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 컬렉션

손아유+기증작특선展   2012_1128 ▶ 2013_021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1128_수요일_04:00pm

전시작가 송현숙_신장식_오승윤_오치균_유영국_쿠사마 야요이 짐 다인_제스퍼 존슨_앤디 워홀_베르나르 뷔페_세키네 노부오 헨리 밀러_카와이 카츠사부로_나가마츠 미사오_게이사이 에이션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금요일_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5 1,2전시실 Tel. +82.42.602.3200 www.dma.go.kr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 ~ )는 일본의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이다. 1929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출생, 1957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1977년 일본으로 돌아온 야요이는 나이 48세부터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병원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작품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또한 야요이 작품의 강박적 성격은 어린 시절 겪었던 육체적 학대와 그로 인한 망상에 기인하며 작업이 곧 극복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문학활동으로 20여권의 시집 및 소설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 유영국(1916 ~ 2002)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이다. 1937년 일본 도쿄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했고, 1937년부터 도쿄에서 추상회화 운동에 참가, 일본 독립전과 자유미전에 출품하여 수상한바 있으며, N.B.G 동인전을 긴자에서 열기도 했다. 해방 후 1948년 신사실파전, 1956년에는 모던 아트협회의 동인으로 활약했고 1962년 신상회(新象會)의 결성에도 참가했다. 1959년 이후 조선일보 현대작가초대전,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및 도쿄 국립미술관 주최 한국현대작가전, 이스파 국제전에도 출품했다.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1964년과 1970년 사이에 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오승윤_대작 지리산_실크스크린_100×77cm_2002

오승윤(1939 ~ 2006)은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나 8·15광복 뒤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이사하였으며, 초등학교를 마치고 광주광역시 지산동으로 옮겼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아카데미 드 라그랑드 쇼미에르 등에서 공부했고 특히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 등을 표현한 구상미술에 몰두했다. 그는 유럽 미술계에서 더 인정을 받아 1996년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가하면 1999년 6월에는 프랑스의 미술잡지 『위니베르 데자르 Univers des Arts』 표지에 작품 '풍수(風水)'가 실리기도 하였다. ● 송현숙(1952 ~ )은 전남 담양군 무월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냈으며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되어 독일과 인연을 맺고 병원생활 4년 만에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로 건너간 작가는 문화적 생경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의 주제로 사용해 아스라한 형상들을 한껏 추상화시켜 간략하게 표현하고 그 그림의 제목으로 '몇 획' 혹은 '몇 획 위에 몇 획' 하는 붓질 획수를 사용한다. 이렇게 단숨에 긋는 한 획의 감성과 획 수를 제목으로 하는 이성처럼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 곧 송현숙 회화의 특징이다.

오치균_실내_캔버스에 유채_높이 112cm_1990

오치균(1956 ~ )은 1956년 충남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 미국 브룩클린 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서울과 뉴욕 등에서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가진바 있으며, 전업작가로서 그의 삶 자체와 작업에 관한 열의, 일상의 삶과 작업에서의 진지함, 그리고 그것들이 배어 나오는 작품에서의 느낌이 서로 유린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 특히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고 특유의 거친 질감의 화면과 강렬한 표현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했다. ● 짐 다인(Jim Dine, 1935 ~ )은 신시내티대학과 보스톤 미술관학교에서 공부했고, 1957년 오하이오대학에서 미술사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작품의 재료로 오브제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를 감각적이고 위트 넘치는 미술형식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전통적 가치 체계에 전면적으로 맞섰던 다다이즘(Dadaism)에 그 뿌리가 있다.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을 상징화하는 이미지와 자유롭고 격렬한 표현적 작업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운동이라는 주변의 예술적 상황과 맞물리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제스퍼 존스_성조기_석판_120×115cm_1980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1930 ~ )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수학한 후, 1952년 뉴욕으로 이주해 54년경부터 미국 국기, 미국 지도, 알파벳, 표적(標的) 등의 기호를 추상표현주의풍의 필치로 그림으로써, '그린다'라는 행위와 '현실'를 동일시했다. 관념 사고가 강한 타입의 예술가로 오브제 혹은, 타블로에 오브제를 도입한 작품도 제작했다. 1958년 개인 전시회 때 '네오다다'라는 말이 주어지기도 했다. 라우센버그와 함께 추상표현주의에서 팝 아트로의 전환점에 위치한 중요한 작가로, 1960년대 이후의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앤디워홀_모택동_실크스크린_100×110cm_1972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 ~ 1987)은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으로 불린다.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다.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었으며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던 그는 동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던 워홀은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고 기계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세계 속에서 그의 이미지와 명성은 함께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 ●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 ~ 1999)는 파리에서 출생한 프랑스의 화가이다. 국민 학교를 중퇴하고 나치스가 점령하고 있는 파리 시 야간 학교에 나가며 데생을 익혔다. 18세부터 처음으로 본격적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1948년 20세의 나이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추상파에 대항하는 구상회화의 왕자라는 호평을 받았다. 백, 흑, 회색의 침침한 배경에 까칠까칠한 깡마른 인물을 등장시켜, 수직선과 수평선의 금욕적 구도에 의해 대전 후의 불안을 표현했다. 대표작으로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된 '채찍질'이 있다.

세키네노부오_달빛_금_26.5×21cm_1989

세키네 노부오(Sekine Nobuo, 1942 ~ )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모노하(物派; 일본에서 창시된 세계적인 미술 사조)의 중심에는 늘 세키네 노부오가 있었다. 세키네 노부오는 조각이라는 장르, 돌과 브론즈라는 저항적인 매체들은 물론이며, 행위예술에 가까운 설치미술이나 환경미술 등 다양한 영역과 방법을 왕래하면서 작업했다. 하지만 그가 몰두했던 대상 대게는 물질이 지니는 순수한 속성이었다. '공상-흑(黑)'이라든가 '원추(圓錐)의 주(柱)', '공(空)의 엔타시즈'와 같은 제목들은 작품의 소재에 화학변이를 일으켜 철학적 사유를 유도해 작품은 관조의 대상이 되며 사유의 형태가 된다.

가와이 카츠사부로_TRIPLE0410_종이, 연필_47×64cm_2004
헨리 밀러_탑,들판,남자_종이에 석판화_46×33cm_1948

헬리 밀러(Henry Valentine Miller, 1891 ~ 1980)는 우리에게 소설 '북회귀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밀러는 소설가로서의 집필 작업 외에도 3000여점에 달하는 미술작품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제대로 미술수업을 받지 않아 유려한 형태감을 갖고 있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에서 그의 회화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정신이 잘 드러난다. 천진난만하고 현실을 뛰어넘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그의 회화에서 특히 돋보인다. 강렬한 원색의 대비를 대담하게 구사한다거나 사람들의 모습과 집의 풍경을 과감하게 왜곡시키는 표현은 우리를 동화와 같은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 게이사이 에이센(Keisai Eisen, 1791 ~ 1848) 에도시대 말기에 활약한 게이사이 에이센은 미인화(美人畵)로 잘 알려진 우키요에 화가이다. 일본의 치바시 미술관 설립의 계기가 되기도 한 에이센은 서예가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게이사이'라는 이름을 준 카노 하케이사이(Kanô Hakkeisai)로 부터 사사 받았고 아버지가 작고한 후, 기쿠가와 에이잔(Kikugawa Eizan; 퇴폐적 미인화가 유행하던 당시에 '에이잔풍'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독특한 표정의 미인들을 그려내 세대의 미인도화가로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아래로 들어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 시켰다. ● 신장식(1959 ~ )은 서울대와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으며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미술조감독 일을 하며 개폐회식에서 우리문화를 세계에 성공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올림픽 후에 3번의 개인전을 통하여 전통의 맥을 찾는 작업으로 '아리랑'이라는 테마를 추구해 우리 전통을 현대 미술에 적용하여 현대미술에서 우리다움을 추구하는 새로움을 성취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자신이 찾아낸 우리의 조형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항상 실험적인 시도로 새로운 형태의 현대미술을 창조하고 있다. ■ 이순구

Vol.20121129j | 하정웅 컬렉션-손아유+기증작특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