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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120_화요일_05:00pm
2012 교동아트 레지던시 기획초대展
주최 / 전라북도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 교동아트센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교동아트스튜디오 Kyodong Art Studio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89(풍남동3가 67-9번지) Tel. +82.63.903.1241 www.gdart.co.kr
박진옥의 작품세계 : 팝 아트(Pop Art)의 역설과 차용을 통한 변주곡 ● 인스턴트 시대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의 양상 또한 다양한 매체의 확장과 장르의 해체, 주제의 다양성 등으로 인해 그 다원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비단 테크놀러지의 눈부신 비약적 발전이나 탈이념 시대의 개막이라는 외형적인 요인 이외에도 개성적인 세대의 탄생이나 비판적 역사주의, 키치, 새로운 매체의 사용을 통한 다양한 창조 욕구, 전통적인 진리와 이론들에 대한 해체 등에 따른 것이다. 작가 박진옥 역시 숨 가쁘게 변화하는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진정한 예술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질문'은 지난 어린 시절의 개인사를 담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느낌과 표현의 내재적 깊이가 깊은 고민과 성찰의 흔적만큼이나 매우 심오할 뿐만이 아니라 느낌이나 그 표현에 있어서도 매우 이국적이고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게 되는 작품들 역시 표현에 있어서는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외형적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있지만 현대미술 속에서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예술가로서 작품창작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여전하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박진옥의 이번 개인전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팝 아트(Pop Art)라고 하는 새로운 형식의 표현방법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던 초기의 작품들이 회색과 흑백 모노톤으로 표현되었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들은 빨강과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을 사용함으로써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한층 더 밝아지고 메시지 역시 훨씬 더 강렬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잠깐.... 작품을 좀 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느껴졌던 이런 표면적인 느낌들이 어느덧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빨강과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을 통해 표현된 이번 작품들은 역설적이게도 회색빛 모노톤으로 표현되었던 초기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삶에 대한 진지함과 색감자체에서 느껴졌던 명상이나 고요함을 뛰어넘어 색이 화려해진만큼 화려한 색의 이면(裏面)에 가려져 있던 우울함과 더불어 처연하고 공허한 느낌마저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소비문화의 대중미술이었던 팝 아트(Pop Art)는 1960년대 초기에 미국과 영국화단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에서 범람했던 기성의 이미지들을 차용함으로써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대량생산과 대중전달 수단이 낳은 생활양식의 변화, 사고의 획일화와 조직의 거대화, 평준화 등에 의해 종래의 사회체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에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대량생산과 소비가 절정에 달하게 되었고 고도로 발달된 매스컴의 기능으로 말미암아 대중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진부한 양식에 무감각하게 되어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팝 아트는 우리에게 친숙한 광고 문안이나 상품의 사진 또는 유명 배우의 얼굴 포스터와 같은 것들을 변형 없이 캔버스 속에 재배치하였다. 프랑스의 사회기호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 따르면 팝 아트는 '소비사회'의 현실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예술이었다. 왜냐하면 소비사회에서 가장 탁월한 사물은 바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상품이란 공장의 조립라인 안에서 막 나온 기성의 기호이기 때문에 상표가 그것의 의미를 대신하는 그런 사물이다. 박진옥이 이번 개인전에서 팝 아트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팝 아트의 대명사인 앤디워홀이나 고(故) 박정희 대통령, 유명 여배우 등 시각적 주목성이 강한 등장인물들과 이미지들을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기호로 조작함으로써 작가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팝 아트는 직접적으로 감지된 현실이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이나 대중매체 가운데에서 발견되는 현실에 대한 기존의 표현방식을 그 음미의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팝 아트의 가장 특징적이었던 측면은 팝이 형상성을 띠고는 있지만, 그것은 직접 관찰된 실재(實在) 그대로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공적인 제2의 이미지로서 채택된 것이었고 이런 이미지들이 화면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공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반면 작가 박진옥은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이미지를 활용했던 팝 아트의 형식과 방법적인 전략을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이미지들이 직접적으로 감지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담아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팝 아트와는 다른 내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직접적이면서도 다분히 은유적이다. 「팝 아트는 죽었다」는 선언문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앤디 워홀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작가의 비판적 시각과 더불어 마르셀 뒤샹을 연상시키고 있는 변기에서는 예술의 새로움과 최초의 출발을 시도했던 다다(Dada)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 역시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묵시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해골의 형상 등은 중세미술에 등장하고 있는 알레고리(allegory)(보통 문학에서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하여 다른 주제 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을 일컫는다. 은유법과 유사한 표현 기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문장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표현 기교인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를 연상시킨다. 한편, 한 마리의 동물이 되어 거칠고 본능적인 두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느끼며 그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해 대중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작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깃덩어리나 작품의 중앙에 중심적인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은 비단 작가 자신만의 모습이 아니라 현시대의 예술계를 바라보는 우리들 모두를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팝 아트적인 표현형식과 전략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박진옥의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얼핏 포스터나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을 연상시킬 수도 있는 작가의 작품에서 이미지와 형상들은 화려한 배경의 색상위에 마치 부유(浮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형상과 이미지들은 마치 본질과 실재(實在)는 점점 사라지면서 이미지와 현상만이 세계를 사로잡아 그것들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박진옥의 작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대중매체시대를 지배하는 사물의 운명을 '표피의 존재론'이라 지칭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라(Simulacra)' 이론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시뮬라크라는 실재와 주체가 증발된 채 기표(記標)들만이 유희하는 공간으로서 거대한 모조공간이다. "실재가 이미지들과 기호들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는 보드리야르의 언급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사물의 내면적 실체성이 증발해 버린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진옥의 작품 역시 시각적 주목성이 강한 이미지들을 차용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그 이미지 속에 내포되어 있는 사물의 본질과 실재는 물론이고 암시이고 상징적인 의미들 역시 증발되고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 보자. 작가 박진옥은 이번 개인전에서 또 다른 방식과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서구 팝 아트 작가들이 서구사회의 일상적인 현상들을 매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소통의 방법'에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도록 유도하였던 것처럼, 혹은 고급문화의 체계를 고수하면서도 대중과 친숙한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심리적인 경계를 허물었던 것처럼, 작가 박진옥은 이번 전시에서 다분히 팝 아트(Pop Art)적인 요소들을 통해 대중예술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작가의 나아가야 하는 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정신이 없으면 영혼도 없다, No Spirit, No Soul!」라고 선언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결과보다는 작품제작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흐름을 중요시하고 있는 박진옥은 예술과 작품창작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인간에 대한, 예술에 대한 존엄성과 본질의 중요성 역시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의 작업노트에서도 엿보인다.
예술의 존엄성은 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그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하여 그 시대를 좀 더 발전시키고 대중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을 찾는 것이 결국 대중과의 소통이며, 그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의식의 혁명이다. 미디어와 매체는 혁신과 개발로 가득하지만 정작 대중들의 의식은 텅 비어있는 시대이다. 대중들의 의식(意識)에 대한 혁명은 바로 예술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예술은 혁명보다는 타협을 중시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작업노트 中) ● 예술의 역할과 작품창작에 대한 작가의 이런 진지한 태도는 작품의 질적 수준뿐만이 아니라 향후 발전과도 연결된 것이다. 박진옥은 이번 개인전에서 작품의 기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작품성이나 작품의 제작과정, 작품의 제작의도 등에 관심을 더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미진함과 미완의 요소들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 이태호
Vol.20121123f | 박진옥展 / PARKJINOK / 朴鎭沃 / painting