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 - 사이렌의 노래

전수현展 / JEONSUHYUN / 田秀鉉 / video   2012_1207 ▶ 2012_1230

전수현_사이렌의 노래_영상 설치, HD_00:10:0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907h | 전수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207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문래예술공장 M30SEOUL ART SPACE MULLAE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8길 5-4 (문래동1가 30번지) Tel. +82.2.2676.4300 www.sfac.or.kr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나의 육체와 심장을 모두 불살라도, 세포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한다 해도 어떤 고통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언제나 너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절과 버림뿐이지만, 나는 오늘도 광인처럼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조바심치면서 너만 바라본다. ● 아마도 그것은 매혹적인 여신의 살결처럼 부드러울 것이다. 아니, 음지에 누워 고요한 평온을 만끽하며 수백 년을 살아온 듯 한껏 축축하여, 몸을 부비면서 건조한 나의 근원을 보상 받고자 하는 충동을 자아내도록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잃고",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 속에 빨려 들어가 소리 없는 존재론적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와 당신들 대부분은 그것으로부터 늘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으나 언젠가 그것과 사랑에 빠지는 유일한 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이렌 혹은 로렐라이처럼 우리를 진정한 위무와 위로의 세계로 이끌어줄 아름다운 중간자이기도 하고, 지리멸렬한 현실 속에서 분해와 재조합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블랙홀로 우리를 이끄는 웜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모종의 '정신분열'과 '광기'를 지니게 된다. 또 더욱 더 우리를 깊은 고독으로 내모는 것은, 우리의 광기는 체온을 한껏 내린 저온의 상태로 새로운 파시즘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그것'은 신자본주의의 비가시적인 권력이며, 우리의 광기는 많은 경우 '미시 파시즘'의 형태로 발현된다. 여기서의 미시 파시즘은 과거의 절대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아니, 지리멸렬한 일상 중에 불현듯 등장하는 가상의 작은 히어로와 미시적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자발적인 우러름에 더 가깝다. 자본 안에서 권력은 보다 더 첨예하고 독해졌지만, 그 외형은 한 없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여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유혹한다. 이때 집단 안에 나를 편입시키고, 소외된 자로부터 스스로를 배제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미시 파시즘의 낭만주의에 경도되었다. 또 영웅이 될 만한 거리를 제공하는 자를 신봉하고 그를 현재에 도래한 미래의 메시아의 자리에 과감히 앉히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계급구조와 집단성이 만연해진 세계에 살아가고 있으며, 이때 구분되는 열등한 집단 안에 내가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이 나를 구원하여 보다 찬란한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환상을 품으며, 허무하고 공허하게 살아가고 있다.

전수현_사이렌의 노래_영상 설치, HD_0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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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남성적 뉘앙스를 풍기는 권력을 블랙코미디의 화법으로 다뤄온 전수현이 이번에 꺼내든 것은 이처럼 기묘하게 변모한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며, 이전보다 더욱 교묘하게 세상을 조종하고, 우리를 환각과 망상의 상태로 이끄는 그것들의 혐의이다. 그의 작업들은 저체온증을 앓고 있는 그것들처럼 온도를 낮췄고, 그의 시선은 사건과 현상으로부터 더욱 물러나 관찰자의 시선이 되었으며, 더욱 건조해졌다. 물론 시청각적 자극의 수위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결코 결합할 수 없었던 미장센과 다큐멘터리가 조우하는 장면인 것도 같고, 그 교묘하게 한껏 미학적 기교를 바른 연출법은 신자본주의의 권력이 우리에게 행하는 지배의 방법론과 더불어 공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공명의 상태는 오래 전 스루나이에서 건너와 지금 여기에서 세차게 내지르는 태평소의 괴성과도 같다. 이질적이지만 그만큼 현실 또한 이질적이기에 더 없이 친숙한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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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수현이 경기장을 목격한 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의 시야에는 그들을 응원하고 독려하면서, 마치 그들의 승리가 나의 승리 또한 이끌어 주리라는 소소한 믿음을 지닌 관중이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관중들의 광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또한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 안에는 버거운 삶을 버텨온 이들의 피로감과 더불어 또 다른 환희 역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원형경기장의 태생적 폭력성과 스포츠의 파시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고로 여기서 그것들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집단병리적 현상이 초래하는 병폐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조울증을 오가며 신경증을 앓고 있는 그들이 그 장소에서 선택한 것은 비현실에 기인한 조증이며, 그 병폐한 두 상태의 간극은 스스로 자멸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만큼 넓고 깊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곳으로 그들을 이끄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며, 자발적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즉 자신의 실존을 거절하고, 신성한 집단 안으로 걸어 들어가 다른 생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집단에의 편입을 스스로 거부하는 자들 - 여기서 작가를 포함하여 - 그리고 비자발적으로 거부된 자들은 어김없이 폭력의 대상으로 추락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이때 추락(혹은 집단으로부터의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를 지독하게 고독하고 암울한 세계로 내모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영화 '도그빌'이나 '말레나'의 배경이 되는 사회보다 더 복합적이고 부조리한 곳이 현실이고, '이곳'이며, 신성한 집단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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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감미로운 사이렌의 음성에 매혹되어 자멸하게 되는 것은, 죽은 이들의 생명을 삼키고자 한 사이렌의 고도의 전략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스스로 함몰되어야 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 탓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한 세계에서 소멸하여 다른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것만큼 매혹적인 선택이 없는 것은 아닐까? 집단 불안증과 무기력증이 만연하는 이 시대는 과연 훗날 어떻게 평가될까. ■ 김지혜

Vol.20121207j | 전수현展 / JEONSUHYUN / 田秀鉉 / 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