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애니메이션

Burning Animation展   2012_1222 ▶ 2013_01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홍수_이주형_홍가람_고현종_정영준 이건희_편혜지_강주형_강민희

주최 / 실험 애니메이션 그룹 '멈추면 죽는다'

멈추면 죽는다 Move or Die Tel. +82.41.850.0390 mod.or.kr www.facebook.com/moveordie2012

울며 불며 떼를 쓰는 아이를 순식간에 착하고 조용한 아이로 만든다는 엄청난 힘을 가진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 이 캐릭터가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뽀통령'이라는 단어로 대변될 만큼 대단하다. 어린이들에게 있어 뽀로로는 TV화면에서만 존재하는 단순한 만화 이미지가 아니라 유치원이나 놀이터에서 만나 함께 어울리는 살아 숨쉬는 친구다. 이는 애니메이션이 실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보여주는 쉽고도 명확한 예라 하겠다. ● 필름과 디지털의 등장으로 인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과 모사된 이미지 사이의 경계는 오래 전에 무너졌고, 그와 더불어 형이상학에서 끝없이 논쟁되었던 '실재'라는 것의 개념 자체도 변화되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그저 움직이는 그림으로 여겨지던 기존의 통념을 깨고 80년대 이후에는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서 그 학문적 위상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무생물, 혹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애니메이션의 효과는 실재와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를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었고, 이미지는 가상의 세계를 현실화하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 애니메이션은 주로 형상을 과감하게 추상화하고 왜곡하여 나타낸 이미지들로, 완벽한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적절히 생략되고 연출된 구성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현대미술 속의 애니메이션들은 더이상 재현이나 스토리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완성되지 않은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보는 이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애니메이션이 현대미술의 의미작용에 기여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다른 시각장르와 구별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 중의 하나는 그것이 프레임 단위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실사 영화에서는 운동하는 실제 대상이 있고, 그 운동이 촬영된 각각의 프레임으로 나뉘었다가 중첩을 통해 다시 움직인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개별적인 프레임 하나하나에 새겨넣은 가공의 대상이 상영되면서 인위적인 움직임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잘 이용해 인간의 여러 현실적 상황들을 추상적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에니메이터 노만 멕라렌(Norman McLaren)은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는 각 프레임에서 보이는 것보다 프레임 사이의 틈에서 일어나는 작업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지의 파편 뿐만이 아닌 프레임 사이의 틈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멈춰진 애니메이션을 재생시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멈추면 죽는다 2012 ● '멈추면 죽는다'는 국립공주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순수애니메이션 그룹의 이름이다. 프레임 각각에 새겨진 부동의 이미지가 최종 단계에서 하나로 이어지면서 움직임을 부여받고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그래서 멈춰졌을 때에는 그 생명력을 잃어 버리게 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잘 담아낸 기막힌 작명이다. 여기에는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작업들 틈에서 탐구와 노력이 잠시라도 멈추면 도태되고 마는 예술인의 현실과 불안도 중의적으로 담겨져 있는 듯 보인다. ● 이미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두 번의 전시를 선보인 이 그룹이 이번에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한 사이버(Cyber) 디스플레이 전시를 기획했다. 기존의 매체에 비해 인터넷 상에서는 수용자의 판단과 접속자의 주관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시는 쌍방향성 시각체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는 실재와 이미지의 경계를 무너뜨린 애니메이션의 미학적 특성과 사유방식을 가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실존하는 인터넷이라는 환경에 다시 한 번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여덟 명의 작가가 담아내는 내러티브와 담론은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itter)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알려지고 사이버 공간 위에서 자유롭게 펼쳐질 것이다.

강민희_Come Together2_2D 애니메이션_00:02:23_2012

수 백, 수 천 년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 압축, 혼재되어 있으면 어떨까? 강민희의「come together」는 이같은 상상을 구체화시킨 결과물이다. 우리가 활보하고 있는 거리가 과거에는 동물과 식물이 함께 어울려 있었던 장소임을 전제로 하는 작품 속에는, 거리를 걸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에 동물과 식물의 이미지가 혼성적으로 겹쳐져 있다. 작가는 현재의 시공간에 쌓여진 과거의 흔적과 개념을 해체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공간 자체를 비우는 대신 그 안에 담겨진 인간과 동식물의 이미지를 선택하여 결합시키는 독특한 비주얼 콜라주를 선택하였다.

강주형_불타는 애니메이션_2D 애니메이션_00:01:53_2011

애니메이션은 종종 영화 속에 삽입되어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직접 뒤섞기도 한다. 강주형의「불타는 애니메이션」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 드로잉은 삽입된 흑백 화면 위에서 실제 불의 이미지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연출한다. 이렇게 그려진 불은 양복을 입은 채 신나게 춤을 추는 인물 위에서 타올랐다 사그러들기도 하고, 폭력적인 영화 내용과 섞이기도 하면서 미묘한 이중성을 띈다. 드로잉의 빠른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리듬과 선택된 영화 장면에서 삭제된 음성 때문인지 전체 애니메이션은 무성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듯 하다.

김홍수_Factory 007_단채널 영상_00:01:00_2012

김홍수는 그가 겪거나 보았던 기억들의 불특정 순간들을 반복적 움직임으로 기록함과 동시에 그 순간을 지속시키는 작업을 한다. '죽음'이나 '생명이 없는' 것으로 대표되는 고깃덩어리나 차가운 장비들은, 그것을 만지거나 조작하고 있는 인물들의 기계적인 움직임과 대비되어 왠지 모르는 섬뜩함이나 기괴함을 준다.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전체 화면의 부드러운 색이나 느리고 꾸준히 되풀이되는 움직임 역시 신경을 자극하며 관람객을 불편하게 한다.

이건희_정원_2D 애니메이션_00:02:34_2012

이건희의「정원」속 미세한 점들이나 조밀한 드로잉은 컴퓨터가 아닌 종이 위에 표현된 그림처럼 느껴지는데, 이 느낌은 손으로 잡은 붓이 지나가는 것처럼 제목이 써지는 작품의 첫 화면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검은색 배경 위의 회화적인 색채 뿐 아니라, 서툴게 깜박거리는 화면과 매끄럽지 않은 캐릭터의 움직임에 담긴 아날로그적인 장치 역시 마치 오래된 그림책을 넘겨 보는 듯한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이주형_Wonzaboy 2_2D 애니메이션_00:01:24_2011

이주형의「wonzaboy」는 이번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사운드가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간결한 선으로된 인물들이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신나는 율동을 되풀이하는데, 이 유쾌한 동작과 상반되는 잔인한 장면이 사이 사이 간결하게 삽입되어 있다. 게다가 화면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지고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끄는 wonzaboy캐릭터는 끊어질 것처럼 보이는 장면에서 다시 반복과 움직임을 이어놓는다.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유아적인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엔딩이 올라갈 무렵 허무하고 오싹한 기분까지 든다.

정영준_바람부는 날_2D 애니메이션_00:30:00_2012

정영준의「정원」시리즈와「바람부는날」은 고정된 회화의 프레임을 확장하는 작업이다.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마치 부동의 회화 속 드로잉이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작가는 서로 연관이 없는 것들을 화면 위에 조화롭게 섞어 놓았으며, 새롭게 생성된 공간은 낯설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특히 그의 작업은 회화성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잔잔한 화면 위의 움직임은 마치 수묵 담채화 한 폭이 고요한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서정적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홍가람_팡팡_2D 애니메이션_00:03:31_2011

홍가람의 작품들 역시 회화적 프레임을 확장시키는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그의「못잊어」시리즈에서 병렬된 풍경은 화면 속 세계를 새롭게 생성하고 혼란스러운 조화를 상징한다. 작품에 담긴 시공간의 퍼즐, 약간은 오래된 가게와 간판이 주는 퇴색된 느낌은 인물들의 느릿느릿하고 단조로운 모습과 섞여 현대인의 소외된 삶과 우울함을 드러낸다.

고현종_검은 물 외_종이에 색연필, 연필_21×13cm×2_2012

고현종의 작품은 카오스적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를 오가고 있다. 비정형적인 드로잉들과 끄적거림은 낙서미술 등에서 보이는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킨다. 정지된 이미지지만 강한 에너지와 운동성을 담고 있으며 애니메이션화 되었을 때의 움직임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편혜지_편혜지 1 & 2_디지털 프린트_116.7×91cm×2_2012

편혜지의 캐릭터 디자인 역시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예기치 않은 형태에서 온 것이다. 연필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만들어냈다는 캐릭터 디자인은 평상시 작가가 가지고 있는 세심한 시선과 엉뚱한 상상력이 결합된 집합체라 할 수 있다. ● 때로는 서사적이며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무의식적인 반복이나 즉흥적인 형태에서 오는 괴이함을 전달하기도 하는 각각의 작품들은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람자들의 뇌 속에서 각각 재구성되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완성시키게 될 것이다. 이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낸 '멈추면 죽게'되는 가공된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프레임과 프레임의 틈 사이에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경계를 넘어 우리의 세계에 들어와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작품이 펼쳐지는 전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우리는 편한 걸음걸이를 위한 신발도, 장소 이동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앉은 자리에서 마우스를 클릭할 손가락 하나만 슬쩍 움직이면 된다. ■ 박영아

Vol.20121222d | 불타는 애니메이션 Burning Animation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