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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128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ngik Museum of Art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번지 홍문관 2층 Tel. +82.2.320.3272~3 homa.hongik.ac.kr
시간의 이미지-존재의 빛 ● 20세기가 이루어놓은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은 역사에 유례가 없는 기술적 진보를 가져왔으나 이는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환멸을 가져다주었다. 현대인들은 고도의 기술력으로 자연을 통제하는 주체로 군림할 수 있다는 허상을 가지고 세계를 도구화해 왔고, 화려한 기술적 쾌거의 그늘 아래 세계는 황폐해졌고 대지는 파괴되었다. 지배에 대한 의지에 사로잡혀 모든 존재를 지배의 대상으로 보도록 규정하는 현대인은 인간마저도 계산 가능한 노동 에너지로 여겨 이에 인간은 인격이 상실된 대중으로 전락하였다. 황폐해져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더듬게 된다. 과학화, 기술화, 합리화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쉬워졌으나, 이와 함께 세계의 신비는 없어지고, 신들은 떠나고, 정신적인 유대감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순수함이 간직된 세계를 잃은 우리의 삶은 궁핍해지고 있다.
'작가 심정리는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희망과 환멸이 교차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이러한 실존적인 불안과 회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시간'과 연결지어 형상화하려는 다양한 실험을 모색해왔다. 인간의 유한성과 시간의 영원성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색은 매체의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시간의 개념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포용하여 작업의 폭을 확장해 왔다. 1999년 개인전에서 영상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이 911사태로 인해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불안을 직면해야 했던 시점과 교차되었던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를 여는 시점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서로 조응하면서 하나의 융합체로 만나게 되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 작가의 시도는 과학화, 합리화에 기초한 서구문명이 인간을 도구화해 온 비극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던 치명적인 사건에 대한 절박한 예술적인 대응이었다. 희망의 환상을 주었던 과학기술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은 더 이상 기술의 주체가 아니다. 20세기에 급속도로 진보한 기술이 가져온 결과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21세기를 맞으면서, 작가는 이러한 상실의 시대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고찰하면서 인간과 테크놀로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융합의 가능성을 추구해 왔다. 작가는 융합을 위한 끊임없는 작업의 여정 속에서 사물과 매체 간의 차이를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고유성을 간직하고 그 자체로 존재하면서 서로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도록 열린 장을 만들어왔다. 작가의 무위적인 붓 자국들이 지나간 회화의 화면, 인간 신체의 움직임, 자연의 변화 등을 보여주는 스크린, 그리고 이와 함께 들리는 심장박동 소리 등은 세계와 대지, 인간의 유한성과 신들의 영원한 호흡 등이 서로를 지배하지 않고 조우하며 어우러지는 것을 염원한다. 이러한 열린 장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매체들은 각각의 특수성을 내세우기 보다는 서로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조화하는 전체의 부분들로서 존재한다.
작가가 그동안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 존재에 대하여 던져온 물음의 문맥을 고려할 때, 이번 전시에서는 '시간'에 대한 보다 집요한 고찰이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에서 제시된 거울이미지, 즉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다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박동하며 지나쳐가는 서로를 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중첩된 이미지는 인간이 경험하는 두 개의 다른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 시간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유한함이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함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죽음일 것이다. 죽음은 가장 확실한 가능성, 즉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있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안도하면서 죽음이 아직 먼 사건인 것처럼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탄생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인간의 유한함에 대해 던지는 작가가 물음은 존재의 의미를 시간적으로 설명한 마틴 하이데거의 사색을 상기시킨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로 뻗어있는 시간 속의 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시간을 무한히 계속해서 흐르는 것으로 보는 일반적인 생각은 죽음에 처해 있음을 잊으려는 자기기만의 산물이다. 이러한 시간은 자신의 죽음과 각자의 존재를 망각한 세상 사람에게 나타나는 시간이다. 하이데거는 나의 죽음이 나라는 각자의 존재에게 주어진 시간의 종말임을 인식해야 함을 촉구한다. 존재는 각자 자신의 시간, 유한한 시간을 갖는다.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자기 자신 만의 일회적인 시간으로 경험함으로써 인간은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을 초월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대부분 인간이 죽음에 대한 불안을 인수하지 못하고 시간 저편의 영원을 숭배하면서 자신의 유한한 시간으로부터 도피하여 분산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인간은 이러한 분산된 상태와 투쟁하면서 삶의 근원적인 통일과 전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죽음을 직면하려는 결단은 인간이 산만한 분산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근원적인 통일을 회복하게 되는 극적인 사건이다.
동일한 이미지가 반사된 것 같은 거울이미지는 두 개의 다른 유형의 삶 간의 부단한 투쟁을 연상시킨다. 즉, 동일한 순간들의 반복으로 보이는 두 이미지는 죽음을 회피하는 분산 속의 삶,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직면하는 결단을 함으로써 자신의 근원적인 통일을 회복하는 삶 간의 투쟁을 보여주는 듯하다. 통일과 전체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분산과 투쟁하는 과정은 삶을 지탱하기 위한 우리의 호흡처럼 박동 치면서 유기적으로 지속된다. 유한한 시간을 일회적인 시간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영원성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성을 근원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듯한 반사된 이미지들이 전해주는 지속되는 박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시간의 심연에서 고동치는 '순간'을 포착하도록 촉구한다. 아마도 그 순간은 그동안 은폐되고 억압되어 온 삶의 힘이 분출되는 예외적인 순간이리라.
이 거울이미지 안에 제시되는 이미지들은 우리 주변에서 무심코 보아넘기는 단순 소박한 사물들이다. 물위를 떠다니는 새들, 파란 하늘, 흰 구름, 푸른 나무, 눈덮힌 산, 도시의 골목, 익명의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가는 도시 공간과 같은 단순한 자연과 일상적인 공간이 제시된다. 이렇게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동어반복적으로 나열되는 영상은 제시되는 사물들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지 않는다. 단지 그 사물들이 전체의 부분들로서 서로 어우러져 있음을 보여준 뿐이다. 사물을 예리하게 분석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보다는 동일한 사물을 다른 빛 안에서 보게 해 주는 이러한 측면은 하이데거가 주목한 시적인 언어가 가지는 특성을 보여준다. 시적인 언어는 세계를 세계로서, 사물을 사물로서 드러나게 하는 환기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소박한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들을 거울이미지로 중복시키고 호흡하듯 지나가게 하고 눈이 오는 겨울밤의 이미지를 뒤집어서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지각하고 인식하는 자연물, 일상의 공간과 사물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단순한 이미지들을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그 전에 그것들에서 볼 수 없었던 광채를 보도록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광채를 '존재의 빛'이라고 불렀다. 존재의 빛 안에서 존재는 전혀 새롭게 드러난다. 이제 사물은 우리 눈앞에 두고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무한한 깊이로 우리를 사로잡는 사물인 것이다. 이러한 시적인 언어를 통해 도구화되었던 세계와 사물이 그 자체의 빛을 발하게 되리라.
작가는 인간이 존재하고 생활하는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동일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것의 중요함을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다. 자연의 세계는 과학에 의해 이해되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죽어가는 생활에서 경험하는 자연이다. 그곳은 밤과 낮, 일출과 황혼, 계절의 변화가 있고 그 안에서 희망과 숙연함을 느끼고 기도하는 유한한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다. 현대 기술문명이 초래한 위기에 대한 예술적인 대응을 부단히 모색해 온 작가는 이제 만물의 소생과 휴식이 경험되는 자연, 인간과 신이 만나는 장소로 돌아갈 것을 말없이 권하고 있다.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하늘, 대지, 인간, 신이 서로 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각자의 고유성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를 인간의 이성으로 계산하고 분석하여 지배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하리라. 그리고 그 조화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 김희영
the Image of Time-the light of being ● In her continuous search for the nature of Being, Shim Jung Rhee has explored various possibilities in which man, nature, and technology can encounter and interact as essential elements to form a unified world. She addresses the concept of time referring to human mortality and a yearning for eternity. The strife between human desire to avoid mortality and assertive decision to face it comes into focus in her recent work employing mirror images. The images of simple nature, objects, and surroundings seem to urge the viewer to return the simplicity of nature in order to restore our spiritual home, lost in the course of the development of modern technology. ■
Vol.20121128a | 심정리展 / SHIMJUNGRHEE / 沈庭利 /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