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

민호선展 / MINHOSEON / 閔好仙 / painting   2012_1226 ▶ 2012_1231

민호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명주 실_91×116.5cm_2012

초대일시 / 2012_12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insaartcenter.co.kr

시간의 베일(veil), 그 무한의 끝을 찾아서무한성은 무한한 열림이지, 끝이 없음이 아니다. (Maurice Merleau-Ponty, Le visible et l'invisible, Paris: Gallimard, 1964, p.221.) ● 베일이 흩날린다.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디에서 끝나는지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다. 베일 밖의 풍경을 보려하지만 어떤 형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몽환적인 베일의 움직임만 느껴진다. 베일을 걷어내기 위해 다가간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걷어낼 수 없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중첩된 셀 수 없는 실들이 만들어낸 잡을 수 없는 허상일 뿐이다. 볼 수 있는 실재(實在)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보이지 않음을 만들어 내는 베일의 공간은 우리가 가장 근원적인 보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민호선이 실로 만들어낸 회화는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모두 아우르는 중요한 통로로서 존재한다. ● 결국 보이는 것의 고유함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떤 부재로서 현존하게 만든다. (Maurice Merleau-Ponty, L'oeil et l'esprit, Paris: Gallimard, 1964, p. 85.) ●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말대로, 볼 수 없는 것은 단순히 볼 수 있는 것의 반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가능성의 현현(顯現)이자 보다 큰 구조의 지평이다. 이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베일, 내가 침잠해 있는 바로 이 곳이 세계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 민호선은 실(thread)-선(line)-을 통해 말없는 사유를 이끌어낸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비밀스럽게 통찰한 것을 캔버스에 선으로 옮겨 놓는다. 그 통찰은 흘러가는 시공간, 세계, 세계 속의 자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무한한 변화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세상, 우리의 삶, 우리의 내면, 이 모두는 민호선의 실처럼 끝없이 흐르고 흐른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선들은 세계와 세계 안의 모든 존재와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초월적인 관념을 은유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경험과 기억들을 일깨워준다. 침묵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민호선의 실 회화는 사실적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일을 그만두고 정신적이고 상상적인 형상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작가의 공간은 무한한 세계-정신-관람자를 매개하는 통로로서 존재한다. ● 민호선에게 선은 보여지는 형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남기는 흔적이며 모든 존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생(生)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마치 캔버스에 실이 쌓이는 것처럼 흔적을 쌓아간다. 작가는 인간이 무한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점(dot)과도 같다고 말한다. 점인 우리는 바람을 타듯 시간을 타고, 물을 휘젓듯이 공간을 저으며 한 줄의 실로 은유되는 흔적을 남긴다. 이에 작가는 우리의 몸에 실이 달려 있어 우리 삶의 동선(動線)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떠할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선은 결코 끊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결론짓는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의 몸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이동하여 순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에게 선은 그것의 표면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에너지, 존재를 둘러싼 세계와의 합일을 재현하는 수단이 된다. ● 우리의 삶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흐름들은 온전히 계획되거나 한정될 수 없기에 민호선은 작업을 진행할 때 계획성과 비계획성을 혼용한다. 캔버스에 선을 붙이기 시작할 때 작가는 첫 실을 즉흥적으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첫 실을 바탕으로 다음 실의 위치를 결정하고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는 선을 통해 의도적으로 형태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손이 이끌어내는 감각적인 능동성과 수동성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선 자체의 흐름을 따라다닌다. 또한 구체적으로 표현할수록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 가장 단순한 형상을 상상하며 선을 만든다. 선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작가는 작업 전후에 백묘법(白描法)을 이용해 그림 그리기와 글씨 쓰기를 반복하는데, 먹의 농담(濃淡)이나 힘의 조절과 지속에 의해 다양한 선의 표현이 가능한 서예는 자연스러운 선의 흐름을 탐구하기에 적합하다. 붓의 흐름에 몰두하는 동안 작가는 무언가를 재현하려는 작가적 욕망을 내려놓게 되었고 자신이 매순간 느끼고 파악하는 것을 순수하게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민호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명주 실_116.5×91cm_2012

바느질이 아닌 접착제를 이용해 실을 붙이는 방법 역시 물 흐르듯이 작업하기를 원하는 작가적 의지의 발현이다. 작가의 자유로운 손놀림에서 무수한 존재들이 생(生)을 얻고 그 흔적을 남긴다. 실이 쌓여갈수록 캔버스에 시간이 쌓여간다. 모든 흐름은 이처럼 한순간들, 하나의 존재들이 쌓여서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혼돈적인 즉흥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인과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세상은 인위적으로 만들고 조작할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것은 인과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이전에 있었던 일들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우리의 삶이 끊어짐 없는 선이라 말하는 작가의 태도에는 이미 모든 존재의 흔적은 과거와 연결되고 미래와 연결되며 끝없이 순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호선의 작업 역시 앞선 실을 바탕으로 그 위에 다른 실을 올리는 것이기에 세상 속 존재들의 인과 관계를 은유하는 훌륭한 상징물이 된다. ● 선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흔적들은 조형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이끌어낸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에 따르면 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다. 이것은 점이 움직여 나간 흔적, 다시 말해 점이 만들어낸 소산이다. 선은 점의 움직임에서 생겨난다. 여기에서 정적인 것이 역동적인 것으로 비약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자유로운 선들의 움직임은 화면 밖으로 확장되고 무한성을 지니게 된다. 이 무한한 에너지는 붉은색 선으로 가득 찬 작품들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민호선의 작품 대부분은 무채색이다. 말없는 사유를 진행하는 작가는 무채색이 가장 정적이고 고요한 색이라 말한다. 그러나 작업을 지속하다가 에너지가 응축된 순간이 오면 작가는 붉은색 선으로 그것을 분출시킨다. 붉은색은 생명의 색이기에 더욱 강한 생명력을 함축하는 역동하는 흔적들을 남긴다. 우리의 세계는 민호선의 작업처럼 고요함과 역동함이 공존한다. 반대되는 존재들이 함께 여러 층(layer)을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세계의 모습이고 역사이다. ● 사실 민호선에게 선-실-은 작업의 가장 본질적인 재료이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 그도 미술의 장르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업이 어떤 장르로든 무한히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섬유예술을 전공한 작가 개인에게 실과 그것의 가장 기본 형태인 선, 그리고 그것의 직조로 만들어진 천-캔버스-는 자신의 삶을 나타내주는 흔적으로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미 오래 전 작가에게 실은 내면화되었고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되었다. 실은 언제나 자신의 형상과 물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본질적이다. 연필선, 필선(筆線)은 서로 겹쳐지면 뭉개지기도 하고 형태가 불분명해진다. 또한 먼저 그은 선과 뒤이어 그은 선 사이의 선후 관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은 쌓이는 순서대로 흔적이 보존되며 형태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언제나 시간의 흐름과 과정을 진실 되게 드러낸다. 작가는 수많은 실 중에 특히 견사(silk thread)를 즐겨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견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사용된 실이며, 끊어짐 없이 꼬임이 생기는 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흔적과 흐름을 중요시하는 작가에게는 당연한 선택이다. 이로써 작가-세계-작품-관람자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흐름들이 선 안에서 일치를 이루게 된다. ● 민호선은 오늘도 선을 꿈꾼다. 흔적-실-이 쌓여간다. 작가의 선 쌓기가 언제쯤 멈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우리는 작가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선 쌓기는 작가만의 행위가 아니다. 우리 역시 작가가 그렇듯 세계라는 캔버스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무한한 시공간과 유한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이 경이로운 세계는 하나하나의 존재들과 하루하루의 순간들-선-이 서로 교차하며 직조해내는 무한한 베일, 바로 그것이다. ■ 이문정

Vol.20121226f | 민호선展 / MINHOSEON / 閔好仙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