiZhu / 可思可游 Where One Can Wander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정림리 131-1번지) Tel. +82.33.480.2655 www.parksookeun.or.kr
돌의 얼굴은 삶의 시간을 빼곡하게 채우며 다듬은 인고의 얼굴이다. 돌을 보면 생각에 잠긴다. 그 생각은 밖의 풍경과 연관될 때가 있고 무관할 때도 있다. 그 생각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풍경에 의해 시작된다. 돌 위에 풍경과 그 풍경을 내다보는 나의 생각이 겹쳐진다. 돌의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풍경과 어우러진다. 돌과 사람이 만나는 중간지점이 생긴다. 그것은 비단 공간뿐아니라 시간도 넘나든다. 현재와 미래와 과거가 한 줄로 엮인다. 유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있다.돌은 그 거대함을 깨고 다시 돌로 간다. 돌은 그 단단함으로 뒹굴면서 자신을 버리면서 다시 시간 위를 구른다. ■ 전형근
"추상미술은 1911년부터 백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발전되어 왔다. 추상미술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매우 새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추상미술은 당신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방식이며, 그저 인상주의나 사실주의처럼 미술의 또 다른 흐름일 뿐이다." "추상미술은 산문보다는 시에 가깝다. 시는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철학의 이웃이다. 시와 철학을 좋아하는 내게 있어 추상미술은 시와 철학의 조합이다." "나의 작품은 색채에 기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색은 나의 언어이자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들은 펼쳐진 책처럼 시리즈 작품들 속에서 열린(open) 상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방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읽도록 만든다." ■ Chen LiZhu
박수근미술관에서 레지던시프로그램을 운영한지 7년째다. 생전에 작업실 한 칸 없었던 박수근 화백은 창신동집 마루를 아뜰리에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박수근미술관은 바로 그러한 박수근 화백의 작가적 삶의 한을 기리고자 열악하지만 역량있는 후배작가들의 창작공간과 활동을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던 12명의 작가들은 박수근미술관 입주 경력을 밑거름으로 국내외 현대미술계에서 나름대로의 활동역량을 드높이고 있다. ● 최근 국내외적으로 급격히 증가되고 있는 레지던시프로그램의 양상을 보면 다양한 컨텐츠와 안정화된 운영전략마케팅을 갖춘 곳이 많다. 충분한 예산과 국제교류경험이 많은 전담인력이 상주하는 기관에서 국제교류프로그램 활성화로 활기를 띄는 것을 볼 때면 참 많이 부럽기도 했었다. 교통편이 조금 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리적으로 소외된 지역 양구. 열악한 군 재정과 창작스튜디오 운영 전담인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박수근미술관의 도약을 핑계 삼아 감히 국제교류프로그램을 시도하기로 했다. ● 해외작가의 선정과 입주, 그 후의 생활과 소통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최소화시키고자 타 레지던시프로그램 운영기관과 국제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술계 인사들의 자문을 수렴했다. 무엇보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삶을 추구했던 박수근을 이해하고 지리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있지만 청정한 자연을 벗 삼아 박수근 마을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미가 깃든 해외작가'를 선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 그리하여 중국 상하이 출신의 서양화가 천리주가 선정되었다. 복잡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작고 아담한 체구의 천리주가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지 6개월. 철저하게 계획적인 창작활동과 건강하고 알찬 일상생활 속에서 천리주가 보여주었던 인간미는 그를 선택한 사람들과 그와 함께 지냈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현대미술의 흐름에 있어 중요한 맥을 짚어 작업하는 역량있는 작가로서의 천리주를 인정함과 동시에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고자 애쓴' 박수근 화백의 소박한 예술철학을 잇는 작가를 만난 기쁨으로 천리주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순간들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박수근마을 주민들의 대다수가 고령의 자작농가인데다 유통활로가 충분치 않아 궁여지책으로 박수근마을살리기프로젝트 '수근수근'마을장터를 여름내내 미술관에서 열었었다. 뙤약볕에서도 오히려 마을어르신들이 지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모습에서 그의 내공이 느껴졌다. 마을 주민들의 담장에 박수근 화백의 드로잉으로 벽화를 그릴때에는 예리한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해외유학과 연수경험이 풍부하여 영어회화가 능숙한 그는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면서까지 미술관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직원들이 지금은 어느정도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회화실력을 갖추어가고 있다. 특히 입주 이튿날부터 거의 빠짐없이 박수근화백과 김복순 여사의 산소에 인사를 하러 오르내리고 심지어는 박수근에 대한 경의를 시로 짓기도 한 천리주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와 나누었던 수많은 교감과 따뜻한 정들이 새록새록 아로새겨진다. ●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첫 번째 국제교류는 다행히 천리주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작가로부터 이렇게 시작되었다. 역량있는.. 그러나 열악한 생활을 견디고 작가로서의 운명과 열망을 이루어내고자 노력하는 작가들의 풍부한 밑거름이 되고자 아직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박수근미술관으로서는 제법 큰 수확을 올린 한해였다고 자부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박수근의 예술철학과 문화유산을 지키고 세계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박수근미술관의 도약의 순간을 함께해 준 천리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엄선미
'고요 속의 공간(Space in Silence)' 시리즈는 리주가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받은 영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그려왔던 커다란 창밖으로 이어지는 지평선, 그러나 기차 복도 가운데에 서서 바라본 그 지평선은 더 이상 수평의 선이 아니었다. 원근법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 단단한 사각형은 비스듬한 두 변을 가진 사다리꼴이 되었다. ● 말레비치Malevich와 몬드리안Mondrian을 사랑한 작가는 그 유명한 「검은 사각형Black Square」(1915)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견고한 추상을 어떻게든 넘어서고 싶었다. 2년 동안 고민한 끝에 사각형의 모서리 두 군데를 조금 잘라냈다. 작은 두 개의 사각형이 떨어져나가자 두 개의 까만 사각형이 겹쳐져 나타났다. 그렇게 잘라낸 사각형을 둘, 셋으로 그렸다.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도덕경(道德經)의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 네덜란드 유학시절 리주는 나고 자라온 지역의 문화가 작가의 예술적 자양분이 됨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것을 찾느라 스스로의 문화적 뿌리에 관해서는 소홀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학업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와 고전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중국미술사는 물론, 중국의 철학과 사상, 문학 작품들을 찾아 공부했다. ● 그 가운데서도 주역(周易)과 도덕경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고전은 언제나 '색(color)'을 좋아하고 알고 싶어했던 그에게 색의 기원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유(有)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無)에서 생겨남을 알려주었다. 리주는 주역에 나타나는 팔괘(八卦)를 그림에 담아내고 전통적인 오방색(五方色)을 작품에 도입하면서 세계의 기원과 그 존재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또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되어 있었다.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 작가는 이로부터 모든 존재가 상대적인 것임을,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한 것임에 착안하여 고요 속의 공간을 구축해나갔다. 그는 주역의 팔괘가 이어진 선(─, 陽)과 끊어진 선(--, 陰)의 배열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듯 사다리꼴을 이용한다. 두 개의 사다리꼴은 나란히 혹은 엇갈려 놓이거나, 겹쳐지기도 하며 여러 가지 조합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낸다. ● 평면적인 리주의 작품들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내용은 오히려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북송대(北宋代) 곽희(郭熙)의 삼원법(三遠法)에 닿아있다. 곽희는 산수화를 그릴 때 이용하는 일종의 투시법을 이론화했다.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굽어서 넘겨다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을 논했는데, 이들 세 시점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건축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빌려오는 '차경(借景)'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점이다. 인간과 산수가 만나는 과정 속에서의 움직임인 것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된 서양의 원근법은 바라보는 위치를 고정시켰으며, 보는 주체인 인간과 보여지는 대상을 이분화 시켰다. 반면, 곽희의 삼원법에서 인간은 자연을 거니는 체험을 통해 대자연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분리된 평면적 화면이 아니라 들어가 거닐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리주의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들어가 생각하고 유영하는 하나의 세계다. ● 2012년작 「Mountain Paint Mountain」, 「Painting In Painting」. 작품의 제목처럼 산이 산을 그리고 그림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 작품을 통해 작품과 현실, 그 너머의 것, 그리고 그들의 경계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림인가? 세계인가? 그림 속 그림인가? 그림 속 세계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어떤 것인가? ■ 김윤영
Vol.20130104a |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7기 입주작가-전형근_Chen LiZhu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