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121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월요일 휴관
뫼비우스-띠갤러리 인천시 동구 창영동 15-2번지 제2동 107호 Tel. +82.10.3320.6482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Who am I』다. 직역하면 '나는 누구인가'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Who am I'는 사실 흔히들 말하는 콩글리쉬로서, 실제 미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시 타이틀을 선택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 것을 설명하기 위해 숭산스님과 현각스님의 이야기를 언급하고자 한다. ● 현각스님이 가르침을 얻고자 숭산스님을 찾아갔다. 숭산스님은 현각스님에게 이렇게 외쳤다. "Who are you?" 이 질문에 현각스님은, 자신의 이름은 폴이고 하버드대학을 졸업하였으며 현재는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학생이라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숭산스님은 벌컥 화를 내었다. "그것이 진정한 너냐. 이름과 대학출신, 그것 만으로 그게 '진정한 나'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냐!" 이 같은 숭산스님의 꾸지람을 들은 그 순간, 현각스님은 단박에 깨우침을 얻었다. ● 이 일화는 진정한 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라고 하면, 자신의 이름 석자와 간단한 이력에 대해서 설명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 것이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는 것 인가. 불교철학에 의하면 자신의 이름, 출신성분, 심지어 자신의 몸뚱이 마저도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요소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것은 비단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의 세포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 역시 과거와 현재가 같지 않다. 물의 흐름 속에서 어제 보았던 물이 오늘 보는 물과 다르듯이, 우리 또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가 각각 다른 것이다. 이를 집약하면 무아(無我)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자아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 결국 'Who am I'란 단순히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라고 해석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은 비록 콩글리쉬지만 숭산스님의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이다)'와 더불어 미국인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나'로 선정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에 대한 모색과 여정이라는 의미로 'Who am I'라는 문구를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정하였다. ● 전시장은 직사각형의 형태로, 정확하게는 약간의 마름모꼴을 취하고 있다. 전시장에 도달하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두 개의 자화상일 것이다. 왼쪽의 작품이 「자화상」, 오른쪽의 작품이 「환영성(幻影性)을 담은 자화상」이다. 이 두 자화상은 서로간에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립적인 형식과 구도를 취하고 있다. 우선 기법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왼쪽의 「자화상」은 캔버스 위에 유화를 이용하여 그린 작품이고, 오른쪽의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은 왼쪽의 그림과 같은 크기로 디지털 프린트를 한 것이다. 이 둘이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이유는, 오른쪽의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이 왼쪽의 「자화상」을 직접 사진으로 찍고 약간의 수정을 한 뒤 디지털 프린트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 두 작품은 두 개의 큰 대립구도를 암시하고 있는데, 이 것은 바로 회화와 사진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왼쪽의 「자화상」이 회화의 측면을 나타내고, 오른쪽의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이 사진의 측면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이 보편화되어 더 이상 새로운 매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낭만주의와 인상주의때 부터 거론되었던 회화와 사진의 대결을 굳이 들먹이는 이유는, 회화와 사진의 대결이 결과적으로 회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곧 자화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며, 나에 대한 탐구로서 자화상을 많이 그리는 나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르네상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금 현재 내가 그린 자화상은 '나'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당시는 똑같이 재현(representation)하는 방식만이 진리로 여겨졌던 시기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브레이트 뒤러 같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이 시기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똑같이 그려내야지만 그 가치가 인정받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나의 기괴한 파란 얼굴의 남자는 그 당시의 가치관으로서는 자화상이라고 볼 수도 없고,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는 괴물의 형상일 뿐이다. ● 그렇지만 사진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모사해내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을 가진다. 이미 기계는 인간의 손을 뛰어 넘어 인간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대상을 포착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카메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카메라의 발명은 오히려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버렸고, 인간의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다. 인간은 비로소 똑같이 모사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 결국 예술, 특히 그림은 카메라가 발명되고 나서야 비로소 종교와 과학의 철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혼을 담고 있는 육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어제 그린 나의 초상화는 오늘로서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것은 '어제의 나'일 뿐이다. 이 것은 카메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자신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시각화하여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이게 만든 것이다. 카메라는 이처럼 회화의 영역을 더 확장시키는데 공헌하였다. ● 하지만 난 여전히 카메라의 발전이 두렵다. 그 이유는 카메라의 발전이 과거보다 더 빠르게 그림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카메라는 회화의 영역을 깊게 파고들어왔다. 발터 벤야민은 카메라와 같은 기술적 복제 매체의 발달을 환영했다.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의 발달로 인해 회화는 끊임없이 복제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회화만이 지니고 있던 아우라가 파괴되어, 미술의 사회적 가치가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던 바가 있다. 그 예언은 실제가 되었으며, 벤야민은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미지가 가진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힘인 아우라가 파괴됨으로써, 예술은 제의적(祭儀的)인 가치에서 전시적(展示的)인 가치로 그 사회적인 가치가 변화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1차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그림이라는 영역 속에 깊이 침투하여 그림이 사회적인 가치를 변혁시킨 것이다. ● 여기서 나는 사진의 2차적인 침투를 논하고 싶다. 본래 사진이 아무리 발달되고 회화를 찍어내어 복제한다고 해도, 사진이 그림을 뛰어넘을 수 없는 점이 딱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마띠에르'다. 마띠에르란 불어이고 영어로 표현하면 material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마띠에르 기법이란 회화 속에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기법을 뜻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진이 발달해도 사진은 평면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고흐의 그림을 잘 찍어서 복제를 한다 해도 고흐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마띠에르까지 실재하도록 복제할 수는 없다. 이것이 사진의 가장 큰 한계이자 그림이 사진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회화만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회화가 사진을 상대로 내세울 수 있는 권위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 벤야민은 회화가 아우라를 상실한 것에 대해서 대중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아우라의 상실로 인해 회화는 미술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미술관 안에 걸려서 귀족이나 부르주아만이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대중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감상의 민주화 시대가 온 것이다. ● 그렇지만 회화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나는 어떻게든 회화와 사진의 영역을 구분 짓고 싶었다. 회화는 회화만의 영역이 있는 것이고, 사진은 사진만의 영역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 둘은 밀접한 상관 관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영역이 더 우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은 등장함과 동시에 회화만의 영역을 침투하였다. 이 것이 바로 모방과 재현의 영역에 대한 침투다. 이를 나는 1차적 침투라 규정하였다. 이 1차적 침투에 대한 상처를 회화는 재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감으로써 극복해 내었다. 회화는 표현주의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상태를 가시화하는데 이르렀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에 이르러서 사진은 2차적 침투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 2차적 침투란 3D기법이다. 오늘날 극장가를 찾아가면 대부분의 영화들이 3D기법으로 상영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3D 영상이나 영화, 혹은 사진 등을 보면서 마치 대상이 눈 앞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이는 곧 회화의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3D기법이 발달된다는 것은 앞서 말했던 마띠에르 기법을 가상으로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마띠에르는 아니지만 사진은 3D기법을 통해 실제 고흐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시 나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조금 먼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나의 작품은 결국 이러한 회화와 사진의 대결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화상」은 마띠에르를 강조했으며,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은 적청 방식의 고전적인 3D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매체 사이에서 회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 나는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촉각성 내지는 설치로 풀어보고자 하였다.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대상이 눈 앞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허상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가 실제 반가사유상을 보는 것은 사진으로 반가사유상을 보는 것과 확실히 다르다. 평면회화의 문제에서 입체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순수예술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침투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그러한 이유로 전시장 내부에는 평면회화뿐만 아니라 설치작품을 함께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전시장의 전체적인 풍경은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전시장의 오른쪽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제사상 위에는 두 개의 초가 놓여져 있다. 그 앞에는 술잔도 놓여져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유교국가의 제사 방식이며, 정확히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전통 풍습이다. ● 제사상 위로는 향이 피워져 있으며 그 벽은 많은 드로잉으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드로잉들은 도상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드로잉을 기점으로 오른쪽을 보면 7개의 마네킹이 줄을 서 있고, 왼쪽은 3개의 평면 회화가 걸려 있으며, 드로잉의 반대편에는 10개의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들의 공간 구성과 작품의 갯수는 모두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은 미술의 본래 가치인 제의적 가치의 부활을 상징한다. 이는 예술의 가치가 제의적 가치에서 전시적 가치로 옮겨간다는 벤야민의 주장과 사뭇 다른 의견이다. ● 본래 인간은 신의 형상을 그리려고 애써왔고, 예술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일컬어 졌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신의 영역이었으며, 인간은 신을 위해 예술을 바쳐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제의적 가치다. 하지만 곧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관심은 신에서 인간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 때 돈 많은 상인들과 후원자들은 자신들 또한 신의 위치에 도달하고 싶어했다. 그러한 인간의 욕구는 곧 수 많은 초상화로 배출되게 되었다. 긍정적인 나르시즘이 작용한 것이다. ●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이것은 도입부에서 말했던 진정한 자아를 알고 싶은 욕구와 상통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고, 그러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오늘날의 셀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화가는 이를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나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표현함으로써, 나 자신을 알리고, 내게 영적인 힘을 부여하고 싶었다. ● 내게 영적인 힘, 즉 아우라를 부여하기 위해서 나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내 자신의 모습이 아우라를 지니기 위해서는 미술의 가치를 다시 본래의 가치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제의적 가치, 미술의 본래 가치를 나의 작품에 부여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힘을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다. 내 자화상 들이 모두 정 중앙에 위치되어 정면을 보고 있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주목 받고 싶은 나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이 캔버스라는 2차원의 세계에서 신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신이 말하면 빛이 생겼듯이, 나는 손을 이용해 빛을 그려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 이를 위해 나는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을 이용했다. 민간신앙과 그 안의 수 많은 예술들은 우리의 기복 신앙과 그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우리 민족의 근간이 되는 요소였다. 하지만 일제 시대 이후 대부분의 민간 신앙과 그 안의 예술들은 맥이 끊어지게 되었다. 나는 아직 예술에서 민족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꺼낼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는 않다. 또한 제의적 가치를 따른다고 해서 사회 문화적인 예술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제의적 가치를 부활시킴으로써, 회화가 다시 아우라를 지니고, 관객들이 나의 작품에서 사진으로는 볼 수 없었던 신비한 힘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다. ● 여기까지는 관객들이 나의 작품을 통해 궁금해할 법한 내용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전시장 안의 작품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는데, 제사상 앞의 수 많은 드로잉들과 마네킹 설치 작품, 그리고 판넬에 그려진 기괴한 모습의 자화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위에서 나는, 왜 회화와 사진의 영역을 구분지으려 했는지, 그리고 왜 마네킹과 같은 설치 작품을 전시장내에 들여왔는지, 끝으로 왜 제사상을 재현하여 제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지금부터는 설명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내 작품의 도상학적인 의미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우선 나의 작품은 제의적 가치를 끌어들이기 위해 민간신앙을 이용하였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구성과 배치, 그리고 작품 수 역시 민간신앙에서 내려오는 상징적 요소들을 많이 이용하였다. 우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시장의 입구에 놓여져 있었던 「자화상」과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을 살펴보자. 나는 작품 안에 동양의 철학인 음양(陰陽)의 원리를 집어 넣어 배치했다. 음양사상은 천지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동양의 이론이다. 이 이론은 자세히 들어가면 매우 어려운 학문이지만 실제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월,화,수,목,금'과 같은 요일은 음양오행설의 일부분이며,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과 같이 체질을 나누는 데도 음양의 원리가 적용되며, 특히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는 이러한 음양사상을 집약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나는 「자화상」을 양(陰)의 영역,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을 음(陽)의 영역으로 판단하였다. 다시 말하면 회화를 양의 영역, 사진을 음의 영역에 넣은 것이다. 사진은 그림자와 같다. 나의 작품은 자화상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 대상이 나 자신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으므로 「자화상」이라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된 대상으로 볼 수 있다. 즉 나의 「자화상」은 '나'라는 실존 인물을 캔버스에 옮겨낸 것이 아니고 그 자체만으로도 나와는 별개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재현의 방식으로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자화상을 나와 똑같이 그려내었다면, 이 자화상은 그 자체만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나의 모습과 똑같이 그려낸 자화상은 홀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고, '나'라는 실존을 그려낸 허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항상 허상이다. 사진은 항상 실재하는 영역을 찍어낸다. 따라서 사진의 피사체는 실존하고 있으며, 그 실존하는 피사체를 찍은 사진기에서 나온 사진은 실존을 담아낸 허상이라는 것이다. 실존하는 것은 양의 세계이며, 허상은 음의 세계다. 그림자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림자는 항상 그 그림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림자가 드리운 장소를 음지라 하고, 태양이 빛추는 공간을 양지라고 한다. 따라서 실제 양의 빛을 받는 것은 실존하는 대상이고, 그 실존하는 대상으로 생긴 그림자는 어두운 음의 세계다. ● 나의 「자화상」은 나의 내면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나의 내면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자화상은 그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밖으로 추출해 내었다. 이 「자화상」은 그 자체로 실존하는 양의 영역이다. 반대로 「환영성을 담은 자화상」은 그 양의 영역을 카메라라는 매체로 찍어낸 음의 영역이다. 나는 이와 같이 회화와 사진의 세계를 음양원리를 이용하여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였다. ● 「자화상」과 「환영성을 담아낸 자화상」은 음양원리에 따라 「자화상」을 왼쪽에, 「환영성을 담아낸 자화상」을 오른쪽에 배치하였다. 본래 오른쪽이 양의 영역이고, 왼쪽이 음의 영역이지만, 여기서는 방위신앙을 참고하여 「자화상」을 서쪽에 「환영성을 담아낸 자화상」을 동쪽에 배치한 것이다. 본래 서쪽은 양의 공간, 동쪽은 음의 공간으로 일컬어 진다. 이 방위신앙은 전시장 안에서도 적용되는데, 우리는 본래 북쪽을 향하여 제사를 지냈다. 그 원리에 따라 북쪽을 향해 제사상을 설치한 것이다. ● 방위신앙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인 색채에 대한 신앙도 함께 접목하고자 했다. 전시장 안에 있는 10개의 드로잉과 7개의 마네킹은 모두 특정한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 때의 10이라는 숫자는 오방 정색과 간색을 의미한다. 또한 7이라는 숫자 역시 오방 정색에 두 가지 색을 추가하여 나타내었다. 우리나라의 오방색은 방위신앙과 깊은 연관성이 있으며, 이것 역시 음양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방색은 크게 황색, 적색, 청색, 백색, 흑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는 오방정색이라고 하며, 이 오방정색에 다른 색이 섞여 나타나는 색들이 오방간색이다. 오방정색과 오방간색은 또다시 섞여 잡색을 만들어내어 여기서 무수한 색이 나온다. 아무튼 이 오방색은 방위신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중앙은 황색,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을 나타낸다. 중앙이 황색인 이유는 중국의 중앙에 황하강이 흐르기 때문이며, 동쪽이 청색인 이유는 동쪽에 큰 동해바다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서쪽이 백색인 이유는 서방정토를 향하여 시베리아와 같은 눈 덮힌 땅이 드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고, 남쪽이 적색인 이유는 남쪽에 뜨거운 지방이 있었기 때문이며, 북쪽이 흑색인 이유는 북쪽을 미지의 땅, 암흑의 땅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음양사상에 따라 황색, 적색, 백색을 양의 색으로 보았고, 청색, 흑색을 음의 색으로 보았다. 다시 글의 논지로 돌아가기 위해 이에 대한 이유는 생략하고자 한다. 아무튼 나의 작품들은 이러한 오방색의 원리에 따라 제작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설명하였다. 조금 긴 설명이었지만, 나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어 글의 앞에 두서 없이 늘어놓았다. 이제 다시 이야기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글을 마칠까 한다. 위의 글을 모두 이해하였다면 앞으로 설명할 나에 대한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글의 맨 처음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경력 등을 쉽게 말하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라고 하면 모두 말문이 막힌다. 이런 점에 있어서 예술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소개하는 매체로서 말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100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떠드는 것보다 단 하나의 자화상을 보여주었을 때, 그 사람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상화가 긍정적인 나르시즘의 표현이라면, 자화상은 부정적인 나르시즘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나의 자화상 역시 정상적인 내면을 나타내고 있진 않다. 나의 자화상은 때로는 분노하며, 때로는 침착하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다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겉으로 잘못 표출되어 정신병으로 취급 받는 것이 바로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이다. 하지만 정신병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면에 또 다른 자아를 지니고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혈액형학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형은 소심하나 때로는 대범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A형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며 맞장구를 치겠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소심한 면모와 대범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의 내면에도 수 많은 자아가 존재하며, 또 그 자아들은 모두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 같은 이치로 음양사상에서는 남자를 양, 여자를 음으로 보지만, 사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양과 음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시장 안의 10개의 드로잉과 7개의 마네킹이 모두 나의 「자화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방색으로 이루어진 드로잉은 양의 성질을 띄는 작품도 있고 음의 성질을 띄는 작품도 있다. 또한 7개의 마네킹은 남성과 여성이 혼재되어 있다. 모두 나와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이 모든 작품이 나의 자화상이다. 나의 내면 안에는 양의 윤종인도 존재하고, 음의 윤종인도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내면 안에서는 수 많은 자아들이 충돌하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기도 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결국 나는 그러한 자아의 이중성과 다중성, 그리고 고정불변된 진리가 존재하지 않듯이, 고정불변된 자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 작품 안에는 인물과 함께 등장하는 소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나의 자아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해낸다. 내 안에 존재하는 수 많은 자아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일화가 숨겨져 있다. 우선 나는 집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이 두 고양이는 한 마리는 암컷, 또 한 마리는 수컷인데, 검은 색과 하얀 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둘이서 또아리를 틀면 하나의 태극 무늬가 완성 된다. 나에게 있어서 두 마리의 고양이는 조화로움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고양이들이 항상 얌전히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따라서 기분이 좋으면 그 감정을 즐길 줄 알며, 기분이 나쁘면 그 상황에 맞추어 화내는 방법도 알고 있다. ● 이러한 고양이들의 감정 표현 능력은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내 안에는 수 많은 자아가 실존하고 있지만, 나는 제 때에 맟추어 그 자아를 끄집어 내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화'라는 감정에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데로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지만, 나는 '화'라는 감정이 밖으로 나올 새면 그것을 꼭꼭 숨겨버렸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내 자신이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나 자신 조차도 지금이 화를 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소심한 나의 성격은 '착한 성격'으로 포장되어 타인에게 비추어 진다. 나의 자아는 본능과 도덕적 신념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결국 타인들의 시선을 두려워한 나머지 감정을 저 깊은 곳으로 숨기고 만다. ● 나와는 달리 감정 표현에 솔직한 고양이를 보고 내 안의 진정한 나는 분명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왜 나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할까라고 회의하며 한탄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자아는 결심했다. 더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소심함을 보이는 내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서 신이 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자아로 거듭나길 바란 것이다. ● 'Who am I?',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되물었지만 이 질문에 결국 답은 없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답변이 존재하여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난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변을 안 채로 이 전시를 진행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전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나에 대해 알아 가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나를 알리고, 또한 관객들도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 내가 이 전시를 통해 알아낸 것이라고는 내가 회화와 사진의 두 기로에서 회화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 그리고 내 안에 수 많은 자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 정확하게 '나'라는 결과물로서 답변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진정한 자아'로 끝나지 않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혹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과 같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전시다. ● 결국 이 전시는 나의 개인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무아'를 주장할 만큼 아직 나의 마음이 비어있지는 않다. 나는 나의 작품을 통해, 그리고 이 전시를 통해 주목 받고 싶다. 제의적 가치와 아우라의 부활을 꿈꾸고 있지만, 결국은 앤디 워홀이 가발을 쓰고 썬글라스를 쓴 채 주목 받고 싶어했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윤종인
Vol.20121215c | 윤종인展 / YOONJONGIN / 尹鍾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