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강홍구_김규식_김영균_하태범_한석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휴 Art Space Hue 경기도 파주시 광인사길 68 성지문화사 3층 302호 Tel. +82.31.955.1595 www.artspacehue.com
온갖 가짜들이 판을 치니 인공천국, 가짜 낙원인 세상 같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진짜보다도 이렇게 가짜들, 이를테면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것들에서 오히려 더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한동안 떠들썩했던 시뮬라크르(simulacre)의 논의가 그저 지나친 사회학적 상상력이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드는 것도 이런 느낌들이 얼마간의 감각적 현실성을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다소간의 과장 섞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달라진 어떤 국면들을 특징적으로 징후화시킨 이론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플라톤처럼 이데아라는 (그 존재 자체도 보증할 수 없는) 진짜의 진정성을 엄한 곳(동굴 밖)에서 찾고 있을 바에는, 그리고 그 진짜라는 것들을 그저 그럴듯하게 닮은 것들(genuine likeness, eikon)보다는 오히려 진짜인 척하는 가짜들(apparent likeness, phantasma)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나을듯하고 그 현실성을 긍정해야 할 판이다. 이런 진짜 같은 가짜들이야 말로 인공으로 뒤덮인 지금의 변화무쌍한 세상을 만드는데 더 직접적으로 일조하는 논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저 비루한 가짜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당당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현대의 일상적인 삶과 문화와 현실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지금 시대의 온갖 욕망의 논리조차 수렴하니 말이다. 비루한 진짜보다는 화려한 가짜가 더 대접받는 세상인 셈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그만큼의 진짜의 진정성, 자연스러움에 대한 구애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판세는 이미 기울어진 듯, 왠지 그러한 '자연'조차 의뭉스럽고, 인공화된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들게 된다. 아무튼, 도무지 믿지 못할 세상이니 그 믿음에 대한 판단의 기준마저 마비된 듯 한 느낌이다. 살아있는 감각조차 성형이라도 된 듯 얼얼한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PVC Reality』展이 후경화시킨 지금의 맥락들, 이 시대의 무늬들이다. 리얼리티란 결국 삶의 진득한 진정성이 담겨있는 가치들이고 이들 가짜들의 논리들과 구별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리얼리티를 둘러싼 달라진 어떤 상황들을 이번 전시는 전하려 한다. 폴리염화비닐 혹은 염화비닐수지를 말하는 PVC는 이렇게 인위적인 성형, 인공과 모조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문화를 지칭하는 접두어로 작동한다. 플라스틱같은 세상, 곧 고분자 합성수지가 만들어내는 이 시대의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들, 이를테면 복제와 변형, 대량생산을 통해 가짜로 가득 찬 세상의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어떤 모습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과잉 조형성이라 해도 좋을 만큼, 손쉽게 무언가를 만들어 가시화시키고 이를 용이한 방식으로 만연시키는 세태하고도 연결될 수 있다. 이들 고분자 합성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풍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을뿐더러 그 의미도 압축적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내 현실의 논리를 확대재생산하여 반복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동시에 저렴하면서도 숱한 욕망으로 가득한 현대의 물질문화를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처에 편재하여, 예컨대 가상과 현실의 공간조차 뒤엉키게 하면서 종래의 리얼리티를 가볍게 넘나들고 가로지른다.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가치지향으로 고상하고 엄숙하기조차 한 오래된 '리얼리티'들을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번 전시가 앞세우고 있는 피브이씨 리얼리티는 이 시대가 또 다르게 징후화시킨 리얼리티이며, 좀 더 지근거리에 있어 접근과 조작이 용이한, 더 현실성 있는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이를 위해 동시대 사진의 다양한 목소리를 주목하고, 이를 펼쳐낸다. 고전적인 사진의 논리보다는 디지털화된 사진의 풍경을 통해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싶다. 디지털화의 그 작용만큼 PVC의 합성논리가 작동하는 셈이다. 자연 속의 빛을 감광성 표면에 노출하여 이를 물화시킨 (고전적인) 사진은 이러한 자연의 불가해한 작용으로 인해 대상의 실재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자연을 닮은 아날로그한 작동인 것이고, 사진이 갖고 있는 지표성(indexicality)의 출처이자,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핍진성(Verisimilitude) 어떤 이유들 말이다. 반면 디지털과 결합된 사진은 이런 아날로그한 리얼리티를 다시 데이타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훨씬 더 다양한 복제와 변형, 유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 테크놀로지와 결합됨으로써 자유자재의 이미지 합성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기술의 대중화로 고급기술로서의 진입장벽이 철폐되어 손쉬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 점은 디지털 사진의 논리가 오늘날의 플라스틱의 그것처럼 사회 전체로, 대중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한 주요 이유들이다. 그렇게 이 시대의 우세종같은 문화논리로 거듭났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사회, 문화의 차원만은 아니었고 예술의 영역이야 말로 이 거대하고 동시에 민감하기만 한 변화들에 이미 일찌감치 깊숙이 개입해 왔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또한 이러한 달라진 맥락을 작업의 조건들로 전용하면서 각각의 변별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공히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지만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꽤나 넓은 편차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만큼 다양하기만 하다. 강홍구의 작업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디지털 사진의 논리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듯 하다. 디지털 사진이 허구적으로 가지고 있는 피사체의 존재론과 달리 사진적 피사체가 갖고 있는 리얼리티, 이를테면 거기 그렇게 실재로 존재했었음이라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담아내려 한 현실의 장소성은, 실재의 현실에서는 사라지고 망각되어 가고 있는 것들이기에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것들로 다가오고, 이 조차도 허름하고 느슨한 방식, 그래서 첨단 테크놀로지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손냄새 풍기는 감성적인 태도로 접근하기에 남다른 느낌을 전한다. 생각해보면 PVC 같은 플라스틱 문화야 말로 첨단의 기술보다는 허름하고 저렴한, 손때 묻은 삶의 풍경의 그것이기도 하기에 여기에도 어떤 연결은 자리하는 셈이다. 최첨단 고층 아파트 사이로 오래된 낡은 집을 삶의 방편으로 끊임없이 수리하고 고쳐가야 하는 우리 내 삶의 고난하지만 진득한 리얼리티를 작가는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석현의 작업은 좀 더 직접적인 화법으로 이번 전시와 연결된다. 가짜 인공들이 더 자연스러운 척 하는 이 시대의 의뭉스러운 녹색의 정치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녹색의 향연은 그것이 문화의 논리나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그저 껍데기뿐인 자연'스러움'임에 불과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감성의 동학에 길들여 있는 이 시대의 서글프고 애잔하기조차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리얼리티 속에서 우리는 숨을 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루한 현실의 복잡다단함이 서려있는 리얼리티는 그렇기에 그 접근조차 애매하고 양가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태범의 사진 작업은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 폭력과 공포의 반복 속에서 무감해지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이에 연동되어 있는 현대인의 감성으로 향한다. 끔직한 테러의 현장조차 백색으로 무색 무미화될 수 있고, 그럴듯한 현실성으로 조형화될 수 있는 디지털 착시의 가시성, 이미지의 논리들 말이다. 원본 없는 모조 현실성이 아니라 원본이 갖고 있는 진정성을 탈색시키고 변조하는 이 시대의 시각성의 작동은 끔찍한 현실의 논리를 비가시화시키고 이를 무덤덤한 방식으로 교감케 하면서 세상을 이미지화시킨다. PVC 리얼리티는 이처럼 조작과 변형의 리얼리티이다.
김규식의 사진 작업인「Pla-wars」시리즈도 강도 있는 생생한 현실의 논리를 변형, 조작, 향유하는 지금 시대의 이미지의 문제와 이를 대하는 감성의 논리에 천착한다. 그것이 어떤 밀도 있고 사실성 있는 리얼리티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재)매개하고 해석하는 방식, 혹은 대중적으로 소통되는 현실적 유용성이 더 문제가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전쟁의 상황조차 즐거운 유희의 도구가 될 수 있고, 미적인 감성으로 전유될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의 한 단면을 김규식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갖가지 사회 장치들과 문화적 작동 과정 속에서 훈육되어 왔다. 지극히 온당하고 자연스러운 감각이 되려 비현실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세상 속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작업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리얼리티란 역설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리얼리티일지도 모르겠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현실과의 긴장감 있는 끈을 부여잡는 한, 리얼리티는 그 좁은 틈새에서도 위태롭게 자리하는 것일까. 김영균의 작업은 개인적인 심리기제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심리의 이미지이기도 한 풍경들을 직조한다. 현대인의 심리 속에 내재한 방어심리와 욕망을 갑주, 다시 말해 갑옷과 투구라는 다소 낯선 장식적 무장들로 장착시켜 연출한 이미지들로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심리 또한 사회적 풍경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것이니 작가 역시도 현실의 어떤 리얼리티를 다루고 있는 것인 동시에 이미 또 다른 현실태로 작동하는 상상, 변형의 이미지들을 가시화시킨다. 지금 시대의 리얼리티는 상상, 가상, 현실의 공간을 따지지 않고 작동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사진을 다루는데 있어 다른 작가들과 다른 조형적인 면모들이 독특하기만 한데, 작가의 경우 가상공간에서의 디지털 이미지의 레이어를 입체적이고, 양감적인 것들로 보고 이를 조각처럼 구축하고 있다는 면에서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이는 메이킹과 연출의 측면이 강조된 지금의 디지털 사진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조각가이자 사진가로서의 작가적인 관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면모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공히 지금 시대의 다양한 사진적 리얼리티를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실의 리얼리티에 대한 일정한 (비판적) 시각을 장착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일관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의 그것들과 단순, 조응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작업 방식 특유의 작동으로 나름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특정한 '작업'들로 자리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때의 리얼리티란 그저 단순히 현실성을 담고 있는 정도의 차원이 아닌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조형적 리얼리티라는 면에서 일정한 주목과 사유를 요하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PVC 리얼리티도 그런 것들일 것이다. 이 시대의 리얼리티란 그렇게 알 수 없이 요원한 동굴 밖의 무언가를 그저 반영하고, 재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현존화시키는 시선들과 연동된 부단한 만듦의 방식을 통해서, 혹은 다양한 실험들과 연결들로 (재)매개하는 실천들을 통해서 작동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 자체로도 스스로 또 다른 하나의 현실로, 감각의 리얼리티들로 자리하면서 말이다. ■ 민병직
Vol.20121126f | PVC Realit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