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112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GMA GALLERY GMA 서울 종로구 율곡로 1(사간동 126-3번지) 2층 Tel. +82.2.725.0040 artmuse.gwangju.go.kr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서 1980년대 학생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시기는 '한국 학생운동의 전성기'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치열했던 투쟁의 10년이었다고 높이 평가 받는다. 1980년 5·18 광주학살의 끔찍했던 기억 그리고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수많은 학생들은 투신, 분신, 의문사를 당했고, 또 수배되었거나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특히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상처라고 볼 수 있는 광주항쟁의 트라우마는 반미투쟁으로 이어져 학생운동이 이념적으로 급진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군부독재의 폭압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또한 학생들은 노동자, 농민 등 생산대중이 투쟁의 주역이 되지 않는 한 민주화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노동현장으로 달려가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군부에 의한 군사독재 통치라는 특수한 역사 속에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전면에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승완의 작업『Monument 100』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전체적인 의미나 역사적, 사회적 맥락보다는 작가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 개개인의 경험과 흔적을 초상사진의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각 인물들은 묻혀진 기억의 목격자로서 재현되고, 사회적 트라우마와 고통을 '지금-여기'로 환기시켜 준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로 묶어둠으로써, 보편적인 역사의 의미망으로 편입되지 못한 개인의 경험과 타인들의 삶의 고통을 살아있는 기억으로 재현시키고자 했다. 사진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역사가 다다르기 어려운 고통의 기억들을 과거에 대한 실증적 차원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으로 과거와 미래를 현재적 지평 위에서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과거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Monument 100』은 실제 인물들의 초상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기 위해 재현된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사진가는 100인의 초상 사진의 대상성을 전제로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1980년대라는 상자 안에는 아무것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사진가 자신이 호흡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억압과 폭력에 저항했던 타자로서의 작가 자신, 즉 타자로서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사진가는 분열된 가치관으로 갈등하는 의식들의 편린을 보여줌으로써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했으며, 이념적 가치관을 사진적 시각화를 통해 의미화하고자 한다. 시각적 가치관은 곧 세계를 보는 방식의 문제이며, 의미를 재현하고 이념을 생산하며 이미지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때 시각적 가치관이 보여주는 것은 곧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승완이『Monument 100』의 사진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작가 개인의 역사적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바로 1980년대라는 거대한 상자 그 자체인 셈이다.
이승완의 사진작업이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의 옥중사망 진상규명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으며, 후에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된다. 이승완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변혁 밖에 없다고 믿었던 동시대 젊은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5·18의 비극과 진실을 목격한 이들에게 광주는 트라우마적 장소였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사적 기억과 의식을 토대로 보이는 것과 기억되는 것들 사이의 복합적인 현실을『Monument 100』의 형상화를 통해 드러내 보여주고자 했다. 순수했던 과거의 열정과 삶의 의미를 상실한 동료들의 지친 현재가 오버랩 되는 곳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연들과 이야기들이 섞여있는 그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는 낯선 실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텅 빈 옛 시간의 공허만을 발견할 것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100인의 초상사진 작업을 통해 작가는 현재의 매개체로서의 개인의 기억들과 역사적 기억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신화화된 이미지로 불러내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들은 거칠고 때로는 흔들리며, 초점이 맞지 않거나 클로즈업된 이미지들로 드러난다. 불안과 좌절, 그리고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의 복합적인 심리 구조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이 경험했던, 그리고 그 안에서 정지되어 버린 시간의 흐름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공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고요한 침묵의 세계, 사진가의 시선은 원초적 침묵을 찾아내어 그것을 일깨우고, 그것의 의미를 회복시키고 싶은 것이리라. 우리는 인간의 얼굴에서, 수없이 많은 잔주름에서, 그리고 표정과 눈빛 속에서 개인의 역사를 발견하곤 한다.『Monument 100』에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외로웠던 고통의 시간, 아쉬움으로 가득한 기억의 역사와 투쟁하고 있는 듯 슬퍼 보인다.
이승완 작가에게 100인의 초상사진은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세계이며, 동시에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거대 담론으로서의 상징성을 의미한다.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이 갖는 의미와 위상은 많이 높아졌다. 이승완의 작업은 실제 인물들이 들려주는 증언의 시학으로서 살아있는 역사로서의 기억의 장이 될 것이다.『Monument 100』은 학생운동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사진작업을 통해 재현해 내는 사진가 개인의 역사 체험의 기록이며, 그것을 공적 기억의 담론으로 재구성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강혜정
Vol.20121129d | 이승완展 / LEESEUNGWAN / 李承完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