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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203_월요일_06:00pm
주최 / LIG 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LIG 아트홀 부산 LIG ARTHALL BUSAN 부산시 동구 범일동 830-30번지 LIG 손해보험 부산빌딩 3층 Tel. +82.51.661.8701 www.ligarthall.com
『2×4 24개의 각재와 여행가방』은 LIG 아트홀│부산, 로비G에서 약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전시의 제목이며 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5인의 작가에게 주어지는 재료이다. 이 재료는 5인의 작가에게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첫 작가에게만 주어지고 전시가 끝난 후 다시 해체되어 다음 작가에게 전달된다. 이 전시의 프로듀서와 5인의 작가는 회의를 거쳐 재료의 변형범위에 대하여 크게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 한 작가는 한 각재당 60cm 길이만큼 단 한번 자를 수 있다. 각재에 채색은 가능하다. 한 각재당 5개의 못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나 재료를 되돌려 줄 때 제거해야 한다. 각재에 다른 재료의 부착은 가능하지만 재료를 되돌려 줄 때 부착물은 제거해야 한다. 1×3의 비율 상태까지 각재의 두께 변형이 가능하다. 가방의 색, 형태를 변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 붙이는 것은 가능하고 전달자에게 되돌려 줄 때 원상태로 복구하여 되돌려 주어야 한다. ● 이 약속들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어떤 형상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것의 해체에 대한 것이었다. 웃음들이 회의 중 간간이 터져 나왔다. 허구적인 세계의 규칙을 부질없이 만들고 묵묵히 따르는 행위. 이미 작가들은 놀이의 세계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5인의 작가들은 규칙에 대한 농을 던졌다. 규칙을 이용하여 다른 작가를 곤란하게 하는 해코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문득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 낼 어떤 형상이 머리를 스쳤고 마치 뱀처럼 스멀스멀 담론의 꼬리가 형상의 뒷면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놀이를 놀이로 끝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다. 아주 작정하고 한번 놀아보겠다는 인간의 태도에는 비극적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놀이는 언제든 비극적인 것이 되고 그 비극적인 것은 언제든 희극이 될 무한한 통로로 열려있다. 2×4인치 24개의 각재. 여행가방. 어떤 언어와 재료들이 지금 무한한 가능성 앞에 놓여있다. 또한 사용-전달-사용-전달이라는 반복적 구조에 놓여있다. 무한. 반복. 해가 뜨고 달이 진다. 생과 사가 있고 폭풍이 몰아치는가 하면 노곤한 나무 그늘이 있다. 생성과 소멸은 반복되고 회전된다. 은근히 무한이 암시된다. 반복의 구조에서 생성된 것이 영원을 꿈꾸거나 완전한 소멸을 염원한다. 그저 한 예술작품이란 고정되어 더 이상 변화 불가능함의 상태를 지향하며 무한의 가능성의 통로로 구조화 되려는 것인지 모른다. 아차! 하면 변화하는 어떤 것. 아차! 하면 영원하거나 완전히 소멸하는 어떤 것. 전시에 참여하는 5인의 작가들, 그들은 반복되는 사건과 시간을 따라, 어떤 이야기의 유실된 경로를 따라 LIG 아트홀│부산 로비G란 곳에 함께 혹은 각자 도달할 것이다. 그곳은 또 다른 통로로 이어지는 무대다.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처럼 그들은 극적 상황 앞에 놓인 배우이며 세상을 설계하는 작가다. 그들 역시 영원이나 완전한 소멸을 꿈꾸며 어떤 형상을 내보일지 모른다. 그 형상들 사이로 시간이 흐르고 풍문이 생겨나고 어떤 염원이 동글동글 따뜻한 콩자반처럼 데워질지 모른다. 모든 게 쓸모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쓸모 없는 것에 대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을 뿐인지 모른다.
11월 24일. 2*4 24개의 각재와 여행가방 展의 네 번째 작가 한상혁의 『전망 좋은 진열대』전이 끝나고 해체된 재료는 11월 24일 다섯 번째 작가 정승운에게 전달되었다. ● 공제선(空際線) _ 다도해(多島海) 최근 스페이스몸미술관에서 '비례와 질서'라는 제목으로 정승운과 채우승의 2인전이 이루어졌다. 이 전시의 정승운 작품에 대한 평이 이렇다. ● "'집', '꿈', '숲', '공제선' 등의 주제에서 볼 수 있는 그의 근본 정서는 서정성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채용하는 작품의 형식은 그 서정성을 단단히 틀어쥐고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고 그 형식은 간단하고 자명한 수학적 원리에 의해 명분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스며들어 있는 서정성은 관객에게 새어 나온다. 좀 시간을 두고 그의 작품을 느릿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수학적 질서가 부여되어 엄격해 보이는 외양 속의 흥미로운 지점들, 이를테면 그가 '표현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 쉽게 해석의 곁을 허락하지 않는, 비정서적 외양을 가진 정서의 지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집이든 꿈이든 고향 산의 능선이든 그것들을 기호로 사용하면서 수적 질서를 부여하여 구조화할 때 그는 수미일관 개념적인 자세를 견지하지만, 그 정제된 형태의 안에는 기억과 관련된 서정의 세계가 존재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가진 딱딱한 껍질이 균열을 보이거나 철저한 균형감이 한 쪽으로 쏠리는 틈이 언제일지 매우 궁금하다."(이윤희) ● 피보나치 수열. 1, 2, 3, 5, 8, 13…, n항과 (n+1)항의 비율은 1 : 1.618, 우리가 말하는 황금분할, 많은 사람들이 정승운의 작업방식에서 수학적 알고리즘을 언급한다. 분명 그는 위의 평대로 "수적 질서를 부여하여 구조화"하는 작업 태도를 여러 전시를 통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잠시 딴청 부리며 생각해 보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떤 작품을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아니 어떤 작품을 소멸시켜버리는 기계를 만드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혹 그의 작품의 서정성은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거나 소멸시키는 공작기계를 만드는데 골몰하는 태도자체에 이미 묻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가령. ● 먼산을 바라보면 3만큼의 봉우리가 있다. 그 옆에 3*1.618 만큼의 봉우리가 있다. 또 그 옆에. 산세가 좋아 보인다. 봄날, 지천에 화들짝 피어버리는 꽃들, 그 꽃잎들에도 피보나치 수열은 있다. 2장, 3장, 5장, 8장… 봄은 시들지 않을 듯, 산세는 계속 이어질 듯 기세 좋고 호기롭지만 잘 알다시피 화무십일홍에 백두대간도 끝자락은 결국 평야에 납작 엎드린다.
우리는 어떤 것에서 무한의 원리를 본다. 무한의 단면을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은 말 그대로 어떤 형태로든 쾌감이다. 그러나 무한의 단면은 제법 크긴 하지만 결국 유한한 어떤 것이 소멸해가는 과정의 단면이나 똑같다. 생을 돌진해 가는 어떤 청년의 생명은 죽음의 단면이듯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이 양면의 단면으로 존재하고 드러난다. 여기서 다시 정승운의 「공제선」으로 돌아가면, 그가 고향 강진의 산을 둘러보며 「공제선」 작업의 단초를 생각해냈다는 것은 대략 그의 언급을 통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풍경 혹은 진경을 그리는 솜씨를 드러내 보겠다는 야심은 조금도 없다. 실, 그가 유심히 바라보는 것은 하늘과 지형이 맞닿아 있는 말 그대로 스카이라인이다. 그의 취향대로 곰곰이 보니 수적 원리가 그 선에 나타난다. 그러니 각재를 사용하여 수학적 계산에 따라 구조화 된 조형물은 말 그대로 공제선의 하나다. ● 정승운은 무한에 홀린 듯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구조물을 작품으로 내밀지만 그것은 유한한 어떤 것(물성)의 소멸의 단면이라 느끼는 감수성이 맞물려 있다. 그가 풍경에 대한 얘기처럼 「공제선」을 얘기하지만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산과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늘이 만나는 접점, 그 선에 주목하는 것, 그가 요번 전시의 부제도 『공제선_다도해』라 짓고 목포, 벌교, 고흥, 남해, 통영, 거제를 거쳐 풍경을 스케치하여 진경으로 이번 전시를 하겠다며 유쾌한 너스레를 부리는 것은 어쩌면 조각가로서 필연적으로 느꼈을 생성과 소멸의 역설적 경계를 몸으로 밟아 보겠다는 심산의 위장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진경, 진짜 경계 같은 것을. ■ 가비스튜디오
Vol.20121209d | 정승운展 / CHUNGSEUNGUN / 鄭勝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