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pe_collection

김주리展 / KIMJUREE / 金住利 / sculpture   2012_1206 ▶ 2012_1218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32×70×7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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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207_금요일_05:00pm

커튼홀 토크 / 2012_1212_수요일_07:00pm_커튼홀,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후원 / 서울문화재단 기획 / 통의동보안여관_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관람시간 / 11:00am~06:00pm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project space MO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6-25번지 Tel. 070.4222.3002

압축 재생된 이접의 지대 ● 흙으로만 만들어졌으며, 물이 첨가되어 중력의 작용을 받아 아래로부터 서서히 침식되어가는 김주리의 집들은 시간에 의해 스러져가는 것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집은 현대인이 대다수 몰려 사는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변 환경이라는 점에서, 환경 변화에 대한 척도가 되어주곤 하지만, 김주리의 경우 처음 관심사는 몸이라는 내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집 또한 몸의 연장이라고 할 때, 이 작업의 시작 중 하나가 무너져 가는 몸이었음은 필연적이다. 몸과 그것의 외화인 집은 1차적으로 자연력에 의해 쇠퇴해 가지만, 몸보다도 더 빨라진 집의 갱신 주기는 왜 이렇게 미친 듯이 파괴되고 또 건설 되는가에 대한 사회적 물음을 끌어들인다. 존재론적인 문제는 의식하고 의도할 사이도 없이 곧장 일상을 지배하는 거시/미시적 권력의 문제로 비약한다. 미술작품에서도 도시의 변화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이 적지 않게 반영되고 있는 가운데, 김주리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강도와 밀도는 그 출발이 존재론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 그녀의 작품은 외적 접근이 아닌, 작가에게 체화된 내재적 문제의식만이 작품의 폭과 깊이 또한 유지,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그렇다고 작가가 기초적인 자료 조사나 재현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김주리의 작품은 경쾌하게 치고 빠지는 가벼운 풍자나 냉소주의와는 거리가 있으며, 사회 현실에 대한 지식인적 관념주의나 이데올로기에서 보여지는 비판적 접근과도 차이가 있다. 단순한 동병상련이나 자신과 거리가 먼 현실에 대한 연민에 머물지도 않는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렇다는 태도이다. 낡은 집의 외벽 타일 무늬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다음, 그것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과정은 사회 현실에서 발견되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집들이 그토록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무너짐은 그토록 강렬한 느낌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의미는 그 낙차에서 발생한다. 요즘 작업이 시작되었던 2009년에 작가에게 벌어진 사건은, 어느 날 작업실 부근 재개발 구역의 집들이 참혹하게 뜯겨진 현장이었다.

김주리_휘경揮景-m01_흙, 물_22×30×16cm_2012 김주리_휘경揮景-m02_흙, 물_22×26×26cm_2012

갑자기 폭격 맞은 듯 파괴된 집은 작가로 하여금 그것이 허물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했고, 흙으로 만들어진 집의 축소형은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한눈에 압축해서 볼 수 있게 했다. 개발이 이루어지는 시간대의 차이 때문에, 어느 지역은 지체 현상을 보이고 곧 사라질, 또는 사라져줘야 하는 과도기적인 풍경으로 남게 된다. 이전 작업인 「휘경」 시리즈에서 작가는 재개발 예정지인 휘경동 풍경으로부터 '휘발하는 풍경'을 보았고, 작업실이 있는 동네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흩어진 재개발지 풍경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이번 '스케이프 컬렉션'(전시부제) 전은 전시장이 있는 한남동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아마도 탁 트인 조망에 어울리는 고급빌라나 아파트를 목적으로 재개발될 예정인 그 장소들은 언젠가는 완전히 갈아엎으리라는 기대로 인해, 큰 공사가 아닌 자잘한 보수들로 연명하면서 최초의 구조와 형태가 차츰 변형된 곳이다. 그래서 곳곳에 작가의 눈을 끌만한 진기한 생활의 발명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 언덕에 있는 그 동네는 한쪽은 4층, 한쪽은 1층으로 된 계단형의 집이나 외벽 없이 '따로 또 같이' 스타일로 붙어있는 집들, 지형이나 땅의 형태에 맞춰진 자연발생적인 집을 비롯, 밀집된 집들 사이의 미로 같은 가파른 골목들이 모세관처럼 뻗어있다. 김주리의 작품에는 어느 날부터 동네의 언덕을 잠식했었을 비슷한 스타일의 벽돌집들은 서서히 변형된 흔적들이 담겨진다. 계획된 인공구조물은 자연화 과정을 밟는데, 작품은 이 과정을 압축 재생하는 것이다. 동질적 몸체를 서서히 변형시킨 이질적인 요소들은 감추어져야 할 병적인 징후가 아니라, 드러내야 할 생성의 흔적들로 강조된다. 낡고 좁은 집들은 시간에 흐름에 따른 공간의 변화, 가령 덧대어지고 집적되며 증식되는 구조들로 포착 된다. 가파른 삶의 굴곡 면을 따라 집들은 끝없이 이어지며, 한 치의 빈틈도 없는 공간은 그자체가 이접의 연속체이다. 잡초처럼 생명력 있게 뻗어나가는 리좀적 형태들이다.

김주리_휘경揮景-m02_흙, 물_22×26×26cm_2012

작업을 위해 작가가 모아놓은 풍경 사진들에는 밀집된 집들 사이로 어지럽게 얽혀있는 전선줄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또한 근경의 곁가지들처럼 보인다. 리좀의 구조는 미로처럼 길을 잃게 하지만, 리좀이 만들어내는 미로적 구조는 목적을 잃은 효율을 위한 최단거리가 만들어내는 폭력을 유예시키는 방어막이 되기도 한다. 벽에 걸린 드로잉에는 난간들로만 연결된 구조가 있다. 서로 다른 구조가 시점을 달리하면서 리좀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우연적 연결망은 누군가에게는 정리되어야 할 무질서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수에게나 유토피아를 제공할 새로운 질서와 대조되는 헤테로피아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총체적으로 계획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진 구조들은 다소간 무원칙적으로 보이지만, 모두가 필연적인 것들이다. 거기에 그것이 있어야할 이유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 자연화 된 풍경에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여분의 것들이란 없기 때문이다. 작업과정은 집을 짓듯이 치밀하다.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12×70×70cm_2012_부분

컴퓨터상에서 3차원 도면까지 그린 후에 제작되는 것도 있다. 곧 와해될 집들은 백토로 만든 판으로 거의 사실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진다. 작업의 마지막 단계는 전시 오픈이나 그 전날 물을 부어서 아래로부터 서서히 침식시키는 과정이다. 이 전시의 대표작은 축대 위에 7-8채가 붙어있는 집들이다. 닮았으면서 약간씩 다른, 가족유사성을 가지는 집들은 한남동에 있는 실제 건물을 모델로 했다. 그러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으며, 건물의 특정 요소로만 이루어진 환상적 구조물도 있다. 입구도 출구도 없이 난간만으로 이루어진 집이나, 데칼코마니처럼 분열중인 벽돌집은 증식의 방식을 예시한다. 무성생식처럼 분열하는 방식은 원초적이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개체가 증식되는 과정을 담은 이러한 환상적 모델은 굳이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구조체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지만 이미 무너져 있거나, 무너진 파편들 속에서 불사조처럼 일어나는 힘을 상징한다. 작가는 왜 그리 누추하고 궁색한 풍경에 주목하는가? ● 그것은 그러한 풍경들이 하나의 유일하고도 객관적인 시공간 개념을 배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또는 삶의 굴곡 면을 따라 펼쳐지는 중층적 표면들은, 강력한 하나의 깊은 뿌리와 기둥을 가지면서 격자형으로 뻗어나가는 지배적인 권력에의 의지를 거스른다. 오랜 세월동안 미세하게 뻗어온 삶의 그물망은 어느 날 한꺼번에 걷어 내어져야할 쓰레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시공간적 경험을 담은 이러한 구조물들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하나의 힘(권력)에 의해 한시적인 생명만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독특한 실천으로 남아 있으려는 예술에 가해지는 폭력과도 유사하다. 김주리의 작품은 타자가 타자의 편에 선 경우에 해당된다. 물을 쏟아 부음으로서 자연의 과정을 가속시키는 행위는 그 파괴력을 자연에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물과 흙으로만 생성되고 소멸하는 광경들은 자연이 아니라 사회적 풍경인 것이다. 인간 사회는 자연력을 그들의 기준으로 조정한다. 사회는 하나의 힘에 대해서만 합법성과 효율성을 인정한다.

김주리_휘경揮景-h07_흙, 물_12×70×70cm_2012_부분

김주리의 작품은 구체적 특수성이 그대로 새겨진 삶의 자리들이 추상적 보편성에 의해 사라지는 모습을 담는다. 이 추상적 힘은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에 의해 발생되고 강화된다. 작가는 토착민의 삶의 뿌리를 뽑고 어디선가 이식된 하나의 나무와도 같은 동질적 체계에 타자들을 질서 있게 복속시키려는 거대한 흐름에 거부감을 가진다. 김주리의 작품은 자본이 추동하는 공간의 추상화에 대해 구체적 삶의 특수성이 녹아있는 자리를 부각시킨다. 한편 이 자리들이 녹아내리는 과정은 공간이 시간화 되는 현대사회의 경향과 조응한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들은 공간이 시간으로 내파되는 과정을 표현한다. 내파는 붕괴라는 다소간 비극적인 방식으로 귀결되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 되살려낸 삶의 미세한 그물망들은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내구력 및 저항력 또한 암시한다. 난간으로만 이루어진 집이나 집을 이루는 건축적 요소들이 이접적으로 연결되는 드로잉은 삶의 그물망이 생성되는 방식을 알려준다.

김주리_한남동 스케치_51×210×40cm

붕괴되는 건물들은 단편들 및 잔여물들을 남겨놓는데, 이것들은 접 붙어서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그것은 통일적인 설계도에 의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부분들이 덧대어진 형식으로 만들어지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지 않는다. 그것을 추동하는 것은 당면한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계속 이어가려는 욕망이다. 계획된 도시가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면 부분들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티 외디푸스』에서 말하듯이, 큰 덩어리를 이루는 유기체와 대립하는 죽음의 표본이다. 이질적으로 접 붙어지는 단편들은 영원히 지속될 삶의 번영이 아니라, 매순간 죽음을 의식하는 하는 삶을 전제한다. 단편들은 모든 방향에서 또 모든 방면에서 무한한 것과 연결됨으로서 죽음을 지연시킨다. 우연적인 관계망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김주리의 집들은 무엇인가를 표상하거나 기호화하거나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은 표류나 탈주처럼 이어지는 연결이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이접(離接)들은 임박한 붕괴에 대한 저항력을 형성할 것이다. ■ 이선영

커튼홀 토크 김주리 작가와의 수상한 대담 - "비구축의 건축, 구축의 건축" - 일시 : 2012. 12. 12 pm 7 - 장소 : 커튼홀 +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 - 참여자 : 김주리, 커튼홀 (건축가: 구승회, 김광수, 조재원) - 문의 : [email protected]

Vol.20121206j | 김주리展 / KIMJUREE / 金住利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