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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206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7:00pm / 토요일_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표갤러리 사우스 PYO GALLERY SOUTH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B112호 Tel. +82.2.511.5295 www.pyogallery.com
1 윤상윤 작가의 작업을 특징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수증기로 가득한 공간을 채운 수면의 파문이나 인물들, 비현실적 공간에 놓여있는 책상과 그것이 물에 비치는 일그러진 사물들의 기묘한 분위기이다. 실상 현대미술가의 작업은 하나가 아닌 두세 가지 방향으로 분열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윤상윤 또한 그렇다. ●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그 가운데에는 한 사람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다. 그런데 책상 위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도서관을 방문한 이들처럼 조용히 앉아있다. 또 어떤 이는 무릎 꿇고 앉아 있기도 하고 마치 종교모임을 갖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동물들이 올라있기도 하다. 초현실적 풍경이 펼쳐진다. 이 모든 풍경은 습지나 호수에서 벌어진다.
작가가 표현하는 이미지의 인상적인 부분은 수면의 파문과 물의 흐름, 표정이 마치 수면에 비쳐 액체화 된 듯 부드럽게 뭉개져 있는 이미지들이다. 처음 그의 이미지를 보면서 마치 60년대 히피 세대의 정신세계를 재현한 듯 몽환적 풍경을 연상하였다. ● 파문과 함께 물위에 흐느적거리는 그림자를 흘리는 책상 위에 사람이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다. 작가는 학창시절을 모티브로 했다고 말한다. 한국의 평균적인 교실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은 개인의 주체나 개별성이 아닌 기계적이거나 수량적인 단위로 불할 관리된다. 교칙을 위반한 또는 학교 교육의 권위에 부적합한 학생 한 명의 행위는 그 학생의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전체 학생의 집합적 위반으로 환원되어 함께 뭉뚱그려진 채 체벌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일그러진 관습은 내 안의 제도가 되어 몇 십 년이 흐른 후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버린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현실은 지금의 현실이 아닌 과거와 융합된 현실인 것이다. 윤상윤의 세계는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현실과 제도의 벽을 체험한 이들의 교실이다. 무언가에 취한 듯한 교실은 변함없이 힘과 제도로 작동한다. ● 제도와 권위는 시간이 흐르면 초현실적으로 변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부여잡고 있는 제도나 권위, 가치는 사실은 시간 속에서 역사화 되고 그것은 곧 환상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시간과 현실의 감각은 환상과 환영을 다루는 작가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 몸에 전해져오는 본능이 자기영역을 지켜야한다고 말 하는 것 같았다.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영역표식은 결국 권력과 직결한다. 그룹이 만들어낸 작은 영역의 집합체가 사회이고 사회의 집합체가 국가이며 그 권력(영역)에 종속, 또는 흡수 되려면 자신(정체성)을 감추고 그룹의 정체성에 맞춰야한다." (작업노트 중) ● 정체성이란 과거와 현재의 긴장과 충돌, 유기적 운동을 포함한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사람의 시선에서 본, 각박한 한국의 제도현실을 우주적 명상의 풍경으로 재현한 윤상윤의 이미지는 자기 정체성은 우리 안에 있지만 동시에 밖에도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킨다. 그래서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것은 마치 이미지의 세례를 거침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고 다른 세계로 입문하는 비의적 제의를 통해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와 개인, 제도와 규율이 자연과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의 현실을 만든다. 그 과정에 개인의 기억은 개인의 사건이 아닌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미지들로 만들어진 흐름, 이미지의 운동은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표면을 가로지르며 유영한다. 오래전 작가가 경험한 것은 본능적으로 이해되고 거부된다. 마치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이 그 치유과정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표현한 듯 보이던 이미지는 종래는 영혼과 마음의 결핍 또는 상처의 떠올림(기억)이고 그것은 정체성의 위기의 징후에 대한 작가의 처방과 치유를 은유한다.
2 "내 작업에서 나오는 물이란 에고의 상징이다. 그룹은 집단 에고에 사로잡혀있으며 물속은 잠재적 욕망인 이드이다. 책상위에서 바라보는 이는 슈퍼에고로 다른 이들의 영역에 자리 잡은 초월적 자아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업노트 중) ● 윤상윤의 작업에 등장하는 각각의 형상들은 물의 이미지 속에서 유영한다. 이 물의 이미지는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lard)가 말하듯 우리의 꿈 또는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물질적이다. 작가의 마음에 감정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은 하나의 물질이며 윤상윤의 작업에서는 물의 물질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의 이미지는 무언가 생성되는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물은 정신분석의 중요한 원천이며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내면적인 명상의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전이시킨다. 물은 거울과 동의어이다. 물은 인간이 환영을 매개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자리를 제공한다. 자기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의 중요한 특징은 운동과 이미지의 지속인 것이다. 물은 영원히 운동하며 모든 사물과 이미지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겁회귀의 우주적 질서를 은유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의식을 대양(大洋)에 비유하며 개별자의 의식은 사실은 이 거대한 사념의 바다를 공유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내 의식에 솟아난 것은 비록 언제 어디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사람의 의식에도 숙명적으로 솟아오른다고 생각한다. 솟아오르는 형상들은 그러므로 개별적 주체의 것이 아닌 보편으로서 주체가 공유하는 것이 된다. ● 윤상윤의 물의 이미지는 형상이 충만해지는 생성의 자리이며 생성만이 존재를 소유한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의 인식과 공명하는데 비약하면 물의 이미지 속에서 형상들은 어떤 의미의 연쇄를 만들어낸다. 물의 이미지는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생성하는 것으로 작가가 영감 받은 이미지 또는 환상을 생성하는 계기이다. 모든 이질적인 시간과 존재가 유동하며 변모한다. 이러한 질적 변화, 생성의 모태가 물의 이미지이다. 기억들, 기억 속의 사실들은 환상이 되기도 하며 다른 가치와 만나 변화한다. ●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은 창작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한 수준으로 작용한다. 평면의 이미지는 사실과 환상의 사이를 경계로 무수한 차원의 세계로 변해버리니 말이다. 기댈만한 권위, 질서 의미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 "그래서 우리는 결국 영역 안에서 평생 빠져나올 수 없다. 영역 안에서 수정당하고 길들여져 자신의 본질을 잃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착각에서 사는 것이다(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작업노트 중)
"인간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된 후 인간은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는 아무것이나 다 믿게 되었다." 아이러니의 대가로 알려진 영국의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의 통찰이다. 이미지로 넘쳐나는 현대인의 마음에 대한 기묘한 말이다. 이미지가 더 이상 사실(fact)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세계에서 이미지와 사실의 관계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이미지들은 어떤 사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상과 환영을 다루는 현대미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 윤상윤의 작업은 환상과 환영이 주는 어떤 힘 또는 정체불명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작가가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느낀 위기이며 불안이다. 거기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심리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으로 순간 명멸하는 존재의 감각과 같다. 한편의 기이한 초현실의 세계에서 작가는 의식의 성장통과 사회현실을 연결하려고 한다. ■ 김노암
Vol.20121208h | 윤상윤展 / YOONSANGYOON / 尹相允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