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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 '노모(老母)'라는 다큐멘터리 사진, 대한민국을 사로잡다 지난 봄, 서울 통의동에 있는 사진 갤러리 류가헌은 이곳을 찾은 중년의 관람객들로 붐볐다. 어떤 이들은 사진 앞에서 자리에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고 탄식을 내질렀으며 어떤 이들은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작가 한설희의 '어머니'였다. 열흘 남짓한 짧은 기간 대중들과 만났던 이 '노모'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전시회로 갈무리되기엔 그 여파가 너무 컸다. '노모'는 전시를 다녀간 이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신문과 TV에서도 이 작업을 주목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유명 사진가도 아닌 주부 사진가의 어머니 사진에 공감하고 열광했을까. ●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유명 사진작가도 아닌 내 작품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들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 그리고 그들 자신의 엄마였다. 주름 골이 깊고 검버섯이 핀 여자, 흐트러진 백발과 초점 없는 눈으로 침묵하는 여자, 고단한 세월이 옹이처럼 얼굴에 박힌 여자,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관람객들이 보는 것은, 모두의 엄마인 그 여자였다." ● 관람객들은 작가 한설희가 찍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모두 마음속으로 자신의 엄마를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전시 때 아쉽게 빠졌던 미공개 사진들과 출간 직전까지 찍은 최근 사진을 더해 한 권의 책 『엄마, 사라지지 마』가 당도했다. 더 많은 이들과 만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느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진 여인, 엄마의 남은 날들을 담는 딸의 카메라 늦든 빠르든 우리는 모두 언젠가 고아가 된다.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겪어보기 전에는 감히 상상해볼 수 없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상실이다. 마치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과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카메라를 들고 엄마의 일상을 좇기 시작한 작가의 눈에 들어온 엄마의 모습은 마치 곧 바스라질 것처럼 앙상해져 있었다. 같은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엄마가 낙엽으로 탈바꿈하듯 본연의 빛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북녘 외딴 섬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만나 뭍으로 나왔던 엄마, 이제 늙고 병들어 다시 방이라는 섬에 외로이 갇혀버렸다. '소멸'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예감이 찾아들자 주변의 어떤 것도 심상치 않았고, 그 무엇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작가 한설희는 2년간 매일매일 용인 자신의 집과 서울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출근하듯 사진을 찍었다.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엄마의 몸 상태, 이제는 눈을 뜰 기력조차 없어 누워서 잠만 자는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급했다. 엄마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엄마, 사라지지 마』는 완성되었다.
엄마에게는 이제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93세 어머니와 69세 딸,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다 엄마의 죽음을 예감하며 셔터를 누르는 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방, 어머니의 물건을 뷰파인더로 다시 바라보며 작가는 곳곳에서 이별을 예감하고 몇 번이나 소스라쳤다. 정리된 옷 위로 흰 천이 있는 검고 기다란 옷장 서랍을 보며 '관'을 떠올리거나 나비 문양의 자개장을 향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경험이 그것들이다. 그럴수록 작가는 왜 나는 더 일찍 엄마의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워했다. 엄마가 더 건강했을 때, 엄마가 더 아름다웠을 때 사진을 찍어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죽음에 대한 예감 없이는 찾아오지 않았으리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독자들에게, 우리의 깨달음도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게 하는 대목이다.
두 개의 시선, 두 개의 거울, 두 명의 어머니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두 사람의 삶 하지만 살아오면서 이 엄마와 딸이 알콩달콩 살뜰했던 것만은 아니다. 아이 넷을 데리고 홀로 삶의 거친 풍랑을 헤쳐나가야 했던 젊은 여인과,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를 돌보며 아버지의 부재를 메워야 했던 첫딸의 가슴에 맺힌 일이 어디 한둘일까. 카메라를 들고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손 한 번 잡는 것도 어색했다. 방 혹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해 그 안에 갇힌 채 생활하는 한 사람을 2년간 카메라로 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연출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딸은 엄마의 방에 유독 거울이 많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한 번도 여자이기를 포기한 적 없는 엄마를 상징하는 물건이자, 어느 순간 차갑게 금이 간 엄마의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메타포! 그 거울을 통해 작가는 엄마의 마음속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는 일이다. 엄마의 몸 일부를 클로즈업할 때마다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클로즈업 됐다. 서로 주고받은 가시 돋친 말들, 거래처럼 교환한 상처들이 낱낱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엄마와 딸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동안 수없이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를 바라본다. 이 시간을 통해 모녀는 서로의 가슴으로 닿는 길을 다시 찾는다. 독자들은 사진과 글을 따라가는 동안 긴 세월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응어리들이 풀어지고, 다시 만나 물길이 터지는 두 줄기의 강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이듦 그리고 죽음에 대한 가장 리얼한 직시(直視), '노모(老母)'라는 우리 삶의 가장 절박한 다큐멘터리 사람들은 젊음에 열광한다. 젊음은 곧 아름다움의 동격이요, 늙음은 오히려 추(醜)에 가깝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엄마, 사라지지 마』는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든,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리얼한 직시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허물어진 노년 풍경, 흙으로 돌아가기 전 정물처럼 변해가는 한 인간의 나이듦을 이토록 치밀하고도 끈질기게 바라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인간 모두가 안고 있는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느끼는 절박함.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혈육을 잃어야 한다는 공동의 절박함이다. 사진을 찍는 딸을 두고도, 굳이 동네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을 찍는 엄마. 혼자 영정사진을 찍으러 사진관까지 걸어가는 엄마를 헤아려보는 대목에서는 보는 이의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더 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 한설희와 그의 노모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 생각해보라.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비슷한 다큐멘터리를.『엄마, 사라지지 마』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 '당신의 삶에서 지금 힘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무엇이냐고, 잊히지 않게 남겨야 할 것들이 없겠느냐고...'
■ 지은이_한설희 함경북도 나남 출생.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큰 아이가 말과 걸음을 배우기 시작해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집에 아무도 쓰지 않는 낡은 카메라가 있었다. 아이 사진이라도 찍어주면 좋겠다 싶어, 그렇게 처음 카메라를 들었다. 기회가 생겨 한 사진가에게 길지 않은 시간 사진을 배웠고 사진의 매력과 짜릿함을 맛보았다. 그때 눈앞의 뿌연 안개가 걷히면서 사물들이 뚜렷해지는 경험을 했다. ●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진만 찍기엔 내게 주어진 역할이 많았다. 게다가 집안 형편마저 기울게 되자 사진이라는 취미가 호사스럽게 느껴졌고 얼마 후 사진을 그만두었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육십 대가 되었다. 자식들은 모두 시집장가를 갔고, 삶의 격렬한 시기도 다 지나갔다. 가까운 친구가 사진을 공부하는 것을 보고 첫사랑의 아픈 상처처럼 남아 있던, 애써 꾹꾹 눌러 놓았던 갈망이 슬며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다시 할 수 있을까. 사진아카데미에 가보니 내가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이었다. 손자뻘 되는 학생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굳은 머리로 숙제도 하고 시험도 치렀다. 마음속에 간직했던 사진에 대한 불꽃의 씨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점점 따스하게 밝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놓는 기계, 카메라. 하지만 어떤 카메라도 세월을 돌려놓지 못한다. 그 세월과 함께 떠나버린 것들을 데려오지 못한다. 내가 엄마의 사진에 이토록 조바심을 내는 이유다. 내 나이 67살, 엄마 나이 91살이었던 2010년부터 엄마의 모습과 일상을 담아오고 있다. 이 사진들로 지난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신진작가에게 주는 상인 '온빛사진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봄 처음으로 갤러리 류가헌에서 대중들에게 어머니의 사진을 선보였다.
■ 목차 prologue 노모, 우리 인생의 가장 절박한 다큐멘터리 그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문득 / 소식 / 첫 셔터를 누르던 날 '노모'라는 이름의 기록 / 힘없이 사라지는 것들 나와 당신들의 엄마 / 나만의 피사체 / 침묵 / 뒷모습 / 바라보다 빛 / 창가 / 화단 / 홀로 섬이 된 사람 / 그 집 / 노래 / 스테인리스 그릇 잠 / 전화 / 가족 로맨스 / 양치질 / 화장품 / 아직 고와요 / 외출 죽음과 눈이 마주칠 때 / 클로즈업 / 골짜기는 아름답다 / 손등 / 지팡이 강 / 얼굴 / 밥 / 같이 먹자 / 스르르 파르르 / 외로운 사람들 / 깨진 거울 비단이불 / 성경 / 옛 사진 / 혼신의 힘으로 / 한 편의 시 / 새 외투 종합병원 / 모녀 / 바다 / 찍을수록 쓸쓸해지다니 / 당신에게 가는 길 엄마가 가르쳐준 것 / 낙엽 / 동생들 / 기억 속의 맛 / 영정사진 / 함께 epilogue '엄마'라는 말
Vol.20121126g | 엄마, 사라지지 마 / 지은이_한설희 / 북노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